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리 마을 입구의 언덕에 자리 잡은 굴참나무의 위용
(2013. 11. 9)
문복산(文福山)의 산줄기들과 운문산(雲門山)의 연봉들이 겹겹이 감아 돌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계곡들 가운데 한 가닥의 시냇가에 형성된 오진리(梧津里) 마을 입구 언덕에 마치 마을의 수호신인양 우뚝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굴참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오진리 일대는 솥을 만들어내던 마을이라 하여 제부리(製釜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솥을 만든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철을 산출하여 신라군의 무기를 만든 곳이며 이런 곳은 경주로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진리를 비롯하여 신원리, 방음리 등에서 생산된 ‘운문솥’은 일제 강점기까지도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신라 때부터 철을 다루던 기능공의 후예들이 인근에서 생산되는 철과 풍부한 목탄을 이용해서 생활필수품인 솥을 만들어 그 전통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철을 녹이기 위해서는 1000도 이상의 가열온도가 필요한데 그 당시에는 참나무 숯이 유일한 재료이었다. 굴참나무는 참나무 종류의 대표나무로서 마을이 가까운 산지에서 많이 자라고 있어 널리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큰 나무가 마을 입구 언덕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은 당시에 이용되던 참나무 중에 인물 좋은 한 그루를 기념으로 남겨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굴참나무는 줄기에 두꺼운 코르크가 발달한다. 손으로 눌러보면 푹신푹신한 감이 느껴질 정도로 탄력성이 좋다. 코르크가 발달한 줄기는 껍질이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져서 다른 참나무류와 구별할 수 있다. 경기지방에서는 골을 ‘굴’이라 하는데, 나무 이름은 ‘껍질에 굴이 지는 참나무’에서 ‘굴참나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여름에 달린 열매 줄기의 건강한 모습(여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 황벽나무와 개살구나무에서도 좋은 질의 코르크가 형성되지만 흔한 나무가 아니라서 굴참나무에서 대량으로 채취해 사용했다. 특히 2차대전 막바지에 패색이 짙은 일본은 군수물자로 굴참나무 껍질 벗기기에 혈안이 되어 소나무와 함께 수난을 당했다. 광복이 되면서 굴참나무의 굴욕도 끝나고 아픈 상처의 흔적도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옛날에도 우리 조상들은 굴참나무의 껍질을 이용하여 산골 마을의 지붕 이는 재료로 애용해 왔으며, 지금도 옛 정취를 살리기 위해 실내장식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르크가 발달한 줄기의 껍질
천연기념물로는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96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271호),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288호), 강릉 신계리 굴참나무 군(461호)이 있다.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산126-2
위치 : N35⁰41.847′, E128⁰58.568′
수종 : 굴참나무
나이 : 300년
높이 : 16.5m
뿌리목 둘레 : 545cm
가슴높이 둘레 : 475cm
나무갓 폭(수관폭) : 동서16.4m, 남북11.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