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사상에 대하여(WCC대회에 대하여) 성심교회 박용근 목사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WCC 대회 (기독교 올림픽)을 한다고 하여 자유주의가 급속도로 한국교회에 스며드는 이때에 우리는 진리로 무장하여 진리를 대적 자들과 같이 싸워야 할 것이다. 91년도에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뱀의 말, 사람의 말, 사탄의 말도 있다고 하는 것 대하여 비판한 것이니 이 자료가 설교의 자료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뱀과 사단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마4:6)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첫째로 = 진리에 대한 과학적 개관성이 있어야 할 기준이 있다고
모교수의 말 중 신학도 학문이기에 진리 대한 과학적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진리는 논리적인 것과 비논리적인 것이 있다.
비논리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장차 재림이다.
이러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논리 할 수 없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신적이라고 할 수 없는 두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1.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이해를 하려고 하면 시간을 숫자적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데 숫자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우리가 편의상 1을 시작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뿐이지 숫자의 시작을 찾아 소수점 이하를 계산하게 되면 그 시작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숫자의 끝도 없다. 그 끝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영원이란 시간을 이해를 할 수 있는가?
유한한 인간으로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은혜란= 원어로 카리스인데 은혜란 호의를 가진다. 쾌활함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한 하나님의 은혜란 =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베푸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이런 은혜는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베풀지만 조부모에게 빚진 것을 자녀에게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면서 영원토록 은혜를 베푸신 분의 은혜를 논리적으로 안다고 해도 그 은혜에 감동과 감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감동으로 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는 말로 논한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고 그 은혜를 받고 믿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된다.
둘째로 레위기성경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성경관에 대하여
모교수는 레위기 문헌이 지나간 시대적 착오의 말이라고 하였는데 레위기는 구약성경 중 한권의 성경 중 한 부분으로 모든 성경과 관계된다.
구약의 가시적인 사건과 신약의 불가시적 사건이 서로 문제와 답이 되어준다.
즉, 육의 창조와 영혼이 육에 머물 동안 거듭나야 되는 진리는 육과 영혼의 어느 한쪽도 무시 될 수 없다.
영혼이 육보다 더 중요하여도 육을 떠나서는 거듭날 수가 없으며 심판만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레위기에서 복음을 보고 복음에서 레위기를 보며 예언에서 성취, 성취에서 예언을 볼 줄 알 때 레위기도 빛으로 현실을 조명하고 신학과 신앙의 능력의 말씀이 된다.
셋째로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특별계시이다.
신학 상 논쟁이 있을 때는 성삼위신의 말씀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한다고 하고 성경에는 성신의 말씀도 있고 악한 신의 말, 사람의 말, 짐승의 말도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모세를 통하여 창세기를 기록하였다. 그래서 창세기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중에 뱀이 말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창3:1)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이유는 뱀은 피조물로서 사단에게 이용되어 사단의 그 유혹하고자 하는 뜻을 말하였다.
모세가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뱀의 말을 인용한 것은 사단의 그 정체를 알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뱀의 말한 것을 인용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나타난 사단의 말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성경을 인용할 때는 사단의 말이다. 이단이 성경을 인용할 때 그것은 마귀의 말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태를 통하여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을 인용한 것을 성령의 감동되어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91:11-12)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성령께서 마태를 통하여 사단의 말한 것을 교회에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단이 성경을 인용한 그 말을 주신 목적은 마귀도 성경을 인용해서 자기의 정체를 감추고 양의 가죽을 쓰고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고 오직 전능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이나 신앙을 성경으로 조명할 때 올바른 신학인지 잘못된 신학인지 분별할 수 있다.
성경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의 저자인 성령의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침을 받을 때만이 성령의 조명을 받는 것이다.
넷째로 인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같을 수 없어
저들은 정의나 어떤 이념으로 죽은 자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죽음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예수님은 무죄하신 하나님이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그 인성은 영혼과 육체 입고 오신 완전하신 분이다.
주님이 죽음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죽음을 대신한 죽음이요.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셨는데도 성도가 죽은 것은 속죄함을 받았어도 죄에 대한 보응이요.
또 한편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불신자의 죽음은 그 자체가 심판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세 개의 십자가상에서 세 종류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하였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그리고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 마지막 기도가 내 영혼을 받으소서! 기도하였다.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예수의 죽음은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성도들의 죽음을 대신한 그 공로를 기도한 것이요. 스데반이 기도한 내용은 자신이 그렇게 순교할지라도 자신의 공로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상이나 이념이나 정의감에 자살한 그 죽음이 주님의 죽음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은 말하기를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고 사랑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죽음이라고 하였으니 이 세상에 어떤 희생도 주님의 죽음과 비교할 수 없다.
(이 글은 91년도에 감리교 모 교수와 김홍도 목사의 신학과 성경관으로 논쟁할 때 모교수 교수의 비성경적인 것을 박용근 목사가 크리스챤 신문, 교회공보, 복음신문에 게재한 것임 이글을 김홍도목사가 복사하여 전국교회에 배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