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제21강/ 공공의 적
글/ 해남 민다선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영화를 곧잘 본다. 영화의 영상들을 통해 흐트러진 머릿속을 새롭게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 질 때도 있고 더러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 들이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본 영화 가운데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가 있었다. 바로 강우석감독, 설경구, 이성재주연의 공공의 적이다.
공공의 적은 섬뜩한 살인 장면과 엽기적인 행동들이 화면의 중간 중간에 펼쳐지면서 시종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가도 긴장감을 일순에 깨뜨리는 코미디 같은 행동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시안게임 권투 은메달 리스트 출신으로 특채된 강력반 형사 강철중(설경구분)은 개성이 강하고 주위의 압력이나 회유에 굴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강철중과 대비되면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살인범 조규환(이성재분)은 자신의 목표달성에 방해가 되는 것은 부모가 되었건 형제가 되었건 간에 관계없이 용서하지 않는 냉혈인간의 표본 같은 남자이다.
사건의 전개는 비오는 날 밤 차속에서 잠복근무 중이던 강철중이 차에서 내려 생리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장소를 찾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사소한 일로 한 남자와 시비가 붙게 된다. 평소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던 강철중은 그 남자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린다. 우비 차림의 남자는 잠시 멈칫하면서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품안에서 칼을 꺼내어 철중에게 달려들어 휘두른다. 칼이 철중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핏방울이 흘러 얼굴에 범벅이 되면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철중은 길바닥에 쓰러지고 우비차림의 남자는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일주일 후 바로 그 골목에 있는 한 집에서 노부부가 식칼에 난자당한 채 발견된다. 시체 위에는 하얀 밀가루가 뿌려져 있고 피가 거실 바닥에 흥건히 흘러 굳어져 있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강철중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칼자국을 만들었던 우비의 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그 남자를 ?i기 시작한다. 철중은 우비 속 남자의 눈매가 펀드메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노부부의 외아들(조규환)과 동일하다는 직감을 갖고 조규환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는데다 조규환은 여러 인맥을 동원해서 수사중단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철중과 규환은 시시각각 서로에게 다가가고, 이들의 싸움은 끈질긴 대결로 이어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결국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철중은 마지막으로 노부부의 시체를 검사하기로 하고 불량배들 가운데서 칼을 주로 사용하는 칼잡이 두 명을 데리고 가서 노부부의 시체를 보면서 이런 저런 자문(?)을 듣다가 우연히 칼에 찔린 조규환의 노모 목덜미 상처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깨어진 손톱이었다. 손톱이 발견되면서 다시 사건은 반전된다.
나는 여기까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너무 잔혹한 장면들 때문에 몇 번이나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잔혹한 폭력이나 서스펜스가 난무하는 블랙코미디 정도로 생각이 되어 중간에 그만 볼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냥 참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이 억울했고 또 거의 끝날 때가 다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중은 사건 현장에서 조규환의 노모가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까지도 거실 바닥을 기어 무언가에 도달하려고 했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었는데 목의 상처를 통해 식도에서 깨어진 손톱을 발견하고 사건의 전말을 대충 짐작하게 된다. 철중은 조규환을 처음 만났을 때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왜 붕대를 감았느냐고 물었는데 손톱이 다쳐서 라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의 최종 결론은 조규환이 재산 상속문제로 자신의 노부모를 살해 했고 살해를 당하는 순간 조규환의 노모는 자신을 찌르던 아들이 실수로 칼손잡이에 의해 손톱이 깨지면서 깨어진 손톱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자신의 아들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죽어가면서도 바닥을 기어가 그 손톱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손톱이 조규환이 찌른 목덜미의 상처를 통해 빠져나와 철중의 손에 들려진 것이다. 죽어 가면서 까지도 자신을 찌른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의 깨어진 손톱을 삼킴으로써 증거를 말소하여 아들의 비밀을 감추고 가려했던 노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그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진한 감동과 충격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참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요즈음 TV 연속극들을 보면 젊은이들의 사랑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질이 우려될 때가 많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러다가도 일단 헤어지고 나면 복수의 칼을 갈거나 자신을 배신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비밀을 주위 친구들이나 메스컴에 발설해서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는 일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상황이 되든지 간에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끊임없이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서로 사랑할 때는 간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하다가 일단 배신을 당하거나 헤어지고 나면 원수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두 유형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TV에서 연속극이 가끔 방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따라 떠나버린 후에 배신당한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들은 다양하지만 대략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비록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지만 그래도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나, 함께 즐거웠던 시간들을 기록한 일기장 등을 추억이 머물렀던 장소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모두 태워버리고 쓸쓸히 돌아서는 부류이고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을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 자신과 찍었던 사진이나 기록들을 조금씩 주위에 공개해 결국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을 파경으로 빠뜨리는 부류이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자신이 배신을 당했지만 자신과의 혼전 관계가 알려져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파경에 이르게 될까봐 모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진과 일기장을 모두 불태워 버린 것이고 두 번째 부류는 자신과의 관계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알림으로써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파멸로 몰아 복수를 하기 위해 기록 들을 주위에 공개한 것이다. 과연 어떤 부류가 더 진실한 사랑을 했던 것일까! 공공의 적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공하고 있다. 죽어가면서 까지도 자신을 찌른 아들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아들의 깨어진 손톱을 삼키고 죽어가는 노모의 모습을 통하여.....
♡사랑학개론 제21강을 마치면서♡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십니까.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친구에게, 형제에게 독백처럼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공공의 적을 꼭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 까지도 아들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노모의 사랑을 배워 보십시오. 그것이 참사랑이 아닐까요
(2002. 5. 15/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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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선님의 글이 아주 감명적이었어요. 기회가 되면 저도 공공의 적을 봐야 겠군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사실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공공의 적을 보면서 그저 블랙코메디 정도로 보았었는데 그 속에서 이런 사랑의 진리를 발견하는 눈을 가지신 다선님의 해안이 너무 부럽습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간 사람의 비밀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참사랑이랄 수 있겠네요.
오늘 마침 '공공의 적'을 시청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본것 같기도 하고... 다선님의 글을 통하여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것 같아요.
저도 공공의 적을 보면서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머니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어떤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악한 마음을 품지 않을텐데...요즘 세상이 흉악하고 험하다고 하는데...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우리 세상이 조금은 밝아질 것 같습니다....^^;;
별 의미를 부여하고 않고 보았던 공공의적이 다선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아이들의 양육을 서로 기피하는 현실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되어지는군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들을 지키려던 노모의 사랑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상대에 비밀을 덮어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일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