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사법부에 의한 재계 총수들의 명운이 줄줄이 결정될 전망이다. 현 회장은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발행·판매로 투자자들에게 1조원대 피해를 끼치고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재벌들은 주로 탈세와 횡령 등으로 국민들에게 ‘간접적인 피해’를 기치는 것에 비해 동양 사태는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도 함께 끼쳐 사회적인 파장이 크다.
이어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선고 전 마지막 재판이 14일 열렸다. 검찰은 이날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6년과 벌금 1천100억원을 구형했다.
금고지기로 알려진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에 대해서도 징역 4년에 벌금 1천100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장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려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공소사실을 유지했다. 또 개인 부동산을 살 때도 회사가 보증을 서게 했다며 시장경제질서를 문란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이 회장이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경영권 방어 차원이었다며 개인용도로 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와 횡령, 그리고 경영권 방어차원 등은 재벌2세들의 ‘교과서적인 수준’일 뿐 이상이하도 아니라고 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신부전증을 앓다 지난해 8월,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구속이 정지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왔다. 이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신장이식을 받은 50대 환자는 길어야 15년 정도 살 수 있다"며, "남은 시간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줄줄이 대기한 재벌총수들의 사법판단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14일 한날 이맹희 이재현 부자간이 재판장에 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장에서도 부자는 공교롭게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을 언급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고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이다.
이맹희 회장은 14일 서울 고등법원 민사14부(윤준 부장판사)에서 열린 삼성가 유산상속 소송 결심 변론기일에서 고(故) 이병철 회장 시절을 언급하며 피고소인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이 전 회장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노리고 소송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이전 자신이 제기했던 삼성에버랜드 상대 고소는 취하했다. 다만 항소 취지 변경 신청서를 통해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소를 취하하는 대신 이 회장을 상대로 9천400억원을 청구했다.
한편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14일 재판장에서 고 이병철 회장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용관)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국민과 CJ 가족들에게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선대 이병철 회장의 자랑스런 장손이 되고자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했던 세월이었다”고 고(故) 이병철 회장을 언급했다.
14일 이맹희 이재현 부자의 재판에 이어 2월6일에는 김승연 한화 회장 파기환송심의 선고가 내려진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2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지난 1·2심과 같은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이외에도 상고심이 진행 중인 최태원 SK 회장의 정확한 선고일은 나오지 않았지만 법조계의 관례로 보면 2월 말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월 말로 예정된 법원 정기인사 이전에 종결하려는 재판장들의 의지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법원 인사로 재판장이 바뀔 경우 통상 선고가 2~3개월 가량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총수 중 유독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가 신장이식을 받은 신부증 환자라는 점과 아버지 이맹희 전 회장이 ‘강한 상대’ 삼성과 맞선 불똥이 튄 것이 아닌가에 대한 동정여론이다.
이재현 회장은 울먹이면서 유죄로 판단하더라도 법이 허용하는 가장 관대한 형을 선고해 달라고 말했다. ‘병상의 총수’는 ‘건강한 평민’들에게 상대적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했다.
남들보다 짧게 남은 삶을 감옥에서 ‘통상적인 죄값’을 치르게 할 것인지 봉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것인지 사법부의 판단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경 기자
한국NGO신문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