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인 소설가
11월, 주변의 나무들은 잎사귀를 털어내며 봄으로 가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처럼 주변의 나무들은 앙상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어느덧 일곱 해가 시나브로 지나갔다. 어제의 일 같고 오늘의 일처럼 느껴지는 꿈같은 현상들이다. 이치로 보자면 나무의 새싹과 푸름, 낙엽의 과정은 인간과 별다를 것이 없다. 탄생과 청춘과 늙음의 이치가 나무 잎사귀와 동일하다. 어느덧 일곱 해가 흘렀다. 2003년 2월, 문인장으로 이문구 소설가를 고향의 품인『관촌수필』로 떠나보낸 지.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그리울까. 한 해가 지나면 나뭇가지에는 다른 새싹들이 그 자리를 이어간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사뭇 묘한 감정과 생각들로 복잡해진다. 나뭇가지에 새로운 새싹들이 소우주의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로 미래가 있다 자부하지만, 그 미래가 현재 그 자체로만 가능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풍요롭지 못한 과거의 유물론이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천 이문구 소설가는 자신의 자리를 비워두고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여 주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력이 이어지고 가고 있다. 더군다나 『관촌수필』의 무대인 보령에서도.
시대의 비극을 뭐라 결론지으며 환산되어 질 수 있을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것’‘보상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개인의 삶은 나뭇가지의 잎사귀와 같은 법칙을 안고 존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인간들의 삶의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변화는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삶의 “풍요로움”과 “즐김”의 삶이 과거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의식의 다양성과 차이, 각각의 독특한 개성, 그리고 과학의 발달로 인한 생활의 편리함 등이 “풍요로움”과“즐김”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주었을까. 생활의 편리함이 70,80년대 1시간 넘게 방죽거리를 오고가며 부모님 막걸리 심부름하던 때와 “풍요로움”과 “즐김”의 삶에 차이를 주었을까. 어떠한 변화든 인간의 본질과 근성, 그 기저의 변화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시대가 인간의 삶에 주는 제한적 환경은 이념적이며 주변적이고 의식의 차이 일뿐이다.
처음 명천 이문구 소설가를 머릿속에 그렸을 때 70년대의 시대가 빛의 속도로 뇌리를 스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인본주의적이고 가족사가 물씬 묻어 있는 『관촌수필』의 소설집 때문이다. 어쨌건, 시대적 아이러니의 한 문제이지만 인간의 본질과 근본을 도마에 올려놓고 ‘시대적 비극’이란 평가 자체가 어렵고 “인간이 벌이는 일이면서도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그것들이기 때문에 한계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인간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그것이 문명의 일부이고 그 공동운명체의 계급사회, 이를테면 새싹이 돋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 더욱 굵어지고 키가 크는 것은 나무이듯 그런 논리다. 그만큼 뿌리도 깊어지고 커지는 것이다. 희로애락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인간의 삶은 나뭇가지의 잎사귀처럼 한 계절을 구류로 살고 있는, 혹은 ‘영원한 해방’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육체적인 죽음이 죽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이문구 소설가는 한 시대의‘시대정신’으로 문하들에게 계승되고 존중되며 작품을 통해 독자들의 가슴에도 꽃처럼 피고지고 다시 꽃으로 피고 지는.
이문구 소설가는 내게 어떤 존재이었고 어떻게 비춰졌고 보였는가, 혹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기억을 되새김질하여 보듬어 떠올리면, 인정이 많고 문학에는 냉철하며 필자가 시에서 소설 장르로 전환하게 된 동기를 부여받았으며, 덧붙여 이웃의 농부와도 같은 서글서글한 분이셨다.
어느 날, 필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청라면 장산리의 집필실로 차를 몰고 갔다. 집필실 아래로 은빛을 머금은 청라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이 너른 시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작업실 초입에 들어서서 매실나무의 향긋한 내음을 맡아가며 우수수 힘없이 바람결을 타고 떨어지는 샛노란 은행잎,“오장 육부에서 이제 사장 육부여.”라고 수술이 끝난 뒤에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필자를 맞이하는, 그래서 가슴을 움켜 짜듯 서글펐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집필실은 장병형의 조립식 건축물로 지붕은 녹색을 띠고 있으며, 벽돌로 쌓아 올린 책장과 흔들의자, 그곳에서 이문구 소설가는 여러 작품을 집필하며 머물었던 곳이다. 『유자소전』이나 『매월당 김시습』소설집과 여러 권의 에세이집과 동시를 집필하셨다. 집필실 앞 텃밭에는 손수 가꾸신 고추와 돈나물(돌나물), 주변에는 목단과 작은 소나무, 현재도 풀로 뒤덮인 텃밭 한 쪽을 헤쳐 보면 작은 구덩이 주위로 돌덩어리들이 바지런히 놓여 있다. 그 쓰임새는 고기를 굽는 작은 화덕으로 애용한 곳이다.
어느 날, 이문구 소설가는 부지깽이 역할의 나뭇가지로 작은 화덕에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숯을 만들고 있던 것이다. 석쇠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 향긋함은 풀숲에 모여 사는 풀벌레들을 모여들게 할 정도로 은은했다. 소설을 습작하고 있던 필자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 참에 소설 습작생에게 고기도 먹이고 조언도 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문구 소설가 그 옆으로 필자도 웅크리듯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문구 소설가는 고기를 구웠고, 필자는 소주잔을 채운 소주를 마셨다. 소주잔이 비워지면 채워주고 소주잔이 다시 비워지면 익은 고기 한 점씩 건네 주웠다. “나는 사장 육부야, 그러니 술은 아예 못 먹어.”그렇게 필자의 볼은 불그스레해져 갔다.
집필실 주변으로 개짓는 소리는 멎지 않았다. 어슴푸레해져가면서 풀벌레 소리가 귀엣말처럼 속닥거리고, 닭 우는 소리에 소주잔을 비웠고 비운 소주잔에 고즈넉한 호수를 채웠다. 필자는 취해갔다. 이문구 소설가는 익힌 고기를 건네고 소주잔을 비우면 다시 채워주며 고기 안주를 건넸다. 활처럼 휜 이문구 소설가의 등허리에 눈이 쏠리자 마음 한쪽 구석이 저려왔다. 오랜 세월동안 삶을 지탱해준 등허리가 너무나도 쉽게 굽어지는 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어여, 소주 먹어. 어여, 고기 먹어.”
어느덧 이문구 소설가가 타계하신지 일곱 해가 흘렀다. 유수 같은 세월, 그 기억으로 밖에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문구 소설가를 처음 뵈었던 곳은 <천보당> 금은방이었다. <천보당>은, 1997년도 <한내문학회>에서 활동 할 무렵 그 모임에서 친분을 쌓은 안학수 시인과, 서희(본명:서순희) 소설가 부부가 꾸려가는 금은방이었다. 그곳은 금은방이라기 보다는 필자에게는 커피 한 잔과 문학을 논하는 특별한 장소이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천보당>으에 들렀을 때, 소파에는 한 노인이 가위다리를 한 채 말없이 커피 한 잔을 들이 키고 있었다. 필자는 노인을 힐끗 훔치고는 이내 무시해 버렸다. 늙수그레한 여느 노파처럼 베레모를 쓰고 인상은 날카롭게 보였으며, 초라한 옷차림으로 본다면 농투성이 같아 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늙수그레한 노파가 이문구 소설가라는 것에 놀랐다. 그것이 필자의 처음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필자와 문학이라는 틀 속의 인연이 일곱 해나 된다. 그리고 이문구 소설가가 타계하신지 일곱 해가 되었다.
집필실 담장 너머 십 수 년은 넘은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꾹 누르고 겉으로 젊고 혈기왕성한 필자가 은행나무를 타고 올라야 했다. 나뭇가지에 힘겹게 발을 딛고 중심을 잡았다. 바지랑대로 나뭇가지를 툭툭 쳐대며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은행을 털고는 하였다. 이문구 소설가는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욕심껏 주웠으며, 먹을 만치 챙기는 것 외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몇몇 문인과 주인도 없는 집필실에 들러 은행을 털을때도 있었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하시던 이문구 소설가에게 전화를 드렸을 때 “한 바가지면 됐어, 가져다 먹어.”하고 양에 대한 욕심을 항상 부리지 않았다. 그러한 소박함이 『관촌수필』소설집에 나타난 인정주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성품을 지녔다고 생각하였다. 텃밭에 농약을 하지 않고 틈이 나면 손수 풀을 메었다. 소소하지 않은 이문구 소설가는 여느 농부와 별다를 바 없이 소박하였다.
조성인 시인과 낫을 들고 집필실의 텃밭에 자란 풀을 벤 적이 있었다. 땡볕에 등은 땀이 흥건할 정도로 젖어 있었으며 무더웠다. 그때는 이문구 소설가가 타개한지 두 해가 지난 뒤의 일이다. 목까지 차오른 갈증을 견뎌내며 가까스로 풀을 베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두 명도 벅찬 풀베기 일을 이문구 소설가는 홀로 틈틈이 풀을 뽑았던 것이다. 집필실에 들를 때마다 풀을 뽑고 계신 이문구 소설가이었다. 그리고 풀을 뽑는 모습이 눈앞에 오로라처럼 아른거린다. 그럴 때 마다 필자의 가슴에 차곡차곡히 쌓여갔던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정의로운 것이며, 정신으로서는 지각과 진리에 대한 이로운 것이다>라고 전달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필자의 감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문구 소설가가 필자에게 던진 메시지는 ‘사람과 정신’이다. 그 의미를 확대시키거나 축소를 원하지 않는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유해를 뿌린 「관촌수필」의 무대인 관촌마을의 솔수펑이를 간혹 찾아간다. 소탈하게 쥐포 하나와 소주 한 병을 들고, 그곳에서 이문구 소설가와 대화를 한다. 문학은 무엇인가요, 소설은 무엇이지요, 작가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리고 사뿐히 솔수펑이의 솔 향을 느끼며 능선을 걷는다. 소주의 반은 필자가 마셨으니, 소주 냄새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