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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북쪽으로 본 갈 수 없는 도솔지맥과 백두 대간모습. 클릭하면 정지화면이 뜹니다.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8.9km + 2.6km(대암산왕복). 7시간 .(널널하게).
돌산령 남쪽 도솔산전투위령비-0.5km(8분)-도솔산(兜率山 1147.8m)-2.5km(60분)-1304m봉-1.3km(28분)-용늪관리소 삼거리-
1.3km(36분)-대암산(大岩山.1309m)-용늪관리소 삼거리-1.9km(58분)-팔랑리 하산능선-2.7km(75분)-팔랑리 장자골도로.
◈ 개요.
오늘구간은 도솔지맥의 실질적인 시작점이자 도솔지맥의 이름을 낳은 도솔산(兜率山. 1147.8m)과,
도솔지맥 마루금에선 1.3km정도 떨어져 있지만 높이만 따져도 도솔지맥언저리에서 제일높은 대암산(大岩山.1309m)을 지나고,
고층습원으로 람사협약(습지보전국제협약)에 가입한 용늪을 지난다.
하지만 이곳은 군부대 통제구역안이라 일반인은 출입을 할 수 없고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는곳이다.
보통은 일반인이 갈 수 있는 돌산령이나 돌산령 서쪽 지능선에 있는 도솔산전투위령비에서 도솔산을 올려다만보고,
약 4km정도는 빼고 광치령에서 역으로 올라가서 용늪관리소 삼거리까지 올라갔다오고 운이 좋으면 대암산까지 가기도 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말처럼 뜻을 세우니 운좋게 길이 열려 군부대의 허락이 떨어져 좋은 날씨에 잘 다녀왔는데
가서 보니 등산로도 깨끗이 정비가 됐고 쉼터며 이정표며 상세한 안내판까지 설치된걸보니
가까운 장래에 개방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개방되면 격전지를 둘러보는 역사교육의장으로나 용늪과 대암산등 생태학습의장으나 해안 펀치볼의 이색적인 풍경으로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받는 관광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곳이 무적해병의 신화를낳은 도솔산전투지역이며 건나다 보이는 각능선이 모두 피로물든 양구지역 9개 격전지였고
이곳에서 수만명의 사상자가 난 쓰라린 역사의 현장이란걸 다녀와서야 알게됐다.
위령비에서 잘 정비된 큰길따라 8분쯤 올라가면 도솔산정상이고 정상에선 일망무제로 파로라마가 펼쳐진다.
대우산,가칠봉과 을지전망대가 코앞이고 뒤로 멀리는 금강산부터 무산,향로봉으로 내려간 백두대간줄기가 다 보인다.
좌측밑으론 해안면 펀치볼이 그야말로 화채그릇 같기도 하고 주먹으로 한 방 먹인것같이 움푹하게 들어간 지형이 특이하다.
우측으론 팔랑리와 건너편 사명산,봉화산과 1304m봉에서 광치령으로내려가는 지맥능선이 높다랗게 올려다 보인다.
도솔산에서 건너다보이는 1304m봉의 통산탑은 주변인근 어디서나 눈에 잘 띄여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있다.
1304m봉가는길도 길이 잘 정비돼 있고 시종 좌로 우로 뒤로 조망이 트여 지루할 겨를이 없다.
1304m봉정점엔 1등삼각점(인제 11)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고 역시 주변조망이 좋다.
1304m봉 앞봉부터 용늪삼거리까진 그늘이 없는 땡볕인데 전방고지대라서 그런지 아직 8월인데
가을잠자리가 날고 가을날씨같이 서늘하다.
위병소옆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용늪가는길로 들어서면 입구엔 차량통행을 제한한단는 표지판이 있고
길은 납짝돌을 최근에 새로 깐 듯하고 길가엔 키낮은 조경수도 심었다.
작은용늪 안내판을 지나면 이 1200m대의 산꼭대기 어디서 물이 나는지 큰 도랑엔 물이 흐르고 있고
파이프물을 받아 마셔보니 시원하기가 그 어느 약수보다도 물맛이 좋다.
주능선이 만나는 안부엔 큰용늪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데크가 있고 (광치령에서 맥을 따라 올라오면 여기로 닿겠다)
바로앞이 대암산과 용늪으로 가는 삼거리에 용늪관리소가 있다.(우측 주능선으로 붙는 길이 있다)
좌측 대암산길로 들어서면 바로 벤취가 있고 좌측으로 용늪가는길이 있고 용늪까진 5분정도 내려간다.
직진해 대암산가는 길가엔 정상까지 계속해서 빨간색" 미확인지뢰" 양철판이 노란 라일론줄에 걸려있는데
라일론줄도 비바람에 부대껴서 날이 서있고 양철판도 날이 서 있어 좁은길에 자칫하면 베기쉽다.
앞봉은 사면으로 건너가서 큰 오름짓을 하진 않으나 정상부가 암봉이라서 주의를 요하고 인원이 많으면 지체되겠다.
맨위정상엔 뜀바위가 하나있고 둘러보는 조망은 역시 일품이다.
다시 용늪삼거리 관리소로 돌아나와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5분쯤 내려가면 주능선에서 내려온길이 있고
한모퉁이를 더 돌아가면 통제철대문이 나온다.이문을 군인들이 열어줘야 들어올수 있다.
대암산정상부를 보며 7분쯤 임도를 따라 돌아오면 우측으로 주능선에서 내려온길있고
임도는 1218m봉을 좌측으로 길게 돌아간다.여기선 주능선으로 붙는 것이 임도보다 빠르다.
1218m봉에서 좌측으로 가지친 큰줄기를 임도가 따라 내려갔다 우측으로 다시 길게 돌아오는데
우측으로 산줄기가 안보이고 계곡같이보여 마치 이능선이 주능선같이 보여 직진하는 능선으로 붙기쉽다.
우측으로 길게 내려왔다 다시 한 모랭이 두 모랭이를 돌아 팔랑리 하산능선까지 오는데 20여분이 걸렸다.
지나차에 내려온 하산능선으로 올라서 25분 내려오면 893m봉이고
다시 한시간가량 내려오면 장자골 60m포사격입구를 알리는 포장도로에 닿는다.
◈ 일시 : 2009. 8. 23(일).
◈ 날씨 : 한참 늦더위중인데 강원동북부의 고산이라 초가을같이 서늘함.
◈ 인원 : 달인클럽,요맥,낙원팀으로 총 29명.
◈ 지도 : 1/25000. 임당.영진 5만지도 P 27 인제.
도솔지맥 8구간[도솔산(兜率山 1147.8m)-1304m-대암산(大岩山.1309m)-팔랑리](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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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정리. 10 : 36~17 : 30 . 7시간 (휴식포함 널널하게)
06 : 10. 천안에서 동서울행 버스.
07 : 40. 잠실에서 출발.
10 : 20. 돌산령.
10 : 27/36. 돌산령 남쪽의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에서 군장교의 도솔산전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출발.
10 : 54/11 : 06. 도솔산(兜率山. 1147.8m).도솔산지구 전적비와 삼각점.사방이 탁트인 최고의 전망대.
11 : 22. 대암산 탐방로 8번 쉼터.도솔산 0.7km.용늪 3.7km이정표.
11 : 44. 전망좋은 중간봉.도솔봉과 가칠봉,을지전망대,해안펀치볼조망.
12 : 00. 전망좋은 무명봉.
12 : 10. 1304m앞봉.지나온지맥과 1304m봉과 광치령으로 이어지는지맥이 잘보임.
12 : 19. 1304m.1등 삼각점(인제 11).
12 : 25/45. 위병소위 헬기장에서 점심.가을날씨같이 서늘함.
12 : 52. 용늪가는길 안내판과 비포장길이 납짝돌길로 되고 길가엔 조경수를심음.
12 : 55. 작은용늪 안내판.
13 : 05. 식수파이프있음.
13 : 10. 용늪전망대 테크.도솔지맥 주능선안부임.광치령에서 마루금따라 올라오면 이곳으로 올라옴.
13 : 13. 용늪 관리소 삼거리.임도따라오면 여기로올라옴.대암산,용늪은 여기서 좌측으로감.
13 : 42. 서화 하산길.
13 : 49. 대암산(大岩山.1309m)정상.전망대.
14 : 25/34. 용늪.
14 : 40/15 :11. 용늪관리소.좌측 임도따라 광치령쪽으로 하산.
15 : 16. 우측으로 주능선 오르는길 보이나 철문에서 기다릴 군인을 생각해서 도로따라감.
15 : 23. 군통제철문.
15 : 30. 우측으로 1218m 전봉으로 오르는길 있음.이리로 오르는 것이 임도길보다 빠름.
15 : 43. 1218m봉에서 동남쪽으로 가지친 능선상의 임도.길주의.
영낙없이 이줄기가 지맥줄기같이보여 직진하는능선으로 붙기쉬움.우측으로 길게 돌아가야 주능선 나옴.
16: 02. 임도에서 팔랑리로 내려오는 갈림봉으로 오름.
16 : 11. 팔랑리 하산길 갈림봉에서 우측능선으로 내려옴.초입이 다소 길 흐릿하나 좀 내려오면 뚜렷해짐.
16 : 36. 893m. 나무없는 억새풀 민둥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옴.
17 : 30.계곡으로 내려와 큰 고랭지밭 가운데로 내려와 60m사격장입구의 포장도로로 나옴.
18 : 30/19 :00.백두회관에서 육개장으로 저녁식사.
22 : 30. 잠실도착.
23 : 00.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천안행 고속버스탐.
◈ 산행후기.
도솔산전적지입구에서 본 도솔산.
좌측 아래가 돌산령으로 원 지맥 마루금이고 전적지는 도솔산정상에 있고 위령비는 남쪽 지능선에 있다.
도솔산전투위령비에서 본 도솔산.
까만돌판에 도솔산지구 전투상황판과 대암산 생태탐방로 안내판과 위령비앞엔 위령비 안내판과 약사문이 있다.
도솔산지구전투 위령비 안내판.
위령비앞의 약사문.
위령비에서 건너다 본 대우산(1178.5m).
군장교로부터 도솔산전투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다.
대암산 생태탐방로 안내판.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최근에 대암산 생태 탐방로 개방을 할려고 등산로정비,이정표,쉼터등을 만들었다.
들리는 소문엔 올 가을에 통제가 풀린다고 하는데 두고볼 일이다.
들머리 날머리 용늪가는길은 양구땅이지만 정작 용늪과 대암산은 인제땅이고 원주 환경청의 영향력하에 있다.
광치령휴양림 17km.용늪 5.3km.생태식물원 14km.대암산 생태탐방로인데 정작 대암산은 빠져있다.
용늪과 대암산이 출입금지구역이고 양구군 관할이 아니기 때문인 모양이다.
출발.뒤로 보이는 대우산은 지맥마루금에서 살짝 비껴있다.
도솔산(兜率山. 1147.8m)가는길.
저봉이 도솔산이다.돌산령에서 보면 바위 암봉인데 서쪽 지능선에서 보면 육산이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정상모습과 삼각점.
도솔산(兜率山. 1147.8m)전투 안내판.
도솔산전투 [兜率山戰鬪]
1951년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강원 양구군에 있는 도솔산에서 벌어진 전투.
한국 해병대의 승전(勝戰) 전투로서 24개의 목표고지를 점령하여 미국해병 제1사단장으로부터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전투이다. 도솔산 지역은 양구와 인제 사이의 태백산맥 중에서 가장 험준한 곳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1,000m 이상이고, 양양~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여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므로 전략상의 가치 역시 컸다. 당시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은 막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이었다.
최초의 도솔산 일대에 대한 공격은 미국 해병사단이 담당하였는데, 많은 손실만을 내고 성공하지 못하여 한국군 해병사단에 인계되었다. 6월 4일 아침 8시를 기해 시작된 한국 해병 제1연대의 공격은 9일간의 격전 끝에 캔사스선(Kansas Line:북한군의 공격기도를 분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설정한 주저항선으로서 임진강∼화천호∼양양을 잇는 선) 내의 15개 목표고지를 일단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였다. 공격기간 중 해병대의 손실도 북한군에 못지않게 컸는데, 이는 지형이 험난하여 공격에 난관이 많았고 특히 계속된 강우와 짙은 안개로 항공 및 야포 지원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해병의 끈질긴 전투능력 때문이었다. 이후 제2단계 작전으로 옮아가 6월 19일 도솔산에 대한 마지막 야간공격으로 정상을 정복하였다. 그 후 도솔산전투는 해병대 5대작전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고, ‘도솔산의 노래’라는 전투 군가(軍歌)를 제작하여 그날의 승리와 기백을 선양하였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북으로 본 대우산(1178.5m.좌),가칠봉(1242.2m. 가운데 우측봉),매봉(1290m.),지혜산(1202m),구례산(1352m).
가운데로 이어지는 능선도로가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모두다 지금은 갈 수 없고
가칠봉은 금강산의 맨 마지막 봉우리로,이름도 이봉우리가 있어야 금강산 일만 이천봉이 완성된다는 뜻에서 더할가 加를 사용했다고한다.
대우산,가칠봉은 피로 얼룩진 대우산,가칠봉전투가 있던곳이다.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는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국군 5 보병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다. 북조선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미국 1 해병사단과 국군 1 해병연대를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를 8월 30일에 시작했다. 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가칠봉 전방 500m에는 1,122고지(일명 김일성 고지)가 있었다. 쌍방이 차후 작전을 위해서 필히 확보해야 할 주요 고지였다. 가칠봉은 아군 전선에 너무 근접하여 포병 및 항공 화력이 불가능해서 오로지 보병 근접 전투에 의존해야 했던 전투였다. 이 때문에 미군의 화력과 항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던 당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형적으로도 가칠봉은 해안분지의 북서쪽 분지를 둘러싸고,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는데, 공격자인 한국군은 낮은 지점에서 고지로 올라가며 전투를 치러야했지만, 방어자인 북조선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항공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올라오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전투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향후 작전을 위해서 가칠봉 고지를 장악해야 했던 한국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고지의 주인이 6번이나 바뀌는 혈전을 치뤄여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국군 5보병사단은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함으로써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적전사 1,102명. 포로 250명. 아군전사 692명.실종 437명.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동북으로 본 을지전망대와 해안면(펀치볼)모습.
사진 좌측의 가칠봉쪽에서 내려온 안부근처에 제4땅굴이 있고 사진 중앙이 을지전망대다.그뒤로 보이는 큰산은 무산인듯.
해안면(亥安面).PUNCH BOWL.
해안면(亥安面)은 현리 • 오유리 • 만대리 • 후리 • 월산리 • 이현리로 구성되어있다.
해안(亥安)이라는 지명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뱀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바꾸고, 많은 주민들이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자,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외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해”자를 쓰기 이전에 “바다해”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해안을 조사하면서 산중턱에서 선사시대 유물과 조개껍질이 발견 된 적이 있다. 이같은 사실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였음을 뒷받침해 준다. 조개껍질을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이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에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와, 눈 밑으로 한마을 같이 펼쳐진 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후 해안(海安)으로 불렀다가 해안(亥安)으로 바뀌었다. 885년(고종 32년)에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정식명칭은 해안분지(亥安盆地)이지만 '펀치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의 산에 둘러싸인 분지이며, 남북 길이 8.5km·동서 길이 7km에 면적은 44.7㎢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해발고도는 400 ~ 500m이다. 차별 침식 분지라는 주장도 있고,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도 있다.
분지 하나가 1개면을 이루고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분지바닥의 평균고도 400m의 거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
을지전망대.
을지전망대는 양구 동북쪽 27㎞,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 남쪽 지점에 해안분지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1,049m)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1987년 12월 12일 전경련회장단이 육군 제1862부대를 방문해 안보교육관의 건립을 제의했고 이듬해인 1988년 5월 31일 1억2,500만원을 부대에 기탁함으로써 을지전망대를 건립하게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 비로봉외 4개의 봉우리(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를 볼 수 있는 해발 1,049m의 최전방 안보관광지로 안보교육장으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였던 펀치볼도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전망대가 서 있는 자리 또한 당시에는 치열한 격전지였다.
제4 땅굴
전면적 기습전과 후방공략을 달성하기 위한 북한의 땅굴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땅굴의 발견경위와 규모는 다음과 같다.
⑴ 제1땅굴: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연천 고랑포(高浪浦)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길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⑵ 제2땅굴:1975년 3월 24일 강원도 철원(鐵原)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다.
⑶ 제3땅굴:1978년 10월 17일 판문점(板門店) 남쪽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95m, 높이 2.1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다.
⑷ 제4땅굴:1990년 3월 3일 강원 양구(楊口) 북동쪽 26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7m, 높이 1.7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서북으로 본 피의능선(우측 위에서 두 번째줄 하얀전있는봉이 983m봉이다).
저봉이 피의능선으로 5일간 42만발의 포탄을 쏟아부어 산높이가 몇 m는 낮아졌다는봉으로 1개연대규모의 사상지를 냈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마지막장면이 이곳이란다.
피의능선.
피의능선이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으로,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한다. 피의능선전투는 한국군 제5사단 36연대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1951년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42만여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치른 격전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 신문 <성조지 Stars and Stripes>가 이 전투를 피의능선전투라 이름 지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한국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북한군 1,480여 명이 사살되고 70여 명이 생포되었다.
단장의 능선 전투(1951년 9월 13일 ~ 10월 13일).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동면 사태리
단장의 능선 전투(1951년 9월 13일 ~ 10월 13일)는 미국 2사단과 미 2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프랑스 대대 및 네덜란드 대대가 중동부 전선의 주저항선을 강화할 목적으로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에 배치된 북한군 2개 사단(6, 12사단)을 공격하여 점령한 공격 전투다. "단장의 능선"이란 이름은 전투가 끝난 후에 붙여졌다. 미국에서는 지형에 비유하여 펀치보울 전투(Punchbowl battle)라고도 부른다.
적전사 1,473명. 포로 606명
아군전사 597명. 부상 3,064명. 실종 84명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이 전투를 테마로 만든 스타크래프트 맵이 있다.
컨셉 : 한국전쟁 시절 손꼽히는 격전지였던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을 테마로 한 맵으로 전술적 요충지인 능선 확보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맵이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본 1304m과 광치령으로 가는 지맥모습.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본 사명산(좌)모습흰구름 아래쪽에 파로호가 있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북쪽으로 본 갈 수 없는 도솔지맥과 백두 대간모습. 클릭하면 정지화면이 뜹니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을 벌인 양구 지역의 9개 전투 즉 도솔산·피의능선·펀치볼·백석산·가칠봉·대우산·크리스마스고지·949고지·
단장의능선등 피로 얼룩진 격전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본 1304m-대암산분기봉-1218m로 이어지는 도솔지맥모습. 클릭하면 정지화면이 뜹니다.
뒤 돌아 본 도솔산(兜率山. 1147.8m).
전적비만 외롭게 서 있다.
쉼터.
최근 등산로를 정비하고 쉬어갈 쉼터도 만들었다.
이정표.용늪 3.7km.도솔산 0.7km. 솔봉 9.6km라고 써 있는데 안내도엔 솔봉을 1129m로 표기했는데 어느봉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가야할 1304m봉이 저만치 물러나 있다.
1304m봉가는길에 본 1304m봉으로 가는 도로와 1218m봉,1240m봉.
우측 하단의 뻘건곳위로 지난번에 내려갔던 팔랑리 하산길이 어림된다.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본 중간봉.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피의능선과 돌산령가는 도로.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도솔산.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돌산령과 대우산,가칠봉능선.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가칠봉과 을지전망대.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을지전망대와 해안펀치볼.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을지전망대(가운데),해안펀치볼.백두 대간의 심재령(우측 움푹한곳).
을지전망대 뒷산이 백두 대간의 무산같다.
1304m봉가는길에 뒤 돌아 본 도솔산과 돌산령과 대우산.
1304m봉.
1304m봉 앞봉 오름길.
1304m봉 앞봉에서 마지막으로 뒤 돌아 본 도솔산-돌산령-대우산.
1304m봉 앞봉에서 마지막으로 뒤 돌아 본 가칠봉-펀치볼- 을지 전망대.
1304m봉 앞봉에서 본 광치령으로 가는 1218m-1140m로 이어지는 도솔지맥모습.
1304m봉 앞봉에서 본 1304m봉 .
1304m봉 앞봉에서 본 1304m봉으로 올라가는도로와 광치령으로 가는 지맥모습.
1304m봉 넘어쪽 모습.드디어 대암산이 좌측뒤로 얼굴을 내민다.가운데 도로 우측이 도솔령쪽에서 올라온 위병소.
1304m봉 정상의 통신탑들.
가을날씨같이 선들하고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8월인데 지재가 높아 가을꽃들이 벌써 피고 잠자리가 날고있다.
1304m봉 정상의 1등삼각점(인제 11).
뒤로 해안펀치볼이 보인다.
1304m봉 정상에서 본 대암산.
1304m봉 정상의 1등삼각점(인제 11)에서 본 헬기장과 용늪가는길.
도로 우측 능선이 마루금이고 우측뒤줄기가 광치령으로가는 지맥줄기다.
용늪 가는길.
용늪의 육지화를 막기위해 자연석과 용늪 자생식물로 조성되었고 차량진입을 금한다는 원주지방환경청의 팻말이다.
작은용늪과 대암산.
저앞의 좌측으로 도는곳이 용늪이다.
작은용늪 안내판과 대암산.
작은용늪
용늪길에 심은 용늪의 자생식물과 대암산.
용늪길에서 뒤 돌아 본 1304m봉과 당귀.
용늪길가의 약수.
용늪 전망대.
용늪길이 지맥 마루금과 만나는 안부다.
앞봉이 대암산 갈림봉이고 좌측 언덕위 삼거리에 용늪관리소가 있다.
광치령에서 임도를 따리지 않고 마루금을 따라오면 저앞봉에서 이길로 내려오던지 용늪관리소로 내려오던지 한다.
용늪 전망대에서 땡겨본 용늪.
용늪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본 지맥줄기와 멀리 봉화산.
용늪 관리소와 용늪안내판.
용늪과 대암산은 여기서 좌측이고 광치령은 도로따라 직진해 내려간다.
우측 마루금쪽으로도 길이 있다.
용늪은 좌측으로 꺽어 몇 발짝 내려가선 다시 좌측으로 몇 분 내려가야 나온다.
대암산 암릉.
대암산 (大岩山.1309m).
정상은 큰 바위군으로 돼있고 실질적인 도솔지맥의 대장이다.
사방이 막힘없는 전망대로 북으론 금강산비로봉부터 무산,향로봉,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휴전선 이북의 도솔지맥부터,가칠봉,1304m봉.봉화산,사명산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줄기가 훤하게 조망된다.
대암산 (大岩山.1309m)에서 본 1304m봉(좌),가칠봉(중)과 펀치볼(우).
대암산 (大岩山.1309m)에서 본 광치령으로 내려가는 도솔지맥모습.
대암산 (大岩山.1309m)에서 본 지나온 1304m봉.
대암산 (大岩山.1309m)에서 본 가칠봉-을지전망대-펀치볼모습.
용늪전경.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 정상아래 해발 1,280m에 있고 민통선 내에 있는 남한 유일의 고층 습원지인 대암산 용늪으로
동서로 275m, 남북으로 210m나 뻗친 엄청난 크기의 자연 습지가 정상의 산봉우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용늪전경.
2004년 7월 현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 강원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 용늪, 경남 창녕군 우포늪, 울산시 울주군 무제치늪, 제주 남제주군 물영아리오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화엄늪,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두웅습지, 경남 양산시 원동면 신불산 고산습지, 전남 순천시 순천만 갯벌, 전남 보성군 보성벌교 갯벌, 인천 옹진군 장봉도 갯벌, 전남 무안군 현경면·해제면 갯벌, 전남 신안군 압해도 갯벌, 전남 진도군 군내면 벽파리 갯벌, 담양 하천습지 등 총 14곳(186.499㎢)이다.
용늪전경.
사초과의 식물들이 바람 때문에 항상 누워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 깔린 축구장처럼 보이는 이 자연 습지의 이름은 용늪이다. 용늪이란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지난 1989년,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대암산 용늪은 이처럼 산 정상에 습지가 만들어진 곳으로는 남한에서 유일한 곳이어서 더욱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고층습원인 용늪은 약 4500년전 형성된 것으로 식물체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채 퇴적된 이탄층으로 4천년간의 생물체의 변화를 살펴볼수 있는 자연보고로 97년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람사협약(습지보전국제협약)에 가입하면서 습지1호로 환경부가 자연 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용늪의 면적은 7,490㎡로 95년 환경부 조사결과 순수습원식물22종을 비롯해 112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에서도 세계적으로 진귀한 금강초롱꽃과 비로용담, 제비동자꽃, 기생꽃이 서식하고 있다.
용늪전경.
용늪의 바닥에는 채 썩지 않은 식물들이 쌓여 스펀지처럼 물컹한 지층을 이룬 이탄층이 발달해 있다. 보통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땅 속에 묻히게 된다. 그러나 기온이 낮고 습기가 많은 습지에서는 식물이 죽은 뒤에도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짙은 갈색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탄층이다.
용늪에 만들어진 이탄층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m 깊이이며, 깊은 곳은 1m 80cm나 되는 곳도 있다. 용늪이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습지라는 얘기가 된다.
이탄층 속에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꽃가루 따위를 분석하면 수천 년에 걸친 그 지역의 기후 변화와 식물의 변천 과정 등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흔히 고층 습원을 자연의 고문서또는 타임캡슐이라 부르기도 한다.
식물학자들이 용늪의 이탄층에서 꽃가루를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용늪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자그마치 4천2백 년 전쯤. 용늪 이탄층의 맨 밑바닥에서는 포자가, 그리고 그 뒤 1천 년 동안 더 쌓인 지층에서는 신갈나무가, 다시 2천 년 정도 더 흐른 지층 윗부분에서는 소나무 꽃가루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탄으로 만들어지는 늪은 크게 갈대나 사초처럼 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 분포하는 저층 습원과 예자풀이나 진퍼리새 등 건조한 상태에서도 살 수 있는 식물이 분포하는 중간 습원, 그리고 그보다 더 이탄이 두꺼워지면 오직 빗물만으로 자랄 수 있는 물이끼류 같은 식물만이 사는 고층 습원으로 구분된다. 용늪은 이 가운데서도 고층 습원. 그래서 용늪 전체에서는 물이끼가 뒤덮여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용늪 삼거리에서 본 대암산쪽.
용늪은 바로 저 앞 공터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용늪 삼거리에서 1304m봉쪽.
군부대 철망문을 나오며.용늪과 대암산출입금지 않내판이 있다.
마루금을 따르면 이문을 만나지 않는다.
임도따라 내려오면서 뒤 돌아 본 대암산모습.
임도가 1218m에서 동남쪽 1145m봉쪽으로 가지친 큰능선을 넘고있다.
우측으론 산줄기가 안보여서 지칫 저1145m봉을 지맥줄기로 혼동하여 진입할수있다.
우측으로 크게 더 돌아 내려가야한다.
군부대 철망문을 나서면 임도를 따르는것보다 지맥 마루금을 타는 것이 더 빠르다.
팔랑리 내림 능선길로 내려와서 올라선 893m 민둥봉에서 우측으로 본 도솔산과 대우산(좌).
893m 민둥봉에서 우측으로 본 1304m봉(좌), 우측안부에 용늪전망대가 있다.
893m 민둥봉에서 뒤 돌아 본 도솔지맥.
좌측안부가 용늪 전망대,우측이 1218m봉.
893m 민둥봉에서 팔랑리 하산길.
왼쪽 고랭지밭 앞쪽의 도로가 오늘의 종착지다. 저앞에 보이는 마을이 팔랑리다.
팔랑리 (八郞里)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조선때, 멀리 함경도 지방에 살던 이학장(李學長)이라고 하는 도사(都事)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팔랑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학장의 부인이 유방이 4개가 달려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곧 네쌍둥이를 낳았고, 몇 년 해에 또 네쌍둥이를 낳았다고 한다. 여덟 자식 모두 훌륭하게 자라 벼슬까지 하게 되어 그 후 이 마을을 팔량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느림골, 무학, 범바우, 돌고지, 자작정, 갈조동, 송림말, 막은골 등이 있다.
뒤 돌아 본 893m 민둥봉.
893m 민둥봉에서 팔랑리 하산길.
마지막 계곡으로 떨어지는곳이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백두회관에서 과분하게도 육개장으로 저녁 식사대접까지 받았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아와서 백두산부대 홈피에 들려보니 옛날 훈련소에서 말로만 듣던 102보충대가 바로 백두산부대 신병교육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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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에 걸친 도솔지맥 종주를 마친다>.
첫댓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실컷) 살펴본다고 했는데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리, 역사, 안보, 생태 등 여러 모로 소중했던 자료들을 다각적으로 실증해 주신 노고와 열정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가칠봉에서 도솔지맥의 분기봉인 백두대간의 매자봉까진 도상거리 27.2km,다시 매자봉에서 금강산 비로봉까지가 20.4km이니 좀 빨리 걸으면 이틀, 널널하게 가도 삼일이면 갈수있는 금강산인데 그저 쳐다만보고 왔습니다.1996년 12월 ㅣ일에 에 향로봉에서 심재령,무산, 금강산 비로봉을 건너다만 보고 내려올때의 감회와 같습니다.향로봉에서 매자봉이 37km이니 매자봉-도솔산 36.5km와 거리가 같습니다.비가 몇 방울 떨어지더니 아침 저녁으론 가을 냄새가 납니다.다음달 문수지맥에선 가을 정취가 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