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17) 오전에 남해 교육청 조 장학사께서 망운산이 남해의 진산이라고 하여 산행지를 재고 하자는 얘기에 일단 내 혼자 수락하여(만고 내 생각) 다시 올립니다. 그리고 회장님과 산대장과 다시 협의하라고 했습니다. 근데 남해에 무신 산이 이리도 많습니까? 선택하는데 혼돈이 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회원들 께서도 탁월한 선택을 하시기 바라면서,,,
섬산행 남해 망운산(786m) 경남 남해군 서면
화방사~망운암~망운산~754m봉~관대봉
화방사 앞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포장도로를 따라가니 곧 개울 너머 절로 가는 진입로가 보인다. 여초 김 응현의 '망운산 화방사' 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섰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인 채진루 와 대웅전 사이에는 바다가 보이는 넓은 마당이 있어 육지의 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종루각 뒤쪽 개울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다. 그늘에서는 잘 자라지 못해 그곳 에 옮겨 심었다는데, 쇠잔한 모습의 수세가 병든 어린아이 같아 애처롭다.
대웅전 옆길로 나오니 바로 산행들머리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냇가를 조금씩 벗어나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신록에 물든 산길은 지능선과 이어지고, 다시 또 다른 능선과 만나자 이내 갈림길이다. 함께 산행 에 나선 오랜 친구 박성태(51세), 이복규(50세), 이상준(50세)은 내가 절 구경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벌 써 망운암으로 가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경사면을 가로지른 길은 오동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너덜지대와 만난다. 비슬산 너덜지대를 연상 시키는 그 암괴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무척 반갑다. 더욱이 이 산에는 비슬산과 같은 거대한 화강 암 절벽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너덜이 형성되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강물처럼 흘러내린 너덜 아래로 보이는 멋진 바다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 쉬다가 망운암으로 향한다. 등산로는 차량통행이 가능한 포장된 임도와 만난다. 왼쪽으로 접어들자 곧 석재로 만든 조그만 일주문이 보 인다.
관음전을 본전으로 한 망운암은 중창불사 중이어서 산사의 깊은 멋을 잃었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풍광은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등산로는 요사채를 지나 주봉 바로 아래쪽 안부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철쭉군락지를 보기 위해 지나왔던 임도를 따라 능선 광장으로 향한다.
차량이 몇 대 주차된 광장에는 '남해군 산림조합' 에서 만든 약수터가 있다. '철쭉보호 시범지역' 이란 안 내판이 세워진 철쭉군락지는 그곳부터 시작된다. 능선 양쪽으로 넓게 조성된 철쭉밭은 이미 절정기를 지났 지만, 붉은 꽃이 푸른 남해바다와 어우러져 결코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철쭉군락지가 끝나는 봉우리에 오르자 바로 앞에 주봉(769m)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중계소가 설치된 정상이 완만하게 솟아 있다. 돌탑과 '망운산 785m' 라고 쓴 정상 표석을 갖춘 주봉은, 힘없는 왕을 밀어내 고 실권을 차지한 신하가 스스로 왕관을 쓴 것 같다.
망운암쪽 등산로와 만나는 안부에 내려선 뒤, 그 앞 754봉에 오른다. 거기서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 양편 에는 키 작은 어린 철쭉만 있어 전망이 시원하게 트였고, 평탄한 흙길이라 걷기 좋다. 기암이 모여 있는 곳 을 지나 정상이다. 임도와 연결된 KBS중계소 앞 주차장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끄 럽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다시 754봉에 선다. 그곳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아산리로 내려가는 날머리길은 돌 이 많고 경사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남해읍 너머 펼쳐진 푸른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여 지나온 등산로 중에서 전망은 가장 좋다.
길은 급격히 고도를 낮춰 숲이 무성한 흙길이 되더니 관대봉 직전 안부에 이른다. 관대봉으로 오르는 길 은 가파른 암릉이고, 봉우리 바로 밑에는 제법 위험한 바위까지 있다. 힘들여 올라선 관대봉에서는 남해읍 이 더욱 가깝게 다가와 있어서 많이 내려온 것을 실감케 한다. 돌아보니 정상과 주봉을 잇는 망운산의 주능 선은 어느새 상당히 높게 보인다.
다시 하산을 시작한지 10여 분만에 묘지 여러 기가 있는 곳이다. 등산로는 그곳부터 완만한 숲길이며 이 내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표지기가 좀더 많이 붙은 직진길을 택했다.
신기마을로 가는 등산로 양쪽에 측백나무숲이 계속되더니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이 나온다. 거기서 우측으 로 접어드니 길은 여전히 완만하지만 바닥이 붉은 황토라 눈길을 끈다. 그제야 주봉과 이어진 능선 북쪽의 오동저수지는 푸른색인데, 그 남쪽 아산저수지는 누런색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에 떨어진 빗방울이 황 토를 안고 흘러더니, 근원이 맑지 못한데 어찌 그 하류가 맑을 수 있겠는가.
등산로는 곧 남해읍내와 통하는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들머리에 세워놓은 커다란 안내판에는 망운산 등 산로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돌아가는 길에 이곳 화방사 아래 동네인 고현면 대곡리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나온 박성태 제일은행지 점장의 역사강의를 들었다. 이곳에는 관음포를 비롯해서 대사리, 탑동리, 선원리와 같은 불교오하 관련된 지 명이 많다. 팔만대장경도 강화에서 판각된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나무를 뗏목으로 만들어 섬진강을 통해 이 곳 관음포까지 운반한 뒤 불타기 전의 화방사 터에서 판각한 것이라는 어떤 학자의 주장도 있는 설명이다.
그는 또 자기가 살던 집 앞의 '가칭고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바다로 잘못 표기된 지도를 믿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게 갇혀 전멸한 곳이라는 오랜 전설도 소개했다. 우리가 망운산을 산행지로 선택 한 것은 그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는데 역시 잘한 결정이었다.
*산행길잡이
화방사-(35분)-능선 갈림길-(15분)-망운암-(10분)-임도 광장-(20분)-주봉-(25분)-정상-(15분)-754m봉- (30분)- 관대봉-(10분)-공동묘지-(20분)-체육시설-(15분)-포장도로
화방사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3분 정도 가면 산행들머리에 닿고, 거기서 35분 정도 오르면 망운암 과 주봉쪽 길이 나뉘는 능선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너덜지대를 지나 포장된 임도와 만난다. 그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조금 가면 망운암이다.
등산로는 거기서 주봉 아래쪽 안부로 올라가지만 철쭉을 보려면 왔던 임도를 따라 약수터와 주차장이 있 는 임도 광장까지 가야 한다. 남해군에서 조성한 철쭉군락지는 그 앞쪽 능선 좌우에 펼쳐져 있고 길은 그 사이를 지나 주봉으로 이어진다.
주봉에는 정상표석이 있지만 진짜 정상은 그 오른쪽에 보이는 중계소가 설치된 봉우리다. 주봉 바로 앞 754봉에서 완만한 능선길이 정상으로 통해 있다. 하산은 754봉까지 되돌아와 관대봉쪽 능선을 탄다. 30분 정도 가면 관대봉, 다시 30분 정도 내려가면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 닿는다. 거기서 15분 정도 더 내려가면 남해읍과 이어진 포장도로가 나온다.
*잘 데와 먹을 데
먹을 데로는 막걸리 식초를 이용해 만든 갈치회와 왕소금으로 구운 갈치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미조항의 공주식당(867-6728)과 심현식당(867-6498)이 유명하다. 그밖에 민물 참게탕과 참게장을 전문으로 하는 금천가든(이동면 신정리, 863-3737), 10여 가지 반찬과 전어밤젓, 갈치젓갈이 나오는 한정식 전문집인 녹 수정(남해읍 남변동, 863-2959)도 잘 알려져 있다.
*볼거리
이충무공 전몰유허 사적 232호인 이충무공전몰유허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이순신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그가 전사한 관음포 앞바다를 배경으로 조성했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에 위치한다.
여기에 이순신을 제향한 이락사(李落祠)가 있는데, 이는 1932년 이순신의 8대손 항권이 통제사로 이곳에 와서 왕명에 따라 설단치제하고 충무??유허비와 비각을 세운 곳이다. 이락사 경내에는 /큰 별이 바다에 지 다(大星殞海)' 라는 현액이 붙은 충무공묘비각이 있다.
남해 충렬사 사적 제233호인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관음포에서 순국한 이순신의 영을 기리기 위하여 지 은 사당이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있다. 이순신이 순국한 뒤 이곳에 처음 유구를 안치하였고, 그가 죽은 지 34년째 되는 1632년 이곳 선비들이 유지에 작은 초사를 지어 치제추모하였다. 58년 초사를 헐고 사당을 건립, 봄 가을로 제향하게 하였으며 비도 다시 세웠다.
63년 '충렬사' 라고 사액 하였으며,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 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다. 장군의 유구는 이곳에 가장 되었다가 이듬해 2월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장되어 지금은 가분묘 만 후원에 남아 있다.
화방사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망운산 기슭에 있는 쌍계사의 말사.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 창건한 연죽사 를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가 현재의 위치 가까이로 이전하여 중창하고 영장사라 하였는데, 이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자 1636년 계원과 영철스님이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하고 화방사라 한 것이다.
이 절의 채진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다. 화방사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는 계단 바로 옆 에 자리잡은 이 건물은 팔작지붕이며 정면 4칸, 측면 3칸인 2층 누각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과 마 주보고 있는 채진루는 임진왜란과 영조 17년에 방화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중건되었다.
산닥나무자생지 천연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산닥나무 자생지는 망운산 기슭의 화방사 경내에 있다. 현재는 소나무숲과 무성한 다른 나무들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숲이 없는 양지 바른 화방사 종루 각 뒤쪽 개울가에 옮겨 심어 관리하고 있다.
산닥나무는 산과 이곳에 자생지를 이루고 있다. 일본에도 규슈지방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산닥나무의 껍 질은 한지를 만드는 원료가 될 뿐 아니라 판지의 주재료다. 이러한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옛날 부터 한지를 남해에서 생산했다는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4년 6월호
첫댓글 몇 년 전에 댕겨 왔는데 바다 구경은 일품입니다. 가끔 구름이 왔다 갔다 하여 망운(望雲)이라고 한다 카데예. 우리도 잠시 구름을 만났지만,,,어디가서 목욕하고 앵강만에서 회 한 접시에 쐬주 한 잔 묵으마 딱 좋다고 합디다(조 장학사 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