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우가 특이한 점은 그가 전혀 다른 성향의 문학양식과 장르들을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감미롭기 그지없는 〈애너벨 리〉를 지은 시인이 공포소설의 대가이자 탐정소설의 창안자라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포우 문학이 이처럼 판이한 성격의 장르와 양식에 걸쳐 있다는 것은 그의 내면이 자신의 걸작단편 〈윌리엄 윌슨〉에 등장하는 윌리엄 윌슨과 그의 분신 사이처럼 분열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실생활에서도 포우의 상반된 두 측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신사답고 지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일면과 조그만 자극에도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광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포우의 이런 이중성은 작품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으로, 의식적인 자아와 무의식적인 자아의 대립 등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작품에 기이하고 이색적인, 그리하여 매우 현대적인 면모를 부여한다. 특히 무의식의 어두운 심연을 보여준 점에서는 호손과 멜빌과 같은 작가들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인 보들레르가 포우 문학을 숭배한 것도 우연은 아닌데, 그에게는 포우의 분열된 내면, 상징적인 언어, 적나라한 현대성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 불우한 성장기
포우는 1809년 보스턴에서 연극배우인 부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포우의 아버지는 이듬해인 1810년 돌연 종적을 감추었고 그 이듬해에는 포우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마저 과로와 폐병으로 죽는 바람에, 어린 포우는 고아가 되어 리치먼드의 상인인 존 앨런의 양자가 되었다. 존 앨런은 나름대로는 포우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려 했으나 매우 실용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포우의 뛰어난 시적 상상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성격 차이로 말미암아 포우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양부와 심한 갈등을 겪었다.
리치먼드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포우는 1815년 양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거기서 5년간의 중등교육을 받았다. 리치먼드로 돌아온 포우는 사립학교에서 계속 고전교육을 받다가 1826년에는 버지니아 대학에 진학하지만 노름빚을 놓고 양부와 다툼으로써 1년 만에 대학시절을 마감한다. 그후 포우는 가출하여 보스턴으로 갔다가 생계에 쫓겨 군에 입대했지만, 18살의 나이에 《태머레인과 그밖의 시편들》이라는 최초의 시집을 간행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양부와 잠시 화해함으로써 해군에서 제대하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사관학교 생활 역시 포우의 문학적 열정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으니, 포우는 8개월 만에 사관학교를 퇴교하여 전업작가의 길을 모색한다.
◇ 활발한 창작과 비평·편집활동
사관학교 시절을 전후하여 포우는 여러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포우의 문학적 이력에서 이색적인 대목은 1833년 어느 잡지의 현상공모에 미스테리 단편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가 당선되어 50달러의 현상금을 탄 사건이다. 이는 편집자와 독자들의 요구를 간파할 줄 아는 포우의 예리한 대중문화적 감각을 보여준다.
1834년 양부가 죽자 포우는 문학활동으로 생계를 해결하기로 결심하고,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의 편집을 맡아 단시일에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1837년 포우는 뉴욕으로 진출하여 장편 《아서 고돈 핌의 이야기》를 출간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다시 필라델피아로 옮긴 포우는 《버튼즈 젠틀먼즈 매거진》과 그 후신인 《그래이엄즈 매거진》의 편집을 맡으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여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이야기들》라는 두 권짜리 단편집을 출간하는데, 여기에 〈어셔 가의 몰락〉, 〈라이지아〉, 〈윌리엄 윌슨〉과 같은 주옥같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포우는 1844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걸작 시 〈갈가마귀 Raven〉와 또 하나의 단편집을 출간함으로써 미국 전역에 문명을 떨치지만 생계는 여전히 불안하였고, 《브로드웨이 저널》의 편집일을 맡고 운영하기도 했지만, 재정난으로 잡지를 중단하고 만다. 포우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 과중한 편집일과 창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건강이 점차 악화되다가 마침내 볼티모어의 한 길거리에서 객사하는 비운을 맞는다.
포우는 짧고 불행한 생애 동안 빼어난 시와 단편을 남기고 잡지 편집인으로서의 수완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호손의 재능을 일찌감치 평가했는가 하면 단편소설론과 시창작론에 관한 뛰어난 비평을 남기기도 했다.
◇ 포우의 여인들
양부의 집에서 나온 후 포우는 고모 마리아 클렘과 고모의 딸(포우한테는 고종사촌)인 버지니아와 함께 살았고, 1836년에 불과 13살의 버지니아와 결혼했다. 포우는 버지니아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았으나 그녀는 24살에 결핵으로 죽는다. 이로 인한 깊은 상처와 상실감은 포우의 문학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니,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의 때 이른 죽음은 시와 여러 단편에 중심적인 모티프가 되었다. 사실, 포우는 사춘기에 이미 친구의 어머니 제인을 사모한 적이 있는데, 그녀 역시 31살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포우에게는 이 경험이 정신적 외상과도 같았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제인에게 포우는 자신의 걸작 시 〈헬렌에게〉를 바쳤는데,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그에게 제인이나 버지니아는 모성적 인물로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그후에도 포우는 여러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으나 제인이나 버지니아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포우의 복잡하고 불행한 여자관계는 결국은 친어머니 엘리자베스에 대한 결핍감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어셔가의 몰락
나는 어릴 적 친구인 로더릭 어셔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저택으로 간다. 그리고 호숫가에 세워진 고풍스런 어셔가에서 친구 로더릭이 쌍둥이 누이인 매들라인의 죽을 병 때문에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정신쇠약증세도 보인다.
어느날 로더릭으로부터 매들라인이 죽었으니 매장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로더릭과 나는 매들라인의 시신을 지하실의 관 속에 둔다. 그런데 며칠 후 폭풍우 치는 밤. 관을 빠져나온 매들라인이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검은 고양이
나는 내가 아끼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를 실수로 눈을 도려내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그후 우연히 플루토와 흡사하게 생긴 고양이를 발견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집에 데려다 키우지만 회한과 수치로 말미암아 그 고양이가 점점 증오스러워진다. 나는 어느날 만취한 상태에서 지하실에까지 따라온 그 검은 고양이를 도끼로 내려치다 그만 실수로 아내를 살해하고 말았다. 나는 궁리 끝에 아내의 시신을 벽 속에 매장하고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하는데......
▽도둑맞은 편지
나는 친구인 뒤팽 탐정의 서재에서 함께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파리의 G경찰경감이 찾아와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고 충고를 구한다. 최고위 권력자의 아내인 어느 지체 높은 부인이 사적인 편지를 도난 당했는데, 그것을 훔친 사람이 D장관임을 알지만 그의 집을 샅샅이 수색해도 도무지 그 편지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경감이 다음번 뒤팽의 거처를 방문했을 때 뒤팽은 문제의 그 편지를 건네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편지를 손에 넣었는지 이야기해준다. 과연 D장관은 편지를 어디에, 어떻게 감춰두었던 걸까......
◇ 글쓴이 한기욱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허먼 멜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제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안과밖》 편집위원, 영미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추상적 인간과 자연: 미국 고전문학의 근대성〉, 〈모더니티와 미국 르네상스기의 작가들〉, 〈지구화 시대의 세계문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마틴 에덴》, 《우리 집에 불났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