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Noah
‘노아’의 이름의 뜻은 ‘안식’, ‘위로’, ‘쉼’이다.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다. 라멕의 아들로 아담의 10대손이다. 노아는 아담의 족보를 제시하는 창세기 5장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그런데 그는 선조들보다 더 많은 오백세 되었을 때 자손을 낳았다.이것은 위대한 구원자 노아에게 헌정하는 비범한 축복이다. 노아의 10대손은 아브라함이다. 따라서 노아는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20대손으로 이어지는 족보에서 정확하게 중앙에 놓인 인물인 이다. 노아가 족보에서 차지하는 이러한 위치만 보아도 그가 원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인 카인과 아벨의 형제 살인죄에 이어 하느님의 아들들은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골라 모두 아내로 삼는다. 하느님이 만드신 남녀는 서로에게 협력자인데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고,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인 일부일처제가 깨어지고 일부다처제가 생긴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용사나 장사들로 스스로 神이나 半神으로 자처하는 죄를 범한다. 세상에 죄와 악이 만연해지는 것을 보고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홍수 심판을 계획하셨다.
노아는 그가 태어날 때의 일화(창세 5,28)가 말하듯이, ‘위로, 위안’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세상의 타락에 대한 보고(6,1-7) 뒤에 노아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느님의 눈에 들었다.”(6,8) 노아가 무엇을 했다는 설명 이전에 먼저 이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노아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유로이 그를 선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뒤에 노아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나온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6,9)
‘의롭다.’(차디크)라는 말은 ‘죄 없는, 정직한’이라는 기본 뜻을 갖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란 시시비비를 잘 가리는 사람이나 희생적인 사람,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등을 일컫지 않는다. 성경의 ‘의인’이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고 사는 사람’으로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명을 따르며 죄를 피하고 선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흠 없다.’는 것은 ‘완전한, 온전한’이란 뜻에서 나왔는데, 주님께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에게 자주 사용되던 말이다. 이 말이 사람에게 해당될 때는 의로운 사람을 넘어서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는 몇몇 사람들만이 이룬 경지로, 하느님의 법에 충실한 이들, 그 법을 온 맘으로 실천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었다.
가장 특별한 표현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 이’(6,9)라는 말이다. 노아 이야기 앞에 나오는 아담의 자손 목록에서 오로지 ‘에녹’만이 그러한 삶을 살았다(창세 5,22.24).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 ‘함께 살다 사라진 즉 승천’한 인물이다. ‘함께 하다’란 말은 하느님의 뜻과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은 “노아는 그대로 하였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6,22;7,4).라고 한다. 그러니까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걷는 이’, ‘하느님의 동행자’로 살다가 하느님께서 데려간 에녹과 같이한 것이며 창세기 1장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생기고 되고 이루는 모습으로 하느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아는 하느님이 ‘방주를 만들라.’하시자 방주를 만들고 ‘방주에 들어가라.’하면 들어간다. 주님께서 ‘방주에서 나와라.’할때까지 기다렸다가가 하느님 말씀에 따라 밖으로 나온다(8,18). 노아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노아는 또한 답답한 방주 안에서 일 년여의 시간 즉 홍수가 시작된 육백 살 되던 해(7,11) 육백한 살이 되던 때까지(8,13-14), 밖은 오로지 파멸의 물만이 가득한 세상, 그 한 가운데 흔들리는 방주 안에서 그는 주님의 말씀을 기다린다다. 여러 신호들이 밖으로 나와도 된다고 해도 그는 그 소리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다. 오로지 주님의 말씀, 자신을 이끄시는 주님의 목소리만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들리자, 그대로 움직인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배운다. 하느님을 찾는 이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노아를 통해 깨우쳐줍니다. “사방이 어둠이요, 모두가 내게 대적하는 것 같은 상황, 아무도 답을 주지 않고 주님마저 안 계신 것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우리는 주님의 말씀만을 기다리는 사람, 주님의 뜻만을 따르는 신앙인의 자세를 지켜갈 수 있겠는가?” 노아의 모습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한다. “그는 순종했고, 그는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구원을 얻었다.” 때로 나의 의지에 반하고 이해되지 않는 주님의 말씀과 그 뜻 앞에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인간의 위대함은 어떤 놀라운 일을 하거나 할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놀라우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신앙은 그 위대함을 이루는 길이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며 주님과 함께 걷는 이들이 바로 위대한 신앙인들이다.
상당 부분 복사한 글입니다.
출처:
이용권 신부님,'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2018년 3월 4일 사순 제3주일 의정부 주보)'
좋은 글 써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