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 미나리, 부추, 무, 사과…와 간고등어를 사니, 시장 본 비닐봉지가 양손에 그득하다. 마치 60년대 초, 한약방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약봉지 를 연상케 한다. 팔이 아픈 걸 참으며 집에 왔다. 습관처럼 시장 봐온 걸 보며 가계부에 적는데, 계산이 맞지 않는다. 다시 점검해보니 간고등어가 없다. 이를 어쩐 담! 어물전에 두고 왔나보다. 그냥 지나쳐버리자니 마음 한 구석이 꺼림칙하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버스로 두 코스 정도다. 마라톤선수처럼 뛰어갔다. 어물전에 다다르자마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헉헉거리며 생선가게주인에게 “혹시나 여기 간고등어 …”라고 말을 채 다 꺼내기도 전에, 가게아줌마가 얼른 알아차리고“ 이 봉지 말입니껴.” 하며 한 쪽 구석의 새까만 봉지를 건네준다. 세상에 이토록 반가울 수가!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섰다. 이담부터는 시장에 카트기(손수레)를 갖고 가서 잘 챙겨와야겠다.
날이 갈수록 건망증이 심하다. 가스 불 위에 찌개냄비를 얹어 놓고 잠시 방에 들어가서는 깜박 잊고 태우는 게 예사이고 늘 사용하는 물건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쩔쩔매며 찾는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돋보기가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책상, 문갑서랍 등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찾아보아도 없다. 발도 없는 안경이 저 혼자 어디로 갔단 말인가. 딸한테 안경을 찾아봐 달라고 도움을 청하니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엄마는 안경을 끼고서 왜 찾느냐고. 그제야 눈가에 손이 간다.
문득 오래 전 6․7대 국회의장을 지냈던 한솔 이효상씨가 생각난다. 60년대 초, 그분 시집의 시 중에 안경을 끼고 안경을 찾는 구절이 있었다. 그 시절 여중생이었던 나는 웃기는 일이라며 피식 웃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 분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요사이는 안경이 없으면 눈가부터 손이 간다. 딸의 말처럼 늘 두는 자리에 둔다면 이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매사에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임한다면 건망증이 사라질 텐데….
오늘 저녁 노릇하게 구운 간고등어는 여느 날보다 더 맛있겠다.
어머니와 고등어
박하 대구출생
《오늘의 크리스천문학 1998년 등단》 《수필과 비평 1999년 등단》 《현대수필 2000 등단》로 등단. 의성문인협회․대구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수필학회 회원. 《지구문학 2008년 소설 등단》 농민문학 작가상우수상. 목사장로신문 독서칼럼 연재. 수필집 『파랑새가 있는 동촌 금호강』『인생』 『멘토의 기쁨』 『초록웃음』 『퓨전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