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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조성민]
뇌병변장애인 등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재난 대응 매뉴얼은 그 대상과 긴급 상황의 유형 등에 따라 기존 방식과는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긴급 구조인력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매뉴얼이 없다는 점에서 관련 논의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 매뉴얼이 작동되려면 국가의 종합적인 재난정책과 콘트롤타워 기구가 중요하다는 것이 단골 메뉴처럼 뒤따랐다.
당장 매뉴얼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장애 유형별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개발됐다. 하지만 정작 장애당사자가 안전한지 혹은 안전 가능성이 높은가이다.
■ 매뉴얼 종류·교육 등 늘지만, 정작 의사소통장애인이 안전한 매뉴얼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이 ‘장애 유형별 맞춤형 재난 대응 안내서’ 또는 ‘재난 안전가이드’ 등을 개발해 배포했다. 문제는 당사자나 주변 관계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피 중심인 데다, 실제 당사자 자력으로 대피할 수 있느냐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매뉴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 3년간 코로나19 등을 통해 재난은 장애인에게 더 불평등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만 해도 화재와 폭우 등으로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어 근본적인 마련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이하 ‘경뇌협’)은 지난 4일 오후 2시, 화성시나래울종합복지관에서 ‘재난 대비 긴급 구조인력의 의사소통장애인 지원 매뉴얼 마련’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긴급구조인력의 의사소통장애인지원 매뉴얼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4일 오후 2시 화성시나래울종합복지관에서 열렸다. ⓒ경기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경뇌협에 따르면 관련 매뉴얼 개발은 전국 최초라는 것. 뇌병변·청각·발달장애인 등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가진 장애인들은 기존의 재난 대응 매뉴얼에서 대응책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응급·재난 시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 그동안 죽어간 장애인들이 너무도 많다는 지적이다.
가깝게는 지난해 8월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꼭 10년 전 화재로 숨진 뇌병변장애인 김주영 씨도 마찬가지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119에 신고했지만, 비극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김주영 씨는 팔과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해 입에 펜을 물고 신고했지만,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토론에 앞서 경뇌협이 장애인 지원인력과 구조인력들과 나눈 간담회(언제) 결과에서 이들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당사자 중심에 지원인력이 없거나 구조인력과의 의사소통 등이 중요한 변수를 차지했다. 사전에 구조인력이 장애인의 주소지 등 기본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구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 사전정보 구축과 시스템 연계… 전 개발 과정에 당사자 참여 관건
실제 토론자로 나선 경기도 화성소방서 119 구급대 김현아 소방장은 “재난이나 긴급 상황 시 초기 현장 도착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제는 인근 오차를 포함해 대략적인 주소지가 파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현 사무국장 ⓒ경뇌협
이에 경뇌협 김태현 사무국장은 “긴급 상황에서 구조인력과 소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나리오나 매뉴얼을 개발하되, 내용은 ▲위기 상황 이전 ▲위기 상황 ▲위기 이후 조치 등 3단계로 나누어 종합적인 접근”을 제안했다.
김 국장은 “구체적으로 위기 상황 이전 단계에서는 ‘장애당사자의 정보’가 필수”라고 전제한 뒤, “그 내용은 거주지, 의사소통 여부, 가족 및 지원인력 연락처, 병력, 보행이나 보조기기 이용 여부 등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고가 접수되면 구조기관 상황실에서 당사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실제 재난 발생 때는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응급실 등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는 문제다. 정작 의사소통이 더 필요한 단계는 의료 조치 등 사후 단계인데, 이때도 구축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며, “이러한 것을 포함한 매뉴얼을 개발하되, 당사자의 참여, 시스템 구축 여부, 개인정보활용 동의 등도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통과지원연구소 김성남 소장도 “의사소통장애인을 위한 매뉴얼보다는 국가재난관리청과 지자체, 지역응급구조기관(구조인력), 의료서비스제공기관(의료인력) 및 가족이나 지원인 입장과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각각 구축돼야 한다”며 “특히,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긴급 상황 발생 이전과 구조 후 의료서비스 과정에서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당사들이 직접 나서는 이유엔 국가의 역할 ‘불신’
한편 경기도농아인협회 전계림 팀장은 “매뉴얼 개발도 중요하지만, 재난안전기본법, 소방기본법 등 재난 관련 법률에도 장애인을 재난 취약계층으로 구분만 할 뿐 여전히 실질적인 제도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며 “장애인 구조 전담 콘트롤타워 구축 등 종합적인 대책이 우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한국 정부는 지난달 28일 ‘현장에서 작동하는 국가 재난안전관리 체계’ 확립을 위한 5대 추진전략 및 인파사고 재발방지대책 등을 발표했지만, 정작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안전대책은 ‘119안심콜 도입’이 전부여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근에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역시 ▲장애인 재난안전 특화 전문인력 양성, ▲장애인 안전체험관 운영, ▲재난 시 대피 및 지원체계 지자체 독려 등이 전부일 뿐 콘트롤타워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이 연방정부에 ‘장애인 재난 콘트롤타워(연방재난관리청, FEMA)’를 마련하고, 지방정부와 협업을 통해 재난 전 과정에서 안전관리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재난 총괄부처는 행안부이지만, 장애인은 복지부에 떠넘기는 형국이다. 게다가 안전교육 및 매뉴얼 개발 등도 지자체와 소방재난본부 차원에서 제각각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적이다.
경뇌협 역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이번 매뉴얼을 직접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국가 나서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