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이르시되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1~3)
꽃을 사랑한다고 지나치게 물을 많이 주면 안 됩니다. 온실에서 자라는 꽃나무도 환기를 시켜주고 때때로 바람을 맞게 해야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뭔가 부족하고 결핍된 상황에서 자라는 나무나 화초가 오히려 건강하게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감사를 모르며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으며 거친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행 2:43~47).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행 1:8). 그래서 스데반의 순교로 일어난 큰 박해로 말미암아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행 8: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전격적으로 회심하게 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함받은 그릇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행 9:15~16). 사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힘있게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갔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던 사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함께 일 년간 동역하여 큰 무리를 가르쳤고 교회는 크게 부흥, 성장하였습니다(행 11:25~26). 이렇게 교회가 안정되게 성장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 5명 중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두 사람이 빠지면 교회에 적지 않은 지장이 있을 텐데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더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고, 한창 성장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조직에서 나와서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세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본사에서 인적, 물적 지원을 충분히 해준다고 해도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더욱이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떤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와 사울(바울)은 선교의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통해 선교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선교사들을 파송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계 2:7, 11, 29; 3:6, 13, 22). 천국과 같은 교회를 떠나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선교사를 파송하라고 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득권과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가 사랑스럽고 귀하지만 부모가 언제까지나 끼고 살 수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심을 기르고 앞날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창 2:24, 막 10:7~9). 교회는 안락하고 편안한 환경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교회는 배타적인 클럽과 같은 존재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원의 방주, 구조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 내 탈북민 목회자 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2022. 2. 16의 RFA 자유아시아 방송). 2021년의 탈북민 교회의 59.1%의 연간 재정이 미자립교회 기준인 3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며(1천만 원 이하가 31.8%, 1~3천만 원 사이는 27.3%) 교인 수 50명 이하가 83.3%이며 탈북민 담임 목회자의 45.5%는 거의 사례를 받지 못하며 월평균 사례는 64만 원이었으며 목회자로서 자부심이 많다는 응답이 72.5%, 약간 있다가 27.5%이며 통일된 이후 북한에서 목회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96.1%에 달했습니다.
농어촌 미자립 교회, 탈북민 교회 등 기도하고 도와야 할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회, 노회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며 대형교회들이 어려운 교회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국내외 선교를 위해 교회들이 연합하고 서로 돕고 나누는 일이 절실한 때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13)
1. 당신은 선교하는 일에 어떻게 동참하고 계십니까?
2. 앞으로 어떻게 선교에 쓰임 받기를 바라십니까? 한국교회가 국내외 선교를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한다 고 생각하십니가?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수 많은 심령 멸망하겠네
그 누가 갈까 주의 복음 듣고 생명을 구원하는 곳으로
큰 권세 내게 있으니 큰 권세 내게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찬송가 49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