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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29) 2026. 9. 23
예후에게 기름을 붓다
왕하9:1~13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조의 최후를 그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 이스라엘을 다스린 네 왕가는 (1) 여로보암 왕가(B.C. 930-909) - 여로보암 왕가는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로 인하여(왕상 15:30) 바아사에 의해 멸망 당했습니다(왕상 15:29). (2) 바아사 왕가(B.C. 909-885) - 바아사 왕가는 7일 동안 왕 노릇한 시므리에 의해서(왕상 16:15) 그 일족이 몰살되었습니다(왕상 16:11~12), 시므리도 바아사와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범죄함으로(왕상 16:19) 왕궁에 불을 놓고 그 속에서 타죽었습니다(왕상 16:18). (3) 오므리 왕가(B.C. 885-841) - 그리고 이제 오므리 왕가(아합의 집)는 예후에 의해서 멸절하게 되었습니다. (4) 예후 왕가(B.C. 841-752)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점입니다. 그 내용은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및 여러 우상들을 섬기는 죄였습니다. 이 우상숭배의 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통칭되었습니다(왕상 12:28, 15:26). |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명령을 엘리사가 이어받아 수행해야 했습니다.
왕상19:15~16(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받은 사명 세 가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
2)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3)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세 가지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명령만 완수한 채로 엘리야는 승천하였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 명령은 엘리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첫 번째 명령, 곧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는 명령을 수행하였습니다(왕하8:7~15). 엘리사가 다메섹 근처에 가자, 마침 병이 든 아람 왕 벤하닷은 자기 신복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인지를 물어보게 합니다, 엘리사는 하사엘을 보고 “네가 아람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엄청난 예언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사엘은 결국 이불을 물에 적셔 왕의 얼굴을 덮어 숨을 쉬지 못하게 하여 죽이고 자신이 대신하여 왕에 올랐습니다.
이제 두 번째(마지막) 명령, 곧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는 말씀만 수행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완수하는 것입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
엘리사가 제자를 하나 불러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습니다.
1~4절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엘리사의 구체적인 명령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먼저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기 위해 아람 군대(하사엘)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요람은 부상을 당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15절). 전쟁은 부하 장관들이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2) 그 장관들 중에서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으라고 명하였습니다.
3) 예후를 데리고 골방으로(밀실로) 가서 기름을 예후의 머리에 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기름을 붇는 경우 –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
4) 그리고는 ‘지체하지 말고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왕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기름을 부어 새 왕을 세우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자마자 곧바로 도망치라고 한 것입니다.
예전 사울 왕 시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 중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르라고 명령하시자 사무엘은 이렇게 항변하였습니다.
삼상16:2~3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순종하는 제자 - 기름 부음 받은 예후>
명령을 받은 제자는 엘리사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5~10절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보냄 받은 제자는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 수행하였습니다(소년이라고 표현했지만 청년).
1) 길르앗 라못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람과 싸우는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2) 그중에서 예후를 찾아 할 말이 있다면서 조용한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3) 그리고 예후의 머리에 왕으로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4) 그리고 엘리사가 명한 대로 곧바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는(엘리사가 한 말 중 기록되지 않은 말), 예후에게 그를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분명한 이유(사명)를 설명하였습니다. 7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한 마디로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는 것입니다.
예전 아합이 살아있을 때, 아합의 범죄를 엘리야가 꾸짖자 베옷을 입고 회개하여 심판을 연기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고 음모를 꾸며(이세벨) 죽인 죄로 인해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집안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아합은 자신의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슬퍼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아합이 자신 앞에서 겸비해진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내리려던 재앙(멸망)을 아합 당대가 아닌 그의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겠다고 심판을 연기하셨습니다(왕상21:27~29).
하나님은 아합의 집을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아들들로 돌이켜 하나님의 심판이 더욱 연기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합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죽은 뒤, 그의 아들들(아하시야, 여호람(요람))은 어떠하였습니까?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습니다. 그 중심에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기되었던 심판이 집행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내용이 무시무시합니다.
8~9절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시키겠다'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에 대한 구체적인 심판도 예언하였습니다.
10절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왕위에 오른 예후>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데로 나오자, 주변 동료들이 무슨 일이냐며 묻습니다.
11~13절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예후가 나오자 한 사람이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를 ‘그 미친 자’(메슈가)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을 경멸하는 용어입니다. 선지자가 무아지경에 빠져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행위를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삼상 10장에 보면(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사울이 의심하자), 사무엘은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을 예언하여 줍니다. 정말로 산에서 예언(찬양)을 하면서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들을 만나게 되고, 사울 자신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삼상10:11)고 놀라워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비한 영적 현상들을 보면, 신기해하면서도 이상한 행위로 조롱하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방언하고 예언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당시 선지자들에 대한 평판이 대체로 경멸하는 풍조였음을 반영하는 말입니다(불신앙의 시대).
예후가 대답하되 “그 사람이 누구이며 그가 한 말이 무엇인지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하며 넘기려고 합니다. 그러자 동료 장군들은 “그렇게 뜬구름 잡듯 얼렁뚱땅 넘기려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후는 사실대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고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그들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발아래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하고 외쳤습니다. ‘섬돌’은 ‘돌층계’를 뜻합니다. 그들은 돌층계 꼭대기에 서 있는 예후의 발아래 옷을 깔고 예후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겉옷은 그 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상징하는데, 그것을 벗어 바닥에 까는 것은 섬김과 복종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 21:8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에 대해 무리들이 옷을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백성들의 예우(禮遇)일 뿐만 아니라 왕으로 인정한다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팔을 부는 행위도 누군가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 그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불었습니다(왕의 대관식 때). 즉 예후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음과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 합니다(입술의 회개가 아닌 삶의 회개).
아합이 잠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척하기만 했을 뿐 회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의 회개>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실 때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키가 작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세리장이었는데, 그로 인해 부당한 이득을 많이 취해 부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격적인 말씀에 놀란 삭개오는 예수님의 일행을 정성으로 대접하면서 동시에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삭개오가 회개하였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일시적인 회개만 했을 뿐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물론 자신의 가족조차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그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아합의 죄를 그 아들의 때까지 집행유예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개전의 정이 없자 그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이를 단지 아버지의 죄가 자식에게 전이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소위 ‘가계 저주론’ 경계해야). 정확히는 아들의 죄를 물으신 것입니다.
물론 부모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라난 집안의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것은 그 자신의 죄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예후를 기름 부어 아합의 가문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지만 일단 그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주께서 오시지 않았을 때, 기회가 있을 때 주께 돌아오십시오.
셋째, 사명자는 허리를 동여매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단순히 옷매무새를 지적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마음의 결단’, 그리고 ‘사명감’을 강조할 때 쓰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사명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명령 – 마28:19~20a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바울의 고백 - 고후5:19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 이 표현은 ‘절제’(인내)를 표현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는 세상에서 종종 미친 자로 취급당합니다.
장관들은 선지자의 제자를 ‘그 미친 자’(메슈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 중에 미친 사람 취급 당했습니다(요10: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재판받을 때 베스도 총독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행26:24~25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이처럼 세상이 악하면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입니다(‘예수쟁이’라고 조롱, 군대에서 주일날 교회에 갈 병사들을 집합시키면서 ‘환자 모여’라고 한답니다.).
죄와 향락에 빠진 그들의 눈에는 경건하게 살아가는 청년 선지자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탈 줄 모르는 바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얻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좋게 보일 리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이 땅의 것을 바라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 우리는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합의 집에 심판이 임하는 것처럼 이 세상도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회개의 기회는 충분했습니다. 핑계할 수 없습니다.
허리를 동이시고, 조롱을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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