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6~7일 1박 2일간 창비3차 독자문화기행 참가자들의 모임인
'마량 앞 바다'의 3차 기행인 호서지방에 잠깐 다녀온 기록을 공유
합니다.
1.
그 날이 왔다.
기다려온 기행 당일에도 출근을 하여 바쁘게 일처리를 했다. 그래야만
온전한 마량에서의 시간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점심식사 후에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일에 착수하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마음만 바빠지고 제대로 처리가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회사를 빠져 나왔다.
이발도 하지 못하고, 세차도 못하고... 할 수 없다. 이발은 포기하고
차는 집에서 간단하게 닦기만 해야지.
함지박에 물을 받아 차를 대충 닦고나니 더워서 온 몸에 땀이 났다.
세차를 하면서 다가온 올해의 여름을 처음 느낀다. 샤워를 하고 부랴부랴
성창모님의 아파트 아래에 도착을 하니 약속한 시간의 3분전.
4시가 되도록 기다리다 창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창모님도 내려와 계시며 전화를 받으신다. 차들에 가려서
서로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4시 정각에 만나서 출발을 한다.
2.
CBS방송국 고개를 넘고 있을 때 무주바다님의 전화가 왔다. 이미 도착해서
함빡님께서는 사우나에 가시고 무주바다님은 콘도에 계시단다.
경부고속도로 천안 톨게이트를 나서니 시간은 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외곽도로로 찾아 접어들어 순천향대학교 고개를 넘어설 무렵 서울에서
출발하여 오시는 일행의 차량이 도고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다.
우리도 그로부터 5분후 도고 글로리아 콘도에 도착했다.
룸으로 올라가니 서울에서, 무주에서, 예산에서, 서산에서 모두
도착하여 계셨다. 콘도 룸이 모임의 장소라는 것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길게는 지난 가을 기행이후 아니면 명년회, 그리고 고철님댁에서의
만남 이후 공식적으로 마량의 이름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식구가 한분 참석했다. 황수희 씨!
처음부터 낮설지 않아서 좋다.
정담을 나누다가 7시경 음식점에서 보내준 버스에 올랐다.
3.
10여분 이상을 달려 좁은 길로 접어 들었다. 녹음이 우거진
산속에 정원이 잘 가꾸어진 음식점이 있었다. 숲속 같은 그곳에서
나는 문득 백제를 느낀다.
그곳이 첫날 저녁과 뒷풀이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오리로 된 훈제요리가 나왔다. 음식보다는 사람이 좋았다.
소주로 건배를 하고, 고철 총무께서 직무이양을 했다. 기 공지한
내용과 같이 천안에 계시는 최재권 선생님이 차기 총무를 맡게
되었다. 시샵(마량에서는 회장과 동일어이다)을 맞고 계시는
솔샘선생님께서는 여산선생님이 이번에 참석하시지 않으셨으므로
인수 받으실때가지 현 직무를 수행하시고 차기 시샵을 여산선생님이
되시는 것을 공지 했다. 그리고 인사말을 하셨다.
올해들어 뉴스의 주인공이 되셨던 최경실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 충격과 고통은 수그러 들었겠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으신 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개탄해 보는 것으로 그간의 어려움을 같이 나누지
못한 미안함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될 수 있을지. 어쨌든 웃으면서 손을 잡고
안부를 확인 할 수 있는 자리, 이 자리는 마량모임에 있어 이번
모임은 각별한 다행이었다.
오늘은 이 음식점 별채는 마량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처음 소주 5병을 비웠다. 또 다시 5병을 비웠다.
4.
금번 모임을 공지하면서 미리 약속한 자기가 좋아하는 시나 자작시를
참석자 수 만큼 인쇄해 와서 나눠주고 낭송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시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각자 준비한 시를 나누었다.
그리고 낭송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우리의 짱언니, 가운데 앉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낭송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낭송자가 다음 낭송할
사람을 지명하는 순으로 진행하였는데...
신경림 시인의 ' 떠도는 자의 노래'
별정우체국, 간이역 .. 의미를 더했다. 길(여행)을 유난히 좋아하는
시인의 이야기와 함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간다.
시력이 거의 제로인 김학중님이 화장실에 간다고 하여 그 어려움을 익히
잘아는 나는 기꺼이 지팡이가 되어주기 위해 따라 나섰다.
화장실까지 부축해 가서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돌아왔다.
두번째로 성창모님께서 낭송을 하고 계셨다.
김용택님의 '이 소 받아라'를 낭송하시고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누구였던가? 유지현선생님의 시는 없다! 내가 못받았나?
김경식 선생님
유치환의 '바위'. 회사 책상 유리판 밑에 깔아 놓고 늘 보신다고
한다. 늘 치열한 전쟁을 하듯 자신을 가다듬기 위한 것인가.
시샵이신 김치홍 선생님 차례.
종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신다. 아! 같은 시집을 한권 씩 나눠 주시려나
보다.
한 권씩 꺼내시며 주시는 시집은 똑같은 요즈음에 출간된 시집이 아닌
빛바랜 헌책이었다.
일조각... 조지훈... 책 냄새. 한권씩 나누었다.
아 이제 소유의 무게를 비우시나 보다. 책 무게를 줄이고 선물도 주고.
마음도 비우고.
그런데 잠시후 다시 책을 돌려 달라고 하신다. 아니 이럴 수가? 찜한 것들
한권씩을 소중히들 챙기고 있는데... 유치환의 '생명의 서 2'를 읽어 주셨다.
밤 열시가 다 되었다. 이 자리에서 모두가 낭송할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다른 팀을 태워 주러간 식당의 버스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삼삼오오 정담를 나누며. 마량의 하늘을
바라보며...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여 모두 차에 올라 숙소인 도고 글로리아콘도로
출발했다. 호서지방의 검은 밤을 바라보며.
신례원인가(?) 시간은 이미 늦어 매점도 닫았을 시간 냉장고에 미리
채워놓은 맥주가 부족할까 조바심하는 회계 무주바다님은 차를 세웠다.
슈퍼에 들렀다. 총무님께서는 ' 무주야! 양주 한병'이라고 외친다. 돌아온
무주바다의 손에는 딤플 작은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물론 미리 사려했던
캔맥주 한박스와 과일과 함께...
5.
도고 숙소에 도착했다. 일행은 약속이나 한듯 곧바로 1017호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펼치고, 주방에서는 뜻밖에도 도마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곳에서 왠 도마소리?
잠시후 마요네즈에 간장을 주위에 두르고 그위에 청양고추 다진것을
띄운 무주바다의 비장의 안주소스가 나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본인은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앉아서 팔이 닿지 않는 거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든 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기 싫어 주의를 기울이느라 그랬을까.
다음 기회에 무주바다 소스 그 맛을 느껴야 겠다.
고철님께서 폭탄주를 돌린다. 15병의 소주를 시킨 후라 참 두려운데...
내 차례가 되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마셨다. 종이잔에 맥주와 양주를
같이 부은 것이라 예의 그 유리잔의 폭탄주는 아니었지만.
김학중님의 자작시 '조개무덤'이 낭송되었다.
순해진 詩, 머지 않아 우리 모임에서 등단시인이 더 늘어 날것 같다.
시작 동기도 물었다. 유쾌한 시간.
그리고 최경실선생님의 자작시 '빈집'을 낭송 하였다. 마량 기행시
들렀던 김효형 선생님의 생가의 기억과 자신의 경험이 소재가
되었을까. 그때의 느낌은 마량기행문의 제목으로도 붙여졌다. 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락방'을 낭송 하였다. 정말로 불붙은 것과 같은 열기였다.
직설적인 견해. 아! 여기가 창작과 비평사 인가.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금 읽어보니 참으로 인내하며 낳은 작품이다.
최선생님은 다작을 하실 것 같지 않다. 한편의 시를 탈고하기 위해 작품을
잡고 얼마나 많은 시름을 했을 것인가. 행간에서 고뇌의 흔적이 묻어 났다.
오랜 사유와 연단속에서 주옥같은 작품이 나오리라.
그리고 본인의 차례. 시인 세명의 작품을 소개했다. 김종해, 양현근,
장세희 시인... 새로운 시현상을 이야기 해 보고자 했는데. 횡설수설.
낭송을 해보지 않았는데. 그 중에 한편 장세희의 '그 거리의 휴지통'
읽기 시작했다. 마신 술은 오르고 마음은 급해지고 어떻게 읽었는지.
새 식구가 된 까막섬 생각 황수희님. 황동규시인의 '즐거운 편지'였다.
...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 이 행을 분홍색 칼라로 강조해 놓았다. 의미를 이야기 했을텐데.
황동규시인은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님의 자제분이시라고...
용혜원의 '그대를 사랑함이 좋다' 어느 분이였지. (고철님인가?)
쉽게 읽혀지지만 읽을수록 가슴에서 뭉클한 뭔가가 솟아 오르는...
유지현 선생님이었나. 몸을 만들어 와야한다던 이야기가 나왔다.
초인같은 인내를 발휘하더니 어느 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서산 말씨를 다시금 많이많이 듣고 싶다.
무주바다 차례다. 내 놓은 시는 없고 한마디의 소리로 대신 하겠단다.
그의 노래는 우리를 유인한다. 그만의 내면 세계로.
민중가요를 부르는데. 나는 늘 미안하다. 들어도 들어도 진작부터
민중가요에는 귀를 닫아버린 나의 가슴은 소리를 들을때마다 아프게
미안함으로 나를 채찍질 한다.
건너편 자리로 간 딤플은 어느 순간 쭈~욱 빠져 나가고 빈 병만 남았다.
오래까지 버티시던 성창모님께서도 벽을 보고 누우셨다. 세시가 지나고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하여 자리를 마무리하였다.
짱언니가 늦은 시간인데도 설겆이를 다 해 놓고 여자분들 방으로 간다. 그
사이 고철님은 런닝팬티 차림으로 꿈나라로 가셨다. 잘 주무세요.
남자 여섯 나란히 누웠다. 참 행복한 밤이다.
6.
아! 누가 모닝콜을 해 놓았나. 두번의 벨소리가 방안을 휘 젖는다.
모두가 꿈쩍 않는다. 아침의 첫 스케쥴을 9시로 했다. 한시간의 시간이
사람을 이렇게 여유있게 만드는구나. 누워서 시계를 봤다.
7시 50분. 덜컹덜컹 조금은 빠른 박자로 장항선 화물열차가 도고역을
지나쳐 간다. 일어 났다.
사우나 가시죠. 나는 작은 소리로 성창모님을 깨웠다. 그런데 모두가 주섬주섬
일어 나신다. 같이 사우나로 향했다. 동호회원끼리 사우나에서 만나는
즐거움은 안 것은 이미 지난 기행때인 예천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온천탕에 앉아 있는 느낌.
이번에는 도고온천이다. 얘기를 나누다가 각자 사우나에도 들어가고
누워 쉬기도하고...
7.
9시. 방으로 올라와 짐을 챙겼다. 가방을 챙기는데 새벽까지 손에들고
열심히 토론했던 시를 넣어둔 투명화일이 보이지 않는다.
지갑을 잃은 것처럼 다른 분들의 가방과 가구의 서랍을 뒤졌다.
아! 생애 이렇듯 호들갑을 떤 적이 있던가.
누가 나의 유품(?)을 이리도 좋아하는가.
프론트에서 나의 시들는 내게로 찾아 왔다. 나의 시는 여자분들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내게로 왔다.
여자분들의 일정은 더 오래까지 연장되었다는데... 5시까지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한다.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는 짱언니와 최경실선생님께서는 도고의 새벽 논둑길을 산책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강하고 여자도 강하다.
8.
답사의 새로운 날이 다시 시작 되었다.
차를 나누어 타고 길을 달렸다. 단골 손님들이 즐겨 찾을 법한 기사식당이
조반을 하기로 정해진 곳인가 보다. 꽃들이 핀 화단의 식물들이 참
건강해 보였다. 가로마다 자귀나무 꽃이 공작새처럼 피어 있다.
일하시는 분들이 동그랑땡을 직접 부치시고 계셨다. 매일 새로 부쳐
상에 낸다고 한다. 그리고보니 이곳 예산 지방의 한정식의 공통 메뉴는
동그랑땡이다.
담북장(청국장)찌게와 반찬들이 맛갈스럽다. 고철님은 큰소리로 식당아주머니를
불러 동치미 국물을 더 달라고 하여 말아서 후루룩 드신다.
9.
식사를 마친 일행은 추사고댁으로 향했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우리의 답사를 위해 서우를 내리시는 것 같다. 내가 탄 함빡님의 차에서는
장사익의 내지르는 듯한 맑은 소리의 음반을 틀어 놓았다.
함빡님은 장사익이 소리가 좋아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하늘 가는날'로
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매료되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함빡님은 사십대 후반 아직 소년과 같이 맑으시다.
운무가 산을 낮춘 추사고택은 몆주전에 찾았을 때보다 한층 운치가 있어
보였다. 이번에는 매표하는 여자분이 문화재 안내를 한다.
키도 크고 자세도 단정하고 말솜씨도 스스로 우러나오는 모습이다.
추사의 작품중 진품은 하나 밖에 없다는 석년이란 해시계를 보고
사랑채, 안채를 둘러보고 영정이 걸린 사당을 보고 솟을대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추사 묘소 앞 소나무 기둥을 한참 쳐다 봤다.
10.
추사 산소를 둘러보고 화암사로 갔다. 이날은 비가 와서 걸어가지
않고 차로 돌아 올라 갔다.
화암사 요사체 누마루인 시경루는 일반 민가와 같은 형상이 었다.
이미 점심공양 중이신데
우리가 두런두런 지나니 삐꿈이 내다 보시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신다.
본당은 공사중이였다.
추사께서 바위에 새겨 놓으셨다는 '시경'과 '천축고선생댁'이란 글씨를
보려고 바위 쪽으로 향하는데 쿵~하고 종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 보았다. 일행이 종각 주위에 있었다. 소리는 크게 오래 퍼져
나갔다. 그리고 여스님(보살님,공양주?)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고철님께서 호기심에 만지다가 치게 된건가?
이번 기행의 멋진 추억을 하나 만드는 순간이었다. 절 뒷편은 큰 바위와
숲이 아름다웠다. '시경'의 각자 앞에 다가서며 고철님을 놀려 주었다.
' 종철아! 종쳐라! 종쳐라! ' 일행을 나를 쳐다보고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나는 언제 다시 반격의 기습을 당할 것인가. 고철님께.
11.
화암사를 걸어 내려와 수덕사로 향했다. 호서지방의 비산비야는 제주도
인듯 충북의 산야와는 또 달랐다. 음악을 들으며 담소하며 미끄러져 갔다.
수덕사 아래에 있는 '그때 그집'에서 조금은 이른 점심식사을 했다.
이번에는 건너편에 김학중씨가 앉았다. 모든 반찬을 이름을 말하면서
밥 그릇에 조금씩 얹어 주었다. 학중씨는 순하게 맛있게도 먹어 준다.
산채로 만든 반찬이 모두 맛있다. 더덕구이도 조기도 맛있게 먹고
그의 그릇에 올려 줬다. 즐겁다.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그의 보조자가 된다. 그 많은 계단을 굴하지 않고 같이 했다. 동행이란
얼마나 좋은가. 최재권선셍님 말처럼 우리는 늘 그에게서 배운다.
수덕사를 안내하며 설명해줄 문화재해설사께서 식당에서 합류 했다.
우리는 구기자동동주(?) 한병을 시켜 맛있게 나눠 마셨다.
12.
우산을 펴들고 수덕사에 오른다. 먼저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자취가
살아있는 수덕여관으로 갔다. 초가집이면서도 관리가 잘 되어 있다.
1969년에 새기신 암각화를 보았다. 그 분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김일엽 스님에 대해 김치홍선생님의 박식함에 힘입어 근대역사
속으로 들어 갔다.
수덕사는 화려했다. 돈의 힘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대웅전 앞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처음으로 수덕사 대웅전 앞 마당에 올라 섰을때
나는 나지막히 탄성을 질렀다. 대웅전이 씁슬한 돈 냄새를 거두어 주었다.
비로소 해설사께서 설명해 주시는 덕숭총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가의 사물(?) - 법고, 목어, 운판, 범종.. 귀에 쏙 들어 온다.
대웅전. 측면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아비지. 담징. 백제의 실존.
경허선사. 만공법사의 근대 불교 중흥조라고 하는데... 나는 수덕사에
와서 그분들을 느낀다. 대웅전 우측편 아래의 바위에 대한 전설도
빗 속에서 들었다. 전설 속에 우리가 있었다.
13.
개심사로 향했다. 가는 도중 한국건축박물관에 대해 함빡님께서
말씀해 주신다. 대목. 소목. 목아박물관...박물관 그곳에 가 봤으면.
길을 제대로 접어 든 건지 함빡님께서 불안해 한다. 하지만 뒷자리에
자리잡은 우리는 그저 호서의 산야를 느긋이 즐길 따름이다.
해미읍성은 일정상 내려서 들러 보진 못하고 성벽의 담자락을 빙둘러
지나 왔다. 천주교. 박해... 대원군...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심산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함빡님께서 진입로가 지난 번 보다 더 잘
포장되어 있다고 하신다.
목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삼화목장. 김종필 전총리.
저수지 길을 돌아 들어 간다. 저수지를 가로 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 사이를 지날 땐 참으로 운치있었다고
한다.
주차를 하고 개심사에 오른다.
조그만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표지석 두개 .
세심동. 개심사 입구
절집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은 절이다.
계단도 최소한의 인공만이 가미되어 있다. 학중씨는 힘들겠지만
가급적 계단을 밟지 않게 인도하며 탄성을 감추며 올라 갔다.
꽤 많은 계단을 삼림의 정취를 느끼며 즐겁게 올랐다.
14.
아! 산위에 연못.
연못의 상왕산이란 산이름에서 유래 된 듯. 코끼리가 목이 마르면 내려와
마시라고 조성했다고 하는데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풍수의 모습인가.
좁고도 긴 사각 연못에 수련이 피어 있다.
하얀수련. 나는 백련이라 부르지 않고 하얀수련이라 부른다. 지인 중에
메일 아이디를 '하얀수련'이라 부르는 중년의 내가 좋아하는 여인이 있다.
잉어도 유영하고 있고 윗 마당에는 목백일홍, 배롱나무, 간지럼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낯설지 않게 서 있었다. 연못을 돌아 올라 갔다.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연못 가운데 나무다리를 건너 간다고들 한다.
이 절집이 내가 기대하던 첫번째의 절집이다. 이제 확신으로 변했다.
지금부터는 찬사를 늘어 놓는다.
건물의 기둥을 구불구불 나무 자연 그대로 홈만 내어 연결하여 놓았다.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펼쳐진 사물들을 호흡한다.
기둥이며 벽이며, 석축이며, 화초들... 현판들을... 호사가들은 물론
좋으니 나쁘니 평가를 할 것이다. 난는 말한다. 이 만큼 보존한 곳이
또 있느냐고... 주지스님 이대로 잘 보존하소서. 새로운 불사를 일으키지
마소서.
녹음이 울창한 전후 좌우의 산을 둘러 봤다. 한눈에 보아도 명당이다.
전화를 피한 절집. 내 허접한 디카로 담아야 뭘 담을 수 있을까.
가슴에 이 절집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종교의 사상과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을 담는다.
15.
화살표가 몇개 연이어 그려져 있고 해우소라고 적인 안내 표시가 있다.
해우소. 그럼 해우소에 가 봐야지.
여자 분들이 줄을 서서 소란 스럽다. 남자용은 넉넉하고 여자용은
그 숫자가 적으니 줄을 설 수 밖에... 나무로 된 깊고 무서운 절집의
화장실. 해우소.
나는 봤다. 해우소에 앉으며 담배를 피워무시는 고철님을.
학중씨가 왔다. 행여 빠질까봐 옆자리까지 가서 세워주고 밖에서
기다려 부축해 왔다. 이제 그도 편하게 나를 의지한다. 든든한
그의 옆구리를 만져 본다. 팔도 꾹 눌러 잡아 본다.
상왕산개심사란 큰 현판 밑에서 느긋이 담소를 나눈다. 떠나기가
아쉬워서... 최경실선생님께 물었다. 올해 4월 이후 이곳에 오신
적이 있느냐고.. 오신 적이 있다고 하신다. 참 복 받으신 곳에
사신다. 힘들때 예산으로 오라 하신다. 같이 이 개심사에 오르자고.
그러나 우리의 발길은 개심사를 내려오고 있었다. 뒤돌아보며. 그대로
천년을 더 앉아 있게나. 개심사여. 개심사의 스님이시여.
16.
다시 개심사 주차장으로 하산한 우리는 선 채로 지난 밤에 모자랄까 염려해 더
샀던 캔맥주를 하나씩 나눠 마셨다. 운전하시느라 고철님, 함빡님 곡차를
그저 바라보고만 계시느라 참 힘드셨겠습니다.
안주로 양파링을 사왔다. 우리의 짱언니께서는 산나물을 파시는 매점
아저씨께 캔 두어개를 들고 갔다. 어찌 아름답고 정겨운 마량의 자매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마량다움의 출발점은 그의 언행에서 비롯된다.
두어번의 기행에서 찬조금 봉투를 두툼하게 제일 먼저 내미는 이도
그이다.
십만평 이십만평..백만평.. 삼화목장을 구경하며 오늘의 마지막 답사코스인
서산 마애삼존불로 향했다. 쫓겨난 이들을 생각했다. 불현듯 하얀
목축이 나타났다. 영화세트 같기도하고 목가적인 길을 굽이도는 길에서
뒤에서 달려오는 고철님의 차와 유지현선생님의 하이얀 차를 하이얀 목축과
함께 디카에 담았다.
17.
마애삼존불로 가는 입구의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몇명이 물속에서 발을 적시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우리도 물속에서 장난을 쳤으면 좋겠다.
수덕사에서 다음 코스에서는 올라가지 않겠다던 김학중씨는 마지막 코스
에서도 나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8계단 하면 여덟 또는 아홉계단으로
나는 이제 계단이 나타나는 순간 척보면 오르거나 내려가야할 계단 숫자를
맞추는 수준이 됐다.
관리사무소가 지어져 있었다. 늘 뒤에 따라 갔다. 보호각이 세워진
마애 삼존불 보호각은 다행히 제대로 잘 세워져 있었다. 이 시대의
최고의 대목이 세운 것이라고 하니... 관리소에 계신 분이 전등을 비춰
가면서 설명을 해 주신다. 23시에서 3시 방향에서 말하는 '백제의 미소'가
떠올라 왔다. 백제의 미소.
자연석이 조밀하고 단단하게 보였다. 연결된 바위를 쓰다듬어 보았다.
언제 다시 이 미소를 보게 될까.
계곡물에 손을 씻었다. 무주바다와 물장난을 쳤다.
저만치 유지현 선생님이 다리로 건너지 않고 징검다리를
건너 간다.
나도 징검다리를 건너 간다.
이제 헤어지기 시작 한다. 마애삼존불을 마지막 답사지로 하여 서산에
사시는 유지현선생님과 작별을 했다.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작별을
해야 하나.
18.
유지현선생님 차에 동승했던 최경실선생님이 내가 탄 함빡님의
차를 탔다. 차는 들판을 지나 예산읍내에 다다르고 골목 길을 조금
들어 간 자리에 있는 음식점에 도착 했다.
2층으로 된 한정식 집이었다. 이번 모임의 마지막 만찬자리.
아늑하다. 메뉴는 돌솥비빔밥. 따뜻한 숭늉이 도자기 주전자에
담겨 나오고 잠시후 개인별로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참게가 짜지 않고 맛있었다. 조금 늦게 온 여자분들이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 지금껏 마량의 기둥이되어준 총무 고철님과
김치홍 회장님께 감사의 선물을 마련해서 드렸다.
만남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식사를 하면서 사람은 얼마나
정이 드는가. 이 자리에서도 소주 2병이 반주로 나왔다.
헤어지기전 건배. 다음의 만남을 위하여.
나는 마지막 건배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식사후 주차장에서 서울로 가는 팀들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명. 아침식사를 한 식당에서 최경실 선생님과
또 헤어졌다. 아침에 출발한 자리인 도고글로리아에서 무주바다와
이번 기행의 유사를 맡아주신 신임 총무가 되신 함빡님과 헤어졌다.
차에서 내려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무주바다의 얼굴에서 짐짓스친
그림자를 잊지 못한다. 사람은 늘 헤어진다.
그러면서도 늘 헤어짐은 슬프다. 청주에 와서는 성창모님을
내려 드리고 돌아오는 순간 나 혼자이다. 지금부터 먼 기다림을
시작한다. 또 다시 꿈같은 만남의 몇 시간을 기다리며...
19.
도고에서 청주로 돌아올 때는 온양을 지나 천안 산업도로를 거쳐 1번
국도를 타고 조치원을 경유하여 청주로 왔다. 갈때 고속도로를 타고
꼬박 2시간이 걸려 찾아간 것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다. 새로운 길을
찾아 갈 때와 돌아 올때의 느낌의 시간은 항상 돌아올 때가 짧게
느껴진다. 그 것은 아는 길을 다녀 올때도 마찬가지 이다.
마량의 3차 기행인 호서지방 기행이 끝났다. 그 여운이 길 것이다.
다음의 모임을 다시 기다릴 것이다.
20.
다녀와서 회원들이 각자 올린 후기들을 읽어 본다. 지나온 길 그 길은
찰라와 같이 아득한데 우린 그걸 잡고 싶어 한다. 가버린 입영열차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다녀온후 동호회 게시판을 하나 둘 장식하는 기행문을 즐기다가 불현듯
詩 한편을 적어본다.
편지
누군가 그대를
지독히도 좋아하나 보다.
나도 그대 좋아 한다오.
어느날
그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주변이야기 늘어 놓을 때
짐짓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빙빙 헛바퀴 돌 때.
나는 말한다오.
이 세상은 시린거라고.
애틋함을 감춘 여름날의 천렵에서
군중 사이에 마주 앉아 하염없이
그대를 바라보는
첫댓글 장문에 글을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모임이 이야기로 들은것보다 더 좋군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동승해보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1년에 두번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다음에 개별로 원하신다면 방법을 알려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