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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사천왕문 앞에서 개울을 건너 편백숲으로 둘러싸인 주차장을 지나면 다시 통도사 산내암자로 향하는 포장도가 나온다. 길을 따라 10분 가니 삼거리다.
갈림길에 세워진 표지판엔 법원 앞의 변호사 사무실 간판 같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암자 이름들이 줄줄이 붙어 있다. 왼편 길로 네 개, 오른편 길로 아홉 개, 모두 열 세 개다. 여기서 오른쪽 백운암 방면으로 가야 한다.
20분 가면 앞에 넓은 운동장이 있는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백운암 방향 길을 따르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 마지막으로 비로암을 오른쪽으로 보내면서 길은 비포장으로 바뀐다.
여기부터 길은 점점 가팔라지는데, 40분 쯤 오르면 백운암이다. 법당을 새로 짓는 불사 중이어서 경내가 다소 혼잡하지만 물을 구할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백운암에서 능선까지는 30분이면 닿는다. 길은 여전히 가파르지만 남동해안의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고, 조금씩 조망도 트여 한결 수월하다. 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을 이어가면 한피기고개 지나 시살등(981m)으로 연결되며 1.5킬로미터 거리에 1시간 가량 걸린다. 삼거리는 열 명 정도 앉을 만한 공간이 있어 바람을 맞으며 쉬기에 좋다. 배낭에서 먹거리를 잔뜩 꺼내 놓은 임대영(41세·부산의료원)씨 덕분에 첫날 산행에 참가한 일곱 명 모두 입이 즐겁다.
오른쪽 바로 앞에는 제법 큰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에 오르니 취서산(영축산이라고도 하며, ‘鷲’자를 불교식이 아닌 한자음 그대로 읽어 영취산이라고 잘못 읽기도 한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鷲棲山’이라 표기되어 있다.<편집자주>)의 장엄한 모습과 그 서북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의 천국, 신불평원이 감동적이고, 신불재를 지나 신불산, 간월산, 능동산, 재약산으로 이어가는 영남알프스 연봉들의 부드러운 실루엣이 힘들게 올랐던 숨가쁜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놓는다. 능선에 붙기까지 힘들어서 맨 뒤로 처지던 백정연(31세)씨와 김선희(28세)씨는 능선에 오르자 자기 속도를 회복해 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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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발 아래로 아득히 멀어진 솔숲에 싸인 통도사와 산내 암자들이 넓은 분지 속에 꽃처럼 아름답다.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산군은 대부분 한쪽 면이 가파르고,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 안쪽은 넓은 분지를 이루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래서 철옹성을 연상케 하는데 능선에서의 조망이 특히 뛰어나다. 이러하기에 영남알프스 산행은 일단 능선에 오르기만 하면 계절에 따라 자태를 달리하는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포근하고 가벼운 산책길이 된다.
삼거리에서 50분 가자 돌무더기 탑을 지나 ‘아무도 모르는 적적한 꽃이 되어 초겨울 먼 산 대숲 기슭에 가장 깊은 잠을 청한’ 어느 산꾼의 추모비 한 기가 서 있는 취서산 정상 직전의 봉우리에 닿았다. 10분 내려서니 오른쪽 비로암으로 내려서는 삼거리다. 비로암쪽으로 내려서면 곧 샘이 있어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여기서 취서산 정상까지는 지척이다.
‘영취산’, ‘취서산’ 두 개의 표지석이 선 산정(1059m)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기분 좋다. 동쪽으로 울산 앞바다가 아스라하고, 북쪽과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전형적인 경동지괴의 지형으로 솟아 있어 눈맛 좋다.
취서산 바로 아래에는 약술과 음료수 등을 팔고 있는 류창섭씨가 운영하는 간이천막으로 된 ‘취서산장’이 있다. 류씨는 영남알프스 지역에서 발생하는 구조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드넓고 부드러운 신불평원을 보며 살아서인지 짧은 시간 만난 그는 억새평원을 많이도 닮아 있다.
류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취서산장에 손님이 찾아 들었다. 신불평원의 단조산성(丹鳥山城) 아래서 살고 있는 송산(松山·솔뫼)씨다. 류씨가 선물해 준 책, 「영축산 약이 되는 식물」의 저자이기도 한 송씨는 취재진을 보고 반가워하며, 자신의 움막으로 안내하겠단다. 단조성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서자 조릿대로 지붕을 얹고, 비뚤비뚤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로 기둥을 받치고 황토로 둘러막은 두 칸 움막이 나왔다. ‘草佛明房’이라 이름 붙은 그야말로 초막. 마당은 채 한 뼘이다. 송씨가 이 초막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단다. 그의 외로움의 깊이를 잴 수야 없겠지만, 산꾼을 반기는 그의 맑은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겠다.
신불평원에서 사는 두 사람
초불명방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취재진은 또다시 산행을 이어갔다. 송씨는 취재진을 신불평원 끝까지 지름길로 안내했다. 무너진 단조성벽을 밟으며 이어진 그 길은 은빛으로 부서져 가는 억새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둘레 약 12킬로미터의 단조성은 신라 때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남쪽이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성안에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샘이 몇 곳 있을 뿐, 긴 성벽도 허물어져 옛 자취를 찾을 길 없다. 신불평원에서 바라보는 밤하늘 달빛은 ‘丹城落照’라 하여 통도사 8경 중 하나로 유명하다. 월색(月色) 푸르른 밤 성 허물어진 폐허에서 하는 야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신불평원에서 신불재까지도 머리칼 헝클고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만평 억새로 인해 길멀미 나지 않는 맘 편한 길이다. 안치운씨는 그의 저서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에서 점봉산 곰배령 꽃길을 ‘그 사이로 난 작은 길은 밟자니 아깝고 참자니 애타는 이승 최고의 길이다’라고 했는데, 영남알프스의 억새밭 길도 감히 그에 비길 만하다. 빛의 조화가 이처럼 오묘하게 나타나는 산도 흔치 않을 터, 역광을 받은 억새는 빛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를 시위한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선글라스로 멋을 낸 김선희씨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해 발길을 쉬 떼지 못한다.
“아, 너무 아름답네요. 과연 듣던 소문이 틀리지 않았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영남알프스를 여러 번 올랐지만 오늘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진 못했어요. 정말 행복한 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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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빛 예쁜 등산복을 받쳐입은 울산에 사는 김미영(30세)씨의 감탄이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신불재는 지형적으로 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여기서 신불산은 650미터이고, 오른쪽으로 4.15킬로미터 내려가면 가천마을이다. 가천마을쪽으로 100미터도 못 가서 신불산대피소가 나온다. 넉넉한 미소를 지닌 본지 울산주재기자 엄성효씨가 운영하는 유인대피소로 1인 1박에 3000원씩이며, 다음카페 ‘신불산대피소’ 회원은 대피소 이용이 무료다.
“집열판을 이용해 전기를 모았다가 야간에 사용하는데, 지난 태풍 매미로 인해 집열판 다섯 개 중에서 세 개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대피소 출입문 옆에 놓인 두 개의 집열판을 가리키며 그가 한 말이다. 그는 여러 차례의 해외원정 경험도 지닌 울산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대피소 안에는 이층 나무침상이 있고, 벽에는 낭만적인 산꾼들의 시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다음카페 ‘신불산’ 회원인 배영대씨의 「석란꽃」이라는 작품이 눈길을 끈다.
올 봄에도 석란은 꽃이 피는가 / 여리고 시린 가지 눈 속에 묻어 / 깨어날 듯 잠들어 허공을 날다 / 이제사 잠이 들면 꽃이 피는가 대피소 바로 아래에 샘이 있고 그 옆엔 야영할 수 있는 터도 있다.
점차 회복되는 간월재 훼손 현장
신불재에서 신불산은 15분이면 닿는다. 갑자기 운무가 껴 사방이 금세 희뿌옇게 변했다. 신불산의 높이는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를 비롯하여 그동안 1209미터로 알려져 왔으나 지형도의 등고선을 살펴보며 이상하게 여긴 산악인들의 건의에 의해 국립지리원에서 재측량, 2002년 10월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신불산의 높이가 1159미터라고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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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은 정상 표석엔 1209미터로, 그 아래 새로 설치한 안내판엔 1159미터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영남알프스 연봉 중에서 두 번째 높다는 그 위상은 변함이 없다.
신불산에서 동쪽으로 발달한 바위능선을 이어가면 홍류폭포를 지나 등억리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이 바위능선길을 ‘신불공룡능선’ 또는 ‘신불리지’라 부르며, 홍류폭포가 깃든 간월골은 단풍이 좋다.
정상에서 능선길을 이어 10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울주군’이라 적힌 벤치가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직진하지 말고 반드시 오른쪽으로 꺾어야 한다. 직진하면 갈천리 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날이 흐리거나 운무 낀 날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갈림길에서 간월재까지는 25분이면 닿는다.
오프로드 차량들의 통행으로 큰 훼손을 보았던 간월재는 본지 2003년 6월호에 보도되었던 ‘긴급고발’기사 ‘간월재로 오르는 차량을 막아야 한다’와 부산등산연합회 영남알프스 지킴이 회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지금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간월재엔 대피소나 산장이 없고 대신 트럭을 이용한 포장마차인 ‘동금이네(017-571-9890)’가 있는데, 패러글라이딩을 타려고 할 때 전화를 걸면 현재 시각의 바람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간월재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홍류폭포로 이어지는데, 그 길 따라 10분 가면 샘이 있다.
간월재엔 방화선 겸 임도 역할을 하는 비포장 도로가 나 있다. 간월재에서 25분 오르면 간월산(1083m)이다. 여기서 배내봉(966m)까지는 억새가 아닌 잡목이 우거진 길로 1시간 30분 걸린다. 봉우리에서 20여 분 걸려 내려선 배내고개는 무슨 건물을 지을 요량인지 공사 중이라 중장비 소리로 시끄러웠다. 취재를 위해 부산과 울산, 서울에서 찾아온 대여섯 명이 먼저 와서 우리를 맞는다. 대부분 본지 임대영 사진편집위원과 지리산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로 이번 취재를 위해 이곳으로 모였다.
“아따, 디게 늦게 오네. 고생 많았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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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배낭 가득 먹거리를 채워 올라온 안효신(52세)씨의 첫 마디. 부산의 산사나이인 그도 지리산만 찾아다니는 지리산 매니아다. 서울에서 달려 온 이은영(28세)씨도 그에 뒤지지 않을 열정 가득한 산꾼.
배내고개에서 배내봉쪽으로 조금 오르니 넓은 공터가 있어 취재진은 그곳에 터를 잡고 야영을 했다. 밥 짓는 동안 텐트를 설치하고, 자리를 깔고 둘러앉았다. 등불에 비친 서로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보며 깊어 가는 야영의 밤. 하늘엔 밤별 흐르고, 돌아가는 순배를 따라 산사람의 정도 함께 흐른다.
밤새 비가 내리다 “후두둑- 후두둑-.” 밤새 비가 내리더니 다행히도 새벽에 그쳐 주었다. 부지런한 몇은 벌써 아침준비를 하고 있다. 69번 지방도가 지나는 배내고개를 건너 공사현장을 지나자 길은 포장도로와 오른쪽 산등성이로 붙는 산길로 갈렸다. 능동산을 가려면 산길을 따라야 한다. 간밤에 내린 비로 등산로 주변의 풀과 나무들은 빗방울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중간의 헬기장을 지나 돌무더기 쌓인 능동산 정상(982m)에 오른 것은 고개를 출발한 지 45분이 지나서였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만나는 오른쪽 갈림길은 가지산(1240m)으로 가는 길이다.
능동산은 그 산허리를 지나는 임도로 인해 대부분 비껴 가는 봉우리가 되었다. 7분을 내려서면 쇠점골 약수터가 나오고, 이내 아까 그 임도를 만났다. 여기서부터 임도를 따라 1시간 남짓 지겹게 가면 알프스랜드 정문이 나온다. 완만한 터를 이용해 목장이 들어섰다. 30미터 앞에 이정표가 나오고, 본 이름이 재약산인 천황봉과 샘물상회가 오른쪽임을 알리고 있다.
“어묵 먹고 가이소∼!” 샘물상회 아주머니의 호객행위가 아니더라도 배가 출출하던 차다. 정지홍(52세)씨가 운영하고 있는 샘물상회는 많은 등산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이곳은 날씨 맑은 날, 발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의 너울거림이 한 눈에 조망되는 명당이다.
“산장 숙박료는 정해져 있지 않심더. 그 때 따라서 적당히 받지예. 뭐 없으면 그냥도 재워줍니더.”
정씨는 넓은 산장 안을 보여주며, 사자평 만큼 좋은 곳도 없으니 언제 꼭 한 번 내려오란다.
10분 정도 오르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배내골 6km, 얼음골 3.55km, 천황산 1.4km’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얼음골은 북쪽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야 하기에 주의해야 한다. 샘물상회에서 재약산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엔 양옆으로 싸리나무가 많이 자란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 신비로운 분위기다. 10분 더 가자 오른쪽으로 ‘신명마을’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는 삼거리다. 2킬로미터 거리이며, 사자봉은 1킬로미터 남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안개 자욱한 능선길을 20분 걸어가자 바람이 세차게 부는 재약산 정상 사자봉(1189m)에 닿았다. 궂은 날씨였지만 많은 이들이 사자봉을 올랐다. 큰 돌무더기가 쌓인 사자봉엔 ‘천황산’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재약산이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는 재약산을 천황산으로, 남쪽의 수미봉(1108m)을 재약산으로 표기해 두었다. 사자봉에서 천황재로 내려서는 길엔 많은 돌탑이 있는데, 기묘한 형상을 한 돌탑들이 세찬 바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15분이면 ‘알프스쉼터’와 ‘털보산장’이 있는 천황재에 닿는다. 털보산장은 13년 된 이곳 터줏대감으로 털보인 이현우(45세)씨가 이곳에 머물며 운영하고 있다. 올 여름 새로 생겨난 알프스쉼터는 최순철(41세)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두 가게 모두 제철을 만나 많은 등산객들로 빈자리가 없다.
고개에서 수미봉까지는 0.9킬로미터이고, 표충사는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하며 3.7킬로미터 거리다. 배내골은 왼쪽으로 능선을 넘어선다. 천황재에서 표충사까지는 1시간 조금 더 걸린다.
출처 "사람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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