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박 동 조
“할머니, 왜 밥을 남기세요? 한 숟갈밖에 안 남았잖아요.”
손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지듯 묻는다.
“응, 배가 너무 불러서.”
“에게, 겨우 한 숟갈이잖아요.”
귀를 의심했다. 이런 걸 두고 부메랑이라 하는 걸까? 수십 년 전에 아들에게 했던 말을 손녀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되다니!
한 숟갈밖에 안 된다는 말을 거듭하는 건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뜻이다. 나는 여덟 살 손녀 앞에서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밥그릇을 싹싹 비울 수밖에 없다. 옆에서 아들이 재미있다는 듯 싱글거린다.
아들의 표정에는 백 마디의 말이 담겨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 손으로 키워낸 아들이다. 제 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흘리지 말고 먹어라! 농부들이 고생하며 지은 쌀이다, 쌀 한 톨이 우리 입에 들어오려면 사람의 손이 팔십 번도 더 간다.” “끼적이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세상에는 먹을 게 없어 배고픈 아이가 수두룩하다.”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려주며 아들을 키웠다. 내가 질색으로 여기는 건 또 있었다. 한 숟갈 밥이나, 한 젓가락 반찬을 마저 먹지 않고 그릇에 붙여놓는 것이었다. 다음 끼에 먹기도 마뜩찮았고, 쓰레기로 버리기에는 내 정서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거 조금 더 먹는다고 동티가 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몇 톨의 밥알이라도 남기면 아들은 당연히 음식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른다고 야단을 맞았다. 그때는 어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고개를 외로 꼬더니 언제 머릿속에 저장해둔 것일까?
어제도 오늘 못잖은 일을 겪었다. 손녀와 함께한 나들이에서 내가 입은 옷이 엉망이 됐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회칠한 담벼락을 스친 것처럼 원피스 앞자락이 얼룩덜룩했다. 털고, 비비고, 손수건으로 닦아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구입한 뒤 첫나들이에 입은 거라 속상한 건 뒷전이고 당장에 부딪힐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이었다.
“서영아, 할머니 창피해서 우짜노?” 울상을 지으며 하는 내 소리에 손녀의 대답이 기막혔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패션으로 알 거예요. 아, 그리고 아무도 할머니 안 쳐다봐요.”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대꾸했다.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맞다. 나만 내게 관심 있지!”
내가 이 말을 쿡쿡 웃으며 하는 까닭을 손녀는 알 리가 없었다.
아들이 옷 투정을 할 때면,
“아무도 너 안 쳐다본다. 너만 네게 관심 있어. 옷은 깨끗하고 단정하면 돼.”라고 말했었다. 그 말이 아들에게 피가 된 것일까, 사춘기를 거치고 청년이 되어서도 옷을 두고 타박하는 걸 보지 못했다. 결혼해서 딸을 둔 아비가 되어서도 아무 옷이나 입는다고 제 아내의 불만을 사더니 딸에게까지 내 말을 들려준 모양이다.
나는 여자가 사치를 하면 패가망신 한다는 말을 노래처럼 듣고 자란 세대다. 내 나이 또래가 청춘이던 시대는 내핍과 근면이 미덕인 사회였다. 결혼을 하고도 알뜰살뜰 절약하지 않으면 목돈 마련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내게 옷이란 남에게 불쾌감만 안 주면 되는 몸 가리개였다.
이 시대는 몸이 뚱뚱하면 미적인 호감도가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건강에 적신호가 온 걸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들여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갖추기 위해서다. 가치의 기준은 시대가 정한다. 한 톨의 밥알까지 아끼는 내핍은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르러 미덕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과체중인 아들을 보면 내 탓인가 하여 마음이 괴롭다.
“많으면 남겨라. 과한 것보다 모자란 듯 먹어야 건강에 좋단다.”라고 하면,
“괜찮아요. 다 먹을 수 있어요” 내 마음과는 한참 먼 대답을 한다.
세상을 살아오며 깨달은 게 또 있다. 입성이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옷을 헙수룩하게 입고 백화점에 가면 주머니에 쓸 돈이 두둑해도 호객하는 판매원이 별로 없다. 반면, 얇아진 지갑으로 눈 쇼핑이나 하자며 외양만 잔뜩 멋을 부리고 간 날은 여기서 저기서 “어서 오십시오.” 팔을 끌어당긴다. 느지막한 나이에 들어선 내가 새삼스레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살게 마련이다. 문화도 가치도 예전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역사는 흘러가는 물과 같다. 물은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한 역류하지 않는다. 그러니 손녀의 입을 통해 아들에게 했던 말을 되돌려 받는 일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에세이포레2022년 여름호)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결국 교육의 힘이네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말이라 하더라도 손녀가 여간 지혜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에 와 닿아요
저도 그렇게 키웠는데 큰 아들은 손주들에게 간식을 못 사주었는데 둘째는 정 반대로 어른들 먹는걸 다 먹여요
저는 명절 날 한끼는 떡라면으로 떼워요
그래서 이런글 못 썼는가 봐요
따라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