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지금부터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박막례, 김유라 지음 / 위즈덤 하우스
신해린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가진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할머니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뉘는데, 그 기점은 손녀딸 유라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할머니와 호주 케언스로 여행을 가게 된 사건이다. 전반전의 분량은 5분의 1이
채 되지 않지만, 실제론 할머니의 72년 중 70년에 해당한다.
두꺼운 책의 5분의 1 분량에는
할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나이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있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여자는 글 배우면 결혼해서 도망간다고 해 글을 못 배운 이야기. 그러다 X꼬 찢어지게 가난한 종근이에게 엉겁결에 시집 갔는데, 평생을 겉으로만
나돌아 자식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이야기. 6개의 직업을 거치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과 그 사이 사건, 사고들까지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스치듯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 중
어떤 나이는 “똑같이 살았다.”는 한 줄로 설명이 끝나는데, 할머니의 꽃 같아야 했던 젊은 시절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이런
답답한 마음은 전반전 내내 지속되다, 하프타임에 가서야 뻥 뚫린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하프타임 중에서/p57)
손녀딸 김유라는 할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할머니의
삶을 70 평생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허리가 굽어라
일만 하다가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침 잘 안 맞기도
했던) 직장까지 때려 치고 할머니 치매 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
첫 출발이 바로 유튜브에서 막례 할머니를 알린 영상, 호주 케언즈 여행이다. 직접 만든 영상이 너무 웃겨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유튜브 ‘코리아
그랜마(Korea Grandma)’가 지금은 구독자 100만명을
훌쩍 넘긴 대형 유튜브가 되었다. 이 책 속엔 할머니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이서 할머니를 바라보는 천재 PD 김유라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담겨있다.
후반전은 그야말로 부침개처럼 완전히 뒤집어진 할머니의 7번째 직업,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의 새 삶이 그려져 있다. 9개의 소제목으로 나뉜
후반전은, 호주에서 시작해 유튜버 막례 할머니가 유튜브 CEO 수잔을
만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호주에서 진정한 자유의 맛과 여행의 맛을 알게 된 할머니는 일본 돗토리현
모래사구에서 보드를 탔고, 크루즈 여행을 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춤을 추었다. 처음 가 본 유럽, 프랑스 파리에선 바게트를 먹다 이가 빠져도 깔깔
웃었고, 옷장 속에만 고이 모셔 뒀던 예쁜 원피스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선 마운틴카트를 타다 넘어진 모습에 할머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다며 자책하는 손녀에게 “도전했다가 생긴 상처는 괜찮다.”고 웃으며 달랜다.
“청춘이 용기라면, 할머니는
아직도 청춘이다.”(뭔 도토리를 따러 일본까지 간대? 중/ p125)
어릴 때 못 배운 것이 한이 돼 새로운 것이라면 눈을 반짝이며 배우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뭉클한 도전기와 손녀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관찰한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솔직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포기를
외치기엔 남은 삶이 아직 많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버스에 앉아 2시간만에 꼬박 읽어버렸는데, 할머니의 성격처럼 유쾌한 글이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뭔가를 시작하기 늦었다 생각하는 사람, 그냥
인생이 지루한 사람 등 모두에게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