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28회 ― 손수건에 새겨진 이름
혜린은 립스틱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미송을 바라봤다.
"나 강인 좋아하는 건 맞아."
미송의 표정이 굳었다.
"알아."
"하지만 네 작품을 망쳐서 강인을 가지려고 하진 않아."
미송은 혜린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도 알아."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팽팽했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혜린은 돌아서서 실습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철컥.
실습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윤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원점이네."
소희가 찢어진 스케치 조각을 내려다봤다.
"그러게."
미송이 물었다.
"그럼 이 붉은 얼룩은 대체 뭘까?"
강인은 아무 말 없이 종이 조각을 바라봤다.
짙은 붉은색.
혜린의 립스틱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어두웠다.
그때 도윤이 손을 들었다.
"혹시 피?"
소희가 즉시 말했다.
"아니야."
"왜?"
"피가 마르면 저런 색이 아니야."
"그럼 물감?"
미송이 고개를 저었다.
"냄새가 없어."
도윤은 팔짱을 끼었다.
"립스틱도 아니고, 물감도 아니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고추장?"
소희가 도윤을 바라봤다.
"박도윤."
"왜요?"
"점심 먹었어?"
"아직이요."
"그래서 그래."
강인이 조용히 말했다.
"손수건."
모두가 강인을 바라봤다.
"뭐?"
강인은 작업대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
작업대 다리 아래.
무언가 작은 천 조각이 끼어 있었다.
미송이 몸을 숙였다.
"이게 뭐지?"
소희가 먼저 집어 들었다.
작은 손수건이었다.
아이보리색 천에 붉은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한쪽 모서리에는 짙은 붉은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도윤의 눈이 커졌다.
"잠깐."
그가 스케치 조각과 손수건을 번갈아 바라봤다.
"색이 똑같은데?"
소희가 손수건의 얼룩과 종이 조각을 비교했다.
정말이었다.
거의 같은 색이었다.
미송이 말했다.
"그럼 스케치에 묻은 건 립스틱이 아니었어."
강인이 손수건을 자세히 바라봤다.
"염료 같습니다."
"염료?"
"네."
강인은 손수건 끝을 살폈다.
"붉은색 자수를 놓다가 실의 염료가 묻은 것 같습니다."
도윤이 감탄했다.
"역시 의상디자인과."
소희가 말했다.
"너도 의상디자인과잖아."
"저는 모델 쪽입니다."
"아까는 탐정이더니?"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부터 모델 겸 탐정입니다."
강인이 말했다.
"안 어울려."
"왜?"
"시끄러워서."
"탐정은 조용해야 해?"
소희가 대답했다.
"적어도 너보다는."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미송은 손수건을 천천히 펼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했다.
"잠깐."
모두가 가까이 다가왔다.
손수건 한쪽 모서리.
작은 글자가 붉은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아주 작고 정교한 자수였다.
미송이 천천히 읽었다.
"오……."
글자의 일부가 실밥에 가려져 있었다.
소희가 손수건을 햇빛 쪽으로 들어 올렸다.
"오세……."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도윤의 눈이 커졌다.
"설마."
미송이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펼쳤다.
그리고 이름이 완전히 드러났다.
오세나.
정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도윤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찾았다."
소희가 즉시 말했다.
"아직 아니야."
"이름이 있잖아요."
"손수건이 있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니야."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강인은 손수건을 바라봤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미송이 말했다.
"세나가 왜 우리 작업대 아래에 손수건을 떨어뜨렸을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실습실 문이 열렸다.
또각.
또각.
오세나가 들어왔다.
그 뒤에는 최현우가 함께 있었다.
세나는 작업대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왜 다들 그렇게 서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나의 눈빛이 천천히 작업대 위로 향했다.
그리고—
손수건을 발견했다.
그 순간.
세나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보았다.
소희가 조용히 물었다.
"세나야."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 네 거야?"
소희가 손수건을 들어 보였다.
세나의 시선이 흔들렸다.
현우가 손수건을 바라봤다.
"오세나."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거야?"
잠시 침묵.
세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맞아."
실습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도윤이 입을 열려 했다.
소희가 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이번만큼은 도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미송이 물었다.
"왜 우리 작업대 아래에 있었어?"
세나는 미송을 바라봤다.
"몰라."
"모른다고?"
"떨어뜨렸겠지."
"언제?"
세나의 표정이 굳었다.
"그걸 어떻게 기억해?"
소희가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도 실습실에 왔었잖아."
세나가 소희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때 떨어뜨린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미송은 한동안 세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세나야."
"왜."
"우리 스케치 봤어?"
정적.
세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조금.
하지만 강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나."
현우가 다시 불렀다.
"솔직하게 말해."
세나의 얼굴이 굳었다.
"뭘?"
"스케치 봤어?"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작게 말했다.
"침묵은……."
소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악."
"조용히 해."
현우는 세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봤어?"
마침내 세나가 말했다.
"봤어."
미송의 얼굴이 굳었다.
강인의 눈빛도 달라졌다.
소희가 물었다.
"왜?"
세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그냥?"
"궁금해서."
"그래서 가져갔어?"
"아니야."
세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훔치지 않았어."
도윤이 물었다.
"그럼 왜 찢어진 스케치 조각에 네 손수건의 붉은 염료가 묻어 있습니까?"
모두가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왜요?"
소희가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탐정 같았어."
도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조용히 해."
"네."
세나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현우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강인이 찢어진 종이 조각을 내밀었다.
"스케치 일부입니다."
현우는 종이 조각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붉은 얼룩을 바라봤다.
다시 세나의 손수건을 보았다.
같은 색이었다.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세나."
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해."
"……."
"지금."
세나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래! 내가 봤어!"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세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봤어."
"너희 스케치."
미송은 아무 말 없이 세나를 바라봤다.
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궁금했어."
"왜 김태석 교수님이 너희 팀을 가능성이 가장 큰 팀이라고 했는지."
그녀의 시선이 강인에게 향했다.
"왜 신입생인 송강인이 그렇게 주목받는지."
그리고 미송을 바라봤다.
"왜 항상 너는……."
말이 멈췄다.
미송이 물었다.
"내가 뭐?"
세나가 주먹을 쥐었다.
"넌 항상 사람들에게 사랑받잖아."
미송의 눈빛이 흔들렸다.
"교수님도."
"친구들도."
"강인도."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세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항상 1등이어야 했어."
"한 번이라도 2등을 하면 아버지가 물었어."
"왜 졌느냐고."
"잘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어."
"1등을 하면 당연한 거였고."
"2등을 하면 실패였어."
현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세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너희 스케치를 봤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미송이 물었다.
"그리고?"
세나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찢었어."
미송의 얼굴이 굳었다.
소희가 숨을 삼켰다.
도윤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인이 물었다.
"왜?"
세나는 강인을 바라봤다.
"화가 났으니까."
"누구한테?"
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인이 다시 물었다.
"우리한테?"
세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
"그럼?"
한참 뒤.
세나가 대답했다.
"나한테."
정적.
"너희 스케치를 보니까 알겠더라."
세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이기려고 옷을 만들고 있었고."
"너희는 서로를 생각하면서 옷을 만들고 있었어."
미송의 눈빛이 흔들렸다.
세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너무 화가 났어."
"나는 한 번도 그런 옷을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미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나의 눈에서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래서 찢었어."
현우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세나가 그를 바라봤다.
"뭘?"
"힘들다고."
세나는 웃었다.
"너한테?"
"그래."
"우리는 경쟁팀이잖아."
현우는 잠시 세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같은 팀이기도 해."
세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실습실 문에서 낮고 엄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들어야겠군."
모두가 돌아봤다.
김태석 교수였다.
그 옆에는 이영숙 교수도 서 있었다.
세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교수님……."
김태석은 천천히 실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작업대 위의 찢어진 스케치 조각을 바라봤다.
"오세나."
"네."
"자네가 찢었나?"
세나는 고개를 숙였다.
"네."
김태석의 표정은 차가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작품을 훼손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김태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야."
세나가 천천히 미송과 강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미송은 말이 없었다.
세나가 다시 말했다.
"정말 미안해."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결정은 미송에게 맡겼다.
한참 뒤.
미송이 입을 열었다.
"세나야."
세나가 고개를 들었다.
"스케치 나머지는 어디 있어?"
세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접힌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찢어진 스케치였다.
미송의 손이 떨렸다.
세나가 말했다.
"버리지는 못했어."
"왜?"
"모르겠어."
세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너무 아름다워서."
미송은 찢어진 스케치를 받아 들었다.
강인이 옆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찢어진 조각들을 작업대 위에 펼쳤다.
바람.
나무.
서로 다른 두 벌의 옷.
종이는 찢어졌지만 그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강인이 말했다.
"다시 만들면 됩니다."
미송이 그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네."
"시간이 부족해."
"밤새면 됩니다."
도윤이 끼어들었다.
"또?"
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왜 벌써 내가 같이 밤샐 것 같은 기분이지?"
소희가 말했다.
"친구니까."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잠시 뒤.
미송이 웃었다.
강인도 아주 조금 웃었다.
그날 저녁.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실습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강인과 미송은 나란히 앉아 찢어진 스케치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미송이 선을 그렸다.
강인이 패턴 수치를 적었다.
한참 뒤.
미송이 말했다.
"강인아."
"응."
"아까 왜 나한테 결정하라고 했어?"
강인은 연필을 멈췄다.
"뭘?"
"세나 용서하는 거."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선배 작품이니까."
미송이 그를 바라봤다.
"우리 작품이잖아."
강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미송이 다시 말했다.
"바람과 나무."
"두 사람의 옷."
"우리 둘의 작품."
강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송이 웃었다.
"그런데 왜 또 네라고 해?"
강인이 멈췄다.
"그럼?"
"응이라고 해."
강인은 잠시 망설였다.
"응."
미송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좀 남자친구 같다."
강인의 귀가 붉어졌다.
"원래 남자친구입니다."
미송의 눈이 커졌다.
"뭐?"
강인은 다시 스케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들었어."
"그럼 왜 물어봅니까?"
미송이 웃었다.
"다시 듣고 싶어서."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미송은 그런 강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강인의 손이 멈췄다.
"선배."
"왜?"
"손."
"응."
"왜 올렸습니까?"
미송이 태연하게 말했다.
"남자친구 손 잡으면 안 돼?"
강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송은 웃었다.
강인과 미송은 다시 연필을 들었다.
바람과 나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풍경이 되는 옷.
그들의 첫 번째 진짜 작품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실습실 한쪽에서는 현우가 말없이 세나의 찢어진 스케치 조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현우가 조용히 말했다.
"다음에는 혼자 견디지 마."
세나의 손이 멈췄다.
"우리는 경쟁팀이기도 하지만."
현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같은 팀이니까."
세나는 한참 뒤 작게 대답했다.
"응."
그날 밤.
불 꺼진 복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김태석 교수였다.
그는 유리창 너머로 강인과 미송을 바라봤다.
찢어진 스케치를 다시 그리고 있는 두 사람.
서로 다른 선을 하나의 옷으로 이어 가는 두 사람.
김태석 교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평가표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
기술은 아직 미숙하다.
잠시 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하지만 함께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김태석 교수는 평가표를 덮었다.
이제 최종평가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현우와 세나의 「도시의 밤」.
강인과 미송의 「바람과 나무」.
두 팀의 진짜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제28회 끝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