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13절~ 24절
13. 깨어 믿음이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맑은 날 방주를 짓는 노아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았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혔을 때까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빠져 심판의 날을 준비하지 못했고 말씀에 불순종하던 모습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24: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심판의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를 일상에 빠져 살아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마 오늘 이번달, 2024년 속 어느 날 갑자기 예상하지 못하는 그때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2천 년 넘게 기다려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일에 힘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 밤에 찾아온다면 부끄럽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첫째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배를 다 참석해도 날마다 기도하고 찬양해도 말씀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삶인 것입니다. 왜 나는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인가 자문합니다. 말씀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내 자아와 하나님 말씀 간에 흔들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지금 이곳에도 방주를 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을 것입니다.
믿음은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를 의지하면 이루시고 공의로 빛같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지키기 힘들지라도 그 앞에 서기를 기도하며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두번째로 강건하라 합니다. 신앙의 힘은 육체의 힘과 같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힘 있는 사역을 한다 해도 한 순간 무너지는 육체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격하여 감사하고 살아도 한순간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이기에 말씀에 굳게 서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영적 싸움의 결과는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기셨기에 예수님과 곧 행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너의 모든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 내가 말하는 것 행하는 얼굴에 사랑으로 보이는지 살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사역에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 사역에 나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은혜 위에 서는 비결은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13절이 말씀처럼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타내어 지는 것입니다. 지친 바울에게 아골라와 브르시길라를 만나 사명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때 스데바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분쟁 중에도 스데바냐는 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힘이 없던 스데바냐와 같이 묵묵히 교회와 성도들을 살피는 모습이었습니다. 성도의 권위는 섬김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모신 교회는 질서 있게 행해야 합니다. 직분에서 권위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교회를 살려내려는 스데바냐, 브드나도 아가이고를 만나 기뻐하였습니다. 중재자는 내 삶의 문제에 다 드리는 사람이다. 평화 목적을 가진 자들입니다. 신실한 그들로 교회 성도가 해결할 수 있기에 중재자들의 권면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내어드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문안함은 각자 있지만 교회는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입맞춤은 다툼과 분쟁에서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그 말을 거역하면 영원한 저주에 받게 됩니다. 혹시 모를 불순종과 불신앙에 대한 경계에 말씀입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서로를 세워주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