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43 코스
이원근
◉ 2026.5.31.
◉ 다랭이마을-향촌마을-선구몽돌해변-사촌해수욕장-평산항-44.평산보건소-오리 남해찜나라
이번 남파랑길 43코스는 가천다랭이마을에서 평산항까지 이어지는 13.5km의 여정이다. 남해바래길 다랭이지겟길과도 겹치는 구간인데, 걷다 보니 아쉬움이 남아 2.5km를 더 걸어 오리회관까지 발길을 이어갔다.
초여름 햇살이 제법 뜨거웠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아직 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천다랭이마을을 출발해 빛담촌을 지나 바닷길로 접어들자, 짙푸른 남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조상들의 땀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풍경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척박한 비탈에 돌을 쌓고 흙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숨결이 지금도 그곳에 살아 있는 듯했다.
향촌전망대와 선구몽돌해변을 지나며 걷는 길은 해변길과 마을길, 숲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길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 주는 풍광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곳곳의 전망 포인트에 설 때마다 남해의 푸른 바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이 구간 최고의 볼거리는 단연 가천다랭이마을이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급경사 비탈을 따라 층층이 이어진 다랭이논은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낸 하나의 기념비와도 같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가난과 굶주림의 시대를 지나며 먹고 살기 위해 저 가파른 산비탈에 돌을 쌓고 논을 만들었던 사람들. 지금의 시선으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고단한 노동이었겠지만, 그 절박함과 끈기가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랭이논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다. 저 계단식 논 하나하나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간절함이 스며 있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희망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견뎌 낸 우리네 조상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걷는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를 한 바퀴 돌아보며 만나는 풍경마다 결국은 그분들의 삶과 노력이 스며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랭이마을을 뒤로하고 선구항 방면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고급 빌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온화한 기후와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조망을 생각하면 왜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세월은 흘렀지만, 좋은 터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눈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선구몽돌해변은 이번 여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정식 탐방로를 잠시 벗어나 일부러 몽돌 위를 걸었다. 발밑에서 달가닥달가닥 부딪히는 몽돌 소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정겹다. 바람이 지나가며 나뭇잎을 흔들고, 파도가 밀려와 몽돌을 굴리는 소리는 마치 하늘과 바다가 함께 연주하는 자연의 교향곡 같았다. 귀 기울일수록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고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선구몽돌해변을 지나 사촌마을로 향하는 길에서는 앞으로 펼쳐진 풍광도 아름답지만, 뒤돌아본 풍경은 더욱 눈부시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여행의 기쁨은 배가된다. 늘 그렇듯 "앞으로 펼쳐질 길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사촌마을 해변의 모래는 놀랄 만큼 곱고 부드럽다.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사장은 평화롭고 포근하다. 조금 더 걸으면 다시 작은 몽돌해변이 나타난다. 자그락자그락 몽돌이 구르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고,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간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광 속을 천천히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은 참으로 행복하다. 초여름의 짙어진 녹음과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의 푸른 물결,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은 여행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코스 종점인 평산항에 닿았다.
하지만 돌아갈 차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몇 킬로미터를 더 걸어 오리회관에서 이번 여정을 마무리했다.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어 한반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길 위에 서니,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이 땅 곳곳에 스며 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강산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대한민국이 고맙고, 무엇보다 가난과 역경을 이겨 내며 오늘의 나라를 일구어 준 조상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이 길은 단순히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이 아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길이자, 우리 조상들의 땀과 의지를 되새기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굳센 삶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그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남해의 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여행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ㅡ 권수문
무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해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특히 다랭이논은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의 땀방울이
빚어낸 하나의 작품입니다.
답사를 마치고 귀가시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곳에 따라서는 시간과 차편이
잘 안 맞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이제 본격적인 폭서기가 도래하면
여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기에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답사가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ㅡ 김진태
남파랑길을 걷는 대장님 부러워요.
ㅡ 권기호
남파랑길43코스 주파를 축하드리며
좋은 코스풍경과 이야기 소개에 감사!
ㅡ 이호선
공곡님 남해 구경 잘 하고 해설 감동적이었습니다 계속 보여줘 요!
ㅡ 최숙희
역시나 대단하신 체력이십니다. 예전에 다랭이 마을에서 응봉산과 설흘산만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땡볕이지만 늘 건강한 걸음걸음 되세요.
ㅡ 박낙원
이번 코둘러는 오붓한 흔적임을 사진이 대변하는구려.
지도를 보니 남면 전체 경계 중 65~70%정도 코둘러 발자국을 심었을것 같아요.
다랭이 논 뱀이 글 읽어니까 두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내고향 이태곡 넘어서면 두마지기 논이 네도가리 중 젤위에 도가리가 길이는 7~80m에 제일 좁은 폭에는 쓰레가 바로 통과가 않되고 잠시 들고 통과. 지금은 그 자리가 "안녕하다" 커피숍이 되어 주차장이 바다가 몽돌같아요.
95년 3월어너날 마누라와 도솔봉(소백산 옆) 등산갔다. 내려오다 길이 없어 차세워둔 곳으로(Off road) 오다 마누라 보고 "여기 있어" "길잧아볼게"....
제법 넓은 잡목 터가, '밭 아니면 논이다' 논두(밭)렁을 잧아 진입로흔적을 추적 "길찾아서요!!" "이리와요".....룰루랄라 밤늦은 시간 울산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