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
이 화 용
아파트 정문에서 우리 집 쪽으로 돌아서는 어귀에 수령이 한 4~50년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길 양쪽으로 서너 그루씩 서 있다. 잔가지들이 사방으로 촘촘히 벋어 있어, 그 밑을 지나다 보면 무성한 잎사귀가 하늘을 가린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 나무들 아래로 지나다닌다. 한여름, 무성한 나뭇잎들이 비벼대는 바람소리에 무더위를 잊고, 갑작스런 소나기도 이들 나뭇잎새 아래에 서면 곧잘 그을 수 있다. 늦은 밤 귀갓길에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면 ‘아,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더없이 마음이 아늑해진다.
실은 나무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 나무들에게서 그리도 많은 위안을 받고 기운을 얻으면서도 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그 이름을 알려 하거나, 잎사귀나 가지가 퍼진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흔히 보아 온 나무들이라 그러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그저 좋았다.
유난히 귀골스러운 기품을 지닌 자태는 아닐지라도 그 모습이 참 단정하다. 어느 한 쪽으로 가지들이 무리하게 치우침 없이, 마주 보며 서 있는 모습이 편안하다. 초봄에 피어나는 이른 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이 나무들의 가지 끝에도 초록의 잎사귀가 무성하다. 꽃이 피는 것을 본 기억은 없으나, 5월 어느 날쯤 나무 아래를 지나다 보면 좁쌀 같은 알갱이들이 땅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다. 혼자서 조용히 꽃을 피우고, 꽃을 떨군 것이다. 며칠 전 나무 아래를 지나며 경비아저씨에게, “이 나무가 느티나무 맞지요?”하고 물어 보았다. “옛날 우리 마을에서는 그저 당산나무라고 불렀지요.”라고 한다. 당산나무…….
근원 김용준(주)은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라는 수필에서 “교통이 불편하여 문전에 구루마 한 채도 들어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 뒤에는 꿩이랑 늑대가 가끔 내려오곤 하는” 그런 무주구천동 같은 곳으로 아내를 우격다짐하다시피 해서 이사를 한 것은 “진실로진실로 내가 이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한 때문이었다.” 라고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힘들게 장만해서 살던 집을 내어 주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날, 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처음 이 아파트에 와 봤다. 그의 강권에 못 이겨 따라오기는 했으나, 애초에 별 기대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를 들어서자 이 나뭇잎새들의 터널이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가리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이사 올 집 바로 앞에도 하늘이 안 보이도록 아무렇게나 무성하게 서 있는 잡목들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져서, ‘휴우…’ 하고 긴 숨을 내쉬며 마음속에 지어졌던 어떤 매듭 같은 것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집 앞의 뜰에는 벚나무도 한두 그루 있고, 목련, 산수유, 모과나무, 무궁화, 살구나무 등등의 나무들이 다투어 꽃을 피우고 싹을 틔워 잎새를 펼치고 있다. 한여름에는 매미들이 우는 소리에 귀가 따갑고 새들도 곧잘 날아와 지저귄다. 다듬어진 정원수는 한 그루도 없다. 요염한 꽃을 피우는 장미 한 주 없어도 여름 지나 가을이 오도록 옥잠화, 금잔화, 벌개미취, 과꽃이 분주하게 조각 햇빛을 향해 얼굴을 내밀며 제 몫의 삶을 살아간다. 올 여름에는 무궁화나무가 웃자라 그 가지들이 집안 깊숙이 드리워서 한 낮에도 불을 켜지 않고는 지낼 수가 없었다. 그냥 견디어 보려다 아저씨께 부탁해서 창가 쪽으로 드리운 가지를 좀 쳐냈다. 그러나 왠 걸? 거센 빗줄기에 안방 베란다 쪽 나뭇가지가 부러지더니, 그대로 말라 죽지 않고 한껏 몸을 낮춘 자세로 장맛비에도 틈틈이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분수를 잃지 않으며 제 몫의 삶을 다 하고 있었다.
값 비싼 정원수가 아니어서 좋다. 까탈스레 생장환경을 탓하지 않아서 좋다.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보아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아 대견하다. 그저 늘 내 곁에 있으니 좋다. 나는 나무들이 잘 보이는 창가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 커다란 책상을 옮겨놓고 곁에 책들을 쌓아 놓았다. 내가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이 펼쳐주는 그늘 사이로 가늘게 아른대는 햇살의 간지럼이 좋았다. 오후 무렵 그 햇살 속에 앉아 하루가 저물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 그들처럼 내 몸과 마음이 한껏 낮아졌다.
“당산나무라고 불렀지요.”라는 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아! 그 나무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백 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 온 고목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다가가 기댈 수 있는 그들 몇 그루의 느티나무와 앞마당에 무심히 서 있는 나무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나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 응원이었다. 큰 위안이었다. 내 마음을 지켜주는 수호신, 내 마음의 당산나무이다.
근원 김용준은 처음에는 감나무를 무척 아끼고 열심히 돌보았으나, 게으름으로 가뭄에 물 한 방울 주지 않아 말라죽기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어 감나무가 죽을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 역시 감나무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기만 했지 아무 것도 갚지 못함을 뉘우친다. 그러나 근원은 ‘노시산방기’ 라는 훌륭한 글을 남김으로 감나무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은 꼴이다.
나는 당산나무에게서 받은 위로를 갚을 길이 없다. ( 2009. 9. 16매)
(주) 근원 김용준(近園 金溶俊 1904~1967) 대구 출생. 화가이며 수필가. 도쿄미술학교 졸업. 서울대 미술대 학장을 지내고
6‧ 25 후 서울수복 때 월북. 저서로는 <근원수필> <조선미술사 대요>등이 있다.
첫댓글 먼 여행에서 돌아와 글을 읽습니다. 당산나무의 아릿한 그리움. 제게도 그런 기억으로 쓴 글이 있지요. 오랜 여운으로 머물다갑니다.
후리지아님의 '당산나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도시 태생으로, 농촌 출신인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시골에 가본 적도 없는 무지랭이 입니다. 그런 제가 당산나무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좀 어줍잖은 짓이기도 하지요. 제 감성에 비친 당산나무가 수필로서 어느 만큼의 진정성이 있는지는 저도 자신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더욱 용감하게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군요. 후리지아님의 글도 좀 올려주시면 많이 도움이 되겠군요.
그러지요. 저도 항구도시인 부산이 고향이라 제가 기억하는 당산나무는 너무도 아릿합니다. 답글로 올리겠습니다.
10/9일 저녁 등재하신 두레박님의 '당산나무' 글을 읽고, 오늘 아침까지 줄곳 한자 한귀절 심혈을 기울여 쓰신 작가님께 어떤 댓글을 달아 드려야하나 고심하면서 다녔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5년 세월 정들었던 단독주택을 뒤로하고 남편의 권유에 못이겨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셨는데, 아파트 정문 곁에 서 있는 4~50년은 되어 보이는 든든한 느티나무의 귀골스런 모습에 끌리면서 내마음의 '수호신'이 되어 주리라 하는 마음에 새 보금자리를 펴고 보니, 집(아마도 아파트 저층인듯) 내 방 앞뜰에는 벗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들과 사시사철 온갓 꽃들이 피고 지는 창가에서 책상을 자리하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다음으로 계속>
그래서 항상 아파트 입구를 돌아서는 때며는 모퉁이에 당당하게 서 있는 서너 그루 느티나무는 앞으로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나의 '당산나무'가 되어주리라. 전체적인 독자의 느낌입니다. 그러나 원래 '당산나무'는 우리 전통 토템사상에 의존한 민속적인 유래에서 마을 입구에 千年을 두고 한그루 당당하게 자리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금줄, 솟대, 조정신으로 每年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堂山'에서 시작된 마을의 지킴이에서 기원합니다. 설령 위대한 의미는 그렇더라도 님이 생각하신 '당산나무' 제목같이 두레박님을 지켜주는 당당한 수호신이 되어 주기를 저도 기대합니다.
근원 김용준은 늙은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것에 끌리어서 성북동 골짜기(60여 년 전에는 성북동이 무주구천동을 방불했었나 봅니다)로 이사를 갔다는 수필을 읽었습니다.(명수필 94 번의 '노시산방기') 문득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오던 때가 생각나더군요.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몇 그루가 참 좋았어요. 단박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좀 힘든 상황에서 이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살아 가면서 누추한 이 아파트의 조경이나 나무들, 아무렇게나 피어 있으나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풀들, 화초들에게서---
-----많은 無言의 메세지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되어 가는 느낌. 나무란 수필의 소재로서 참 무궁무진하지요. 그러나 저에게 나무란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지켜주는 수호신같은 존재. 믿음직한 당산나무. 당산나무는 제 마음의 지킴이( 지존님의 이 표현 참 맘에 드네요)입니다. 정성껏 보내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나는 당산나무에게서 받은 위로를 갚을 길이 없다." 두레박님, 이미 받으신 위로를 갚으셨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후리지아님이 글을 내려서 제 답글도 고칩니다. 연관이 되는데...
......두고두고 위로 받으며, 조금씩이나마 갚으며 살아가길 원하지요. 그러나 나무의 수령에 비해 사람의 삶은 유한하군요. 수 백년을 살아 온 나무를 보면 그가 자연의 일부분으로 느껴집니다.
느티나무에서 많은 상념들을 퍼 올리시는군요. 나무들도 생물인지라 '당산나무'도 두레박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묵묵히 서 있는 느티나무도 두레박님의 따스한 시선에 위로를 받고 지루한 줄 모르고 서 있을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이 부럽습니다.
늘 따스한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얘기는 다른 분들이 다 하셨으니, 전 좀 트집을 잡아 볼까합니다.ㅎㅎ...세째 문단에서 느티나무 냐고 물었더니 당산나무라고 불렀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그 나무는 느티나무 인가요, 아닌가요? 아래에서 두번째 문단에 느티나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 잠시 혼동스러웠습니다.
대부분의 당산나무의 수종은 느티나무이지요. 수필에서의 문체는 치밀하고 촘촘해야 한다지만, 뜻이 통하는 범위내에서의 함축이나 생략은 수필문학의 '맛'을 더해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지적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좋은 지적으로 받아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이 좋은 말을 많이 써서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걸 배웠습니다. 다른 작가의 이름이 자주 나와 약간 거리감이 있습니다. 적어도 말미에서는 두레박님의 마음을 더 진솔하게 그렸으면. 주제 넘는 말인지 모릅니다.
주신 말씀 겸허하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