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10년 7월 3-4일 (토요무박)
* 위 치 : 충청북도 연풍면 & 경상북도 문경시
* 동 행 : 백두대간 산우회
* 코 스 : (은티마을)-성터갈림길-성터-희양산,998m-시루봉 갈림길-이만봉,990m-
사다리재-평전치-백화산,1,063.9m-황학산,912.8m-조봉,675m-이화령,548m
00 : 10 서초구청 출발
02 : 54 은티마을 도착
03 : 32 성터갈림길
04 : 28 성터 도착
04 : 59 희양산
05 : 34 성터 출발 ( 마루금을 살짝 벗어나 있는 희양산 정상 밟고 return)
06 : 44 시루봉 갈림길
07 : 13 이만봉 정상
07 : 49 사다리재 ( 朝食후 출발)
09 : 10 평전치
09 : 51 백화산
10 : 30 황학산
11 : 13 조봉
11 : 57 梨花嶺
(은티마을)
(성터 갈림길) ( 0.8 km )
(성 터 ) ( 1.2 km )
희양산 0.7 km
배너미평전 2.28 km
이만봉 2.26 km
사다리재 1.1 km
평전치 2.46 km
백화산 1.45 km
황학산 1.85 km
조봉 3.9 km
이화령 1.53 km
마루금 : 17.53km/7시간 29분 + 연결구간 : 2.0km/1시간 25분=총 19.53 km/8시간 54분
***** 曦陽山 , 990 m
희양산은 문경새재에서 속리산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에 우뚝 솟아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중턱에서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정상쪽으로 두르고 솟아 있어 마치 산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돌산이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인지 화강암 바위들로 이뤄진 해발 990m의 암봉은 멀리서 보아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세다.
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봉암사를 창건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암봉들이 마치 열두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중심에 봉암사가 있는 셈이다.
봉암사 인근 계곡에는 예로부터 '鳳巖龍谷'이라 불려왔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다. 20여리에 이르는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분재같은 노송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 내린다.
지증대사는'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고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경탄했다.
봉암사에서 산길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나타나는 가슴이 확 트이는 널따란 암반이 백운대다.
암반위 집채만한 바위에는 마애보살좌상이 새겨져 있고 그 앞 너럭바위 위로는 차가운 계곡물이 세차게 흐른다. 금강산 만폭동에 견줄 만하다. 정상은 거대한 바위덩이들로 이뤄졌다.
남쪽 봉암사가 자리한 봉암용곡 너머로 대야산,속리산 줄기가 솟아 있고,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연결시키는 장성봉과 악희봉,민주지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동북쪽으로는 백화산,운달산,주흘산 줄기가 막힘없이 펼쳐져 있어 장쾌하다.
정상 못미쳐 해발 928m지점에는 희양산성이 있다.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치열했던 역사가 배여 있다. 희양산에 서린 역사와 정기는 봉암사가 대변한다.
문경쪽에 있는 봉암사는 희양산의 가장 넓고 깊은 터에 자리 잡았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창건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뤘다. 근대 들어서는 유명한 '봉암결사'가 이뤄진 한국 현대불교의 '탯자리'다. 해방 직후인 1947년 성철,청담,자운스님 등이 '부처의 법대로만 살아보자'며 용맹전진한 곳이다. 이 때부터 '할 일하지 않으면 하루동안 먹지도 않는다(一日不作 一日ㅂ不食)'는 것이 기본 수칙이 되었다.
1982년부터는 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봉암사는 물론 일대 사찰림의 일반인 출입을 금했다. 이년에 부처님오신날 하루남 산문을 여는 '비밀 수도원'이 됐다. 이날도 경내만 개방할 뿐 산길을 밟지는못한다.
2002년에는 봉암사일대 2293ha 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됐다. 봉암사는 보물 등 지정문화재만 10점에 이르는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지증대사의 일대기가 봉암사의 유래를 새긴 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 138호)는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거의 모든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다. 신라 경순왕이 잠시 피난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됐던 '극락전', 최치원이 지은 지증대사 비문,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등 천년ㅣ 넘게 희양산과 봉암사를 지켜온 보물이 즐비하다.
동방 제일의 수행도량에서 희양산의 기운을 느껴 보는 것도 일품일 듯하다.
***** 梨花嶺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며 嶺南과 嶺西를 잇는 교통 요충지이다.해발 548m로 조령산과 갈미봉이 맞닿는 안부에 위치한다.
이화령의 남동부에는 조령천의 지류가 흐를고, 북서부에는 쌍천의 지류가 곡류한다.
과거에는 이화령보다 북쪽에 있는 鳥嶺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나 이화령보다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이화령을 따라 국도가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鳥嶺은 괴산군 연풍면의 고사마을과 문경시 문경읍의 상초리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될 뿐 차량은 물론 인적이 매우 드물게 되었다.
이화령의 북동쪽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과 월악산국립공원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속리산국립공원이 있다.
***** 鳥嶺
해발 643m 로 이화령에서 북쪽 약 7km 지점인 조령산(1,017m ), 시선봉(967m), 마폐봉의 안부에 위치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하다 하여 새재or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 소백산을 넘어 서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로 조선시대의 주요교통로였다. 고개를 따라 조령천이 남류하며 동,서 사면은 절벽을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죽령과 계립령을 이용했으나 조선초 태종 때 새로 조령을 개척했다고 한다.
산꼴짜기의 기슭을 돌아 오르게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지로 임진왜란 이후인 1594(선조27년)에 조령 제2간문인 中城을 설치했다. 그 후 1798년(숙종34)에 중성을 중건하고 草谷城(제1관문)과 嶺城(제3관문)을 축조했다. 즉 문경읍에서 이화령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문경새재의 진입로가 있고 진입로를 따라 약 3.5km 거리에 제1관문인 主屹關이, 이곳에서 약 3km 떨어진 산속에 제2관문인 鳥谷關이, 다시 3.5km떨어진 곳인 조령에 제3관문인 鳥嶺關이 있으며 관문 좌우로 성곽이 둘러져 있다.
1925년에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서울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엿활은 상실했으나 1966년 3월22일에 제 1,2,3관문과 성벽이 사적 제 147호로 지정되었다.
1981년 6월 4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竹嶺
해발 689m이며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소백산권에 있는 고개이다. 도솔봉(1,314m), 蓮花峰(1,394m),國望峰(1,412m)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鳥嶺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 교통로였다.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 秋風嶺
해발 221m 로 소백산권에 있으며 주위에 卯含山,733m , 訥誼山,743m, 鶴舞山,678m 등이 솟아 있다. 예로부터 1)괴산군의 鳥嶺 2) 영동군의 秋風嶺 3)단양군의 竹嶺 등을 통하여 소백산을 넘었고 이 가운데 대표적 관문이 조령이었다.
그러나 1905년 추풍령에 경부선이 부설되면서 영남지방과 중주지방을 넘나드는 관문 역활을 하고 있다. 이 일대는 태백산권에서 분기한 소백산권이 조령까지는 높고 험한 장년기 줄기로 이어지고 조령에서 추풍령까지는 낮고 평탄해지다가 다시 높아지는 지형적 특색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뿐만 아니라 임진왜란때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금강의지류인 추풍령천이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계곡을 이루고 황간면으로 이어지며,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이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다.
경부고속도로와 대전-김천을 잇는 국도가 이 계곡을 통과하며 남쪽에는 추풍령역과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이곳에서 서울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서울-부산 간의 중간지점 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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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국이 장마권에 들어 주중부터 내리던 비가 토요일 오후에는 그친다는 일기예보가 있기는 하였으나 늘 챙기던 우중장비를 꼼꼼히 챙긴다.
지름티재까지의 연결구간의 출발지인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밤새 내린 비가 그치기는 하였으나 땅이 푹 젖어 있고 잔뜩 흐린 날씨에 습도가 높으니 육수께나 흘릴 모양이다.
예정되었던 맥길 코스 지름티재- 절벽암릉구간-희양산정상를 포기하고 성터 (희양산성터)로 우회하여 희양산 정상을 밟기로 산악회 집행부에서 결정을 내린다.
왜냐하면 1) 밤새 내린 장마비로 암벽이 상당히 미끄러울 것이고 2) 봉암사에서 파견된 스님들께서 '일반인 출입금지'에 충실하기 위해 직벽구간의 로프를 제거했고 3) 며칠전 직벽구간을 하산하다 사망사고가 있었고 4) 또한 우리는 새벽 밤길 산행으로 더욱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오늘 날머리인 이화령에 도착을 하면 속리산권을 마치고 드디어 소백산권(이화령-도래기재)을 향해 대간길을 이어갈 것이다.
이번 산행을 1) 성터- 백화산 과 2) 백화산-이화령 으로 2 소구간으로 나눈다.
1) 구간 : 표고차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흙길이 아니고 바위길이라 발에 무리가 많은 편이다.
이만봉 / 평전치/백화산 직전의 각각 1번의 된오름이 있을 뿐이다.
2) 구간 : 백화산 이후 부터는 육산으로 부드럽고 편안한 흙길에 서서히 내림길로 날머리로
이어지니 트레킹 코스 나 산림욕장에 온 느낌으로 푹신한 흙길에 몸이 가볍다.
이번 산행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희양산을 위시해서 주위의 절경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명산 희양산을 좋은 날씨에 다시 만나러 올 것이다.
백두대간맨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은티마을의 '주막집'
지름티재로 가기전에 희양산을 우회하기위해 성터갈림로에서 성터로 치고 오른다.
비는 오지 않았으나 정상의 짙은 안개로 주위 '절경'을 감상 못한 아쉬움을 ..... 희양산 정상은 대간 맥길을 살짝 벗어나 있슴.
시루봉은 맥길을 벗어나 있어 시루봉갈림길로 해서 이만봉으로 .......
좁은 정상에서 한컷을 하고..... 조식장소인 사다리재로 향한다.
朝食 장소
부드러운 肉山길이 이화령까지 이어집니다.
인공호수 대간길 표지 리본이 달려있는데.......
이화령직전에 있는 이화령초소 갈림길.
오늘의 날머리인 이화령
5번 정도 밟은 이화령에서.....
지름티재 가기전에.......
백두대간산우회의 참붕어 산행대장
백화산-이화령 간의 肉山길
기사 아저씨가 찾아 친절하게도 데려다준 율전마을계곡 알탕 장소
선두조 3명에 포함되어 1시간반 먼저
들머리 이화령을 출발하여 소백산권을 향해 힘차게 대간길을 이어 간다.
항상 새로움의 목마름에
새로운 모습을 담아 차곡 차곡 쌓아 갈 것이다.
鏡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