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무녀리, 학문의 길라잡이이었다.
심 의 섭 (경제학과)
‘새로운 경제학 분야의 무녀리', 『광복세대의 꿈과 삶』
(고려대학교 65학번 동기회 입학 50주년 기몀사업회 유재우 외 48인 공저),
서정시학, 2016.12.20. : 283~293
1. 전문가(specialist)? 제너랄리스트(generalist)?
학자로서 한 평생을 살았는데 나는 연구의 무녀리(문열이)였고, 학문의 길라잡이 이었다. 기존의 고속도로나 항로와 같이 잘 닦아진 길도 있었는데 구태여 오솔길을 만들거나 학문의 막장에서 실핏줄을 더듬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되돌아보거나 되풀이하면 보람도 있고 회한도 많다. 지난세월 “무녀리(문열이)” 학자로서, 새로운 학문의 “길라잡이”로서 나의 자화상을 더듬어 볼까한다.
나는 고려대학을 대학을 졸업하고 시대적으로 어설펐던 연구소에 첫발을 디디었다. 당시 꿈의 직장이었던 홍릉의 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연수교육을 받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옮기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신설 연구기관이었고, 나는 공채 1기로 들어갔다. 1971년 말에 KDI에 입사하여 구본호 박사팀에서 국제무역 연구에 참여하였고, 박진근 박사팀에서 FDI 투자 연구에 참여하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KDI 송병락 박사팀에서 도시경제, 지역경제 연구에 참여했다. 그 후 송병낙 박사팀으로 옮기어 도시경제를 연구하였다.
1976년, 중동 붐에 참여하기 위해 국가에서 중동경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후에 국제경제연구원(KIEI)으로 개편하였는데(현 산업연구원) 내가 그 연구소로 옮기게 되었다. 중동문제연구소를 이어 받은 KIEI에 가서는 핵심부서인 중동연구실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때는 주로 중동경제, 석유경제, 개발경제, 해외건설 등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해외건설 관련주제는 KIEI를 나와서도 상당기간 논문을 많이 썼고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도 해외건설로 했다. 그 후 건설경제학으로 확장시키면서 건설경제를 학계에 학문으로 정착시키는데 노력하였다. 약 2년을 근무하다 명지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1978).
명지대에서는 유명무실했던 중소기업연구소를 맡아서 일하면서 중소기업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그 결과 국제학술대회에 중소기업 전문가로서 활동하였으며, 또 중소기업학회에 관여했고, 콜롬보 플랜에 의한 실무교육을 담당하고, 멕시코를 방문하여 살리나스(Carlos Salinas de Gortari) 대통령을 뵙기도 하였고(1993.3.1-3.4), 싱가포르 세미나에도 참석한바 있다. 명지대에서는 국제경제학을 주로 강의하였고, 중동경제, 석유경제, 해외건설, 해외취업, 아프리카 경제, 건설경제 등을 부지런하게 연구하였다. 한국외대 무역대학원에 20년 가까이 관련과목을 강의하였고 아프리카, 중동지역, 원조문제, 개발경제, 국제지역경제 관련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90년대에 들면서 북방이 열리기 시작했다.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베트남 등 체제전환국가 들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경제와 북한경제에 몰두하였다. 통일운동 NGO를 같이 하면서 북한경제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였다. 그 후 중국관련 학회, 몽골관련학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어서 북한경제에 집중하였고, 통일관련 NGO 활동을 겸하여 하게 되었다. 북한경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남북경협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교 정년퇴직을 전후해서 아프리카 경제와 몽골경제에 몰두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전문가네트워크, 아프리카 학회와 한몽학회, 한몽포럼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을 섭렵할 수 있었기에 나는 다소나마 제너랄리스트(generalist)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중동 분야에서는 아직도 전문가(specialist)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이 분야에서의 학문적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더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꼭 필요한 부문, 그러나 소득이 보장 안 되는 인기 없는 소외된 분야에 올 인 하였기 때문에 롱런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많은 분야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은 느낌이지만, 그저 노욕일 뿐이다.
2. 학문의 냉전을 허물다.
1990년 초 어느 날 지천 김윤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형윤 회장/정기준 사무국장 팀에 이어서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기로 하였는데 나에게 한국경제학회 사무국장을 맡아달라는 분부이시었다. 훌륭한 제자들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맡느냐고 한사코 사양을 했지만 간곡한 부탁이어서 거절을 못하고 맡았다.
내가 1990년 한국경제학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제일 큰일은 재외한국인경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국제학술대회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1981~1988)하면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 경제학들이 조국의 경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데서 출발하여, 1차 대회(이현재 회장/박재윤 사무국장 팀, 1984), 2차 대회(박기혁 회장/정창영 사무국장 팀 1986), 3차 대회(정도영 회장/김기태 사무국장 팀, 1988)까지 치렀다. 이어서 4번째 대회를 金潤煥 회장(단국대교수 겸 고려대 명예교수)을 모시고 내가 사무국장으로서 학술대회를 총괄하여야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자금 조달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천 선생님이 민주인사이고 비판적인 교수로 인식되어서 재원 조달에 무척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주요 경제 단체들,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건설협회, 경영자총협의회, 중소기업중앙회, 농협중앙회 등 어느 한 기관에서도 도와주기를 꺼렸다. 하지만 친소관계로 이곳저곳에서 동냥을 하다시피 하여 소요금액을 모금하여 어렵게 치렀다.
회의에 북한학자까지 초청하려 했지만 무산되었고, 사회주의권의 학자들을 대거 초빙하여 냉전의 벽을 허무는 학문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모스크바 대학 경제학과에서 공부하던 동급생들인 중국 뇨녕대학의 김명선교수와 러시아 최고 국책연구기관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블라디미를 정(정영조)교수가 졸업 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만났으며, 매일경제신문에서 기사로 다루어주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온 학자들의 해프닝도 있었다. 김ㅅㅁ교수를 비롯하여 내가 누구 친구인데 하면서 참가신청도 하지 않고서 항공료와 부대편의를 챙기려고 하였고, 참가하더라도 학술회의는 불참이고 개인적이 특강을 하면서 용돈 챙기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협박도 있었고 회유도 있어서 힘들었다.[계속]
* 참고자료 : 『광복세대의 꿈과 삶』
첫댓글 광복세대의 꿈과 삶
저자 유재우 외 48인
출판 서정시학 | 2016.12.20.
페이지수 530 | 사이즈 153*226mm
판매가 서적 16,200원
책소개
금년은 저자들이 1965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며 광복 70주년이기도 하다. 입학하면서부터 한일회담, 월남 파병문제, 군사 독재에 맞선 민주 항쟁 등으로 강의실과 도서관만 지키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투쟁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고대 입학으로 만난 동기들이 70살의 종심從心을 모아 그 동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적어 어떻게 한국의 성장동력을 조성하게 되었는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실제 경험한 사실을 중심으로 쓴 49인 동기들의 글을 묶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몇 년 전 처음 심 교수님을 뵈었을 때, 다방면에 아시는 것이 워낙 많으셔서 '만능 박사'이시라는 생각에 늘 호감을 느끼고 만남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올려주신 깊이 있는 글을 읽으며 교수님의 휘황찬란하고도 빛나는 이력을 비로소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교수님이 걸어오신 학문의 깊이를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평생에 걸친 활동 범위와 탁월한 능력, 그리고 그 방대한 발자취를 보며 새삼 커다란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학자이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글 속에서 "소외된 분야에 올인하셨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오솔길을 개척하며 학문의 냉전까지 허물어내신 모습은 참된 지식인의 귀감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상아탑에만 머무는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부름에 따라 치열하게 발로 뛰며 성과를 이뤄내신 모습이야말로 우리 후배들이 마음 깊이 본받아야 할 '능력과 실천의 교수님'이심을 오늘에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겪으신 한국 현대 경제사의 생생한 현장과 학문적 개척의 기록들이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커나갈 후학들과 길을 찾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교수님의 삶과 철학이 담긴 '자서전 발간'을 꼭 한 번 추진해 주시기를 간곡히 추천해 드립니다. 귀한 글 공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