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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3:16절(118) “첫 열매 수확에 대한 감사” 2025. 7. 20.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달력입니다. 저는 새해 달력을 받으면 새해 달력에 있는 고난주간, 부활절, 맥추감사주일, 추수감사주일, 성탄절의 절기를 먼저 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목회를 하는 목사의 입장에서 한 해를 이루어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여러 절기들을 미리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한 해에 들어 있는 절기가 왜 소중한 것일까요? 저는 성도가 지켜야 되는 여러 절기들을 통해서‘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베푼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365일 모든 날, 모든 시간들이 다 소중한 날이지만, 맞이하게 되는 절기에서 더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베푼 사랑과 은혜를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절기의 순서를 보세요. 부활절은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절은 한 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추수를 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삶을 이끌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성탄절은 나의 죄를 지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노력하는 성도라면, ‘나는 내가 맞이하는 모든 주일과 절기 속에서 늘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P&G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록터 앤드 갬블(Procter & Gamble Co)이라는 회사의 이니셜이고, 이 회사는 비누, 샴푸, 칫솔, 기저귀 등 다양한 종류의 소비재를 판매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입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서 존경 받는 기업 TOP 500에는 10위에 올라 있을 정도의 굴지의 기업입니다.
특히 이 회사의 창업주인 [윌리엄 프록터]는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유명합니다. 이 회사가 어려울 때에, 일약 미국 최고의 회사로 올려놓은 대히트 상품이 나왔는데, 바로 물에 뜨는 비누입니다.
1879년 어떤 직원이 비누 생산기계의 원료를 잘못 배합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불량비누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일로 회사는 판매가 막히면서 한순간에 더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이때에 사장인 프록터는 불평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발상을 합니다.
19세기까지도 미국 전역에 상수도를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였습니다. 간단한 세수는 길어온 물로 가능했지만 집안에서 목욕은 어려웠습니다. 목욕을 하려면 비누를 들고 강이나 호수를 찾아야만 합니다. 문제는 물가에서 목욕하다가 한순간 실수로 비누를 너무 쉽게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조금만 깊은 물에서도 목욕하다가 실수로 어두운 색깔이었던 비누를 떨어트리면, 비싼 금액으로 구입한 비누는 강물로 가라앉아버렸고 잃어버리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 ‘물에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는 비누’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획기적인 신제품이었는지 초기 포장지에는 아예‘물에 뜬다’라는 문구를 강조하면서 선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누가 <아이보리비누>라는 제품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비누입니다. 게다가 이 아이보리 비누는 강물 위에서 잘 보이는 흰색입니다. 그러니 나오자 말자 물에 뜨는 비누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효자 상품이 됩니다.
1879년에 개발되어 150여년이 다 되도록 지금까지 전 세계에 팔리는 <아이보리 비누>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입니다. 이 일에 대해 창업주인 프록터는 ‘어렵고 역경의 가운데서도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신다’라고 회고록에서 말합니다. 불평과 원망보다 감사하며 시작한 것이 회사를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즈음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없어서 감사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감사란 감사할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란 상황과 환경을 뛰어 넘는 감사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날을 만들어서 의미를 부여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합니다. 태어난 날을 <생일>이라 이름 붙여 해마다 그 날을 기쁘게 여깁니다. 부부가 하나님 안에서 한평생 함께 살아가기로 서약한 날을 <결혼기념일>이라 정하여 기념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날들을 정하여 국가기념일로 지킵니다.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절, 나라의 광복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현충일과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6.25도 있습니다. 이런 날들은 시간의 분량으로 따져보면, 다른 날과 다름이 없는 날이지만, 그 날에 의미를 담아서 전혀 다른 마음으로 그 날을 지키려고 합니다. 신앙의 절기도 이런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1.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특별히 일 년 52주 가운데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지난 주일이나 오늘이나 똑같은 주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주일이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신 맥추감사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맥추절(麥秋節:feast of harvest)은 히브리 원어로는 ‘하그 하카츠르’이며 “거두어 수확하는 절기”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단순하게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지켜야 하는 절기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절기입니다.
성도는 맥추절만이 아니라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의 모든 절기들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게 올바른 모습일까요? 어떻게 지켜야 하나님에게 기쁨이 될까요?
저는 절기감사예배를 포함해서 하나님에게 드리는 모든 예배에는‘모든 예배에는 기쁨의 감사함으로 시작하고 감사함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절기감사 예배이던, 또는 매주일 맞이하는 일반적인 주일 예배이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모든 예배를 감사함으로 시작하고 감사함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맥추절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은혜가 더 부각되는 절기입니다. 16절 보십시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 함이니라’
이 구절에 보면 수확과 연관된 두 절기가 등장합니다.
1)맥추절은 보리를 추수가 끝나는 때로 일년중 절반에 해당되는 6,7월에 있는 절기입니다.
2)수장절은 가을추수가 끝나는 때 지키는 절기로서 한 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10월경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收藏節)이라는 말은‘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장막절 초막절’로 표시되었으며, 신약시대부터는 추수감사절로 전 세계 성도들이 지키는 절기가 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1년 안에는 ‘수확과 연관된 두 번의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특히 눈 여겨 보아야 할 단어가, 하나님은 맥추감사와 추수감사에 대해 ‘지키라’라고 명령한 부분입니다. 맥추감사와 추수감사절을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지키고 보호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지키라’는 말은 ‘기념하라(Celebrate)’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기념하라는 말을 더 쉽게 이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잡히시기 전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합니다. 이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만찬을 베풉니다. 고린도전서 11:24절,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행하여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져야 하는 지상 명령입니다. 그래서 모든 지상교회에서는 행하는 일자와 횟수는 개 교회마다 다를지언정, 성만찬을 행하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맥추절과 수장절은 기념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기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현대교인들은 더 쉽고 자유분방하게 신앙생활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현대교인들은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은‘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면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대충대충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식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은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비성경적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명하신 감사의 예를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힘든 상황을 외면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다 남 탓을 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원망합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원망하고,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끼리 원망합니다. 항상 감사해야 하는 성도들 또한 이런 시류에 휩쓸려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행동이 점점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힘들고 모든 것이 팍팍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더 큰 감사의 목소리를 항상 하나님에게 올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인도의 성자로 추앙 받는 간디는 1930년대 인도의 현실을 두고 망국론 7계명을 주창했습니다. 국가를 망하게 하는 7가지를 말하면서 국민들이 깨어나 주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90여년 전, 오래된 말 같지만 오늘날 이 말을 살펴보면 정말로 깨달아야 되는 것이 많습니다.
‘1)원칙 없는 정치가 국가를 망하게 한다. 2)도덕성 없는 상업이 국가를 무너뜨린다. 3)노동 없는 부가 국가를 좀 먹는다. 4)인격 없는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 5)인간성 없는 과학이 멸망이다. 6)양심 없는 쾌락이 국가를 멍들게 한다. 7)희생 없는 신앙이 총체적인 파괴를 만든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하나 허투루 듣고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90년전에 말하였던 구닥다리 말이 아닙니다. 작금의 흔들리고 있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데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7번째 항목이 더 눈에 들어 옵니다. ‘희생 없는 신앙이 총체적인 파괴를 만든다’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아파옵니다.
신앙은 자기희생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희생과 감사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보릿고개 속에 드려진 맥추절의 감사입니다.
1960년대만 하여도 우리나라에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곤경에 처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보릿고개의 그 아픈 기억을 가진 분들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 아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먹거리가 굶어 죽었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북한도 아니고 잘 먹고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굶어 죽느냐?’라고 반문합니다.‘보릿고개는 지난 해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3~6월, 먹거리가 떨어진 시기로서 춘궁기(春窮期)라 불렀다. 먹을 것이 떨어진 이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면서 극심한 굶주림에 빠진 시기였다’
보릿고개를 겪거나 배고픔을 경험한 분들은 다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씀합니다. 꽁보리밥이지만, 가장 큰 고통이라는 굶주림을 고통을 겪지 않고,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던 것이 바로 보리 수확이 되는 6월이었습니다.
굶어 죽는 그 끔찍한 시기에 ‘보리수확을 하는 것은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시기였습니다. ‘끔찍한 굶주림의 고통에서 꽁보리밥이지만 밥을 먹을 수 있어 기쁨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보리를 수확하던 그때에는 기독교를 믿던 안 믿던 구별 없이 모든 국민들이 기쁘게 감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먹고 살만하다는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얼마나 잘 먹을까를 고민합니다. ‘예전에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거리를 찾았다면, 이제는 먹는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맛있는 것을 잘 먹어야 하나?’를 고민합니다. 불과 한세대 전, 30여년 전만 하여도, 꽁보리밥 한 그릇과 고추장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밥을 먹던 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이 가져서 은혜를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가지고 풍요로움 속에 살다 보니, ‘내가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이 내가 당연하게 누려야 되는 권리인 줄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누리는 그 풍요함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리고 내가 즐기는 모든 삶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에게 감사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6월이나 7월에 드리는 이 맥추절 감사를 ‘굶어 죽는 생명을 굶어 죽지 않도록 생명을 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맥추감사절은 한 해를 시작하고 상반기를 보내면서 처음 드리는 감사절기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을 날렸던 신앙의 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맥추감사절은 한 해의 상반기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맥추감사절은 ‘굶주림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맥추절 감사가 바로 이런 사랑의 의미입니다. 굶주림이 가장 극심한 이 시기에 보리를 수확하게 됨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생명이 이어나가게 됨을 감사하는 것이 맥추절 감사입니다. 내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시대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광야로 도망을 치다가 기진맥진한 사자를 보게 됩니다. 자세히 보니까 사자의 발바닥에 큰 가시가 박혀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크리스천은 가까이 가서 사자의 발바닥에 박혀있는 가시를 뽑아 줍니다. 그러자 마치 사자가 고맙다는 답례라도 하듯이 몸을 움직이고는 광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 후 숨어 도망 다니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크리스천은 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수십명의 크리스천들이 원형극장에 모였고, 여기에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서 사자 밥이 되게 하는 끔찍한 광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달려오던 십 여마리의 사자 중에서 한 마리의 덩치 큰 사자가 이 크리스천 앞으로 돌진합니다. 사납게 달려들던 사자가 갑자기 그리스도인 앞에서 멈춰섭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자가 이 기독교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가로 막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만이 먹을 수 있는 먹이인 것처럼 다른 사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치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주인 앞에서 앉아 재롱을 떠는 것처럼 기독교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깜짝 놀란 크리스천은 자신의 목숨을 헤치지 않는 그 사자를 자세히 보니까, 몇해전에 광야에서 가시를 빼주었던 그 사자 같아 보였습니다. 한갓 맹수에 불과한 굶주린 사자이지만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고 해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관중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관중들이 ‘굶주린 사자가 덥치지 않을 정도라면, 이 그리스도인은 의인으로 하늘이 생명을 보존하는 사람이니 살려주어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로마황제에게 살려주라고 항의를 합니다. 그래서 그 크리스천 혼자만이 기적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초대기독교 이야기가 있습니다.
짐승도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에 보답할 줄 압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이끄심과 사랑으로 2025년 7월 맥추감사주일을 드리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더 크고, 더 많이, 더 깊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2025년 맥추절 감사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에게 더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감사를 온전히 드리는 성도는, 마지막 수확을 감사하는 추수감사 또한 온전히 드리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2025년 상반기 6개월의 시간 속에서 내 삶을 이끌어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에게 더 감사드리며, 하반기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