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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13~19(290) 우리가 이제부터는 2023. 7. 29
‘하프 타임(Half Time)’의 저자인 밥 버포드 (Bob Buford 1939-2018)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99년 은퇴할 때까지 미국 최고의 유선 텔레비전 방송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한 사업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승승장구하여 실패를 몰랐던 사람이었지만, 버포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교회에 단순하게 출석하는 교인이었을 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머릿속으로만 믿는 인텔리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버포드가 44살 될 때에 아들이 친구들과 캠핑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캠프에서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으로 달려가서 아들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강가를 미친 듯이 수색합니다. 전문가를 동원하여 강 전체를 샅샅이 훓어 보았지만 아들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아들을 찾아 수색하던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간 단어가 떠오릅니다. 바로‘하프 타임(halftime)’이란 단어였습니다. 그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앞만 바라보고 바쁘게 살아온 인생입니다.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아들하고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모든 것을 성공에 올 인하며 살았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4개월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찾아냅니다. 4개월 만에 발견된 엉망진창이 된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동안 내 인생 44년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남은 삶이야말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겠노라 결심하고 책을 저술합니다. 그 책이 바로‘하프 타임(Half Time)’이라는 책입니다. 하프타임이 무슨 단어일까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단어입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보통 15분의 휴식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을 두고 하프 타임이라 말합니다. 하프 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달라지게 됩니다. 비록 전반전에 골을 먹어서 스코어가 뒤쳐져 있지만, 15분의 하프 타임을 잘 보낸 팀은 후반전에 역전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축구 전문가들은 하프 타임을 두고 “기적을 만드는 15분”이라고 말합니다. 15분간 쉬는 하프 타임에서 ‘전반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였나? 뭘 잘못했나? 왜 이기지 못했는가?’를 점검하며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냥 15분 쉬는 시간을 아무 것도 안하고 드러누워 쉬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도 운동경기처럼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해도 중간 중간 잠시 멈추어 가는 하프 타임이 있습니다. 밥 버포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고민합니다. 그리고는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립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선택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먼저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금주일은 7월의 마지막 주일이자 8월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그리고 금 주간은 대한민국 대부분 직장에서 여름휴가기간으로 정하고 있는 특별한 한 주간입니다. 휴가가 무엇인가요? 일과 회사생활에 지쳐 버린 피곤한 육신을 쉬게 하는 시기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가오는 여름휴가는 마치 운동 경기 중,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끼여 있는 15분의 달콤한 하프타임과 같은 모습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의 휴가이지만 휴가를 지혜롭게 잘 쉬게 되면, 직장으로 돌아가서 업무로 복귀하는데 큰 에너지를 충전하게 됩니다. 반대로 휴가를 잘못 쉬게 되면, 도리어 더 큰 스트레스를 가지고 업무로 복귀하면서 근무능력이 망가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여름 휴가를 금 주간에 받으신 분들이 있자면, 재충전하고 새롭게 몸의 활력을 받아들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름휴가만 잘 보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찾아오는 쉬는 시간, 내 인생의 하프타임에서도 우리는 이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나간 인생에서 실패한 것을 남아 있는 인생에서는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의 모습으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미리 점검하고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2023년 7월의 시간이 마무리되고, 8월로 시작해서 본격적인 2023년도 하반기의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진실하고 신실하게 보내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찬양합니다.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기도, 사랑)”
2023년 8월로 시작해서 9월과 10월, 그리고 11월과 12월로 이어지는 모든 시간들 속에서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로 하나님에게 나아가고, 사랑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강권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사랑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복음사역에 매달리는 모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의 삶을 변화시켰음을 고백합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6절 상반절에 보면, 오늘 설교 제목으로 정해진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중에 그 어떤 사람이라도 세상적 기준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1천만에 육박하는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세상의 기준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 것에 연연하기 않고 신앙의 모습에 몰입하는 분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알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리라고 말합니까?
1.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라는 책을 저술한 김수지박사(金秀智 1942-2016)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김박사는 국내 최초로 호스피스 제도를 도입하였고, 대한민국 간호계에서는 전솔로 통하는 유명한 분입니다.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197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학에서 공부하고, 그리고‘한국인 최초 1호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왜 간호사가 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김 박사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간호사로 부르셨다. 간호사는 병들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돌보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가진 달란트로 사람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돌보는 인생을 살 것이다”
이렇게 고백한 김박사는 이화여대 교수 및 서울사이버대 총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을 떠나 멀리 아프리카 말라위에 있는 간호대학의 총장으로 봉사를 감당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박사님을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김박사님의 모든 삶의 모습은 오로지 하나님을 위한 인생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모습을 찾다 보니,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감으로 여긴 것입니다.
13절 보세요.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쉬운 내용이면서도 곰곰이 뜯어보면 볼수록 매우 난해도가 높은 구절입니다. 상반절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별로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성도들을 두고 비아냥거리면서 ‘예수에 미쳤다’는 말을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에 미쳐 버리면 세상의 모든 것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불신자들의 눈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미쳐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는 ‘너희들이 내가 복음에 미쳤다고 말하지만, 나의 이런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항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반절 내용입니다.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 말합니다. 내가 복음에 미치거나 아니면 정신이 온전하거나 내 삶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내 정신이 온전하다면 나를 위한 것’이라 말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구절을 생각한다면, “내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을 위해 행동해야 하고, 만일 정신이 온전하다면 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내 정신이 온전하다면 나를 위한 것”이란 말이 기록되어 있어서, ‘자신만 생각하고 챙겨야 된다’는 해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구어체로 표현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이며,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와 비판을 듣습니다. 그러나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어도 낙심치 말고 더욱 하나님께 더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타인을 돌보며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제부터 화목 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 말씀에 보면 ‘화목’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화목(和睦)이란 단어는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와 형제간에 따뜻한 정이 나누어지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을 두고 화목한 가정이라 말합니다. 화목한 교회라는 의미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모여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주며 사랑하는 교회는 화목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화목한 모습으로 본문을 이해하면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혀 틀린 의미는 아니지만, 무언가 본문을 받아 들이고 해석함에는 약간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화목이라는 단어 대신에 ‘화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화해라는 단어를 넣어서 18절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으며,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죄 때문에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가지고 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지도 못합니다. 그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이 다 막혀 버린 상태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모든 죄인들을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모든 자들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해를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됩니다.
본문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와 화해하였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들에게 화해하는 직분을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 역시 서로 화해하고 화목하게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살아가기 정말로 힘든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전쟁처럼 보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처럼 살벌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신의 잘못이니 실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먼저 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큰 허물을 인정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뻔뻔하고 비양심적으로 행동합니다. 이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복음은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합니다. 복음은 망가진 하나님과의 사이를 화해시키며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막혔다면, 복음의 화해하는 모습으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과 화목하게 되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독일 기독교 부흥운 동을 이끌었던 경건주의자로 모라비안 공동체를 이끈 진젠도르프 (Nic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1760) 백작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720년 학업을 마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합니다.
이때 뒤셀도르프(Dusseldorf) 박물관에서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는 그림을 봅니다. 이 말은 총독 빌라도가 재판석에서 예수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박물관에 걸린 그림은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초상화였습니다. 그림 밑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내 생명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었느냐?”
이 말에 진젠도르프가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사랑해 왔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남은 여생을 예수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 후 모라비안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경건운동과 선교운동을 일으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경건은 요한 웨슬리의 회심으로 이어졌으며 감리교 부흥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28년간 226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진젠도르프가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열망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오직 그 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화해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화목 하는 모습으로 예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일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이 말씀은 육신을 따라 살아가지 않겠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행여 관계가 나쁜 분이 있다면, 화해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