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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배기, 북떼기의 추억과 식목일의 수출
식목일과 사방공사
일제강점기에 비행기 기름을 만든다고 소나무 관솔을 따고, 고무나무의 수액 채취 하는 것처럼 소나무도 송진을 채취하던 ‘칼 갈퀴 자국’을 만들었다. 소나무의 상처처럼 참나무에도 상수리가 익기도 전에 떨어뜨리려고 돌멩이나 메퉁이로 쿵쿵 찍어 남긴 볼썽사나운 상처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모두가 나라를 잃어버린 민중의 고달픈 삶을 산천초목도 같이 살아야 했던 증거들이다. 마치 상이군인과 같은 연배의 시니어 나무들의 역사의 상처와 베터랑의 훈장같아 보인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에서 1946년 4월 5일 서울 사직공원에서 식목일 행사를 했고 1949년 대통령령으로 식목일을 지정하고 공휴일로 하였다. 4월 5일은 신라 문무왕이 당나라와 싸워 삼국통일을 완수한 677년 2월 2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라지만 이는 억지로 부회(附會)한 것이고, 사실은 절기상 4월 5일경에 나무를 심어야 잘 살기 때문이다. 식목일 첫 제정은 1910년 4월 5일 순종이 친히 나무를 심은 날짜로 정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생일과 겹쳐서 4월 3일로 변경하였으나 광복 후 4월 5일 다시 바꾸었다. 당시 정부는 ‘민유림조성 10개년 계획수립’을 수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 후 동족상잔의 6・25사변으로 산이란 산은 거의가 민둥산으로 변했다.
해방 후 혼란기에 산림 도벌이 빈번했고 6.25사변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1950년대 당시 1ha 당 입목 축적은 9%에 불과한 민둥산이었다. 땔 나무를 구하려고 진달래 뿌리인 꽃 장다리, 썩은 나무 등걸이나 뿌리인 ‘고주배기’라도 캐어 와야 했다. 솔꼴은 물론 나무 ‘버급떼기’라든가 풀뿌리, ‘북떼기’까지도 긁어다 때어야 했다. 여름에는 기를 쓰고 살려는 초목을 베어 푸장나무를 해야 했다. 그러니 산인들 남아나겠는가? 민둥산이 되고, 산사태가 나고, 천수답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두엄을 만들 수 없으니 거름조차 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서글픈 환경에서 나온 노래가 메아리라는 노래이다.
메아리를 되살리려고 나무를 심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전쟁이 끝나면서 나무 심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1951년 말 전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자 ‘단기속성녹화조림3개년계획’, ‘생울타리조성 5개년계획’을 수립하였다. 마른 울타리를 바꾸려는 생 울타리 수종은 측백나무, 탱자나무, 향나무 같은 것이었다. 사방공사는 토양보호와 땔감 마련을 위해 단기속성녹화조림사업이었으며 빨리 자라는 수종으로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리기다 소나무 같은 것이었다.
식목일은 제정되었으나 식목보다 더 급한 것은 사방공사이었다. 그래서 식목일은 한때 폐지되어 ‘사방의 날’로 대체하였다가 박정희 정권 때 1961년에 식목일을 다시 지정하였다. 식목일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식목일이 있다. 미국은 3월 22일이 나무의 날(Arbor Day)이고, 독일 4월 25일, 호주 7월 30일, 일본 4월 29일, 중국 3월 12일, 브라질 8월 21일, 네덜란드 3월 21일, 뉴질랜드 6월 5일, 남아프리카 9월 1일부터 7일 식목주간 등이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림을 훼손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민수용 석탄공급계획을 포함시켜 1964년에 35개 도시에 민수용 석탄을 공급하자 산림훼손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부는 1965년을 ‘일하는 해’로 정해 ‘치산녹화정책’을 추진했다. 1967년 1월 산림청을 설립하고 나무 심기와 사방공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농촌의 아궁이를 개량해 최소량의 나무를 사용하도록 개선했다.
식목일의 수출: 몽골
한국의 성공적인 치산녹화 사업은 그 명성과 더불어 이제는 국제적으로 파급되어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협력 사업은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으로 10년의 성공적 결실을 맺고 있다. 산림청은 2006년 한·몽 정상 합의에 따라 2007년부터 10년간 몽골 황폐지(荒廢地, 砂漠)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을 실시하였다.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은 몽골의 주된 황사 발원지인 고비사막의 달란자드가드, 바양작 지역과 울란바토르 인근 룬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몽골의 메말랐던 땅에 축구장 약 3000개 면적인 3046 ㏊를 푸른 생명의 터전으로 변화시켰다.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의 성공적 이행에 영향을 받은 몽골 정부는 2010년부터 매년 5월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을 식목일로 제정하고, 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몽골 그린벨트조림 사업은 지난 10년간 동북아 지역 사막화 방지에 큰 기여를 했다.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은 우리가 우리 산림이 황폐했던 시절 산림녹화를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많은 도움을 이제 몽골의 사막에 돌려줌으로써 과거 국제사회의 도움에 보답하는 것이며, 아울러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년 반복되고 있는 황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몽골의 고비사막의 사막화 방지 사업 못지않게 중국의 내몽고에서는 황사방지 사업과 사막녹화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산림청의 성공적 ‘몽골 그린벨트 조림사업’을 통해 우리나라가 녹화 성공국가로서 그린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 포함된 사막화 및 토지 황폐화 방지에 기여할 것이다.
식목일의 수출: 중동
한국의 녹화 성공만큼이나 유명한 사막 녹화(沙漠綠化)에 성공한 국가의 사례도 많이 있다. 중동지역의 사례로서 국토를 통째로 녹지로 바꾼 사막 국가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아부다비의 사례가 널리 이야기되고 있다.(부산일보, 2015 4.2. 참조). 이스라엘은 우기에 집중된 빗물과 북쪽 헬몬산 만년설의 눈 녹임물에 의지해 산다. 이 물이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 요르단 강과 인공 수로를 통해 남쪽 네게브 사막 지대까지 공급된다. 1970년대 이후 지구 온난화로 강수량과 만년설이 함께 줄면서 사막화가 급속히 확대됐다. 한정된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형 송수관을 매설해 자연 증발과 유실을 막았고, 비닐관(管)을 이용한 점적관주(點滴灌注) 방식의 농업으로 한 방울의 물도 아끼며 과수원과 숲을 가꾸었다. 고품질 토양을 담은 비닐봉지(soil bag)에 농작물을 심고 최소 적량의 물 주기와 생장 환경을 제어하는 첨단 온실 농업도 개발했다. 이 온실에서 채소는 물론 열대 과일까지 재배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사막 국가에서 농업국가로, 농산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사막 곳곳에 '녹색 낙원'이 들어서자 사막화도 멈췄으며, 2000년대 위성사진을 보면 이스라엘 국토의 남쪽은 거의 푸른색이다.
아부다비의 사례를 보자(심의섭, Afforestation in the UAE, 한국중동학회논총, 제25-1호 한국중동학회, 2004. 8. 25: 33∼6.)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아부다비는 사막국가 답지 않게 국토의 82%가 녹지이며 곳곳이 '녹색낙원'이다. 후세를 위해 오일달러를 아낌없이 투자하여 사막에 야자수와 관목과 잔디를 심었고, 담수화한 바닷물을 지하 배관을 통해 보내서 가꾸는 것이다. 같은 사막 국가인 두바이는 이와는 달리 바다 연안과 사막을 호화 별장과 초고층 빌딩을 짓고 있는데 아부다비나 두바이나 모두 후대(後代)를 위한 투자이다. UAE와 오만 등 걸프만안 국가들의 길거리에는 대추야자나무가 즐비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들의 녹색 꿈이 야물게 영글어 가고 있다. UAE의 녹화사업은 단순히 석유를 팔아 숲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지도자의 장기적 비전과 탁월한 전략적 사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아부다비의 쟈이드(Zayed) 국왕의 고향인 조그만 오아시스이었던 알 아인(Al Ain)은 그동안 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온 녹화 사업의 결과 지금은 숲으로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에 녹색 정원도시로, 관광의 도시로 바뀌었다. 쟈이드는 돈은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그의 철학적 바탕 아래 석유 수입을 부족한 수자원 해결과 농업, 녹화사업, 수자원, 환경보호 등 친환경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UAE는 녹화 주간을 설정하였으며 매년 2월 셋째 주를 학생들과 시민들이 나무를 심어오고 있다.
UAE는 농업부문에 투자를 매우 중시하고 농산물 생산, 농업 기반시설, 녹화사업, 식목, 야자 농장, 수리관개, 저수지, 숲 조성, 야생동물공원, 동식물 공원, 그린벨트 조성, 사막화 방지 사업, 수분 증발 방지 등에 투자하고 있다. 이 중에서 녹화사업은 모래바람 방지와 도시 및 국토 미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추진하는 역점 사업이다. 사막 방지사업과 토지 간척 사업은 수천 헥타르의 야자 농장, 울창한 삼림, 그린벨트를 조성하여 풍성한 수확을 하고 있으며 척박한 불모의 사막을 인간이 삶을 즐길 수 있고, 살 수 있는 낙원으로 조성하였다. 그 결과 UAE의 녹화사업은 중동 전체에서도 선망의 대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꿈인 농업 자립의 성공적 사례는 대추야자 농사를 꼽는다. 대추야자는 전국적으로 4070만 그루가 있는데 1630만 그루가 수확 중이며, 이 중에서 2200만 그루가 아부다비에 있으며, 구중 1600만 그루는 가로변에 심었다. UAE는 주요 대추야자 수출국으로 되었으며 전 세계 생산의 25%를 담당하는 7대 대추야자 생산국이 되었다.
식목일의 수출: 아프리카
끝으로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사막화 방지와 식량위기 대처를 위한 ‘원형 정원(Circular Garden)’ 정책을 펴고 있다. 세네갈은 농촌 지역에 소규모 ‘원형 정원’ 형태의 경작지를 조성해 사막화와 식량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네갈 정부와 ‘퍼마 푸드 포레스트(Ferma Food Project)’라는 농업 프로젝트 등이 2020년 말부터 함께 벌이고 있는 원형 정원 만들기 운동인 ‘톨루 케우르 프로젝트(Tolou Keur Project)’가 아프리카의 식량 위기와 사막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은 농촌의 식량 자립을 돕고 사막화를 저지하기 위해, 농촌 마을마다 하나씩 숲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사업은 원형 정원 형태로 숲을 조성하는 것인데 나무들을 원 모양으로 둥글게 심으면, 나무의 뿌리들이 안쪽으로 모이고 서로 얽히게 된다. 이는 토양 내 유기물과 물 손실을 최대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황폐해진 토양에 특히 적합하다.
이 사업은 2007년 시작된 아프리카 사헬 지역(사하라사막 남쪽 경계 지역) 녹화 작업인 ‘녹색 장벽 계획(Green Wall Initiative)’의 하나다. 하지만, 대규모의 일률적인 방식 대신 지역 특성에 맞춘 소규모 형태를 취한 덕분에 아주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녹색 장벽 계획은 올해로 시행 14년째이지만 애초 목표의 4% 정도만 진척된 상황이다. 반면, ‘톨루 케우르 프로젝트’는 시행 7개월 만에 12군데에서 산림 조성을 마치는 등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사업은 외부인들이 와서 작업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인 주도 사업이다. 이 사업은 많은 농촌 지역이 자체 농업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식량 자립도를 높이게 되면 유럽 등으로 목숨을 걸고 떠나는 이주민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키우고 있다.
치산녹화사업의 국제협력
한국은 치산녹화사업의 성공으로 국제 산림 협력 분야에서 주도력을 높여 주어 '치산 국력'에 걸맞은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식 치산녹화 기법을 배우겠다며 벤치마킹하는 개발도상국은 한 둘이 아니다. "저탄소 산림부국 한국 배우자"고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매일경제, 2021.07.29.). 한국은 민둥산에서 산림녹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가 될수 있었던 것은 정권은 바뀌었어도 녹화사업은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산림녹화는 지구 기후변화, 식량자립 등 다른 기본적인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범국가적 기반정책이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지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어서 국제공조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한국은 ‘식목일의 성공’으로 산림녹화가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으므로 식목일 정책까지 수출하게 되는 것 같다. 나아가 한국의 산림외교는 국제무대에서도 녹화사업이나 사막화 방지사업, 탄소 배출, 지구온난화 기후대책 분야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게까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산림이 울창해지니 메아리도 살만해 지었는지 대답도 않는다. 산불이 난 곳에서나 앓는 소리가 메아리일 뿐이다. 등산객들도 민도가 높아져서인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인지, 산꼭대기에 올라 가슴이 탁 트이고 후련하게 ‘야호!’ 소리 한번 크게 못 지르는 세상이 되었다.[2021. 08.09]
* 더보기: 식목일도 수출했다,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4, 거울의 헛기침, 한국문학방송, 2022.05.10.: 103~118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