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리(屛山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순흥군 단산면의 남동(南洞),병산리(屛山里),대지리(大支里),오현리(梧峴里),회석리(檜石里)가 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1.병산(屛 山)
이 동리에서 대지리(大支里,행갈)로 가는 뒷골의 지형이 병주둥이와 병목처럼 생기고
병 밑 부분이 큰 마을을 이루고 있어서 흡사 병(甁)과 같다 하여 동명을 "병산(甁山)"으로 부르는 한편, 이곳에 600여년 전 황전이 정착한 이후 오랫동안 많이 살고 있던 황씨 성의 상징으로 "소산(素山)"이라 하기도 하였다.
그후 행정구역 개편 시 동리 뒤편에는 좌우로 군자봉(君子峯)과 옥녀봉(玉女峯)이 솟아 있으며,앞산이 병풍을 두른 듯 이늑하게 마을을 감싸 주고 있어서 "병산(屛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점마
서창 남쪽 오지촌에 있엇던 마을이다.서창 남쪽에 옹기굴과 약간의 민가가 있어서 각종 옹기를 만들어 판매 하였으므로 점마,또는 옹기점 터라고 불렀다.이 곳은 약 70년 전에
옹기굴과 민가가 없어졌으며 그 터는 농토로 변했다.
3.행갈,대지리(大支里)
병산 서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이 곳은 약 300여 년 전 나태좌(羅泰佐)옹이 개척한 이후 그 후손들의 집단촌이었으나 광복 직후 사회 혼란기인 1949년10월1일 사건 때 공산당의
잦은 출몰로 60여 가구가 전소되었으며 주민들은 병산리와 각처로 이주시킨 후에 마을은 없어졌다.
4.새터,신기(新基)
병산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지금으로부터 약 70년전 이희철(李熙轍) 부자가 이 곳에
집터를 정하여 살게 됨으로써 새로운 마을이란 뜻에서 "새터"또는 "신기(新基)"라고 하였다.현재는 행갈,대지리(大支里)에서 온 나주 나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5.서창(西倉)
병산 동남쪽 마을을 말한다.순흥부 시대에 이 곳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 위치가 순흥에서
동쪽이었으나 동원면에서 보면 서쪽에 있었으므로 "서창"이라 부르게 되었다.
농가에 비하여 농토가 많아 소득이 높은 편이며 마을 북동으로는 서창고개와 절골이 있고 교량이 없는 죽계천 등으로 인하여 피난처라고도 하고 있다.
6.방다리(方達)
회석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 날 이곳에 방(方)감사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그 분의 성을 따라서 "방달"또는 "방다리"라고 불렀다 한다.
그 후 마을이 이루어졌으며 회석과 같이 병산3리로 인삼,과수 재배를 주로 하고 있다.
(자료 출처:영주시사 榮州市史 제3권,지명 6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