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는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게토(ghetto ;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던 유대인 가문이었다. 18세기까지는 소규모 상인가문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이어 암셸 로트실트 대에 이르러 헤센 선제후국의 재정관리를 맡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그의 다섯 아들 암셸 마이어 폰 로트실트, 잘로몬 마이어 폰 로트실트, 나탄 마이어 폰 로트실트, 카를 마이어 폰 로트실트, 야콥 마이어 폰 로트실트의 대에 와서는 각각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오스트리아의 빈·영국의 런던·양시칠리아 왕국의 나폴리·프랑스의 파리에 은행을 설립해 유럽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유럽 각국의 정치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금융재벌이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는 이스라엘의 건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시오니즘 운동에 자금을 지원해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Balfour)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발표한 밸푸어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에도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스차일드 가 [Rothschild famil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첫댓글 나폴레옹 전쟁의 워털루 전투 결과에 대해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패밀리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 전령보다도 빠르게 영국군의 승리 소식을 입수하여 정보를 교란해 시장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대중에는 흔히 로스차일드가 영국 귀족들한테서 주식을 사다가 떼돈 벌었다고 알려져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달러를 생산하는 것에 개입하며 아직도 세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이 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제도 폐지를 혜지하면서 기축통화는 달러가 되었는데, 이 달러를 생성하는 것이 바로 Fed(Federal Reserve Board/Banks)이다. 이곳은 미국의 중앙은행[19]이지만 민간은행이고, 이 민간은행의 최대 주주들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도 어쩌질 못하며,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으려다 암살당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초기 FED의 주주(총20만)
록펠러와 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20] 3만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 1천
JP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 5천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 1만 2천, 체이스은행 6천[21], 케미컬은행 6천[22], 총 2만 4천
후에 이들 은행의 연준 지분은 조정되어 53%에 이르게 되고 현재는 약 70%대로 추정.
앤드루 잭슨 - "내가 은행을 죽였어"라는 유언을 남긴 대통령,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 암살시도가 있었으나 암살자의 권총 2발 모두 불발로 다행히도 암살당하지 않는다.
에이브러햄 링컨 -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하고 그린백을 발행. 1865년 4월 15일 암살.
존 F. 케네디 - FED를 배제하고 재무부에 화폐발행권을 넘겨줌. 1963년 11월 22일 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