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닫는 곳 : 용인 삼덕三德의 길 -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아서
일시 : 정유년(17년) 해오름달 01월 스물이레 쇠날(설연휴 첫날) 인원 : 혼자서 어딜 : 남곡리 ~ 은이성지 ~ 형제봉 ~ 신덕고개 ~ 와우정사 ~ 망덕고개 ~ 애덕고개 ~ 미리내성지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522 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명절 설이 있어 설연휴 첫날...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맘만은 풍족한 새해 첫날의 시작 정유년 올 해도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전국에 산천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사연들... 설 새날이 주는 새로움... 낯설음의 의미도 되세기고 나를 되돌아 보기 위해 聖人의 길을 따라가면 어떨까? 한국 최초의 신부님이신 김대건신부가 남기신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도 새날에 어울리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아서 ... 적색이 삼덕의 길(신망애信望愛) 고개길 - 청색은 잠시 형제봉으로...
용인 삼덕의 길은 김대건 신부가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의 가파른 세 고개를 넘으신 수난의 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 신부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를 하시고 안성 미리내 성지까지 유해가 지나는 길이며
이름에 어울리는 은이(隱里)성지에서 포졸들의 눈을 피해 포교활동을 하시면서 사목司牧할동을 하셨던 길이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카톨릭성인의 자리에 오르신 김대건 신부가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가고 없지만 카톨릭 신자는 물론 일반 사람들도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본받고자 걷는 길이기도 하다 처음타보는 경전철... 참으로 귀엽다. 기흥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다 지하철이 빠를 것 같아 에버라인이라 부르는 용인경전철 이용 언제나 새로움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새 날. 설 연휴 첫날에 떠나는 여행... 기차놀이가 신기할 뿐...새로움에 대한 낯설음... 에버렌드라인 온동장.송담대역 1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버스 정류장이 나오면 좌측 사잇길로 진입 경인천 천변을 따라 간다 천변을 따르다 처음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횡단보도를 건너 포브스병원 정류장에서 10번 버스 탑승 그런데 담 설연휴 마지막날 떠날 한남앵자지맥 접근지인 법륜사 경유하는 버스가 지나간다. 16번 용인 버스 07:46분 16번 버스가 드물기 때문에 이 차를 놓치면 2km를 걸어가야 하므로... 초보산꾼이 자주 이용했던 백암까지 가는 10번 버스 이용 남곡리까지... 10번 버스는 자주 있다 남곡리 정류장에 내려 우측으로 진입 도보길 1코스와 2코스로 나뉜다. 이 지도를 이해 못하면 답사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청색이 제대로 된 길. 양쪽으로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결국은 만나는 듯... 중간에 물류센터와 공장들이 있어 그런 듯하다. 나는 우측으로 초보산꾼이 서울근교55산과 관악지맥하면서 잠시 소개했던 영남길을 여기서도 만나게 된다. 전봇대를 잘 봐야 한다. 좌측으로 담에 걷게 될 앵자지맥 칠봉산에서 가지 하나가 북진하는 능선위에 있는 탁구공 2개 중 하나가 앞길을 안내한다 골프장이 있어서인지 이 곳까지 버스가 들어온다. 우영테크앞 정류소를 지나 은이성지가 나온다 은이성지와 미리내 성지는 따로 정리 은이성지에서 형제봉으로 등산로는 없다. 은이성지 지나 바로 우측길로 진입 삼덕의 길은 직진해야 하지만 언제 또 오랴... 형제봉을 들려 보기로... 어차피 영남의길도 걸어야 하니 그 때 제대로... 여기서 수렛길을 버리고 우측 산속으로 진입.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띠지가 없다. 멧돼지의 식생만 가득할 뿐... 은이성지 뒷산 정상에서 본 양지면 능선에 올라서니 된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우측에 보인다. 이 길은 사람의 발길 자주 닫는 곳이다 이 길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짐승의 발과 함께 진행한다 철탑이 나오면 좌측으로 형제봉 전위봉이 보인다. 철탑에서 직진해 앞에 보이는 봉으로 진입이 보기와 달리 쉽지 않다 어렵게 된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접속... 그런데 형제봉의 거리가 잘 못 된 듯... 형제봉을 지나 은이성지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안부를 지나면서... 은이봉이 앞에 보인다 은이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바로 옆에 있는 은이봉을 들러 본다. 계속 직진하면 와우정사로 바로 갈 수 있다. 와우정사 위치 지도가 잘 못 되어 있다 다시 되돌아 와 삼덕중 첫번째인 신덕信德고개 - 여기서 와우정사 이정표따라 간다. 원 고개 이름은 별미고개이다. 지금은 골프장 안에 있는 골베마실은 김대건 신부가 어릴 때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앵자지맥에서 만납니다 미리내 성지 방향은 시작할 때 보았던 도보길인 너울길 이므로 삼덕의 길과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 개인 사유지를 빠져 나오면 와우정사가 보인다. 주차장 크기도 넓은 것으로 보아 많이 찾는 듯... 와우정사도 따로 소개해야 할 정도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사찰이다. 여기 불두佛頭는 세계 최대의 불상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와우정사 꼭데기에 있는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부처님 열반 와불(涅槃臥佛)은 꼭 권유하고 싶다 와불 뒤로 아까 은이봉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도의 위치가 잘 못 됐다고 하는 것이다 사찰 경내인데도 아이젠을 차고 올라왔지만... 동남아에 온 듯한 사찰... 실향민의 남북통일의 원이 담긴 사찰이라고... 정말 들러보길 잘 했다는 느낌으로 경내를 나와 길을 따르면 57번 지방도 2차선 도로를 만나 우틀 별미 정류장 직전 설민 민화 박물관이 길 우측으로 보인다 신덕고개의 원래 이름인 별미고개의 별미마을 이정석 별미마을 '미'가 뫼(산)의 변이로 별도로 떨어져 있는 산(別山)이라는 뜻이란다. 아까 은이봉에서 계속 산줄기가 이어오다 이 곳 마을 북쪽에서 맥을 다하는 돌출된 작은 봉우리인 양산봉에서 나온 듯하다 또한 곱든고개를 넘어 한향으로 가는 과객들이 이 곳에 들려 허기진 배를 주막에서 이 곳 산채나물로 채우면서 산채나물 맛이 별미중에 별미여서 "이질 배질 곱등고개 먹던 중에 별미로다"라는 말이 생겨 날 정도 였다고... 자료 : 용인시민신문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02 석유공사 입구 삼거리가 나오면 좌틀 해실마을로...명단자리에 물이 없어 바닷물로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 여기서 특별한 표시가 없는 해실이 마을로 1시 방향. 직진은 유류비축기지라고 한다 계속 길을 따라 해실이 마을까지... 좌측으로 해실이 마을 지나 마지막으로 되돌아 보니 탁구공 2개가 선명하게 보인다 공터가 나오면 좌측으로 해서 가운데 안부로... 삼덕 중 두번째 고개인 망덕望德고개 - 여기는 원래 장촌, 해실이 고개로 한남정맥상에 있는 고개이다. 여기서 컵라면으로... 여기서는 바로 고개를 넘어 가는 것이 아니고 좌측 능선을 따라 조금 오르면 바로 임도가 나오고 임도따라 내려온다 망덕고개에서 본 정면에 희미하게 보이는 시궁산. 그 앞으로 지나가게 된다 임도끝을 지나면 병목골을 지난다 병목골을 빠져 나오면 시궁산의 모습이 앞에 보인다 골이 깊고 길다는 장촌다리를 지나 좌틀 장촌2 교차로 삼거리에서 우틀 정상에 시궁(時宮) 이라는 연못이 있었다는 시궁산 등산 안내도 시궁산 가장자리를 따라 애덕고개를 넘기 위한 골목 거문정 마을 가는 길 이 곳 행정명인 묵리가 검다는 먹(黑)에서 나왔다고 하니 한 때 검은골로 불렸다는 거문정巨文亭이 마을을 되돌아 본다 거문정 마을을 지나 포장임도를 따라 올라오면 임도 삼거리에 있는 삼덕 중 마지막 고개 애덕愛德고개 가파르게 내려 오면 마지막 미리내 성지 은하수를 뜻하는 미리내 성지 경당에 잠들어 계신 김대건 신부님... 미리내 성지 정류장에 내려 왔는데 헉 시간이... 용인으로 올려면 60번이나 60-3번을 타야 한다 여기서 설 연휴 첫날 초보산꾼의 발길 닫는데로가 끝을 알린다 신유년과 기해년의 심했던 박해를 피해 미리내까지 숨어 들어 왔지만 순수한 열정은 살아 있는 법... 밤이면 교우들이 사는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에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미리내 이 곳에 성인으로 추앙받으신 김대건 신부님이 잠들어 계신다 26세의 젊은 신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세상은 이제 후손들에게 맘 한편에 남아 있는 아쉬움을 채워주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현실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나를 되돌아 보지 않았나 생객해 본 설 연휴 첫날에 떠났던 여정 당시 사회적 현실이 비록 참수는 면했다고 하지만 참수를 당할 만큼 역적으로 몰린 망자의 시신을 거두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각오하고 실행할 수 있는 큰 용기였을 것이다 또 다른 그 큰 용기가 이 곳 성지길을 따라 사람 눈길을 피해 7일이나 숨죽이면서 밤마다 이동했을 것인데.. 나는 홀로 이 길을 걸으면서 굳이 김대건 신부가 숨진 서울 새남터에서 이곳까지 옮겨 힘든 여정을 망자와 함께 했을까?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이곳 은이성지에 이사와 포교활동을 했던 곳 망자의 피땀이 함께 했던 고난의 역사가 함께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것이 산자, 후손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망자를 위한 길이였을 것이다 망자와 산자... 이젠 그마져도 역사가 되어 성지 순례길이 되어 내가 단 몇시간에 걸었다고 감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단지 한 번 걸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올 한해도 산에 대한 겸손함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닐련지... 초보산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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