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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나오는 빛
11월 1일, 부산은 아직 순한 가을이었다. 노포터미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올려다본 금정산의 산빛은 선하게 물드는 단풍으로 푸근했다.
문수선원에는 미리 오신 스님들이 경을 보고 계셨다. 방해가 될새라 주방은 조용조용 움직였지만, 구수하게 올라오는 고구마 찌는 냄새가 벌써부터 선원 안에 퍼졌다.
유리창 아래로 항상 보던 아파트 주변의 식물들이 촉촉하고 진한 색으로 변해서 풍경이 그윽해졌다.
‘가을이 풍성하다’고 보살님이 웃으셨다. 연꽃사진을 크게 프린트해서 가져오신 스님이 계셨다. 꽃과 잎 한올한올의 질감이며 색깔이 오묘히 번지는 기술이 어떤 것이냐고 여쭈니 웃으며 뒤로 물러가 다시 사진을 보셨다.
따뜻하고 조용한 선원에서 말끔한 책상위에 공부할 것들을 펼쳐놓고 오래 들여다보느라 큰스님을 맞으러 내려가는 길이 늦었다. 벌써 층계참이 울렁울렁한다. 유쾌하고 화통한 큰스님 목소리, 그 소리에 화답하는 스님들의 웃음소리, 좁은 계단이 환했다.
스님들이 큰스님을 친견하시고, 여러 가지 안부들을 묻는 일상이 편안하다. 늦은 생신선물로 반야심경이 프린트된 스카프를 받으셨다. 즉석에서 목에 두르시며‘반야심경이니까 꽁꽁 매야지’하고 웃으셨다. 색깔이 좋다고 하시면서 어떠냐고 물으셔서 아주 어울리신다고 대답하자, ‘그렇지? 아주 좋다’고 하셨다. 연꽃사진이 참 좋다고 한참 보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큰스님께서는 계속해서 스카프를 두르고 계셨고 잘 어울리는 빛이라고도 말씀하셨지만 거울을 한 번도 보지 않으셨다.
공부하신 스님으로 부터 저자가 큰스님께 꼭 전해달라고 하셨다는 영어로 된 불교사전을 전달받으셨는데 '아이구 대단하시다'며 경전을 보듯이 찬찬히 살펴보셨다.
서울에서 ‘고려불화대전’을 보고 오신 스님들이 큰스님께 도록을 선사하셨는데 크게 반가와하셨다.
모두들 고려불화대전 이야기를 하셨다.
서울에 돌아온 후 부랴부랴 가본 고려불화대전, 경전의 내용을 훤히 아시는 큰스님이 느끼시는 감흥은 얼마나 크실까 헤어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뜨거워졌다.
화엄회상 역시 알면 알수록 더욱 뜨거울 것이다.
11월 초, 빛이란 빛은 모두 그러모은 가을빛은 편안하고 편안하다. 그러고 보니 고려 불화 속 부처님들의 법의빛이 모두 가을빛 속에 들어있다. 속으로 속으로 집중한 빛들은 그렇게나 쟁쟁하고 고요하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유인물>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2 (제9강 11월 1일)
唐 淸凉山 大華嚴寺 沙門 澄觀(淸凉國師)撰
제4門, 설법하는 위의가 두루 미치다 [說儀周普]
/湛智海之澄波가 虛含萬象이요 / 皦性空之滿月이 頓落百川이로다//不起樹王하사 羅七處於法界하시며 無違後際하사 暢九會於初成이로다/盡宏廓之幽宗하사 被難思之海會하시니/圓音落落에 該十刹而頓周하고/主伴重重에 極十方而齊唱이로다
/고요한 지혜바다의 맑은 파도가 텅 비어 만상을 다 품고 [1,의지한 禪定]
/밝고 밝은 법성 하늘의 둥근 달이 한꺼번에 모든 물에 나뉘었도다.[2, 應身]
/보리수 밑에서 일어나지 않고 七處를 법계에 펼치고 [3,經을 설한 장소]
/後際를 어기지 않고 九會를 처음 成道에서 나타내도다.[4, 경을 설한 때]
/크고 넓고 유현한 종지를 다 설하여 한량없는 대중들에게 베푸시니 [5, 가르침을 받는 대중]
/원만한 음성이 멀리 퍼져 온 十佛刹塵에 한꺼번에 두루하고[6, 경을 설하는 근본]
/주인과 벗이 중중하여 모든 시방에서 다 같이 노래하도다. [7, 설법하는 위의를 따로 보임]
제5門, 말씀이 근본과 지말을 다 갖추다.[言該本末]
/雖空空絶跡이나 而義天之星象이 燦然이요 湛湛亡言이나 而敎海之波爛이 浩澣이로다/若乃千門潛注는 與衆典爲洪源이요萬德交歸는攝群經爲眷屬이로다
[1,理와 事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함]
/비록 비고 비어 자취가 끊어졌으나 진리의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고, 고요하고 고요하여 말이 없으나 가르침의 바다에는 물결이 크고 넓도다.
[2,모든 敎를 상대하여 本末을 논함]
/천문으로 스며 흘러드는 것은 온갖 경전의 큰 근원이 되고, 만덕이 함께 돌아옴은 여러 경전을 거두어 권속을 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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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往復序): 천하 제일 명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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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청량산 대화엄사 사문, 징관 청량스님이 찬술한 화엄경의 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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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청량스님의 자질을 언급할 바가 아니지만, 화엄경 공부를 제일 많이 하셨고, 화엄경에 대한 연구서적도 제일 많은 분으로서 한마디로 ‘화엄의 위대한 종주’라고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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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門 설의주보(說儀周普) : 설하는 위의가 두루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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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문을 소리 내서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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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 왕복서를 100번을 쓰자고 했는데 모두 쓰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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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지해지징파(湛智海之澄波)가 :고요한 지혜바다의 맑은 파도[澄波]가. 잠(湛)자는 맑다라는 뜻으로 담(湛)이라고도 읽는다. 지혜 바다의 맑은 파도는 깨달음의 지혜이며 부처님의 지혜다.
지혜가 꼭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항상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흙탕물이 아니고 맑은 물결이다.
이러한 지혜는 마음을 다 비웠을 때, 망상을 다 비웠을 때 있을 수 있는 지혜이며
허함만상(虛含萬象)이라 : 텅 비어 만상을 다 품는다.
이 허(虛)자를 어떻게 번역할까 하다가 ‘허공처럼’이라고 했다가 다시 ‘텅 비어’라고 번역하였다. 마음이 비어야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다.
마음이 ‘이래야 된다’‘저래야 된다’ 고 하는 내 나름의 상식, 어떤 틀, 가치관, 생활방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사람의 삶이 용납될 수가 없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꼭 옳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그런 것은 어리석다.
내 삶의 방식을 비웠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이 보인다. 맑은 지혜가 있을 때 허함만상(虛含萬象)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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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지해지징파 허함만상(湛智海之澄波 虛含萬象)을 ‘의지한 선정(禪定)’이라고 제목하였다. 화엄경을 설하는데도 반드시 의지한 선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화엄삼매(華嚴三昧)라고 부르고 다른 표현으로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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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맑으면 온 세상 만물이 그 위에 다 비친다. 그것이 해인삼매, 해인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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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선정 속에는 세상사, 세상의 만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것들이 다 나타나게 되어 있고, 나타난 그대로를 우리에게 모두 설파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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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성공지만월(皦性空之滿月)이: 밝고 밝은 법성하늘의 둥근달이
돈락백천(頓落百川)이다: 한꺼번에 모든 물에 나뉘었도다.
밝을 교(皦)자는 밝을 명(明)자보다도 더 밝은 것을 말한다. 공(空)자는 하늘을 뜻한다. 하늘 천(天)자만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늘을 공(空)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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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밝고 밝은 법성의 바다, 이것을 우리 성품의 바다라고 해도 좋다. 성품의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백 개의 냇물에 다 떨어졌다. 이 대목을 ‘응신(應身)’이라고 제목하였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고 했듯이, 하늘의 달은 하나이지만 물이 있는 곳에는 모두 달이 비치게 마련이다.
강릉 경포대에 가면 ‘달이 술잔에도 비치고 호수에도 비치고 바다에도 비치고 내 앞에 앉은 그 사람의 눈동자에도 비친다’는 말도 있다. 그와 같이 부처님 본래의 법신은 하나이지만, 사람마다 맞춰서 응해주는 응신은 여럿이다. 그것을 하늘에 뜬 달과 내에 비친 달로 비유를 했다.
32응신이라는 말이 있다. 아수라에게는 아수라에게 맞도록, 가루라에게는 가루라에게 맞도록, 지옥 중생에게는 지옥 중생에게 맞도록 부처님이 나투신다. 보살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보살의 몸으로 나투고,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부처의 몸으로, 비구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비구의 몸으로, 장자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장자의 몸으로 나툰다. 이것이 부처님의 응화신(應化身)이다. 달에다 비유한다면 천강유수천강월이다.
불교는 이치가 깊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이 그 이치를 표현하는 글도 이렇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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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수왕(不起樹王)하사 : 부처님이 성도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한 채
라칠처어법계(羅七處於法界)하시며: 칠처(七處)를 법계(法界)에 펼쳤다.
이것은 ‘경을 설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첫 시간에 나눠드린 화엄경 구성표에 보면 7처9회. 일곱 곳에서 아홉 번에 걸쳐서 법회를 열었다고 되어있다.
칠처(七處)는 온 법계를 아우른다.
뒤에 가면 승도솔천궁품과 같이 부처님이 천상에 올라가는 품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불기수왕(不起樹王)’처럼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리수를 떠나지 아니한 채 야마천에 올라가고 도솔천에 올라가고 화락천에 올라갔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수왕(樹王)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수 나무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나무인 보리수 아래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면서 여러 천상에 오른신다는 것이다. 그 말은 부처님이 항상 깨달음의 안목에 근거해서 별별 장소, 별별 수준의 사람들에게 맞추어서 설법한다는 뜻이다.
어른이 어린 손자와 논다고 해서 손자의 수준이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어른은 항상 어른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그 상대의 근기, 수준에 따라서 다 맞춰준다. 그와 같은 의미로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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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후제(無違後際)하사 : 마지막 법문을 후제라고 한다. 후제를 어기지 않고
창구회어초성(暢九會於初成)이로다 : 아홉 번의 법회를 열었는데 그 9회를 처음 성도에서 나타내도다.
성도한 보리수 밑에서 7처를 열고, 성도한 그 도리에서 화엄경의 끝까지 법문을 다 이야기한 것이다. 크게 보면 화엄경 뿐만 아니라 열반경 법문까지도 성도한 데서부터 시작한 것이고 성도한 그 자리에서 펼친 것이다.
이것을 좀 깊이 음미해보면 의미심장하다. 또 아주 멋지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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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굉곽지유종(盡宏廓之幽宗)하사 : 크고 넓고 유현한 종지를 다 설한다.
피난사지해회(被難思之海會)하시니 :그래서 한량없는 대중에게 다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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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사지해회란 불가사의한 대중의 모임이며 바다와 같이 드넓은 대중모임이다.
제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이지만 이 시대에 문수선원에서 문수경전연구회가 열리는 일이다. 많은 스님들이 모이셔서 이런 법회를 하는 것이 그대로 바다와 같이 드넓은 회상[海會]이다. 한 스님에게 일반 신도 백 명만 딸려있다손 치더라도 대단한 숫자다. 그런데 신도가 백 명이 넘는 스님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천 명 이상 되는 스님들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드넓은 대중들에게 입힌다[被], 부처님의 법을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을 ‘경을 설한 때’와 ‘가르침을 받는 대중’이라고 제목을 상세하게 달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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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음락락(圓音落落)에 : 원만한 음성이 널리 퍼져
해십찰이돈주(該十刹而頓周)하고: 십불찰진에 한꺼번에 두루하고.
화엄경 39품 중에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품은 두 품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부처님을 의지해서 보살들이 부처님을 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화엄경 3권까지 보아왔지만, 다른 경전은 부처님이 설하는 경전인데 비해서 이 화엄경은 부처님을 표현한 경이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와 그 능력과 방편과 과거의 수행과 그 과거 수행의 내용과 과거 수행의 시간들 이러한 것들을 끝없이 설명하고 있다.
화엄경은 계속해서 부처님의 교화와 그 행적들을 설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이 아닌 보살의 음성이라도 오히려 원음락락하게 들린다. 멋지고 원만한 음성이 널리 퍼지는 것이다. 그것이 십불찰진에 한꺼번에 다 그렇게 두루한다. ‘경을 설하는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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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설법하는 위의를 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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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반중중(主伴重重)에 : 어떤 사람이 주인이 되면 상대는 벗이 되고, 또 상대가 주인이 되면 그 사람이 벗[伴]이 된다.
여러분이 도반의 절에 가면 도반이 주인이고, 여러분이 벗이다. 그런데 그 도반이 다음날 여러분 절에 온다면 도반은 어제는 주인이었어도 오늘은 벗이 된다.
법회 역시 그렇다. 누구의 수준이 높고 낮아서 법회의 주인이 되고 벗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설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면 듣는 사람은 무조건 반(伴)이 다. 반대로 어디선가 반(伴)이 설한다면 그가 주인이 되고 나머지는 전부 다시 반(伴)이 된다.
그것이 중중 중중 중중하고 무진 무진 무진하다고 표현한다. 화엄경 법문이 이렇게 중중하고 무진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본 것만 하더라도 중중 중중 중중이고 거듭 거듭 무진 무진이다. 그래서 주반이 중중하며
극시방이제창(極十方而齊唱)이라 : 모든 시방에서 다 같이 노래하도다.
어느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한 주산신이나 한 주림신이 나오면 그 외 십 명이 다 나온다.
우리가 흔히 방향을 나타낼 때 팔방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굳이 시방을 말한다.
이것은 열 가지 방향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완전무결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은 현재 있는 이대로 알고 보면 완전무결한 곳이다. 우리의 삶은 완전무결하다. 우리는 완전무결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삶은 이대로 완전무결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엄경은 따로 애써서 무슨 수행을 하는 이야기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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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주인과 벗이 중중(重重)하여 시방에서 다 같이 노래한다. 서로서로 다 같이 부처님의 경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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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門 언해본말(言該本末): 말씀이 근본과 지말을 다 갖추다.
이 해(該)자는 해십찰이돈주(該十刹而頓周)라든지 언해본말(言該本末) 등에서처럼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글자인데도 잘 쓰는 글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모두 해, 포함할 해, 갖출 해 등등의 뜻이다. 여기서는 ‘모두 갖추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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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제 5문을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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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문은 두 단락으로 나눠졌는데,이(理)와 사(事)를 상대하여 본말(本末)을 논하는 것이 첫 단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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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공절적(雖空空絶跡)이나 : 비록 비고 비어 자취가 끊어졌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텅 빈자리인데
이의천지성상(而義天之星象)이 찬연(燦然)이요 : 진리의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고.
의천은 진리의 하늘인데 대각국사 의천(義天)스님도 있다. 저도 그 의미가 좋아서 여천(如天)이라는 호를 지어서 쓰는데 여(如)는 진리라고 하는 뜻으로 의(義)와 같은 뜻이다. 불교에서 진리라고 하는 여(如)는 여여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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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하다.’
한 마디도 붙일 수 없는 그 자리이다. 그러면서도 그 이치를 낱낱이 들어서 이야기하기로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표현하는 말들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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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망언(湛湛亡言)이나 : 고요하고 고요하여 말이 없으나
이교해지파란(而敎海之波爛)이 호한(浩澣)이로다 : 가르침의 바다에는 물결이 크고 넓도다.
가르침의 바다에 그 물결은 얼마나 넓고 넓은가, 가르침의 바다는 호한(浩澣)하다.
특히 화엄경은 그렇다. 법화경이나 금강경도 대승경전으로서 훌륭하지만, 화엄경은 이렇게 정말 호한하다. 넓고 깊다. 역시 화엄경이다.
그래서 사실 화엄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길은 그냥 이 화엄바다에 푹 빠져서 그 맛을 그저 읊조리고 읽고 음미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 뿐이다.
저는 그 화엄경의 길로 다만 안내의 역할이나 조금 할까 하는 기대는 하지만, 설명해 봤자 그 백 분의 일도 다 이야기 하지 못한다. 화엄경은 그렇게 호한한 경전이고 심심(甚深)한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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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락- ‘모든 교(敎)를 상대하여 본말(本末)을 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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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내천문잠주(若乃千門潛注)는 : 천문으로 스며 흘러드는 것은
여중전위홍원(與衆典爲洪源)이요 :온갖 경전의 큰 근원이 된다.
모든 경전의 근원이 되는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에는 없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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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교귀(萬德交歸)는: 만덕이 함께 돌아오는
섭군경위권속(攝群經爲眷屬)이로다 : 여러 경전을 거두어 전부 권속을 삼도다.
나중에 소개해 드리겠지만, 뒷사람들이 그 경의 내용을 보아서 ‘이것은 화엄부의 경이다’라고 화엄경 권속으로 표시한 경도 있다.
여기 내용은 그러한 경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들이 전부 화엄부의 권속이다’라는 뜻이다.
여러 경전을 포섭해서 전부 화엄경의 권속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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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해인사에 어떤 노스님이 계셨다. 그 분은 선방에 늘 계셨고, 참 자비로운 분이었는데 본래 경을 많이 본 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시기를 좋아해서 보통 두 시간을 훌쩍 넘기시니까 이것을 아는 학인들은 스님이 오면 멀리 피하곤 했다. 어쩌다 그 스님에게 “스님, 그 말씀이 부처님 경전 어느 경전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무조건 대답하시기를 “화엄경에 있는 말이지요.” 라고 하셨었다.
물론 그분이 화엄경을 보신 분도 아니다.
화엄경은 그만치 불교 경전에서는 그렇게 추앙을 받고 대접을 받으며 없는 것이 없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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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 두 번째 내용을 이렇게 간단하게 살피고 경문으로 들어가겠다.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四
世主妙嚴品 第一之四
(6) 第五行의 主火神
가, 主火神衆의 得法
復次普光焰藏主火神은 得悉除一切世間闇解脫門하고 普集光幢主火神은 得能息一切衆生의 諸惑漂流熱惱苦解脫門하고 大光遍照主火神은 得無動福力大悲藏解脫門하고 衆妙宮殿主火神은 得觀如來神通力으로 示現無邊際解脫門하고 無盡光髻主火神은 得光明照耀無邊虛空界解脫門하고 種種焰眼主火神은 得種種福莊嚴寂靜光解脫門하고 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은 得能滅一切世間諸趣熾然苦解脫門하고 威光自在主火神은 得自在開悟一切世間解脫門하고 光照十方主火神은 得永破一切愚癡執着見解脫門하고 雷音電光主火神은 得成就一切願力大震吼解脫門하시니라
또한 보광염장주화신(普光焰藏主火神)은 모든 세간의 어두움을 다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집광당(普集光幢)주화신은 일체중생이 여러 가지 번뇌로 흘러다니는 시끄러운 고뇌를 쉬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대광변조(大光遍照)주화신은 흔들리지 않는 복력(福力)과 큰 자비의 창고인 해탈문을 얻었고,
중묘궁전(衆妙宮殿)주화신은 여래의 신통력으로 끝없는 데까지 나타냄을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무진광계(無盡光髻)주화신은 광명이 끝없는 허공계에 밝게 비치는 해탈문을 얻었고, 종종염안(種種焰眼)주화신은 갖가지 복으로 장엄한 고요한 광명의 해탈문을 얻었고,
시방궁전여수미산(十方宮殿如須彌山)주화신은 온갖 세간 여러 갈래의 치성한 고통을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위광자재(威光自在)주화신은 온갖 세간을 자재롭게 깨우치는 해탈문을 얻었고,
광조시방(光照十方)주화신은 온갖 어리석고 집착한 견해를 아주 깨뜨리는 해탈문을 얻었고, 뇌음전광(雷音電光)주화신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여 크게 외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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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행을 표한 주화신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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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신과 그 대중들이 얻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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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신(主火神)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불의 속성을 말한다. 사실 모든 것은 다 신격화해도 좋다. 꽃은 그대로 꽃신이요, 다신전이라는 책도 있듯이 차는 그대로 차신이다. 심지어 야구에서는 야신이라는 말을 쓰고 도박을 하는데도 도신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 정신은 좋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모든 것을 신성시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이 있다’고 해서 어떤 새로운 존재가 스며들어서 함부로 하면 동티나는 그런 신이 아니다. 꽃 한 송이라도 신성시하고, 심지어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보살이다,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불[火]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불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 우리는 불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글도 못 보고 책도 못 읽고 밥도 못 해먹는다. 불의 속성과 불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주화신들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지고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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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보광염장주화신(復次普光焰藏主火神)1은: 장(藏)자가 있으니까 갈무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크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갈무리하고 있다. 아직 불이 밖으로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득실제일체세간암해탈문(得悉除一切世間闇解脫門)하고 : 일체 세간의 어둠을 다 제거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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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집광당주화신(普集光幢主火神)2은 : 빛 광(光)자가 앞에도 나왔는데 여기 또 나온다. 여러 번 나오는 글자다.
불이라고 하는 것은 뜨거운 성질도 있지만, 일단 그 성질의 첫째가 빛이다. 두 번째 성질이 열기다. 그렇기 때문에 빛 광(光)자를 많이 썼다.
득능식일체중생(得能息一切衆生)의 : 일체 중생들의
제혹표류열뇌고해탈문(諸惑漂流熱惱苦解脫門)하고 :여러 가지 미혹으로써 뜨거운 번뇌의 고통에 표류하는 것을 식히는 해탈문을 얻었다.
중생은 뜨거운 번뇌의 열기에 표류 하는데, 그 열기를 식혀줘야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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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변조주화신(大光遍照主火神)3은
득무동복력대비장해탈문(得無動福力大悲藏解脫門)하고: 무동복력대비장이라는 해탈문을 얻었다.
복력은 끊임없이 있어야 된다. 그런 복이 무루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루복을 중시여기고 무슨 복을 지어도 무루복이 되도록 지어야 한다. 무동복력(無動福力)이라고 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변화가 없는 복의 힘이다. 그것은 대비(大悲)로부터 온다. 그런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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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묘궁전주화신(衆妙宮殿主火神)4은
득관여래신통력(得觀如來神通力)으로 : 여래의 신통력으로써
시현무변제해탈문(示現無邊際解脫門)하고 : 가없는 경계까지 시현하는 것을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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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광계주화신(無盡光髻主火神)5은
득광명조요무변허공계해탈문(得光明照耀無邊虛空界解脫門)하고 : 무변허공계를 광명으로 환히 비추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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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염안주화신(種種焰眼主火神)6은
득종종복장엄적정광해탈문(得種種福莊嚴寂靜光解脫門)하고 : 가지가지 복으로써 장엄한 적정광의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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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궁전여수미산주화신(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7은: 시방궁전이 마치 수미산과 같은 주화신은
득능멸일체세간제취치연고해탈문(得能滅一切世間諸趣熾然苦解脫門)하고: 일체세간의 모든 갈래들이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고통 받는 것을 능히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제취는 교리적으로는 지옥,아귀,축생, 인도, 천도 등을 말하지만, 이 세상 여러 형태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의 다종다양한 삶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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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광자재주화신(威光自在主火神)8은
득자재개오일체세간해탈문(得自在開悟一切世間解脫門)하고 : 일체 세간을 자유자재 하게 열어서 깨닫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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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조시방주화신(光照十方主火神)9은
득영파일체우치집착견해탈문(得永破一切愚癡執着見解脫門)하고 :집착하는 것을 영원히 깨뜨려 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어떤 소견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어서 그렇다. 어리석기 때문에 어떤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깨뜨려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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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음전광주화신(雷音電光主火神)10은
득성취일체원력대진후해탈문(得成就一切願力大震吼解脫門)하시니라 : 일체 원력으로 크게 부르짖는, 그것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원력이 큰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된다. 또 당당하게 큰소리 칠 수가 있다. 말소리 한 마디도 안 해도 큰소리가 된다. 음성이 크다고 큰 소리가 아니다. 괜히 약한 사람이 음성이 크다. 조용히 있어도 원력이 강한 사람은 큰소리가 된다.
나, 偈頌讚歎
爾時에 普光焰藏主火神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主火神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汝觀如來精進力하라 廣大億劫不思議에
爲利衆生現世間하사 所有暗障皆令滅이로다
衆生愚癡起諸見하야 煩惱如流及火然이어늘
導師方便悉滅除하시니 普集光幢於此悟로다
福德如空無有盡하야 求其邊際不可得이라
此佛大悲無動力이시니 光照悟入心生喜로다
我觀如來之所行컨대 經於劫海無邊際라
如是示現神通力이라 衆妙宮神所了知로다
億劫修成不可思여 求其邊際莫能知라
演法實相令歡喜케하시니 無盡光神所觀見이로다
十方所有廣大衆이 一切現見瞻仰佛이어늘
寂靜光明照世間하시니 此妙焰神所能了로다
牟尼出現諸世間하사 坐於一切宮殿中하야
普雨無邊廣大法하시니 此十方神之境界로다
諸佛智慧最甚深이라 於法自在現世間하사
能悉闡明眞實理하시니 威光悟此心欣慶이로다
諸見愚癡爲闇蓋하야 衆生迷惑常流轉이어늘
佛爲開闡妙法門하시니 光照方神能悟入이로다
願門廣大不思議라 力度修治已淸淨하사
如昔願心皆出現하시니 此震音神之所了로다
그때 보광염장주화신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주화신 대중들을 널리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희는 여래의 정진(精進)의 힘을 보아라
광대한 억 겁이 부사의한데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세간에 나타나사
모든 어려움을 다 소멸하시네
중생의 어리석음이 온갖 소견 일으켜서
번뇌가 물 흐르듯 불이 타는 듯
도사(導師)가 방편으로 다 소멸하시니
보집광당주화신이 여기에서 깨달았네
복덕이 허공 같아 다함없어서
그 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어서
이는 부처님 큰 자비의 흔들림 없는 힘이시니
광조주화신이 깨닫고 마음에 기뻐했네
내가 여래의 행하심을 보니
끝없는 겁의 바다를 지나는 동안
이와 같이 신통력을 나타내시네
중묘궁주화신이 밝게 알았도다
억 겁 동안 닦은 것 헤아리지 못함이여
그 끝을 찾을래야 알 길 없어라
법의 실상을 연설하여 기쁘게 하니
무진광(無盡光)주화신이 본 것이로다
시방에 있는 광대한 대중이
모두 나타나 부처님을 우러러 보거늘
고요한 광명으로 세간을 비추시니
이것은 묘염주화신이 안 것이로다
모니(牟尼)께서 여러 세간에 출현하사
모든 궁전 속에 앉으사
끝없고 광대한 법을 널리 비 내리시니
이것은 시방주화신의 경계로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가장 깊음이여
법에 자재롭게 세간에 나타나사
진실한 이치를 다 밝히시니
위광주화신이 이것을 깨닫고 마음에 기뻐했네
어리석은 소견에 덮이어서
중생들이 미혹으로 늘 흘러 다니거늘
부처님이 묘한 법문 열어주시니
이것은 조방주화신이 깨달아 들어갔네
서원의 문은 광대하여 부사의함이라
힘[力]바라밀을 닦아서 이미 청정하사
옛적 서원한 마음으로 다 출현하시니
이것은 진음주화신이 안 것이로다.
*
주화신의 찬탄
*
그 때에 보광염장주화신(普光焰藏主火神)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일체주화신중들을 널리 관찰하고 게송을 설해 말하대
*1
여관여래정진력(汝觀如來精進力)하라 :그대는 여래의 정진의 힘을 보라. 정진력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여래의 정진력을 한 번 잘 관찰해보라.
광대억겁부사의(廣大億劫不思議)에 : 광대억겁은 불가사의한 세월이다. 우리가 10년 공부, 20년, 30년을 공부했다는 것은 명함도 못 낸다.
위리중생현세간(爲利衆生現世間)이라 : 그 많은 세월들을 전부 중생에게 이익이 되고 보탬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이익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스님들이나 모든 불자들은 부처님 제자가 된 이상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보탬이 되어야 한다. ‘저 사람 아무 보탬이 안 된다’는 말을 가까운 사이에 잘 쓰지만, 이 세상에 어떤 면에서든지 보탬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위리중생현세간(爲利衆生現世間)이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세간에 왔다. 세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소유암장개영멸(所有暗障皆令滅)이로다 : 있는 바 어둠의 장애를 소멸하게 한다.
세상에 온갖 복지 단체가 많은데 그 중에서 불교는 진리의 가르침, 바른 이치를 통해서 어리석고 어두운 장애들을 소멸하도록 해주는 것이 일차적인 임무다.
*2
중생우치(衆生愚癡)로 기제견(起諸見)해서 : 중생이 어리석음 때문에 여러 가지 소견을 일으켜서.
어리석은 한 생각은 평생을 좌우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소견을 비우고 비우면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르침의 말씀들을 널리 받아들여서 자신을 거르고 바로잡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좁은 소견에 얽매여 버리면
번뇌여류급화연(煩惱如流及火然)이어늘 : 번뇌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아서
도사방편실멸제(導師方便悉滅除)하시니 : 도사께서 방편으로 실멸제하시니, 깨달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중생들의 그 어리석음을 다 소멸해줄까, 저 치우친 소견을 소멸해줄까, 어리석음을 소멸해줄까 하는 그 생각 하나다.
보집광당어차오(普集光幢於此悟)로다: 보집광당주화신(普集光幢主火神)이 이것을 여기에서 깨달았더라.
부처님의 그러한 면, 불교의 그러한 면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온 것 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된 것이 어리석음 문제와 지혜의 문제이다.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것이 중생들이 고통을 받으므로 자비나 연민의 문제인데, 그 중에서도 자(慈)보다는 비(悲)를 더 많이 강조한다. 비는 어여삐 여기고 연민히 여기는 마음이다.
* 3.
복덕여공무유진(福德如空無有盡)하야 : 복덕이 허공과 같아서 다함이 없어
구기변제불가득(求其邊際不可得)이라 : 부처님의 복이 끝이 없는데 그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구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해봐야 찾을 길이 없다. 불가득이다. 부처님의 덕은 그와 같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저 깊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복의 끝간 데 없음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복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도 끝간데 없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인생과 바로 연결 지어져 있고, 우리들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차불대비무동력(此佛大悲無動力)이시니 : 이것은 부처님의 커다란,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움직일 수 없는 힘이다.
광조오입심생희(光照悟入心生喜)로다 :광조주화신[大光遍照主火神]이 깨달아 들어가서 마음에 기쁨을 내더라.
전에도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대만의 자제공덕회 증엄스님이 처음 발심한 것은 병원에 위문을 갔다가 피를 흘리면서도 돈이 없어서 입원하지 못하는 산모의 고통을 보면서였다. 물론 평소에도 마음속에는 자비심이 있었을 것이다.
환자를 보고 연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발심한 증엄스님은 지금까지도 무동력이다. 그 자비심이 변함이 없어서 갈수록 봉사활동이나 의료사업이 번창하고 구고구난의 사업이 뛰어나다. 그것이 대비무동력이다.
우리도 좋은 마음을 냈지만 그 마음이 오래 가지 않는다면 자꾸자꾸 자비심을 더 내야 한다. 자비심이 많아지면 그 힘이 오래간다.
*4
아관여래지소행(我觀如來之所行)컨대 : 내가 여래의 행하신 바를 관찰해보건대
경어겁해무변제(經於劫海無邊際)라 : 겁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인데 오랜 세월이다 보니 바다 해(海)자를 써서 겁해라 표현한다. 부처님은 끝없는 겁의 바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여시시현신통력(如是示現神通力)이라 :이와 같이 신통력을 시현함이라
중묘궁신소요지(衆妙宮神所了知)로다 : 중묘궁주화신[衆妙宮殿主火神]이 요지한 바더라.
*5
억겁수성불가사(億劫修成不可思)여 : 억 겁 동안 닦고 이룬 것의 불가사의함이여
구기변제막능지(求其邊際莫能知)라 : 그 끝을 구하려 해도 능히 알지 못하겠더라. 얼마나 수행을 많이 하고 복을 많이 닦고 지혜를 많이 닦았는지 그 끝을 알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수행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연법실상영환희(演法實相令歡喜)케하시니 :. 결국은 설법이다. 무엇을 설법하는가, 존재의 실상을 설법한다. 존재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한 이치, 참다운 이치이다. 모든 존재와 사건, 일체 사건과 사물의 참다운 이치를 설법하는 것이고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 그렇구나’하고 중생들이 기뻐한다.
*
부처님이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수행했다고 해도, 그 수행한 것은 결국 설법으로 드러난다. 설법의 내용은 존재의 실상이다. 이를 통해 중생을 기쁘게 해준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이 불교의 전부다.
*
무진광신소관견(無盡光神所觀見)이로다 :무진광주화신[無盡光髻主火神]이 본 바더라.
*6
시방소유광대중(十方所有廣大衆)이 : 시방에 있는 광대한 대중들이
일체현전첨앙불(一切現前瞻仰佛)이어늘 : 모두가 앞에 나타나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다 불교, 불교하고 부처님 부처님이 하고 있지 않는가.
적정광명조세간(寂靜光明照世間)하시니 : 고요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비추시니
차묘염신소능료(此妙焰神所能了)로다 : 이것은 묘염주화신[種種焰眼主火神]이 능히 깨달은 바더라.
*7
모니출현제세간(牟尼出現諸世間)하사 : 석가모니 할 때의 모니다. 모니는 현자, 성자라는 뜻이다. 성자가 모든 세간에 출현하시사
좌어일체궁전중(坐於一切宮殿中)하야 : 일체궁전 가운데 앉아 계시사
보우무변광대법(普雨無邊廣大法) : 무변하고 광대한 법을 널리 비내리신다. 이것이 성자의 할 일이다. 성자의 할 일은 설법이다.
차시방신지경계(此十方神之境界)로다 : 이것은 시방주화신[十方宮殿如須彌山主火神]의 경계더라.
* 8.
제불지혜최심심(諸佛智慧最甚深)이라 :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깊음이라.
어법자재현세간(於法自在現世間)하사 : 법에 자재하게 세간에 나타나시사,
능실천명진실리(能悉闡明眞實理)하시니 : 능히 모두 다 진실한 이치를 천명한 것이다.
고통에 사로잡혀있고, 어렵게 살아도 결국은 진실한 이치를 설법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다. 진실한 이치만 깨우치면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지를 알고,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를 알게 된다. 전부 이치에 달렸기 때문이다.
일체가 이치의 문제다. 부자가 되려는 것도 머리가 영리해지는 것도 모두 다 이치를 알면 해결할 수 있다.
일체가 이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성자들은 끊임없이 진실한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 복이 제일 큰 복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면 유루복인 물질복도 따라온다.
내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부처님 앞에 무슨 과일이다 떡이다 쌀이다 밥이다 뭐다 해서 산더미처럼 올린다. 심지어 돈까지 올린다. 부처님이 무슨 물질 복을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진리의 복, 바른 이치의 복만 지어도 물질도 역시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위광오차심흔경(威光悟此心欣慶)이로다 : 위광주화신[威光自在主火神]이 이것을 깨달아서 마음에 기뻐하고 경사스럽게 여기더라.
부처님과 불교와 불교의 깊은 의미를 한껏 찬탄하는 내용들이다.
*9
제견우치위암개(諸見愚癡爲闇蓋)하야 : 여러 가지 소견에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이 어둠으로 덮어놓은 것과 같다.
어리석음은 두꺼운 흙으로 캄캄하게 덮어 놓은 것과 같고, 안개와 같고, 어둡고 캄캄한 밤과 같다. 이렇게 중생들이 어리석은 것은 소견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른 견해[正見]이야기를 자주 한다.
중생미혹상류전(衆生迷惑常流轉)이어늘 : 중생들이 미혹해서 항상 유전하거늘
불위개천묘법문(佛爲開闡妙法門)하시니 : 부처님이 그들을 위해서 미묘한 법문을 열어보이시니. 부처님은 끊임없이 이렇게 진리의 가르침을 이야기 한다.
차조방신능오입(此照方神能悟入)이로다 : 이것은 조방주화신[光照十方主火神]이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10
원문광대부사의(願門廣大不思議)라 : 원력의 문은 광대해서 불가사의함이라.
사실은 원력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오직 원력에 달렸다. 원력은 그 사람의 꿈이요 희망이요 인생이다.
역도수치이청정(力度修治已淸淨)하사: 그런 어떤 바라밀도 다 닦고 다스려져서 이미 청정해져서.
화엄경에서는 육바라밀 다음에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가 보태져서 십바라밀을 이야기 한다.
원문(願門)이라고 하는 것은 원(願)바라밀에 해당이 되고, 역도(力度) 하는 것은 역(力)바라밀에 해당이 된다.
역바라밀은 선행을 실천하는 힘과 참되고 거짓된 것을 판별하는 힘이다.
여석원심개출현(如昔願心皆出現)하시니 : 옛날에 원(願)했던 마음과 같이 다 출현한다. 역(力)바라밀을 통해서 그 원(願)이 나타나는 것이다.
차진음신지소료(此震音神之所了)로다 : 이것은 진음신[雷音電光主火神]이 깨달은 바더라.
첫댓글 매월 수고해주신덕에 편히 앉아서 공부할수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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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방식을 비웠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이 보인다...[虛含萬象]...가슴깊이 스며듭니다..혜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_()()()_
湛智海之澄波(잠지해지징파)가 虛含萬象(허함만상)이요...맑은 지혜가 있을 때 텅 비어 만상을 다 품는다. 고맙습니다._()()()_
내 삶의 방식을 비웠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이 보인다. 맑은 지혜가 있을 때 허함만상(虛含萬象)이 가능한 것이다. 언제나 바다로 인도하시는 가르침! 고맙습니다. 헤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_()()()_
慧明華님 고맙습니다. _()()()_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깊음이라.법에 자재하게 세간에 나타나시사 , 능히 모두 다 진실한 이치를 천명한 것이다...고맙습니다_()()()_
일체가 이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성자들은 끊임없이 진실한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고맙습니다혜명화님_()()()_
역바라밀...선행을 실천하는 힘과 참되고 거짓된것을 판별하는힘.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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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한 생각은 평생을 좌우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소견을 비우고 비우면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르침의 말씀들을 널리 받아들여서 자신을 거르고 바로잡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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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텅비어 있음. 空--무한히 넓은 하늘을 나타냄.
혜명화님 속 역시 가을 햇살처럼 넉넉하십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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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이 큰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된다. 또 당당하게 큰소리 칠 수가 있다. 말소리 한 마디도 안 해도 큰소리가 된다. 음성이 크다고 큰 소리가 아니다. 괜히 약한 사람이 음성이 크다. 조용히 있어도 원력이 강한 사람은 큰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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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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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 9-1. 世主妙嚴品 第1의4. 大衆의 得法과 讚佛(十回向位衆 第5行, 油印物-往復序2 第4門~5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