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지역 탐방 자료 안내(2024. 1. 16)
안동 지역은 우리 카페에서 3차례(① ‘11. 10. 08, ② ’12. 06. 18, ③ ‘13. 07. 15)나 탐방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안동은 문화 유적의 보고(寶庫)이며 볼거리가 많음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안동역사박물관, 임청각, 법흥사지 7층전탑, 월영교, 안동민속박물관이며, 보조 코스로는 안동댐과 안동 물문화관 등으로 대형관광버스 2대를 동원해 75명이나 참여한다.
1. 안동역사박물관 경상북도 도청 근처에 있는 안동역사박물관은 2019년 향토사학자 권영호 관장에 의해 폐교된 풍서초등학교에 설치하였다. 40여 년간 향토자료를 수집한 관장의 사설 박물관으로, 1988년 한 청년이 태종과 효령대군의 친필과 내력이 적힌 자료를 판매하려는 것을 보고 귀중한 자료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서와 유물 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양이 수만 점에 이르러 많은 사람과 이를 공유하기 위해 교실을 전시실과 수장고로 고치어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안동역사박물관
각종 고문서류와 전적류(典籍類), 민속자료, 근·현대 자료, 초등 교육자료 등 1만여 점을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1960~1980년대에 주로 사용했던 검정 고무신과 공중전화 등 생활용품은 물론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등에서 사용됐던 다양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어 학자들에게는 연구 자료로,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자료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안동역사박물관 고서류
박물관의 관람은 유료로 [개인] 성인(고등학생 이상) 5,000원, 청소년(중학생 이하) 3,000원, [단체] 성인(고등학생 이상) 3,500원, 청소년 (중학생 이하) 2,000원이다.
역사박물관 전시 내부
2. 안동 임청각(臨淸閣)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살림집으로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 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고성 이씨 안동 입향시조 이증(李增,1419~1480, 영산현감, 이조참판)이 조선 중기의 건축한 종택 건물과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李洺, 형조좌랑)이 중종 때 세운 별당형 정자(亭子)인 군자정(君子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상해 임시 정부의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은 임청각 주인인 이명의 17대 주손(冑孫 : 맏손자)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 중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 맑은 물을 곁에 두고 시를 읊노라)’의 구절 중 ‘임(臨)자’와 ‘청(淸)자’를 따와 지은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안동 고을의 명승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청각은 원래는 99칸의 집이였으나, 일제 강점기의 수난으로 일부 철거되고 지금은 50여 칸 남아 있다.
특히 석주 이상룡 선생은 "공자·맹자는 시렁 위에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라며, 사당의 불천위 신주까지 땅에 묻고, 집안의 종을 모두 해방시키고 노비문서도 불태웠다. 독립운동을 위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과 99칸짜리 임청각까지 모두 정리하여 만주로 건너가서 그 자금으로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키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데 사용하였다. 이에 그의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11명이나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특히 우당 이회영 가문, 왕산 허유 가문과 함께 이상룡 가문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3대 명문가로 손꼽힌다. 그러나 남에게 넘어간 임청각을 그냥 둘 수 없어 종중에서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다시 도로 사서 종택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 : 사상이 불온한 조선인)’의 집안이라 지정하고, 임청각 마당을 관통하는 중앙선 철로를 건설하면서 50여 칸의 집과 행랑채 등 부속채가 철거하였고, 지금은 종택과 군자정 등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퇴계 이황 선생 친필
원래 1963년 1월에 보물 제182호의 건물은 임청각 내의 군자정만 지정하였다. 그후, 2002년 임청각 전체 권역을 보존하기 위해 보물의 명칭을 안동 임청각으로 변경하였다. 또 2022년 국보와 보물 지정번호를 폐지하면서 현재는 '보물 안동 임청각'으로만 표기하고 있다. 임청각은 현재 문화재청에서 복원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동 임청각
석주유고(石洲遺稿)에 의하면 선생은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1911년 서간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일가친척들을 불러놓고 <去國 吟>을 한 수 읊었다.
<거국 음>의 시판
*去國 吟(거국 음)- 나라를 떠나면서 읊음 山河寶藏三千里(산하보장삼천리) 더없이 보배로운 삼천리 산하여 冠帶儒風五百年(관대유풍오백년) 오백년 동안 관복을 입고 유학을 지켜왔네. 何物文明媒老敵(하물문명매노적) 문명이 무엇이길래 어찌하여 늙을 도적을 끌어 들여 無端魂夢擲全甌(무단혼몽척전구) 무단히 꿈결에 온전한 사발(나라)을 던져버렸고, 已看大地張網羅(이간대지장망라) 이미 이 땅에 그물이 쳐진 것을 보았으니 焉有英男愛髑髏(언유영남애촉루) 어찌 남아가 제 일신을 아낄 수 있으랴 好住鄕園休悵惘(호주향원휴창망) 고향 동산아! 잘 있거라. 슬퍼하지도 말라. 昇平他日復歸留(승평타일복귀유) 태평한 그날에 다시 돌아와 머물리라! 임청각에서 이상룡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제 관헌이 1942년에 집 앞마당과 사랑채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현재는 그 규모가 50칸 정도로 축소된 채 낙동강 풍경과도 단절되었고, 이곳을 통과하는 철도 선로와의 거리는 불과 7m 정도이다.
이런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정부는 임청각은 복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4년에는 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임청각 주변 시설정비에 나섰으며, 2016년부터는 4억 3000만 원의 예산으로 보수 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2020년에 안동역을 외곽지로 옮겨 중앙선 선로를 외곽지 쪽으로 올기고, 기존의 중앙선 방음벽을 철거하고, 임청각의 옛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다. 임청각 중앙선 철로의 철거가 완료되고 임청각 복원·주변 정비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어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교육 체험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 군자정(君子亭) ; 임청각의 별당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군자정의 현판은 조선 후기(현종 때)의 문신이며 서예가인 한성부판윤 고동 이익회(古東 李翊會, 1767~1843) 선생이 쓴 글씨이며,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 건축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대청이 남향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온돌방 4칸이 연접하여 ‘ㅏ’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온돌방의 한 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임청각 군자정
형조좌랑인 이명(李洺)의 손녀(청풍군수 이고의 딸)인 고성이씨 부인은 앞 못 보는 맹인이지만 사위를 물색하던 중 퇴계 이황 선생의 주선으로 안동 일직에 사는 이황의 제자 서해(徐嶰)와 결혼하여 약봉 서성(3조 판서) 선생을 낳아 훌륭히 잘 키워 조정에서 정경부인의 증직(贈職)이 내렸고, 23세로 일찍 돌아간 남편 서해(徐嶰)도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고동 이익회 선생 글씨
기호학파의 비조(鼻祖)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도학의 거장 경당 장흥효의 딸인 장계향(이휘일 이현일의 모), 조선 제일의 명문을 탄생시킨 약봉 서성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안동 일직의 보물 제475호 소호원)! 이 세 사람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여인상으로 조선조 3대 현모로 꼽을 수 있다. 그 인품은 말할 것도 없고 학식과 덕행이 뛰어나서 만인의 사표가 되었다. 가정에서 부녀자가 하는 일은 오늘날 최고 전문가의 수준이다. 특히 음식 솜씨가 조선 제일이다. 모두 자식을 잘 기르고 가문을 일으켜 세워 그 빛이 찬연했다. * 숙흥야매(夙興夜寐) 객인들이 묵었던 행랑채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라'는 숙흥야매(夙興夜寐)의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집을 지나면, 우물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이곳에 자리한 사랑채는 석주 이상룡 선생이 출생한 방으로 유명하다. 방 앞에 바로 우물이 있다고 해서 일명 ‘우물방’으로 불리는 이곳 또한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 선생 등 조선 시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영험한 방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사랑채 마당의 우물
전남 담양 출신 의병장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 1533~1592) 장군의 장자(長子)인 고종후(高從厚)가 임진왜란을 피해 안동에 왔다가 안동 입향조 북애 이증 선생의 증손자인 당시 임청각 주인 이복원(李復元)의 맏사위가 되어 고경명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사돈 환갑잔치를 한 해 앞두고 고경명이 사돈 이복원에게 사람됨을, 천태산 도인 계진에 비유하여 칭송하며 읊은 시가 題 臨淸閣(제 임청각)이 편액되어 걸려 있다.
3. 법흥사지 7층 전탑(塼塔) 법흥사지 칠층 전탑은 국보 제16호로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불탑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전탑 중 가장 크다. 통일신라 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7m, 너비 7.75m에 이른다. 단층 화강암 기단 위에 7층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금속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원래 신라 때 창건된 법흥사의 탑이라고 전해지나, 절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어느 순간 흔적이 사라졌고 지금은 탑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 들어섰다.
안동 법흥사지 7층 전탑
대체로 한국에는 석탑이 많고 그 외에 전탑 모양만 흉내 낸 모전 석탑이 있지만 중국에서 흔한 전탑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이 탑은 한국의 몇 안 되는 전탑이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각 층 지붕에 기와가 얹어진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목탑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기단부는 시멘트로 되어 있는데, 미륵사지 석탑처럼 일제 강점기 때 유지·수리한다는 명목하에 발라 놓았고, 기단부 부조들도 엉망으로 배치해놨다. 이로 인해 원형에 심각한 손상이 와서 본래 모습을 추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수리한다고 시멘트로 발라놓은 모습
학술적 가치는 높지만 불행하게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일명 안동의 사탑(斜塔 : 기울어진 탑)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개통한 중앙선 철길이 옆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1,000년도 넘은 고탑 바로 옆으로 기차가 약 80년간 계속 지나다녔고, 그 진동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한쪽으로 기울게 된 것. 전탑은 벽돌을 쌓은 구조상, 목탑이나 석탑보다 열차가 지날 때마다 반복되는 진동에 더욱 취약하다고 여겨지기에 큰 문제였다.
4. 월영교(月影橋) 안동의 월영교란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 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월영교 야경
안동 월영교는 야행(夜行) 관광의 명소로 월영교 일대의 산책로에 경관조명시설을 설치해 이 지역 일대를 야간경관 명소로 조성하였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바탕으로 한 영화 '부라더'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월영교는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의 인도교이다. 특히 경관조명과 분수가 설치돼 야간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다. 월영교 주변으로는 월영공원, 안동물문화관,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안동민속촌, 개목나루터, 호반나들이길, 원이엄마 테마길 등의 관광자원이 연속적으로 분포돼 많은 관광객의 호평을 받는다.
안동 월영교의 전경
5. 안동민속박물관 1978년 11월 최규하 국무총리가 안동댐을 순회하면서 민속경관지(民俗景觀地) 내에 민속박물관 건립을 건의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하였고, 1992년 6월 26일 개관하였다. 설립 목적은 안동문화권의 민속문화를 조사·연구·보존·전시함으로써 국민의 사회교육의 장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며 올바른 지방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안동지역의 역사와 관혼상제(冠婚喪祭)나 전통놀이 등 생활풍습에 관한 자료를 많이 전시하고 있다.
안동민속박물관
부지 17만 1630㎡ 규모이며, 안동의 유교 문화를 연출·전시하는 옥내박물관과 안동댐 수몰 지역의 고가옥, 문화재 등을 전시하는 야외박물관으로 나누어진다. 옥내박물관이 자리 잡은 본관은 연 면적 3,100㎡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고, 전시면적은 약 1,500㎡이며, 시청각실·영상실·휴게시설도 갖추고 있다. 3개 전시실로 구성되는데, 제1전시실에는 아기 점지부터 어린이 성장까지 서민들의 생활문화, 제2전시실에는 관례부터 제례까지 양반들의 생활문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제3전시실에는 안동문화권의 민속놀이가 모형으로 연출되어 있다.
안동 민속박물관 전시 내부
야외박물관에는 보물 305호인 안동 석빙고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인 선성현객사(宣城縣客舍), 안동 사월동 초가 토담집(경북유형문화재 14호) 등 20여 점의 중요문화재와 고가옥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특별기획전, 학술총서 발간, 사회교육, 조사발굴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특히 경관 좋은 안동댐 아래 자리 잡고 있으며 주위에 안동민속촌과 KBS 드라마 촬영장이 들어서서 찾는 이가 많다.
6. 보조코스 * 안동댐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다목적댐으로 높이 83m, 길이 612m이며, 총저수량 약 12억 5천만이고 유역면적 1,584km²인 낙동강 본류를 가로막은 사(砂礫)댐이다. 낙동강 수계에 처음 등장한 이 댐은 하류 지역의 연례적인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공업용수 및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1971년 4월에 착공, 1976년 10월에 준공된 것으로 연간 9억 2600만 t에 달하는 각종 용수를 공급함으로써 구미·대구·마산·창원·울산·부산 등지에 혜택이 미치게 되었다.
이 다목적댐은 9만kW 용량의 수력발전소를 설치하여 연간 l억 58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데 댐 하류 지역에 방류하는 유량이 평준화되도록 설계된 역조정지(逆調整池)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한 양수발전(揚水發電)도 겸한다. 안동댐으로 조성된 한국 유수의 인공호의 하나인 안동호(湖)는 와룡면·도산면(陶山面)·예안면(禮安面)·임동면(臨東面) 등에 걸쳐 저수지 면적이 51.5km2에 달한다.
안동댐 전경
댐의 첫째 기능은 용수공급으로, 9억 2600만 톤의 각종 용수를 하류 지역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 중 관개용수가 20.1%로 3만 3000㏊의 수리불안전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또 새로이 1만 1000㏊에 관개가 가능해졌다. 안동호는 휴양 및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으나 연중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일기 불순으로 호흡기 환자가 많다고 한다. 특히 호수 상류에 있는 도산서원은 유명하다.
안동댐 수문
* 안동 물문화관 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산하의 물 문화관으로 안동물문화관 건립은 공공사업자가 공공사업으로 인해 불편을 감수한 시민들을 위해 수익의 일부를 환원한 선진 사례를 제시하였으며, 아울러 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하고 시민들을 위한 환경 친화적 휴식 공간의 제공과 더불어 지역 관광과 경제 활성화에도 일정 정도 기여하였다.
안동물문화관은 수자원의 개발, 이용, 관리에 대한 이해와 수자원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체험 학습 공간으로 지역의 특성과 주변 환경 요소 및 자연생태 보존과 물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를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2005년 8월 공사를 시작하여 2007년 5월 4일 개관하였으며, 사업비는 총 30억 4600만 원이 투입되었다.
안동 물문화관
전시 규모는 528.8㎡이며 로비가 122.3㎡, 댐과 생태관이 198.3㎡, 물문화와 역사관이 129㎡, 영상실이 79.3㎡이다. 1층 로비에는 안내와 물교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댐과 생태관에는 안동댐과 임하댐의 건설 과정 및 특징, 댐이 하는 일, 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안동호의 생태계를 소개하고 있다. 2층에 물문화와 역사관에는 물과 관련된 안동의 이야기 및 선인들의 풍류, 안동에서 발생한 홍수 등을 소개하고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마을과 이주민의 생활상을 조명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안동 지역의 물과 함께 하는 즐거운 영상여행을 상영하고 있다.
안동 물문화관 전시 내부
안동물문화관과 함께 33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한 강변공원에는 다종의 수목을 심고 전통 정자와 바닥분수를 설치하여 새로운 시민 문화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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