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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2: 근대와 탈근대 사이
진태원 한정헌 엮음, 도서출판 길, 2015, P. 410.
* 프랑스 과학사가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와 벨기에 출신 미국 과학사가 사턴(George Alfred Leon Sarton, 1884-1956) 사이에 비교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미국 과학철학사가 쿤(Thomas S. Kuhn 1922-1996)을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과학사가와 과학철학사가는 무엇이 다른가? 과학의 대상을 실재성으로 다루느냐는 것과 과학의 대상과 체계에 대해 반성적으로 다루어 방법론으로 보느냐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자는 실험과 관찰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학문의 틀을 다시 짠다면, 후자는 결과를 논리적으로 검토하여 전개 과정의 방법에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일 것이다. 전자에서 사물에 대한 관심이 후자에서 인지적 능력의 체계화에 관심일 것이다. / 좀 더 심하게 분류하면, 자연과학 탐구와 사회과학 방법론은 별개의 것이다. 전자는 자연이라는 실재성(과거 실체)을 다루면서 그 자체의 변화와 인식의 발전이 있다. 즉 외부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내재로. 이에 비해 사회과학은 대상의 실재성은 연관에서 생성하는 것으로 연관방식에 따라 다른 코드(프레임)가 만들어진다 특히 한 코드가 다른 코드프레임이 포섭한다는 것은 제국주의이며, 포섭당하는 것과 포섭하는 것의 연관을 말하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포퍼를 이어받은 쿤은 탈코드를 재코드화하는 방식에서 단절과 진보를 보았을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실재성을 다루는 과학은 각각이 새로운 분화를 하는 것으로 영역의 차이와 코드의 세분화는 통일성을 벗어나 새로운 반복(생성)의 길을 간다.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종합이라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48TLD)
*논리는 하나가 아니다. 언어, 수학, 물체, 생명체, 심리(영혼), 사회, 화폐(자본), 노동, 방향(의미)의 논리학들이 차히를 드러낸다. 수학의 논리와 언어의 진리치의 논리가 통일성을 이룰 것이라는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논리(학)은 불합리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다는 상층 형이상학은 ‘구조없는 구조’라는 20세기 중후반에서 힘을 잃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아직 남아있는가? 개별의 특이성들 간의 연대(이접) 또는 통합(연접) 등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48TLE)
바슐라르와 쿤의 불연속은, 얼핏보아 같아 보이지만, 전자는 시대적 불연속이고 다른 하나는 영역간 불연속인 것으로 보이며, 단절 또는 장애라는 측면도 전자는 한 학문의 시대적 위상과 범주에서 차이를 지니는 것으로 장애 이며, 후자는 한 학문 경계설정에서 그 학문이 시대에 따른 범위의 차이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48ULB)
제10장 과학은 발전 하는가: 가스통 바슐라르를 중심으로
김병욱, 성균대 불문과, 사부아 대학 현대시로 박사학위. pp 305-334.
[들어가는 글]
“과학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은 인식론적 물음이다. (305)
위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하나는, 이러한 위기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과학적 발전 논리’, ‘과학의 방법론의 단일성’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19세기 이래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개된 실증주의 전통이나 독일/오스트리아에서 전개된 빈(Wien) 학파의 인식론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과학적 합리성의 규범들을 전복하는 이 위기들은 곧 “하나의 영원한 이성은 없음”을 함축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 바슐라르 입장이다. (306) [꽁트의 실증주의를 영미의 (논리)실증주의에 틀에서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꽁트의 실증주의는 무엇인가? (48TLD)]
◆ 철학은 과학적 사유를 판단할 수 있는가: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을 비판 한다 (306)
[새로운 과학정신(1934)과 부정의 철학(1940)을 통해 상층 학문의 부적합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심층 학문의 생성을 주목하게 한다. 19세기 후반의 특징이며 이 때문에 학문 “실증”(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저술[새로운 과학정신과 부정의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은 전통철학의 부적합성에 대한 비판이다. .. 부적합하다고 보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이다.
첫째, 전통철학은 ‘하나의 불변하는 이성’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으나 오늘날 과학들은 그런 이성의 존재를 반박한다는 것. (307) [하나의 동일성 원리의 부정과 인식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의 부정은 19세기 안으로 철학 때문이며, 20세기 후반의 ‘구조없는 구조’는 이런 전제의 불합리 인식 능력의 불합리의 인정의 시대였다. 과학사(인식론)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둘째, 오늘날의 과학들이 인식하는 ‘실재성(realité)과 철학자들이 구성하는 실재 관념이 다르다는 것. (307) [형상형이상학자들이 과학을 구성하거나 구축하고나 체계화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들은 실재성이 아니라 기표 또는 표상(또는 상징성의 기호)이다. 실재성은 물질성으로 어쩌면 기의 또는 내용(강도)들 일 것이다.]
바슐라르는 “영원한 과학적 이성은 없다”는 전제하에 데카르트의 “코기토”(나는 사유한다)를 비판한다. (307)
그러나 바슐라르는 이 코기토로는 현대 과학의 지적인 활력을 고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의 말을 몇 마디만 인용해보자. 부정의 철학에서 그는 “나는 생각 한다”에서 정신의 동일성은 너무나 분명해서, 이 분명한 의식의 과학은 곧 바로 어떤 과학의 의식, 어떤 지식의 철학을 설립하는 확신이 된다”고 지적한다. (308-309)
바슐라르는 과학이 철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첫 책 새로운 과학정신 첫머리에서 이미 이렇게 쓰고 있다. “과학 철학에는 절대적 실재론도 합리론도 업스며 과학적 사유를 판단하기 위해 어떤 일반적인 철학적 태도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책 부정의 철학 첫머리에서는 이렇게 강조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학 사상에 진정으로 부합하고자 하는 철학은 정신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인식들의 역작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신은 지식의 조건들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310)
이를 위해서는 철학자가 “과학자들의 학교에 가야” 한다는 얘기다. 철학자가 과학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 과학이 철학에게 명을 내려야 한다는 것, 이는 그가 좌우명인 양 끊임없이 반복하는 호소이다. (310-311)
◆과학은 어떻게 진보 하는가: 바슐라르 과학 인식론의 기본 테제들 312
“합리적 가치들이 자신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과학의 운명이다.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을 받아들이게 한다. 과학의 역사는 일종의 자율적 필연성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과학철학은 인식론적 가치들을 결정하고 서열을 두어 분류하는 일을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과학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 논의는 무용하다.” (312-313) [르꾸르(Dominique Lecourt, 1944-)의 바슐라르, 낮과 밤(Bachelard, le jour et la nuit, 1974)]
과학적 인식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라는 태제야 말로 바슐라르의 “혁명적 테제”라고 르쿠르는 말한다. (313) [19세기 초부터 산술학의 정수의 실재성 문제, 물리화학의 원자 속에 원자핵과 전자, 생명체의 변형생성 문제 등에 관한 논의는 제반 과학들이 내부(심층)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이 내부에는 실체가 있을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상층(에이도스, 형상)을 심층(질료) 속에 투영하여 넣었던 것이 허구임을 깨닫게 되는 시기이다. 이로서 합리라는 것이 상층의 관념을 경험에 적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체란, 이제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경험과 실증을 통해, 질료 자체가 자기에 의해 자기형상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생성물이라는 점이다. 바슐라르는 이런 전통에서 [자연] 과학들의 형성과 성립이 발전과 진보를 걸을 수 밖에 없다고 보았을 것이다. (48ULA)]
바슐라르 인식론의 둘째 테제는, 과학들은 진리들을 생산하며 이 진리들은 절대적[실재적 구체적]으로 진리들이라는 것이다. (314)
그리고 셋째 테제는 특정 과학적 진리는 그것이 인식의 최종점, 완벽점이라는 의미에서만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 (314)
“결국 뉴턴의 천문학은 아인슈타인의 ‘범(汎) 천문학’의 한 특수한 경우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로바체브스키의 범기하학의 한 특수 경우 이듯이 말이다.” 좀 더 뒤에 가서 이렇게 말한다.“현대 물리학과 뉴턴 과학의 인식론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면, 옛 학설들이 새로운 학설들로 발전(developpement)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설들이 옛 학설 포월(enveloppement)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테제들은 보완하는 마지막 테제는 위의 과정, 즉 부단히 새로운 진리들로 불어나는 끝없는 ‘포월’의 과정이 ‘변증법적“이라는 것이다. (315)
그가 말하는 위의 변증법적 과정은 전통 인식론들이 전제하는 ‘주체’가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주체없이 이루어지는 이 과정 절대적 시작도 없고, 정해진 끝도 없은 병증법적과정, 이 지속적인 혁신을 ‘인식의 정신분석’이라고 생각했다. (317) [이런 시각은 프랑스 60년대의 구조없는 구조와 나란히 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얻은 것이 아마도 불의 정신분석학(La psychanalyse du feu, 1938) 불을 다루면서 인 것으로 보인다. 고대 헤라클레스 불이래로 불은 심층철학의 소재(물질)이었다. 이 소재로서 바슐라르가 내재성의 의식(무의식, 아페이론)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48ULA)]
◆ 과학적 인식은 어떤 조건하에서 생산 되는가: 정신은 ‘학교’같은 것, 과학적 인식은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통해 생산된다. 318
[응용 합리론(Le Rationalisme appliquée 1949)에서 다루는 것이다]
과학은 회귀 운동으로 진보한다. 기존의 원칙들을 파괴하면서 새롭게 도약하는 것이다. (318) [미래에만 방점을 찍고 무얼 새로 만들려하면, 상층에 말려든다. 심층으로 회귀를 가로질러 더 큰 원(순환)을 그리면서 진보하는 것인데, 이미 만들어진 것을 분해하여 새롭게 만들면서 현재 균열을 뚫고 도약하는 것이다. (48ULA)] [미래에만 방점을 찍고 무얼 새로 만들려하면 상층에 말려든다. 심층으로 회귀하며 가로질러 나선으로 상승하며 진보하는데, 심층에서 분화된 것들로서 새로 생성하는 힘이 현재의 균열을 뚫고 도약하는 것, 3R이다. (48ULB) ]
바슐라르가 “과학은 주체를 나눈다”고 말하는 이유다. 사유한다는 것은 사유 대상을 “나뉜 주체”(응용 합리론(1949), PP. 69-71) 앞에 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인식론에서 과학자의 정신은 문제의 제기화 해결이 내 속에 있는 ‘나’와 ‘너’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학교’ 같은 것이 되며, 거기에서 나는 “선생과 학생으로 분열”(같은 책, P. 26)한다. 그에게 이 ‘학교’는 정신구조의 사유 가능성의 조건(과학적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다. (320) 응용 합리론(Le Rationalisme appliquée 1949) [심층에서 표면으로 세분화는 이중화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거울처럼 이중화에서 나와 너가, 즉 영혼과 신체로 나아간다. 이 둘은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이 둘은 상하관계도 지배관계도 아니며, 대등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 부족함(manque)가 있어서, 떨어질 수 없이 기대고 있는데, 분열이면서도 합일이다. 이 왕복운동이 변증법이다. 빨강이가 없는 파랑이 사회는 변증법이란 말조차 없다. 파랑이들이 나누는 경계 안과 경계 밖 이라는 분리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경계가 실재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다. 현재 박근혜류가 말하는 종북의 경계가 어디일까? 그 모호함을 먹고 사는 것이 이명박근혜 정부의 언어의 모호성이다. 경계를 자의적으로 첫째 그은 것이 통합진보당이었고, 그다음 장난이 문재인과 친노일 것이다. 노동당과 정의당은 경계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그냥 두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가 힘없을 때까지 비판하지 않는 금도를 지키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이다. (48ULA)
그의 과학 인식론에서, 문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인식의 토대, 출발점으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틀(problématique)에 앞서 존재하며, 문제의 해결을 통해 ‘나’(과학적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323)
◆과학 진보의 장애는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 되는가: ‘장애’와 인식의 정신분석 323
[과학적 정신의 형성(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 1938), 부정의 철학(La Philosophie du non : Essai d'une philosophie du nouvel esprit scientifique. 1940)
바슐라르는 ‘과학정신의 형성’이 어려운 것은 사유가 사유에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추억들의 ‘저항’이 신경증의 원인임을 깨닫고서, 최면요법을 버리고 저항들에 대한 조사작업을 통해 무의식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 바슐라르에게서 저항은 ‘장애’가 되고 사유의 노력은 ‘인식론적 단절’이 된다. (323) [벩송에서도 이 저항의 주제는 매우 중요한데,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브루주아의 저항을 먼저 알아야 한다. 파라노이아들의 저항이다. 이 저항을 뜷고 나오는 것이 인민의 저항이다, 브르주아들을 균열을 내는 것이 먼저이고 인민이 분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벩송의 “저항의 저항”이란 내용이다. 인민은 항상 이중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분열증자가 맞다. 권력자는 기본적으로 파라노이아에 빠져야만 가능하다. 성직자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인민이 고위성직자와 왕과 주변을 왜 기요틴으로 보냈는지를 잘 보면, 그 시대 파라노이아들을 그들이 바라라는 저세상(천국, 아버지의 나라)으로 보낸 것이다. 인민은 안다. 천국이 없다는 것을] [바슐라르도 벩송처럼 “저항에 대한 저항” 파라노이아에 대한 저항은 스키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과학이라는 실증적 자료로서 학문을 하면, 파라노이아의 저항(고집)을 무너뜨리는데는 교육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가진 자들이기에 더 문제가 많다. 자본의 파라노이아는 혁명없이 불가능하다는 귀결에 이른다. 이점에서 자본주의 소멸은 역사발전의 귀결이 아니라 인간 심성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 [추억의 저항은 파블로프 반사의 실험과 같이, 신체는 오랜 습관을 재현하듯이, 사유도 어린 시절에 자기 방어적으로 배운 사유를 재현 한다. 이 재현이 심하면 박근혜처럼 6살의 아버지를 커서도 상징으로 삼는다. 이 상징성이 지배하는 여인은 파라노이아이다. 가끔 그녀가 기분 좋은 때는 사대부 아씨 같다가 맘에 안 들면 거센 폭압의 아버지를 대행하는 것은 사유의 습관이다. 그런 사유에 대해 저항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태양이 뜨고 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유를 했지만, 지구와 태양계가 우주의 한 귀퉁이라는 사유를 통한 파라노이아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현재 국사를 검정교과서로 하겠다는 것은 멜랑꼴리다. 아씨가 이야기하면 꼬마들이 들어주어야 하는데, 인민은 6살 꼬마도 아니고 60살된 덜떨어진 노처녀도 아니며, 교육받은 인민은 은하계가 우주 전체의 무지하게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파라노이아에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다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죽는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무덤 그것은 사기이며 박정희 무덤처럼 크게 하는 것은 아편 중독자들이 하는 짓과 같다. 맑스가 종교는 아편이라고 괜히 말했겠는가... 무덤에 대고 절절히 빌어가며 절하는 자들, 조갑제를 비롯하여 김기춘, 황교안, 안대희, 고영주, 홍준표(이들 모두 공간통 검사라는 공통점이있다) .. 등등도 마찬가지다. (48ULC)] [역사 교과서 국정화 8인: 박근혜, 김무성, 황유여, 김정배, 이인호, 유영익, 권희영, 이명희도 마찬가지다.(48ULB)]
인식과 관심[실재성]을 분리하길 거부하는 만큼, 바슐라르는 과학정신의 형성에서 열거하는 다양한 장애들(언어, 공통경험, 일반적 인식, 실체론의 장애[상층주의자], 물활론적 장애[통속적 유물론], 리비도[개인적이고 이기적 욕망] 등)은 모두 무의식으로 회송된다. (324)
그가 불의 정신분석에서 열거하는 각종 콤플렉스들은 장애가 무의식에, 어떤 집단적이고 문화적인 무의식에 뿌리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325) [설명을 잘 할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가 생기는 것은 무의식이 미는 생성의 힘에 의해서 이며, 장애는 카톨릭 파라노이아의 견고한 껍질이며, 무의식이 솟아나는데 방해물이다. 일반이 지닌 표면적 무의식(습관화)도 장애이다. 이 장애에는 설마 그들(상층)이 그럴까?라는 믿음이 있다. 그 설마가 허위와 부당전제의 오류이다. 설마라는 믿음은 마약과 같다. (48ULC)]
과학적 인식이 정신분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곧 과학이 상식에 반함을 의미한다. ‘공통의 앎’이나 속견은 대개 무의식[습관]에 연결되어 있다. (325)
각주 27: 바슐라르는 과학정신의 형성에서 화학이나 전기학이 어떤 산고 끝에 과학으로 탄생했는지를 서술 하면서 세가지 단절 유형을 검토한다. 첫째는 어떤 학문 분과가 과학으로 이행하는 단절(연금술 -> 물리학)이고, 둘째는 어떤 기존 과학 내에서 설명 이론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절(뉴턴 물리학 -> 아인슈타인 물리학)이며, 셋째는 어떤 이론 내에서의 개념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절(아인슈타인의 질량 개념 -> 폴 디락의 질량개념)이다 (326)
[도표] [가우스의 종 모양을 그리고 있다. ① ② ③ ④ ⑤ 중에서 ③이 가장 높고, ①과 ⑤는 낮지만 가치[치수]상으로 ①은 낮은 지식에서 ⑤는 높은 지식에서 이해될 수 있다.] / ① 천진한 합리론[아리스토텔레스], ② 명료하고 실증주의적 경험론[갈릴레이], ③ 합리주의적 역학의 고전적 합리론[뉴턴] ④ 완전한 합리론(상대성)[아인슈타인] ⑤ 논증적 합리론(디락): 바슐라르가 도표화한 질량 개념에 대한 ‘인식론적 프로필’ 이 프로필은 그의 인식작업 속에 여러 철학들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가로좌표에 열거된 다섯가지 철학은 질량 개념의 사용 방향을(즉 어던 의미로 사용하는지) 나타내고, 세로좌표는 질량개념의 실재빈도, 즉 실사용에서의 중요도를 나타낸다. (327) [가우스 종모양을 나타내는 이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①이 상층이고 ② 와 ④는 표면의 이원성이고 이원성의 중립을 취하려는 노력이 ③인데, 이런 중립은 있을 수 없는 관념이라는 점에서 뉴턴의 학설을 칸트가 원용한 것이다. ⑤가 심층인데, 심층의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타인에게 설명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의 사유과정을 따라서 깊이로 내려올 때 가능한 것이다. 어린애 같은 노파에게 깊이를 따라가보자고 하면 노파는 여기 있는 게 낫다고 어리광을 부릴 것이다. 그게 상층주의자들이 마약에 빠진 것과 같다는 이유이다. 디락이 맑스처럼 이미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 흥미롭다(48ULC)]
“합리주의적 질량 개념은 고전적인 수학 교육과 오랜 세월에 걸친 물리학교육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사실 질량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이 고전적 합리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에게 분명한 개념으로서의 질량 개념은 특히 이 합리주의적 개념이다. / 하지만 우리는 필요한 경우, 이 개념을 상대성 역학에서의 의미나 디락의 역학에서의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방향, 특히 디락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대단히 어렵다. 조심하지 않으면 합리주의적 경향에 지배 당한다. 우리의 단순한 합리주의는 우리의 완전한 합리주의(상대성 이론), 특히 우리의 변증법적 합리주의(디락)를 방해한다. 뉴턴이나 칸트의 합리론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철학도 상황에 따라서는 문명 진보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증거다.”< 부정의 철학(1940), pp. 42-45.>
'장애'(l'obstacle)이란 말의 어원이 암시하는 바와 달리, 장애는 ‘사유가 가서 부딪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장애는 사유자체 안에 있다. 절대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나타나지 않는 사유의 그늘 부분이 바로 장애다. 이는 곧 모든 인식은 도구이자 장애임을 의미한다. (329)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 모두가 정신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를 분석하면서, 그는 수사학 선생이 언어에 대한 “좀스러운” 억압으로 학생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봉쇄하는 지를 비판하고, 수학 선생의 “엄격함”이 학생들을 어떻게 완전히 가두게 되는지를 비판한다. 학교는 가정이 아니고, 선생은 아버지의 대리인이 아니라는 것. (330) [배움의 광장은 다양체 ... 들뢰즈처럼]
◆바슐라르 이후: 인식론의 새 장이 열리다. 330
지금까지 우리는 현대 과학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바슐라의 시각을 살펴보았다. 그의 인식론은 위기의 사상, 불연속의 사유다. (330)
그 정신은 그의 직계 제자인 조르쥬 캉길렘(Georges Canguilhem, 1904-1995)을 - 특히 그의 1955년의 저술 17-18세기의 반사개념의 형성(La Formation du concept de réflexe aux XVIIe et XVIIIe siècles, 1955) - 거쳐 고전시대의 광기의 역사(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과 임상의 탄생(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1963)을 쓴 푸꼬(Michel Foucault, 1926-1984)로 이어졌다. .. 에피스테메, 즉 ‘어떤 하나의 체계적이고 특수한 구성(configuration)’ .. 에피스테메 개념에서 어찌 우리가 바슐라르의 ‘장애’를 떠올리지 않겠는가(331)
또한 루이 알뛰세(Louis Althusser, 1918-1990)는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개념을 맑스주의 철학 연구에 도입(“자본”을 읽다(Lire le Capital 1965))하여 엄청난 여파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피에를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에게서도 바슐라르의 ‘단절’은 사회학의 방법이 되었으며, ... (331-332)
과학사의 ‘불연속’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1962년 저술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을 통해이지만, 이 개념이 만들어진 바슐라르의 책 새로운 과학적 정신(Le nouvel esprit scientifique, 1934)이 쿤보다 한 세대나 앞선다는 사실... (332)
쿤은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 바슐라르 식으로 말하면, “단절”해야할 동일한 “인식론적 장애”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 (332-333)
과학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많이 다르다. 과학적 인식의 변증법적(불연속) 운동을 점점 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보는 바슐라르와 달리, 쿤은 진보라는 관념자체를 의문시한다. 쿤의 과학철학에서는 이어지는 두 패러다임은 공통 측도가 없기에 상호 측정(또는 평가)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보다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사를 “불연속”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둘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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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맑스를 위하여(Pour Marx, 1965), “자본”을 읽다(Lire le Capital 1965)(en collaboration avec Étienne Balibar, Roger Establet, Pierre Macherey et Jacques Rancière, Maspero, coll. « Théorie », 2 volumes, 1965), 레닌과 철학(Lénine et la philosophie, 1969)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합리적 과학정신의 정립과 정신분석학에 대립하는 정신종합학의 이중 방식을 인식론적으로 전개한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과학의 발달이 시대의 장애물을 넘어서 앞 시대와 불연속이 있다고 보았다. 새로운 과학적 정신(Le nouvel esprit scientifique, 1934), 과학적 정신의 형성(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 1938), 불의 정신분석학(La psychanalyse du feu, 1938), 1938년 두 작품을 대조하면 새로운 정신 정신의 형성(영혼의 불의 활동을 보면서) 중에, 불과 영혼의 생성이 심층에서 두 갈래로 보였을 것이다. 부정의 철학(La Philosophie du non : Essai d'une philosophie du nouvel esprit scientifique. 1940) , 불 물, 공기, 흙을 쓰고 난 뒤 응용 합리론(Le Rationalisme appliquée 1949)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그가 놓지 않은 것은 영혼과 불로서 촛불이 아닐까) 초의 불꽃(La flamme d'une chandelle 1961), 죽고 난 뒤에도 불에 관한 마지막 노트가 있고, 사후 그의 딸이 정리하여 불의 시학 단편들(Fragments d'une poétique du feu, 1988)(posthume, édité par Suzanne Bachelard, PUF)로 내놓았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ENS 출신, 과학인식론에 관심. 1968년 유럽사회학연구센터 창설, 1975년 사회과학연구지 창간, 1981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2000년 신자유주의에 맞설 사회운동의 세계적 연대(solidarité) 제안,
브룅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수학철학의 제 단계(1912)
조르쥬 캉길렘(Georges Canguilhem, 1904-1995) 프랑스 의사, 철학자, Essai sur quelques problèmes concernant le normal et le pathologique (1943) La connaissance de la vie (1952) , 17-18세기의 반사개념의 형성(La Formation du concept de réflexe aux XVIIe et XVIIIe siècles, 1955)
폴 디랙(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1984) 영국 이론물리학자. 양자 역학을 탄생시킨 사람 중의 하나이다. 1933년 에르빈 슈뢰딩거와 함께 "원자 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종교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로 "신"을 믿어서가 아닐세. 이건 그저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이 하위 계층들이 조용하게 있게 하고 싶어서 그런거라네. 불만에 가득찬 사람보다야 조용한 사람들이 훨씬 다스리기 쉽지. 그리고 훨씬 쉽게 이용해먹을 수 있고. 종교는 그저 국가를 소원에 가득 찬 꿈에 젖게 만들어서,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의를 잊게 만드는 아편일세. 이 때문에 나라[국가]와 교회[종교]가 굳은 동맹을 맺게 된 걸세. 양쪽 다 신의 은총 - 세상이 아니라 "천국"의 것 말 일세 - 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온다는 환상을 원하고, 사람들이 자기 일을 조용히, 불평 없이 하는걸 원한단 말일세. 방금 말한 이유는 '어째서 "신"이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모든 죄 중에 중죄로 여겨지는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일세. [디렉의 말을 하이젠베르크가 전함] (하이젠베르크, Physics and Beyond: Encounters and Conversations, 1971에서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유태계 독일 태생의 미국 이론물리학자. 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현대 물리학에 혁명적인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21년 광전효과에 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푸꼬(Paul-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고전시대의 광기의 역사(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 임상의 탄생(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1963).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1966),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
쿤(Thomas S. Kuhn 1922-1996) 미국의 과학철학자. 20세기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및 철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읽혔고 가장 영향력을 끼친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의 저자이다.
르꾸르(Dominique Lecourt, 1944-) 프랑스 철학자. 인식론 전공. L’Épistémologie historique de Gaston Bachelard, 1969), 바슐라르, 낮과 밤(Bachelard, le jour et la nuit, 1974)(Grasset, Paris, 1974). Prométhée, Faust, Frankenstein: Fondements imaginaires de l’éthique, 1996, La Philosophie des sciences, 2001(QSJ), Georges Canguilhem 2008)(QSJ), , ,
메이에르손(Emile Meyerson 1859-1933) 폴란드 출신 프랑스 철학자. 사유의 행보에 대하여(Du cheminement de la pensée, 1931)(Alcan, Paris, 1931, 3 Volumes)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수학자이다. 1687년 발간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Principia")는 고전역학과 만유인력의 기본 바탕을 제시하며,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의 하나로 꼽힌다.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 오스트리아 태생 영국의 철학자.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 1934; fr. Logique de la découverte scientifique)에서, 가설의 제기와 그 반증을 통하여 시행착오적으로 성장한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인식론을 제창하였다. 개방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 La Société ouverte et ses ennemis) 추측과 반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1963; Conjectures et réfutations ) 객관적 지식(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 1972: La connaissance object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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