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 거지 움막의 왕초(김윤성)는 정진영(서현석)이 자신의 어머니(배미자)에게 동냥을 시킬 수 없다고 대들자 심하게 매질을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며 울분을 참고 있던 김두한(곽정욱)이가 왕초에게 결투를 신청하자 왕초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결국 치열한 접전에서 진 왕초는 움막을 떠나는 신세가 되고, 김두한은 광교 움악의 새로운 대장이 된다. 정진영은 김두한에게 거지대장이 아니라 더 큰 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된다고 충고한다. 또 정진영은 자신은 공부를 많이해서 왜놈을 부리는 사람이 될거라고 자신만만해 한다. 거지떼 속에서 김두한을 찾은 원노인(이순재)은 기쁨도 잠시, 만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온 할머니(정영숙)와 큰어머니(이덕희)에게 김두한을 데려다 준다. 원노인이 할머니와 오씨에게 김두한을 손수 돌보겠다고 제안하자 이들은 흔쾌히 승낙한다. 한편 김좌진의 가족이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와(이재용) 경부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 1 움막 안
(지난 회에 이어)
그러자 진영모가 더듬거리며 일어난다.
진영모 할게요. 내가 할게, 진영아. 진영이 그만 때려요. 나도 동냥을 나갈게.
정진영 안돼요. 그렇게는 못해요. 못해!
왕초 그래? 너 오늘 잘 걸렸다. 심심한데 잘 됐어. (마구 패며) 못 한다구? 죽어봐라. 너 오늘 죽어 봐.
진영모 제발.... 제발 때리지 말아요. 제발....
두한 (벌떡 일어나며) 그만 때려요!
거지들이 모두 놀라서 보고 있다. 왕초도 너무 기가 막혀서 잠시 멍하니 두한을 본다.
두한 그만 때리라구요. 이건 너무한 거예요. 아픈 사람을 그렇게 하는 법은 없어요.
왕초 뭐라구? ....(기가 막혀) 너...돌았냐? 돌았어? 너 오늘 죽어보고 싶다 이거지 그런 거야?
두한 그렇지 않아요. 결투를 신청하는 거예요.
일동 모두 경악해서 두한을 본다. 양코는 후들후들 떤다.
양코 두한아.....너....너..... 잘못했다구 그래.
왕초 하하하. 정말 재미있게 됐는데. 좋았어. 그 결투를 받아주지. (공격하며) 이 새끼!
그 주먹에 휘청거리는 두한, 그러나 쓰러지지 않는다. 계속 해 왕초의 주먹이 날아든다. 몇 대를 맞았을까? 두한은 드디어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에 잠시 휘청거리는 왕초. 아이들이 '우----' 경탄한다.
왕초 어쭈, 이 새끼 봐라.
싸움은 계속된다. 그런데 연이어 두한의 주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초는 비로소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다. 긴장하며 난타전이 벌어진다. 양코도, 정진영도, 갈치 등도 완전히 긴장과 침묵이 이어진다. 치열한 접전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믿기지가 않는다. 왕초가 점차 몰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 주먹은 매우 매서웠던 것이다.
왕초 (몰리고 헉헉거리며 놀라서) 이 새끼가....?
자꾸 밀리며 헛손질을 하던 왕초가 드디어 두한의 주먹에 나뒹군다. 당황하던 왕초는 다시 일어서며 몽둥이를 주워 든다. 그러자 진영이 달려들며 왕초를 껴안는다. 그리고 몽둥이를 뺏는다. 다시 쓰러지는 왕초.
왕초가 살벌한 눈을 뜨며 일어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일방적으로 맞기 시작한다 두한의 천성적인 싸움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헛손질을 계속하던 왕초는 끝내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한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와' 하는 함성이 이어진다.
양코 이겼어. 두한아 니가 이겼어. 왕초를 이겼다구. 야, 왕초를 이겼어. 넌 이제 우리의 왕초야. 니가 형님이야.
정진영 잘했다, 두한아.
왕초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이미 완전히 풀이 죽었다. 아무 말 없이 비척거리며 움막을 빠져나간다. 다시 '와' 하는 함성이 인다. 디졸브.
# 2 움막 밖
왕초가 눈보라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멀리 사라진다.
# 3 동 움막 안
왕초 자리에 두한이 앉아있다. 갈치를 비롯해 모두들 그 앞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양코는 계속해 신이 난 표정이다.
두한 나는 왕초라는 소리는 싫어. 기왕이면 대장이라는 소리가 좋아.
양코 좋았어. 대장이라고 할께. 대장!
두한 지금부터 약한 자는 도와주고 아픈 사람은 약을 사다 줘야 해.
정진영 ......(뿌듯한 존경심 같은)
두한 큰 잘못이 없는 한 시비를 걸거나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해. 그것 뿐이야. 갈치!
갈치 (눈치를 보며) 응.
두한 너는 그 동안 왕초와 함께 많은 아이를 괴롭혔어. 이제 그러면 용서 못해.
갈치 알았어.
양코 좋았어. 그 동안 감춰놓은 돈 오 원이 있어. 내가 빵을 사 올께. 오늘은 동냥해 오는 게 아니라구. 너희들도 가진 것 다 내놔. 오늘 새 대장이 나왔어. 우리끼리 잔치해야 되는 거 아니야?
정진영 그래. 우리 오늘 한번 놀자, 대장.
두한 그래.. 그렇게 하자.
갈치 내가 품바 춤을 출게.
양코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모두 밖으로 나가는 게 어때..? 나가서 빵도 사먹고 고구마도 사먹고 팥죽도 사먹고... 그리고 극장도 가자고... 어때, 대장..?
모두들 야, 신난다.... 그렇게 하자. 대장, 그렇게 하자...
두한 그래. 그렇게 하자.
아이들은 신이 났다. 그 표정에서....
# 3-1 동 움막 밖 (해질 녘 혹은 밤)
아이들이 신명 나게 품바 춤을 추며 어우러져 돌아간다. 깡통을 두들기고 신명들이다. 그렇게 몇 바퀴 돌다가 양코에 의해서 인솔되듯이 가는 아이들. 그 즐거운 표정들에서...
# 4 종로 거리
원노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람 소리가 귀를 에인다. 아무리 살펴도 두한이 있을 리 없다.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는 원노인, 그렇게 가면.....
# 5 인촌의 집 외경
인촌 (E)홍명희 선생에게 얘기를 들었네.
# 6 동 집 응접실
인촌 김성수와 최동열이 마주 앉아 있다.
인촌 우리는 백야 장군의 가족을 도울 의무가 있네. 그 분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사는 게 아니겠나.
최동열 감사합니다, 인촌 선생님.
인촌 감사라니.... 당치 않네.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백야 장군이 아니겠나. 조그만 정성을 보태는 것은 당연하네.
최동열 ...........
인촌 우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자네의 신문사는 비록 경쟁하는 처지지만 민족의 일에 한해서는 늘 뜻을 함께 해왔어.
최동열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인촌 백야 장군의 자제도 있다고 들었는데.....
최동열 예. 두한이라고 하는 아이입니다. 일전에 선생님께선 그 아이의 생모가 고문으로 죽을 때 성금까지 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인촌 그랬던가? 하여간 내 밑에 일러 놓겠네. 작은 집이라도 하나 장만해 드려야 할 게 아닌가.... 그리고 그냥 머물 곳만 장만해 드려서야 되겠는가? 저들의 감시와 괴롭힘이 얼마나 크겠는가? 내......그 일도 한 번 생각해 보겠네.
최동열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습니까?
인촌 허허허. 최동열 기자라구 했지?
최동열 예, 선생님.
인촌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먼. 그래야지. 허허허.
(해설) 인촌 김성수. 암울한 일제통치기를 민족의 계몽 운동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교육과 언론, 그리고 민족 자본가로서 그 시대 지성의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이다.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이후, 동아일보사를 창립하였으며 중앙학원과 지금의 고려대학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고 경성방직과 호남에서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민족의 의지를 일깨우는데 헌신해 온 선각자이다. 지금 그가 백야 김좌진의 가족을 위해 도움을 줄 것을 다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촌 너무 염려 말고 그만 돌아가 보게나, 최기자. 문제는 그 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일 게야.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해. 내 아무래도 경무국장을 좀 만나보아야 겠구만.
최동열 고맙습니다, 인촌 선생님.
인촌 허허허. 자네가 고마울 게 뭔가? 그러고 보니 자넨 백야 장군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보이구 있구먼. 허허허.
# 7 사동옥 외경(밤)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 8 사동옥 안
상심에 젖어 앉아있던 원노인이 전화를 받는다.
원노인 아니, 최기자님........하루 종일 눈 속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역시 오늘은 안 보이는군요. (사이) 예? .....인촌 선생님을요? .......그래서요?....예?
눈을 크게 뜨는 원노인을 보고 있는 박군과 유태권.
최동열 (E)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집도 마련해 주실 것 같고 또 두 분들의 신변도 안전하게 살펴주실 것 같습니다.
원노인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요. 고맙습니다, 최기자님.
최동열 (E)내일쯤이면 틀림없이 두한이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인촌 선생님은 큰 어른이십니다. 기대해 보시지요. 그럼 내일 뵙기로 하지요. 저와 만나서 두한이를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만나실 수 있어요.
원노인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화를 놓으며 그 밝은 표정에 유태권과 박군도 즐거워한다.
유태권 일이 잘 되신 모양이군요.
박군 제가 뭐라구 그랬어요. 좀 기다리시면 된다구 그랬잖아요.
원노인 그래. 다 잘 되어 가는 것 같다. 최기자 그 사람,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 9 선학원
만해와 최동열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법당 쪽에서 염불 소리가 은은히 들려 오고 있다. 한 쪽에서 춘성이 차 시중을 들고 있다.
최동열 예비검속 동안 얼마나 불편하셨습니까?
만해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어.
최동열 ..............
만해 이 순간에도 수 천, 수만의 사람들이 고문 받고 학대받으면서 죽어가고 있어. 단지 내 나라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야. 그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느냐.
최동열 과연 스님이십니다. 스님께서 도와주셔서 백야 장군의 가족도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해 허허허... 그거야 벽초와 인촌의 도움이지 어디 내 덕이겠느냐.
최동열 그래도 스님께서 살펴주셔서 그리 된 게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만해 그래 살다 보면 더러 좋은 날도 있는 법이지.
최동열 그런 것 같습니다, 스님.
만해 참, 네 놈의 기사를 보았어. 그 나석주라는 사람 말이야. 참으로 의인이더군.
최동열 장렬하게 죽었습니다. 너무도 의연해서 종로서의 미와 경부도 질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만해 그러니까 그런 큰 일을 했지. 모두가 그 사람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
최동열 .............
만해 우리 불교도 마찬가지야. 종교란 그 시대의 살아있는 영혼이야. 그런데 그 영혼이 왜색 불교에 빛이 바래고 있어. 우리 불교는 호국 불교야. 임진왜란 때 왜놈을 무찌른 것은 관군이 아니라 우리 승병들이었어. 부처님이신들 어찌 나라 없는 백성들을 편케 해주실 수 있으시겠는가?
최동열 그러니까 스님 같은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만해 허허허... 네 놈이 아부도 할 줄 아는구나.
최동열 아부가 아닙니다. 스님,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석주 같은 사람의 용기와 스님 같은 분의 그 기개와, 그리고 벽초 홍명희 선생이나 인촌 김성수 같은 분들의 투철한 민족의식이 살아 있는 한 이 나라는 분명 희망이 있는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만해 허허허허... 그래 거기에다가 너 같은 젊은 지성들이 깨어 있는 한 앞날은 밝아. 하지만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거야.
최동열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만해 곧 좋은 소식이 하나 또 있을 지 모르겠다.
최동열 그렇습니까?
만해 민족의 지도자들이 모임을 갖자고 하는구나. 아주 큰 모임이 될 거야.
최동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만해 거국적인 모임이 될 거다.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모두 참여하는 유일 단체가 될 거야. 이 민족을 이끌 큰 모임이 될 거야.
최동열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스님.
만해 좋은 날에는 곡차 한 잔이 생각나는 법이지. 어떠냐?
최동열 좋습니다, 스님. 왜 그 말씀을 안 하시나 했습니다. 하하하하하...
두 사람은 신명 나게 웃지만 춘성은 인상이 구겨진다. 또 술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9-1 종로 거리
야시장이 그럴 듯하게 펼쳐져 있다. 그 한쪽에 인력거가 지나가고 있다. 거기 하야시가 타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가미소리와 시바루가 함께 가고 있다.
시바루 오야붕, 아직 조선의 야시장은 재래식 그대로입니다. 아주 원시적입니다.
하야시 ..........(끄덕인다)
가미소리 종로의 구마적패는 주로 여기 상인들한테서 그 수입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야시 ..........(여전히 끄덕인다)
가미소리 지난번에도 아이들을 보내서 조선 주먹들의 힘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하야시 조선 주먹들도 그 나름대로 오랜 역사가 있었다. 우리 야쿠자의 원조인 현양사처럼 말이다.
두 사람 하이, 오야붕.
하야시 오히려 대의를 앞세우는 면에서는 우리 일본보다는 그 수가 높았던 인종들이다. 도적 임꺽정이라던가 장길산이라던가 대단한 이름들이 꽤 있었지. 가자...
두 사람 하이, 오야붕.
그들 그렇게 가는데 한쪽에서 싸움판이 붙었다. 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쌍칼과 상하이가 일대 일로 싸우고 있다. 그들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고 치고 받고 떨어지고 막상막하의 묘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한쪽에서 김두한과 거지 아이들이 빵을 손에 들거나 먹으며 싸움 구경에 빠져 있다. 그리고 양복차림의 하야시들도 흥미롭게 본다. 시바루가 설명을 계속한다.
시바루 오야붕, 조선의 주먹들은 아직까지도 일절 무기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먹으로만 서로를 이겨야 한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일이지요.
하야시 허나 깨끗하지.
시바루 ............?
하야시 저자는 아주 몸이 빠르구먼. 아주 날렵해.
가미소리 그 상대는 제가 이름을 압니다. 상하이라는 잡니다. 북경에서 건너왔는데 총을 아주 잘 다루고 격투에 있어서는 발을 잘 쓴다고 합니다. 역시 구마적의 일급 부하지요.
하야시는 끄덕인다. 결투는 점점 격렬해진다. 치고 받고.. 그 접전 끝에 상하이는 결국 위기를 몇 번 맞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다. 김두한들은 점점 더 빠져든다. 그때 , 구마적의 모습이 구경꾼들 한편에서 보이고 있다. 양코가 설명을 한다.
양코 지난번에 한번 봤지..? 진짜 오야붕은 저 사람이라고.. 구마적 말이야. 마적... 이 종로의 주먹 왕이고 전 조선의 주먹 황제래. 꼬봉들끼리 싸우는 거라구.
두한 ...........(유심히 본다)
양코 야....대단하다.... 막 날른다, 날러......야...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그 얼마쯤 후에 갑자기 구마적이 앞으로 나서며 두어 번 손뼉을 친다. 모두 본다.
구마적 됐다. 이 싸움은 무승부다. 더 싸워도 결론이 안 난다.
하야시 .............?(흥미롭게 보고)
구마적 쌍칼이라고 했나?
쌍칼 그렇수다.
구마적 마음에 든다. 그러나 선배는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이쪽은 상하이다. 형님으로 모셔라.
쌍칼 ..............
구마적 조선의 주먹 계에서는 내 명령이 곧 법이다. 형님으로 모셔라, 알겠나..?
쌍칼 알았수다.
구마적 (가볍게 박수 두 번) 오늘 술은 내가 산다. 제비, 자리로 안내해라.
제비 예, 오야붕.
구마적이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며 간다. 상하이가 쌍칼의 손을 잡는다. 그러나 쌍칼은 별로 반갑지 않다. 그들 그렇게 사람들 속에 묻힌다. 하야시도 눈짓을 한다. 인력거는 다시 움직인다.
하야시 조선 주먹의 왕이로구먼. 저 구마적 말이다.
가미소리 예, 오야붕. 조선 주먹의 황제가 분명합니다. 언젠가는 우리와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하야시 가자.
가미소리 예, 오야붕.
그들 그렇게 간다. 그 한 켠에서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두한의 눈이 구마적 쪽을 보고 있다. 정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정진영 두한아, 대단하지..?
두한 응...
정진영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 넌 우리들의 대장이니까. 너도 할 수 있어.
두한 ..........?
그 표정에서..
# 10 거지촌 외경
# 11 정진영의 움막
양코는 그 동안 구걸해와 감춰두었던 동전들을 열심히 세고 있다. 계산이 틀리는 듯 손가락을 구부리며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진영모는 잠이 들어있고 정진영은 부서진 사과짝 앞에서 책을 보고 있다. 두한이 신기한 듯 그런 진영을 보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던 진영이 두한을 보고 웃는다.
정진영 너두 공부 해볼래?
두한 ........(미소만).....
정진영 나는 지금 생각해도 믿어지지가 않아. 어떻게 낮에 왕초하고 싸울 생각을 한 거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어?
두한 용기가 아니야, 싸움은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정진영 그럼 처음부터 자신감이 있었단 말이야?
두한 그렇지는 않아. 얼마 전에 네가 고구마 때문에 맞고 있을 때 왕초의 실력을 알아 봤어.
정진영 어떻게?
두한 네가 한참 맞을 때 내가 말리느라구 왕초의 허리를 잡았잖아? 그때 왕초의 힘을 알 수가 있었어. 생각보다 약하더라구.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된 거야.
정진영 그랬어? 하여튼 정말 잘 했어. 아이들이 모두 편안해하고 있어. 우리 어머니두... 너는 좋은 아이야.
두한 너두 그래.
양코 이 양코를 빼고 너희들끼리 노는 거야? 헤헤헤.. 대장. 뭐 먹고 싶어? 내가 모아놓은 거 십 원도 넘어.
두한 먹고 싶은 거 없어.
양코 그래도 사주고 싶은데.... 내 평생 소원이 왕초를 이기는 사람 만나는 거였어. 그런데 그게 대장인 줄 정말 몰랐어. 대장이 왕초에게 덤빌 때 그냥 숨이 콱 막히더라구. 헌데 대장이 이겼어. 이겼다구.
두한 그만해.
양코 헤헤헤.. 알았어.
두한 그런데 진영아, 공부가 재미있어?
정진영 응,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해.
양코 진영이는 공부 많이 해서 높은 사람이 될 거래.
정진영 두한아,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될 수가 있어.
양코 난 그런 골치 아픈 거는 안 하겠다. 거지는 모든 게 공짜라구..
정진영 두한아. 너 학교 다녀봤니?
두한 응, 교동보통학교... 이 학년까지 다녔는데....
정진영 그럼 언문은 알겠구나?
두한 ...간신히 더듬기는 하지만....잘 몰라.
정진영 배워야 해. 저는 대장이야, 거지대장이 아니라 더 큰 대장이 되어야 해.
양코 ..............?
정진영 너는 독립군 장군의 아들이야, 공부를 해서 너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구.
두한 ..............
정진영 나는 공부 많이 해서 높은 벼슬을 할거야. 우리 아버지는 왜놈 밀정을 하다가 죽었지만 나는 왜놈들을 부리는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들 거야.
두한 ....넌 지난번에도 그런 얘기를 했어. 그렇게 될 거야.
정진영 공부를 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어. 두한아, 너도 해야 해. 약속해. 나랑 같이 공부하겠다구. 약속해.
두한 생각해 볼께.
정진영 그렇게 해야 한다구. 꼭 해야 해.
두한 알았어. 내일은 구걸을 나가야 해. 이젠 자자 진영아.
양코 그래, 너무 졸리다.......씨이.... 자자....
정진영 난 이 책을 마저 읽어야 해. 먼저 들 자...
진영은 다시 호롱불 밑에서 책에 몰두한다. 두한은 그런 진영이 대견해 보인다. 피곤한 듯 자리에 누우며 누더기를 덮어쓴다. 밖엔 여전히 바람소리가 높다. 양코는 벌써 코를 골고 있다.
# 12 아침의 종로 거리(부감)
# 13 그 종로 거리 일각
언제나처럼 세 소년이 동냥 길에 나서고 있다. 두부 장수며 콩나물 장사들이 소리를 외치며 지나간다.
양코 신난다. 왕초가 가고 나니까 왜 이렇게 신이 나지. 정말 매일 맞는 게 지겨웠다구. 왕초는 어디로 갔을까?
정진영 왕초 얘기는 이제 그만해. 우리들 대장은 두한이야.
두한 ..........
양코 오늘은 이 쪽부터 문을 두드려보자. 예감이 아주 좋아. 밥을 많이 얻을 것 같애.
두한 그래 이따가 들 만나자.
세 소년은 각자 골목길로 흩어진다. 양코가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며 밥을 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진영도 그렇고 두한도 또 어느 집 문을 두드리고 있다.
두한 밥 좀 주세요. 아주머니, 밥 좀 주세요.
# 14 그 종로 거리 식당가
부산한 인파들 그 한 켠으로 원노인과 최동열이 서있다. 두 사람 모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두한을 지켜서 있는 것이다.
원노인 정말 올까요? 이리로 올까요, 최기자님?
최동열 틀림없습니다. 저는 설마 두한이가 거지가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 밖이었어요. 하지만 함께 다니는 그 아이들을 아주 오래 전부터 이 곳을 지나쳐 갔습니다. 오늘도 틀림없이 올 거예요.
원노인 제발 그래야 하는데....
최동열 이 쪽으로는 식당이 많아서 꼭 지나가는 곳이지요. (회중 시계를 보며) 제가 알기로는 오전에 한 번 또 저녁 무렵에 한 번 그렇게 들 지나갑니다. 기다리세요.
원노인 꼭 와야 할 텐데.... 벌써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렸는데....
최동열 백야 장군의 가족은 어찌 되었습니까?
원노인 곧 도착을 하실 겁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박군이란 아이가 마중을 나가 있습니다. 나는 두한이를 찾아야 하니까요.
최동열 아, 예......
원노인 인촌 선생님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입니다. 벌써 삼청동에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연락을 받고 가보았지요. 아담한 집입니다.
최동열 그랬군요.
# 15 경성역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기적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다. 박군이 김좌진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박군이 쏟아져 나오는 여객들을 훑어보고 있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박군의 눈이 크게 떠진다. 김좌진의 노모와 부인 오씨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박군이 달려간다. 그들 앞에 서자 흠칫하며 보는 고부간.
박군 안녕하세요. 저는 옛날 원영감님과 함께 만주에서 뵀던 박군입니다.
조모 (한참 보다가) 오 그렇구만. 난 또 왜놈 순사가 왔나 했지, 원서방은 어디 있나? 두한이는....?
박군 곧 보시게 될 겝니다. 저 쪽에 인력거를 불러 놓았어요. 함께 가시지요.
그들 그렇게 가면.....
# 16 종로 거리 식당가
그들은 여전히 그 곳에 서있다. 사람들은 계속해 수없이 지나쳐간다. 그들은 초조해 있다. 최동열은 거푸 회중시계를 본다. 고개를 갸웃한다.
원노인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최동열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갔는가....? 이럴 리가 없는데....
원노인 이거 정말 공연히 고생이 많습니다. 신문사 일도 못 보시고....
최동열 그 일은 걱정 마십시오. 저두 지금은 두한이 생각뿐입니다. 이상하네요. 평소 같으면 올 때가 넘었는데....
원노인 지금쯤 장군의 어머님께서 삼청동으로 가고 계실 것인데.... 허어, 이걸 어쩌나? 두한이가 오늘은 안 오는 모양인데.....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더 서성거린다. 원노인도 초조하고 최동열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을까? 원노인이 소리를 지른다.
원노인 두한이에요! 저 아이입니다. 보세요. 저기 오고 있어요. 두한이에요.
최동열 ........?(벅찬 기쁨 같은)
원노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세 거지 소년이 오고 있다. 두한이 제일 앞에 섰다. 영락없는 거지. 완연한 거지의 모습으로 두한도 원노인을 보았다.
원노인 (달려가며) 두한아! 두한아.
두한 .......!
# 17 종로 거리 빵집 앞
원노인이 두한을 부둥켜안고 있다. 양코와 정진영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두한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최동열이 거지 차림의 두한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마음이 아픈 것이다.
원노인 두한아, 나다 두한아,
두한 ............?
양코 대장 이 사람들 누구야?
두한 .........(보면서 눈물이 글썽)....
원노인 널, 널.. 얼마나 찾았는 줄 아느냐? 세상에 이게 무슨 꼴이냐? 네가 누군데... 네가 누군데...?
최동열 고생이 많았구나. 날 알아보겠니?
두한,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한 예, 옛날에 경찰서에서 봤어요. 기자 아저씨예요.
원노인 그래 기자 선생님이란다. 우리에겐 고마우신 분이야. 아아, 하늘이 도왔구나. 이렇게 너를 만나다니... 하늘이 도왔어.
정진영 이 분들 누구니?
두한 아는 사람들이야.
원노인 아는 사람들이라니.... 우리가 그저 아는 정도란 말이냐? 허허, 녀석 하구는... 나는 네 아버님의 대신이야. 나는 너의 할애비야.
양코 대장, 할아버지라고 하잖아.
최동열 하하하. 네가 얘들의 대장이냐?
양코 네, 우리들의 대장이에요. 왕초를 물리치고 대장이 됐어요.
최동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만두집이라도 들어가시죠. 아침들을 안 먹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아침들 안 먹었지?
양코 헤헤헤헤... 어제 저녁도 못 먹었어요.
원노인 그럴 테지, 오죽 했겠느냐? 가자. 어서 들 가자.
양코 야호, 신난다. 만두집이래 진영아, 만두 집.....
최동열이 웃는다. 두한의 모습은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전형적 거지의 모습이다. 이들 바로 앞에 있는 만두집으로 들어간다.
# 18 그 만두 집
양코가 만두를 입이 찢어져라 우겨 넣고 있다. 정진영도 마찬가지다. 만두가 쟁반에 수북히 쌓여있다. 진영은 이 뜻밖에 사태가 아직도 이상해 보이는 듯 주변을 본다. 두한은 만두를 집을 생각을 않은 채 최동열과 원노인을 번갈아 보고 있다.
양코 (거드름 피우며) 김치 좀 더 주세요. 김치 공짜죠.
주인 알았다.
양코 뜨거운 물도 더 주세요.
주인 알았어.
원노인 두한아, 왜 내게로 오지 않았니? 개성에서 올라와서 왜 나를 찾지 않았어? 이게 무슨 꼴이냐. 네가 이렇게 됐다는 것을 장군께서 아신다면 나를 얼마나 탓하시겠느냐.
정진영 .......(알 것 같다)
두한 .......(침묵하다가) 알 수가 없었어요. 찾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원노인 그랬을 게다. 우리는 연락할 아무 것도 없었거든. 그렇지만 글쎄 이 종로 통에서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 만나다니.....
정진영 ......(부럽다)
최동열 (양코에게)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양코 헤헤헤. 이런 만두는 처음 먹어 보거든요. 안 그래, 진영아? (큰소리로) 여기 양념 간장 더 주세요.
주인 알았어. 젠장, 어디서 거지들이 잔뜩 와 가지고서는.... (간장 주며) 넌 간장만 먹냐.
양코 아저씨, 나는 손님이라구요, 손님.
주인 알았어.
두한 할아버지 내 친구, 진영이하고 양코예요. 인사해, 진영아.
정진영 정진영입니다.
양코 전 양코예요.
최동열 양코라? 그건 별명이지 않냐? 진짜 이름이 뭐야? 너 심심치 않게 나 하구 만났었지?
양코 예. 선생님은 늘 동냥을 후하게 주셨어요. 내 진짜 이름은 몰라요. 그냥 양코예요.
모두들 웃는다. 가게 주인은 찌든 거지 아이들을 보며 연상 불쾌한 표정이다.
원노인 두한이는 조금 있다가 목욕탕 먼저 가야겠다. 목욕도 하고, 이발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지.
두한 .........
정진영 ..........
양코 그럼 대장은 우리하고 이제 살지 못하나요?
원노인 너희들도 앞으로 가끔씩 놀러 오너라. 공원 뒤쪽에 사동옥이란 설렁탕 집이다.
양코 이야.......설렁탕!
원노인 두한아, 지금 너희 큰어머님과 할머니께서 오셨단다.
두한 ...........?
원노인 어서 가서 뵈어야지.
두한 큰어머니가 오셨다구요? 할머니두요? ......그럼 아버지도 오셨나요?
원노인 아니다.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분이다. 두 분만 오셨어.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그 사이에 양코는 슬금슬금 만두를 자신의 동냥 그릇에 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정진영이 슬쩍 제지하고 있다. 최동열이 보자 헤헤 웃는 양코. 정진영은 민망해 한다.
최동열 괜찮아. 오늘 기분이 매우 좋구나. 한아름씩 싸줄테니 가져가거라. 주인장, 얘네들 하나씩 싸줘요.
주인 예, 알았어요.
양코 헤헤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진영 .........
원노인 친구들이라 하니 앞으로도 잘 들 지내거라. 거지가 본래 따로 있다더냐. 다 이 어려운 시국 탓이지. 자 두한아, 그만 일어나자. 서둘러야겠다.
양코 (갑자기 섭섭해서) 대장.....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는 거야, 정말?
정진영 ......두한아 정말 잘 됐어. 어서 가봐.
두한 응. 큰어머니와 할머님이 오셨대. 인사 드리고 나서 다시 올께.
정진영 넌 이제 거지촌으로 올 필요가 없어.
두한 진영아......?
정진영 가족을 만났으면 가족과 함께 살아야지.
두한 (한참 보다가) 넌 참 좋은 아이였어.
정진영 그래. 너도 아주 좋은 우리들의 대장이었어. 좋겠구나. 정말 잘됐어. 가족을 만나서 말이야.
두한 진영아.........
정진영 어서 가봐.
두한 멀리 가는 것은 아니야. 자주 올 거야.
정진영 그럴 필요 없어. 너는 이제 거지가 아니야. 너희 가족과 살아.
양코 어이 씨... 무슨 말이야..? 우리들의 대장이라구...
정진영 어서 가봐. 어서...
두한 진영아.. 자주 올께. 잊지 않을 거야. 자주 올 거야.
정진영 ..........(눈물이 그렁해지며 끄덕인다) 그래...
원노인 허허. 녀석들하고는......자, 일어들 나자.
이들 모두 일어선다. 양코는 남아있는 것들을 다시 동냥 그릇에 담기 바쁜데 주인이 음식을 싼 봉투들을 하나 씩 준다. 먹을 복이 터진 양코는 마냥 즐겁다. 정진영과 두한은 아직도 그 이별이 마냥 섭섭하다. 그 아쉬움에서... 서서히 그들이 움직여 밖으로 나가면... 디졸브.
# 19 삼청동 골목길
오씨 집이 아담하게 보인다.
조모 (E)이렇게 아담한 집을 장만해 주셨다니 정말 고맙구나.
# 20 동 집 안 마당
작은 마당과 방 쪽을 훑어보는 오씨와 두한의 조모.
오씨 우리가 살기에는 적당하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님?
조모 우리 두한이는 왜 아직도 안 오는가? 이 할머니 온 것을 알구나 있나?
박군 그러믄입쇼. 지금 올 겁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우선 급한 대로 몇 가지 세간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조모 고맙네. 원서방도 같이 오겠지?
박군 예, 할머니. 어서 들어가세요.
이들 방으로 들어간다. 조모는 왠지 엷은 한숨을 뱉는다.
# 21 이발소
두한의 더부룩한 머리가 깎여지고 있다. 이발사가 두한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참으며 바리깡을 놀리고 있다. 흐뭇하게 보고 있는 원노인.
원노인 이제 이렇게 머리를 깎고, 목욕하고..... 그리고 새 옷을 입자. 새 고무신도 봐놨다. 허허, 이렇게 훤출한 녀석이......거지였다니......
두한 .............
원노인 좋은 소식이 또 있다. 네가 아직 반가워 할 사람이 우리 가게에 있단다. 유태권이라고 하는 아저씬데......
두한 ............
원노인 너 나석주라고 하는 아저씨 알지?
두한 ........(놀라서 보면)
원노인 그 아저씨와 함께 있던 사람 기억하니? 너와 함께 개성에서 온 사람 말이다. 싸움을 아주 잘한다지?
두한 그 아저씨가요?
원노인 허허허. 그래. 곧 보게 될 게다.
두한 .........(설레임)
원노인 이 모든 게 그 최기자라는 분의 도움이 컸단다. 그 분도 너의 아버님을 무척이나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지.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기자 선생을 찾아보거라. 잘 해줄 거야.
디졸브.
# 22 신문사
기사 정리에 바쁜 최동열. 편집실은 언제나 부산하다.
국장 (다가오며) 일이 잘 됐다고?
최동열 예. 그 노인과 백야 장군의 아들이 만났습니다. 하하하. 참 뿌듯했어요. 애가 완전히 거지 중에 상거지였어요.
국장 아버지는 천하를 호령하는 독립군 사령관인데, 그 아들은 거지였다니.... 그게 바로 이 시대의 비극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게 아니겠나? 참, 백야 장군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 경성에 도착했나?
최동열 지금쯤 인촌 선생께서 마련해 주신 거처에 도착했을 겁니다.
국장 종로서에 미와 경부가 그들을 그냥 놔둘까? 두한이라는 아이의 생모도 결국은 그 미와의 고문에 죽어간 게 아닌가?
최동열 인촌 선생께서 그 점을 걱정하시더군요. 그 일도 잘 풀릴 것 같습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국장 그래.
# 23 종로 명월관 외경
# 24 명월관 홀
한없이 규모가 큰 종로의 명물 명월관이다. 많은 종업원들과 기생들이 오가고 있다. 객실만 해도 수를 세기가 어렵다. 주인 마담(큰 기생)이 종업원들을 부리고 있다.
마담 저 쪽 난실에 인촌 선생과 경무국장님이 와 계신다. 음식에 신경 들 좀 써. 그리고 그 오래된 국화주 좀 들여가고.
지배인이 대답하며 지나쳐 간다. 마담은 계속해 이것저것 살피고 있고 그들의 방 쪽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 25 그곳 방
경무국장과 인촌 김성수가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라기보다는 거의 주석에 가까운 상차림이다.
경무국장 이거 인촌 선생님께 식사를 다 대접받다니, 영광이올시다.
인촌 허허허. 어인 말씀을..? 그래도 명월관이라고 하면 장안에 제일 가는 요리 집입니다. 많이 드십시오.
경무국장 조선의 음식은 참으로 깔끔하고 푸짐합니다. 그래 요즘 동아일보는 잘 되어 갑니까?
인촌 경무국 도서과에서 검열이 심해 애로가 많습니다.
경무국장 좋은 기사만 쓴다면 검열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검열관의 보고를 들으니 조선의 신문들이 총독부에 상당히 비타협적이라고 합니다.
인촌 신문이란 다소 정책에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바른 말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곧 누적된 불만을 빨리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경무국장님?
경무국장 허허, 글쎄 올 시다. 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지.....
지배인이 조심스럽게 국화주를 놓고 간다. 그들 양옆에서 기생이 음식을 수발하며 술을 따른다.
인촌 그 말씀 잘 하셨습니다. 실은 오늘 그 때문에 좀 뵙자고 한 겁니다. 그 조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경무국장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인촌 백야 김좌진에 관한 이야기올시다.
경무국장 (금방 불쾌해지며) 백야라니요? 독립군 김좌진 말입니까?
인촌 그렇습니다. 백야의 어머님과 부인이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경무국장 ..........?
인촌 그 사람들을 그냥 놔두십사 하는 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무국장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사람들은 대일본 제국의 적입니다. 아주 큰 적이에요. 우리 일본군은 김좌진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적인 상처를 받았어요.
인촌 지난 번 백야의 두 번째 부인인 박계숙이라는 여인이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경무국장 어흠.. 음.....
인촌 대일본 제국의 총독부 경무국이 김좌진이는 잡지 못하고 죄 없는 그의 둘째 부인을 고문으로 죽게 했다는 것은
경무국장 글쎄 뭐.... 그게 꼭 고문으로 죽었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고....
인촌 그의 아들 김두한이라는 아이는 고아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만주에서 그의 어머님과 부인이 왔는데.... 그들마저 그렇게 된다면 조선 민중에게 엄청난 악영향이 미치게 될 것입니다.
경무국장 글쎄 올시다. 이거야...허.... 날보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요?
인촌 조화지요. 화합 말입니다. 김좌진이는 밉지만 일본제국은 죄 없는 그의 가족들은 벌하지 않는다. 이것은 총독부의 넓은 관용과 큰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경무국장 인촌 선생! (겁주듯) 담도 크시구려. 결과적으로 그러니까 경찰권을 갖고 있는 이 경무국장에게 독립군 가족을 살펴주라는 얘긴데....
인촌 허허허.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럴 때 한 번 경무국장님의 대인다운 풍모를 보여 주시지요. 민심 수습에도 상당한 효과를 보실 겁니다.
경무국장 (한참 생각하다가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 인촌 선생은 정말로 당하지 못하겠소. 민심 수습 차원이라니 할 말이 없구려. 헌데 일이 그렇게 된다면.....종로서의 미와 경부가 단단히 화를 내겠는걸. 안 그렇소. 인촌 선생?
인촌 ........아마 그렇겠지요.(미소)
조모 (E)네가 두한이냐?
# 26 삼청동 오씨의 집 방
두한과 원노인, 박군, 조모와 오씨가 함께 앉아 있다. 두한이 막 절을 끝내고 있다.
조모 많이 컸구나. 정말 많이 컸어.
두한 ............
오씨 할머니께서는 오시는 동안 내내 네 소식만 궁금해 하셨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줄은 몰랐구나.
두한 ...........
원노인 모두가 이 늙은이의 잘못입니다.
조모 어찌 원서방 탓이겠는가? 다 세월 탓이지. 쯧쯧..... 네 어미도 그렇게 갔고... 또 할머니도 그리 되셨고... 어린 네가 얼마나 서러웠겠느냐?
두한 ............
조모 의지처가 다 사라졌으니 애비인들 또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 그랬지?
두한 예.
조모 그럴 때는 어떻게 참았누? 울기도 많이 울었겠구나.
두한 울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사내는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눈물은 나왔지만 그 때마다 아버지가 주신 시계를 보면서 참았어요. 전 울지 않았어요. 여기 시계가 있거든요.
두한, 시계를 꺼내 보여준다. 모두가 숙연해진다.
조모 대견하구나. 너는 역시 안동 김씨 가문이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나.
오씨 이제 아무 걱정 말고 우리와 함께 살자꾸나. 이 큰 엄마하고 할머니하고 그렇게 살자.
원노인 저어......사모님, 두한이는.......
조모 말해보게 원서방.
원노인 두한이는 제가 데리고 있고 싶습니다.
오씨 원 영감님께서요?
원노인 왜놈 경찰들이 앞으로 두 분을 적지 아니 괴롭히려 들 겝니다. 또 생활도 무척 어려우실 것이구요.
조모 ...........?
원노인 제가 데리고 있는 것이 좋겠어요. 사람들의 눈길도 피할 수가 있고 또... 훗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자면....
조모 (잠시 생각 하다가) 듣고 보니 그렇구먼. 원서방의 말이 맞네. 여러 말하지 않더라도 호랑이 새끼는 산에서 커야 하는 법이다. 두한아 그렇게 하도록 해라. 우리 아녀자들로서는 지금 너를 마땅하게 키울 아무런 힘도 없다.
오씨 어머님?
조모 이 애는 우리만의 자식이 아니다. 얼굴 한 번 봤으면 됐다. 원서방을 따라 가거라. 알겠느냐 두한아.
두한 예, 할머니.
원노인 고맙습니다, 큰 마님.
오씨 ........(한숨만)......
조모 됐어. 원서방에게 가면 안심이야. 정을 갖고 얘기한다면 한이 있겠는가, 원서방 이제 얼굴도 봤고 얘기도 끝났으니 그만 데리고 가보게.
일동 ............
원노인 자주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요.
조모 무엇 하러? 서로 살아 있는 거 알면 되는 게야. 어서 가 보게.
원노인 ......(그 단호함에 존경심 같은).....
# 27 종로거리 일각
원노인과 박군, 두한이 걸어오고 있다.
원노인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시다. 너의 할머님 말이다. 맺고 끊는 것이 서릿발같으시구나. 허허허허.... 그만한 여장부시니까 너의 아버님 같은 어른이 계시는 게지. 그 분인들 얼마나 손주가 보고싶으셨겠느냐?
박군 정말 그러네요 영감님.
원노인 이제부터다.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세상이란다. 서두를 것 없다. 넌 아직 세월이 많이 남았어. 차근차근 배워가는 거란다.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말이다.
두한 .........
그들 그렇게 걸어간다. 얼마만큼 걷는데 두한의 시선이 갑자기 한 곳에 머문다. 양코와 정진영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다.
양코 아저씨, 한 푼만 주세요. 일 전이면 돼요. 아저씨.
신사 저리 가 임마. 재수 없게.
양코 (계속 따라붙으며) 아저씨, 한 푼만 주세요. 아저씨.
두한은 그 모습을 뭔가 아픈 시선으로 본다. 문득 정진영이 돌아서다가 두한과 시선이 부딪혔다.
두한 진영아!
그러나 정진영은 새 옷을 입고 다른 아이가 된 두한을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양코는 돈을 구걸하느라 미처 두한을 보지 못했다. 정진영이 강제로 양코를 끌고 사라진다.
양코 어.. 왜 이래, 진영아? 왜 이래? 대장이잖아.
원노인도 거지 아이들을 보았다. 두한은 정진영을 보며 그렇게 서 있고 이윽고 거지 아이들은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는 두한. 원노인이 재촉한다.
원노인 가자. 허허 그놈들 참.
두한 ........
# 28 종로서 외경
미와 (E)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겝니까, 국장님?
# 28-1 동 종로서 안
경무국장 앞에 미와가 서있다. 간부들도 함께 있다.
미와 긴또깡과 그 가족을 그냥 놔두라구요? 아니 국장님 그들은 반역 죄인들입니다. 대일본 제국의 우환거리들 입니다.
국장 나도 그거 알아. 하지만 조선 민중에 대한 정책적 배려야.
미와 어떻게 그런 정책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자들은 김좌진이의 마누라고 에미입니다. 그리고 자식이에요.
국장 우리는 김좌진만을 상대로 한다. 작은 일에 연연할 거 없어.
미와 작은 일이라니요? 우리 대일본 군대가 청산리에서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바로 그 김좌진에게 말입니다. 그걸 잊으셨습니까?
국장 미와 경부, 소탐대실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걸 잃는단 말이다. 우리에겐 김좌진이의 가족들보다도 수없이 많은 조선 민중이 있다. 그들에게 총독부의 큰 관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와 그렇다고 무작정 다 용서해준다 그 말입니까?
국장 아,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 만약을 위해 감시는 철저히 해둬야겠지. 어쨌든 당분간은 그대로 두도록.... 알겠나? 그렇게 하도록 하게.
미와 국장님.....?
국장 총독부의 정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만 나가보게.
미와 이럴 수가.... 어떻게 김좌진이의 가족을....?
서장 나가 보라고 하시지 않는가?
미와 ............하이.
마지못해 경례를 붙이고 미와는 분함을 참지 못하며 밖으로 나간다. 국장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서장이 아부한다.
서장 화가 날만도 합니다. 조선인들은 아무리 달래고 잘 대해 주어도 결국은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미와 경부는 그걸 잘 알지요.
국장 하지만 그 마음을 바꾸는 것이 바로 총독부의 관리들이 해야 할 일이야. 내선일체, 내선일체 말이야.
서장 하이. 경무국장 각하. 하지만 미와 경부 같은 하급 간부들은 그걸 잘 이해 못합니다. 잘 주지시키겠습니다.
국장 큰 것을 봐야지. 큰 것을.. 소탐대실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주게, 서장.
서장 하이, 국장 각하.
# 29 그곳 복도
미와가 걸어오다 말고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내려 찬다. 그 옆에서 오무라와 문달영, 김태서들이 눈치를 본다.
미와 이런 젠장.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도대체 모두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쥐새끼들처럼 김좌진이의 마누라와 에미가 조선으로 들어왔는데 우린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오무라 헌데 국장각하께서 어떻게 벌써 알고 그 자들을 그냥 두라는 겁니까?
미와 국장각하께서 누군가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 같다. 뭐라구? 소탐...대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독립군들은 씨를 말려야 해. 이봐 김형사.
김태서 하이!
미와 알아봐. 도대체 김좌진이의 가족이 언제, 어떻게 왔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란 말이야.
김태서 그들을 당장 체포해 올까요, 경부님?
미와 이런 머저리! 누가 체포하라구 그랬나? 상부의 지시인데 어떻게 체포를 하겠나. 그 주변을 알아보란 말이다. 당장!
김태서가 대답하며 앞서 간다.
미와 요시. 이것들이 아주 고등 술책을 쓰고 있는 모양인데... 두고 보라지. 절대로 내 손아귀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좌진이의 가족은 절대로 편안하게 살 권리가 없다. 너희들은 뭘 멍청하게 보는 거야? 저들이 어떻게 소리 없이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경무국에 알아 봐.
두 사람 예, 경부님.
미와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지 모르겠군.
# 30 사동옥 외경(밤)
유태권 (E)하하하. 두한이로구나. 긴또깡이야.
# 31 동 사동옥 안
유태권 아직도 긴또깡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싫으냐?
두한 ..............
유태권 나석주 아저씨는 너를 긴또깡이라고 놀렸었지. 나석주 아저씨 알지? 너도 봤다면서...?
두한, 고개를 끄덕인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두한 그 아저씬 죽었어요. 죽는 걸 봤어요.
유태권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독립운동가는 결국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란다. 그 아저씨도 너를 무척 보고 싶어했었는데
두한 미와가 죽였어요. 미와가 그 아저씨를......
유태권 다 알고 있단다. 네가 어서 커서 복수를 해주려무나.
두한 그렇게 할 거예요.
유태권 장하구나. 나석주 아저씨가 지금의 네 얘기를 듣는다면 무척 기뻐하시겠다. 그래 사내는 모름지기 그 만한 각오가 있어야지.
그때 박군이 수육 접시를 내온다.
원노인 자, 새 식구가 왔으니 오늘은 일찍 문을 닫고 잔치를 해야겠구나. 두한아, 이 수육 좀 먹자. 여기 진국 설렁탕도 있다. 많이 먹어라.
박군 많이 먹어. 앞으로 형제 같이 지내자.
원노인 그렇게 들 해라. 여기 박군도 아주 마음씨가 좋은 총각이다. 형처럼 아저씨처럼 그렇게 생각해라.
두한 예, 할아버지.
유태권 어서 먹어.
두한, 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모두들 그렇게 웃으며 먹는데......한참을 먹다가 두한이 수저를 놓치고 뭔가를 생각한다.
유태권 왜 그러냐? 맛이 없어?
두한 아니요. 그게 아니라...거지촌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원노인 너는 이제 거지가 아니다.
두한 나는 그 아이들의 대장이었어요. 나 혼자 이렇게 맛있는 걸 먹는다는 것이.......
유태권 하하하. 대장이었다구? 그래 대장은 부하들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만 너는 이제 모든 게 달라진 거야. 새로운 곳에 왔으면 거기에 적응을 해야 한단다.
원노인 자, 어서 먹자. 수육은 뜨끈할 때 먹어야 돼.
두한 예, 할아버지.
# 32 거지촌
언제나처럼 다리 밑 움막은 바람 소리가 높다.
# 33 동 움막 안
거지 아이들이 모여 있다. 양코가 설레발을 치고 있다. 정진영은 보이지 않는다.
양코 너희들 잘 들어. 우리들 대장은 가족들을 만나서 그리로 갔어. 그렇다고 대장이 아닌 건 아니야.
모두들 .............
양코 오늘은 특별히 대장이 사준 만두를 하나씩 나누어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새 대장이 필요하다. 새 대장은 정진영이와 이 양코가 한다. 불만이 있는 거지는 이 만두를 받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대꾸가 없다.
양코 좋았어. 또 한 가지 알려주겠다. 우리 두한이 대장은 독립군 장군의 아들이다.
갈치 독립군 장군?
양코 얼마나 근사하냐? 따라서 우리들도 독립군일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대장은 무지무지하게 큰 부잣집으로 갔다. 나는 그 집을 알고 있다. 설렁탕 집인데 언제나 소고기국에 흰쌀밥이 무지하게 많다. 언젠가는 너희들에게 구경 시켜 줄 수도 있다.
거지들 (부러워서) 우와...........!
양코 자 하나씩 이 대장이 주는 만두를 받도록. 갈치, 너 나와.
갈치가 비실거리며 다가와 헤헤거리며 웃는다.
갈치 고마워, 양코 대장.
양코 다음. 빨리 나와서 만두를 받어. 줄을 서란 말이야, 줄을 서. 이러니까 거지 새끼들이지. 줄을 서라구.
거지들이 '와' 모여들어 북새통이다. 목청을 높이는 양코의 소리에서......
# 34 정진영의 움막
진영모가 만두를 맛있게 먹고 있다.
진영모 진영아, 이건 고기 만두로구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만두가 있었구나.
정진영 두한이네 아저씨가 사준 거예요. 두한이는 이제 이 곳에 안 와요.
진영모 그렇겠지. 그 아이는 좋겠구나. 이제 배를 곯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정진영 조금만 참으세요. 어머니도 제가 그렇게 해드릴께요.
진영모 됐다. 나는 그저 너만 배곯지 않으면 된다. 우리 효자 아들.... 이 에미는 그저 너 하나만 옆에 있으면 돼.
정진영 (물그릇 주며) 목이 메여요. 이 물 드세요.
진영모 그래. (받아 마시며) 그 가족은 무얼 하는 사람이라든?
정진영 독립군이래요.
진영모 (놀라며) 독립군? 세상에 큰 일 날 말을 하는구나.
정진영 그게 왜 큰 일이에요?
진영모 일본 순사가 잡아간단다. 옛날에 너희 아버지도 독립군 잡는 일을 했었지.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덤벙거리기만 했었어. 그냥 완장 하나 차는 게 좋아가지구.... 다 이 에미가 부추겨가지구 그리 되었었지. 에미 잘못이다.
정진영 ........천천히 드세요. 전 책을 봐야 돼요.
정진영은 다시 부서진 책상 앞에 가 앉는다. 열심히 책을 뒤적거리는 정진영. 그러나 가벼운 한숨을 쉬며 뭔가 생각을 떨치려 애를 쓴다.
정진영 (혼잣소리) 두한이 자식...정말 너무 잘 됐어.
# 35 사동옥 외경
가게는 불이 꺼졌다. 주변 골목도 밤이 깊은 듯 인적이 없다. 행인인 듯한 사내 하나가 유심히 사동옥 쪽을 보며 기웃거리다가는 간다. 그는 종로서의 김태서이다. 다시 조용해진 그 사동옥에서...
# 36 동 뒤채 그 마당
달빛이 밝다. 그들이 사용하는 밀실인 두 개의 방문이 보인다.
# 37 그곳 두한의 방
박군과 함께 사용하는 방이다 박군은 잠이 들어 있고 두한은 온갖 생각이 많다. 잠을 뒤척거린다. 새 이불, 따뜻한 방,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정진영 (E)넌 이제 거지촌으로 올 필요가 없어. (사이) 가족을 만났으면 가족과 함께 살아야지.
두한, 한숨을 쉰다. 삼청동에서 돌아올 때 표변하여 돌아서던 정진영의 모습이 연이어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쳐 간다.
두한 (소리) 진영이는 너무 자존심이 강해. 그럴 필요가 없는데.....실은 나도 지금 이게 믿어지지를 않아.
가볍게 한숨을 쉬면 그 위에 점차 떠블되며 지나쳐가는 과거의 회상들. 어머니의 죽음과 두한을 부르던 소리들이 에코우로 들려온다.
만주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간다. 거수 경례를 하던 자신과 그 경례를 받으며 사라져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간다.
김좌진 (E)두한아.. 사내답게 살아가거라. 사나이답게.
그리고 우악스럽게 자신을 때리던 외숙하며, 불길 속에 보여지던 사채업자 가네야마와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있던 나석주도 스쳐간다. 그리고 실제 상황처럼 요란한 총성이 에코우로 들려온다. 무수한 총격 속에 서서히 쓰러져가던 나석주의 모습과 잔인하던 미와의 얼굴..... 아직도 계속 들려오는 그 총성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 앉는 두한.
두한 ............
박군은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두한은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합 소리를 듣는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틈으로 밖을 본다. 그리고는 크게 놀란다.
# 38 그 밖
어둠 속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유태권의 모습이 보인다. 기 운동을 하고 있는 유태권. 손을 모으며 기를 모으고 있다. 작은 기합 소리가 계속 해 나오고 있다. 웃옷을 벗고 있는 그의 근육질에서 가득한 김이 오르고 있다. 두한은 문틈으로 계속 보고 있고 이윽고 기를 다 모은 유태권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39 그 방 안
충격이다. 두한은 충격으로 보고 있다. 공중부양으로 떠오르던 유태권이 그대로 회전하여 허공을 돌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권법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연이어지면서 발차기와 주먹이 순식간에 수십 합을 뻗어낸다. 주먹 단련용 말뚝이 휘청거리고 샌드백이 공중으로 춤을 춘다. 그는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유연하고 날카로운 동작을 계속 한다. 다시 유태권의 손 끝 찌르기를 맞은 샌드백이 찢어지며 모래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유태권은 마치 한 마리의 성난 독수리처럼 안광을 번득이며 자세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 시선이 두한 쪽을 보고 있는 듯 하다. 두한, 놀라서 얼른 잠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