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상상 이상의 풍경과 도시들을 보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땅이 없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케탐(Pulau Ketam) 섬은 우리말로 ‘게 섬(Crab Island)’이라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어촌이다. 이곳은 섬 이름 그대로 게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포트클랑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물 위에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학교와 교회까지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은 1800년대 후반, 중국 어부들이 정착하면서 주민의 대부분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게섬’이라는 이름답게 신선한 해산물이 많고 차가 없이 걸어서 한 시간 정도면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그 옛날 바다 위로 돌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어 정착해 온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적응력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내가 갔던 또 한 곳 역시 바다위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브르나이 왕국에 있는 캄퐁 아예르(Kampong Ayer)라는 수상 마을이다. 현지어로 '물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말레이시아의 케탐섬보다 더 커서 수천 개의 가옥이 연결되어 있으며 학교, 병원, 경찰서, 이슬람사워 그리고 박물관까지 갖추어진 거대한 수상 도시다.
물위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어떨까? 케탐섬에서 머무는 동안 마을을 거닐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그들의 일상을 살펴봤다. 그러나 육지에 머무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다만 육지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동차나 오토바이 대신, 작은 모터보트로 오가며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수상마을 탐험이었다. 물 위라 위태로울 것이라는 상상과 달리 배에서 내리자마자 땅을 걷듯 내내 평온했다. 그들의 삶 역시 육지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와 다른 상황을 마주할 때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며 나의 잣대로 평가하곤 했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랬다. 그저 낯선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의 눈으로 좁은 골목과 배로만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그들의 삶을 불안하다고 단정지었다. 나는 늘 완벽한 조건과 흔들리지 않는 터전만을 고집하며, 그것만이 안전하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땅이 없으면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길이 없으면 물길을 내어 기어이 '집'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며 인간이 가진 유연함과 강인함을 보았다.
이 유연한 강인함에 대한 생각은 캄보디아의 메콩강 줄기에서 만난 풍경으로 이어졌다. 넓은 물길 위에서 마주친 캄보디아의 수상 마을은 앞서 본 곳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황토빛 물 위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육지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던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그 물길 위에서 마주친 한국 '밥퍼 (다일공동체) '의 수상 학교는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배가 없으면 오갈 수도 없는 물 위였지만, 아이들은 매일 아침 보트를 타고 모여들었다. 밥을 나누고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소리가 물결을 따라 퍼져나갔다. 땅이 없는 바다에 기둥을 세우는 것이 인간의 적응력이라면, 위태로워 보이는 물 위에서 학교를 세우고 밥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연대와 사랑이었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서도 그들은 기어이 서로의 손을 잡으며 희망을 만들고 있었다.
수상 마을에서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내가 사는 단단한 땅에 서자, 마음속에 묵직한 질문이 남았다. 나는 그동안 삶의 조건이 조금만 흔들려도 내 발밑이 온전치 못하다고 불안해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삶을 진정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대지의 견고함이 아니라,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내면의 유연함일지도 모른다.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진짜 방법을 배우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