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신부님은 탐정》
## 제29화 ― 「공원 벤치의 짝짝이 장갑」
평일 아침미사가 끝난 뒤였다.
김맑음 신부는 제의를 정리하고 다시 제대 앞으로 나왔다. 아직 성당을 떠나지 않은 교우 몇 사람이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날 복음은 용서에 관한 말씀이었다.
김맑음 신부는 강론에서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사과는 상대에게 가닿아야 비로소 사과가 됩니다.”
맨 뒷자리에서 묵주기도를 하던 오미자 사목회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잠시 후 성당 밖으로 나온 김맑음 신부는 오미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오 회장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신부님, 공원에 가보셔야겠어요.”
“공원에서 누가 미사를 청하셨습니까?”
“아니요. 장갑이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장갑이 저를 기다린다고요?”
“가보시면 알아요. 아주 수상한 장갑이에요.”
“오 회장님께서는 평범한 물건을 수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정말이에요.”
오미자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은솔중앙공원 쪽으로 앞장서 걸었다.
공원 중앙의 오래된 시계탑 아래에는 이도현 형사와 한서윤 기자가 이미 나와 있었다.
한서윤은 벤치를 촬영하고 있었고, 이도현은 노란 통제선을 치려다 그만두고 줄을 다시 말고 있었다.
“사건 현장 아닙니까?”
김맑음 신부가 묻자 이도현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분실물 신고입니다. 장갑 두 짝 때문에 공원을 통제하면 서장님께서 저부터 통제하실 겁니다.”
벤치 한가운데에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갑 두 짝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손바닥만 한 어린이용 노란 털장갑이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랬지만 손목 부분에는 작은 토끼가 수놓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검은색 남성용 가죽장갑이었다. 손가락 끝이 닳고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다.
오미자가 두 장갑을 번갈아 보았다.
“누가 봐도 한 쌍은 아니죠?”
“그건 확실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대답했다.
오미자가 노란 장갑에 손을 넣어보려 하자 이도현이 얼른 막았다.
“오 회장님, 만지시면 안 됩니다.”
“내 손에 맞나 보기만 하려던 거예요.”
“어린이용 장갑이 오 회장님 손에 맞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 손은 나이 든다고 계속 커지는 게 아니에요.”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오 회장님, 이번 사건은 장갑이 손에 맞는지 확인하는 사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서윤이 웃음을 참으며 장갑 안쪽을 가리켰다.
“신부님, 장갑 안에서 이것이 나왔어요.”
두 장갑 안에는 낡은 종이 조각이 한 장씩 들어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장갑을 끼고 두 조각을 조심스럽게 맞췄다. 빛바랜 종이 위로 오래된 혼인미사 초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짜는 삼십 년 전 겨울.
장소는 은솔성당.
혼인미사 시간은 낮 열두 시였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적힌 부분은 일부러 긁어낸 것처럼 흐릿했다.
최병철 사무장이 성당의 오래된 혼인대장을 들고 공원으로 달려왔다.
“신부님, 찾았습니다.”
“천천히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오 회장님께서 십 분 안에 가져오지 않으면 직접 사무실을 뒤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미자가 팔짱을 꼈다.
“제가 찾으면 더 빠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뛰어온 겁니다.”
최병철은 숨을 고른 뒤 혼인대장을 펼쳤다.
“초대장에 적힌 날짜에 혼인미사가 한 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신랑은 윤태식 씨, 신부는 차정숙 씨입니다.”
“혼인성사 기록도 있습니까?”
김맑음 신부의 질문에 최병철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혼인미사가 취소됐다는 메모만 남아 있습니다.”
“취소 사유는요?”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한서윤의 눈이 반짝였다.
“삼십 년 전에 사라진 신랑 이야기라면 기사가 되겠는데요?”
이도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아무도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혼인미사 날 나타나지 않았으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건 두 분의 개인사입니다.”
김맑음 신부가 낡은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두 분의 개인사가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날 오후, 이도현은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폐쇄회로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 속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중년 남자가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쯤 벤치로 다가오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남자는 두 장갑을 나란히 놓고 한동안 벤치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공원을 떠났다.
한서윤이 화면을 확대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장갑을 놓은 사람은 한 명입니다.”
이도현이 영상을 멈추며 말했다.
김맑음 신부는 화면보다 벤치 아래의 땅을 바라보았다.
밤새 내린 이슬 때문에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발자국은 두 사람의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신발을 번갈아 신었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한 사람은 장갑을 놓았고, 다른 사람은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한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번째 사람은 영상에 없는데요?”
“카메라는 벤치의 앞쪽만 찍고 있습니다. 뒤쪽 산책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두 번째 발자국 앞에 쪼그려 앉았다.
크기가 작은 여성용 운동화 자국이었다. 발자국은 벤치 뒤에서 시작해 장갑 바로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돌아갔다.
장갑을 발견하고도 가져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날 저녁, 장태식 관리장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왔다.
“신부님, 저 벤치 말입니다. 어제보다 오른쪽으로 한 칸 옮겨져 있습니다.”
은솔중앙공원의 벤치들은 돌바닥에 표시된 칸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관리 기록을 확인해보니 벤치는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한 칸씩 움직였다.
움직인 방향은 공원 출구가 아니었다.
은솔성당이 보이는 언덕 쪽이었다.
김맑음 신부는 벤치의 이동 경로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그 끝에는 오래된 시계탑이 있었다.
시계는 낮에도 열두 시를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공원 시계가 자정에 멈춘다고 했지요?”
“정확히는 밤 열두 시가 되면 누군가 전원을 끊습니다.”
장태식이 말했다.
“아침에 관리인이 다시 전원을 켜도 시곗바늘은 열두 시에서 움직이지 않고요.”
김맑음 신부가 초대장을 꺼냈다.
혼인미사 예정 시각도 낮 열두 시였다.
“누군가 삼십 년 전의 그 시간을 매일 되돌려놓고 있습니다.”
다음 날 새벽, 김맑음 신부와 이도현은 공원 산책로에서 장갑을 놓는 사람을 기다렸다.
한서윤도 따라오겠다고 했지만 이도현이 단호하게 막았다.
“취재보다 먼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벤치 근처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기다렸다.
새벽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정말 그 사람이 다시 올까?”
“일주일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다면 오늘도 올 거야.”
“그런데 왜 하필 장갑일까?”
“누군가의 손을 잡지 못했던 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마흔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노란 장갑과 검은 장갑을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장갑 속에 초대장 조각을 넣었다.
김맑음 신부가 나무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윤성호 씨이십니까?”
남자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저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차정숙 씨에게는 열두 살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당시 혼인대장의 가족 사항에 적혀 있더군요.”
“삼십 년 전 저 노란 장갑의 주인이 윤성호 씨였습니까?”
윤성호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년 전 겨울, 열두 살이었던 성호는 누나 차정숙이 결혼하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뒤 정숙은 어린 동생에게 누나이자 어머니였다.
혼인미사가 열리던 날 아침, 성호는 집을 나와 공원으로 숨어버렸다.
그를 찾으러 온 사람은 신랑 윤태식이었다.
눈 속을 헤매던 성호는 노란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고, 윤태식은 자신의 검은 가죽장갑 한 짝을 벗어 성호의 맨손에 끼워주었다.
성호를 찾느라 혼인미사는 시작하지 못했다.
윤태식은 뒤늦게 성당으로 달려갔지만 정숙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 뒤에 윤태식 씨께서 누나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성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그 편지를 숨겼습니다. 태식 형이 누나를 데려가면 다시 혼자가 될 것 같았습니다.”
“초대장도 윤성호 씨가 찢으셨습니까?”
“네.”
성호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검은 장갑 한 짝을 꺼냈다.
“태식 형을 얼마 전에 다시 만났습니다. 형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누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며 이 장갑을 주었습니다.”
“차정숙 씨는 이 장갑들을 보셨습니까?”
“매일 아침 공원에 운동하러 오십니다. 장갑을 보고도 그냥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벤치를 한 칸씩 성당 쪽으로 옮기셨습니다.”
성호가 놀란 얼굴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김맑음 신부가 벤치 아래에 남은 작은 운동화 자국을 가리켰다.
“차정숙 씨는 장갑을 가져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가져가지 않은 겁니다.”
“왜요?”
“장갑이 대신하는 사과를 받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직접 와서 말하라는 뜻이겠지요.”
그날 저녁, 김맑음 신부는 은솔성당 마당에 작은 탁자와 의자 세 개를 마련했다.
차정숙은 회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먼저 도착했다.
윤성호는 노란 장갑과 검은 장갑을 품에 안은 채 한참 동안 성당 문 앞에 서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성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성호는 천천히 누나 앞으로 걸어갔다.
“누나.”
정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그때 편지를 숨겼어. 누나가 나를 떠날까 봐 무서웠어.”
“삼십 년이나 걸렸구나.”
“용서해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도 알아.”
정숙은 한동안 성호를 바라보다가 노란 장갑을 집어 들었다.
“이 장갑을 볼 때마다 네가 추운 공원에 혼자 있었던 것이 먼저 생각났다.”
성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 때문에 누나 인생이 달라졌어.”
“그래. 많이 달라졌지.”
정숙은 검은 가죽장갑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네가 오늘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남은 인생까지 거짓말 속에서 살았을 거야.”
그때 성당 마당 입구에서 백발의 남자 한 사람이 멈춰 섰다.
윤태식이었다.
성호가 미리 연락해둔 사람이었다.
태식과 정숙은 삼십 년 만에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달려가 서로를 끌어안지도, 옛날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윤태식이 말했다.
차정숙이 대답했다.
“저도 끝까지 묻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두 사람은 서로의 손에 남은 장갑 한 짝씩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김맑음 신부는 두 사람이 연인이 아니라, 오래된 오해를 내려놓은 두 사람으로 다시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공원 벤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노란 장갑과 검은 장갑도 사라졌다.
대신 벤치 위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사과를 받았습니다.’
한서윤이 그 종이를 촬영하며 물었다.
“신부님, 결국 두 분이 다시 만난 거네요?”
“한 기자님, 만났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장갑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김맑음 신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공원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끝내 전하지 못한 사과가 제시간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미자가 빈 벤치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검은 장갑과 노란 장갑을 한 짝씩 가지고 가면 여전히 짝짝이잖아요.”
최병철이 대답했다.
“오 회장님, 중요한 건 장갑의 색이 아니지 않습니까?”
“겨울에는 색보다 따뜻한 게 중요하긴 하죠.”
김맑음 신부가 미소를 지었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은솔중앙공원에 아침 햇살이 번졌다.
열두 시에 멈춰 있던 시계는 천천히 새로운 시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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