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채용면접을 치르고, 정오경에 출발하여 다섯 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채용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합격한다면 당장 목요일부터 출근을 해야 했다. 떠나는 쪽도, 새로 만나는 쪽도, 모두 인수인계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고심 끝에 부산으로 오는 길에 지사의 동료교사들과 연락하여 당일 저녁 회의를 제안하였다. 다행히 다들 이견이 없이 잘 응해 주었다. 늘 나를 믿어 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선생님께서는 멀리 사시니, 짐 챙기실 시간도 빠듯하시겠네요. 오늘 회의해서 저녁 중이라도 기별을 드리도록 하지요" 선한 인상의 교감 선생님께서 저리 말씀하셨는데, 저녁 내내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떨어졌을수도 있겠다....그래도 여기서 일은 접는다. 나는 머물지 않는다' "샘,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안되면 어쩔려고 그래요?" 10년 째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교사가 걱정스레 만류를 하였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 미련이 독이 되고 내 불안이 무책임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승부수를 던지고 동료들에게 모두 인수인계를 하였다.
14일 화요일. 오전 10시에 공지한다던 채용결과는 10시 20분이 되어도 홈페이지에 뜨질 않았다. 마음은 비운 상태였지만, 이 결과에 따라 2학기 원불교학과 수강신청이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10시 반, "기간제교사전형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 개학 전날 15일 오후에 학교로 오셔서 기숙사 및 업무 인수 인계 받으시면 됩니다." 문자가 왔다. 시간이 금이었다. 한 치도 착오없이 움직여야 했다. 내일이 공휴일이니, 오늘 하루에 모든 예정된 일정을 처리해야 했다. 내일이면 떠난다는 사실이 눈 앞에 닥친 상황이었다.
속히 알리고 인사해야할 모든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했고, 오전 11시 반에는 현주언니를 만나, 약속했던 '3분 영어 스피킹' MP3 파일을 노트북에 심어주고는, 바쁜 내색을 숨기고 천천히 아침 겸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2주 전에 했던 약속이었다. 지사장과 만나 교재반품과 회원 인수인계를 보고하고, 마지막 결재도 확인하였고, 첫 수업 직전 짬을 내어 공무원 채용에 필요한 신체검사차 병원에 들렀고, 또 체육센터에 들러 남은 기간에 대한 환불신청을 하였다. 은행에 들러 공인인증서 갱신을 문의하였고, 마지막 수업 다섯 시간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였다. 다섯 명의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네 명의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 새 선생님을 소개시켰다. 닭튀김을 좋아하는 엄마가 아침에 "오늘 저녁에 닭 먹을까?"했던 말이 기억나 늦은 퇴근 길에 굳이 '후라이드 치킨'을 샀고, 오늘 만나지 못한 학부모들에게 전화로 작별을 전했다. 멀리 떠나는 딸에게 주는, 응원겸 지원인 닭임을 헤아렸으므로, 내키지 않았지만 군소리 없이 엄마와 함께 늦은 야식을 먹었다. 원불교학과 2학기 수강신청을 하였다. 조기졸업을 포기하고 한 학기 더 공부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하루 종일 자동인형처럼, 정신없이 움직인 날이다. 이럴 때 나는, 온 몸이 뇌거나, 아예 뇌가 없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살던 곳에서 가장 먼, 정반대의 땅끝으로 이사를 가는 셈인데,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하고 일단 잠자리에 든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였다. 나는 계속 걷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