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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운오리새끼’ 아닌 ‘백조’가 되어…
목청킹으로 거듭난 야식배달부 김승일 씨
오디션을 본 인씨엠예술단도 혼이 담긴 소리,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지녔다며 그를 주인공 ‘로돌프’ 역에 내정해놓은 상태다.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오히려 승일 씨는 조심스럽다. 오페라 출연 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이 역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오히려 선배들에게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문제도 여전히 그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다.
새벽 1시, 쟁쟁한 스타지망자들이 나름의 실력을 한껏 뽐낸 뒤에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에게 주어진 2분 남짓한 시간은 그동안 기다렸던 여덟 시간에 비하면 희생이나 다름없었다. 하루의 생업을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녹화장에 온 사장님께 죄송하고, 이미 잠긴 목소리로 준비한 곡 ‘네순도르마’를 소화할 자신도 없었다. 패널들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2분마저도 편집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 날 시청자들의 기억에는 ‘김승일’이라는 이름만 각인됐다. 심사위원 김인혜 교수(서울대 성악과)는 “지금까지 이런 음색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와 라이벌이다”라며 극찬했고, 이어 그가 성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절절한 사연은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지난해 연말 SBS TV <스타킹>에 출연한 김승일 씨(34세)의 이야기이다. 방송이 끝난 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에는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라는 단어가 상위권에 랭크됐고,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승일 씨를 응원하는 글이 도배하다시피 올라왔다. 프로그램 관계자도 승일 씨의 출연 이후 처음으로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행복한 연말을 누렸다.
반면 승일 씨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다. 방송이 나간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승일 씨는 여전히 오리털 점퍼에 모자를 눌러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야식 배달을 하는 청년이다.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비와 빚을 갚고 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인생관은 달라졌다. 이전까지 승일 씨는 자신은 남에게 방해만 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느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방송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자신도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보람을 느꼈고,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싫었다”
지난 34년간 가난에 찌들었던 삶이었다. 늘그막에 낳은 막내아들은 ‘음악’한답시고 학교에서 밴드를 만들어 이곳저곳 등용문을 찾아 기웃거렸다. 타고난 목소리 덕분에 라디오프로그램 ‘별밤’에서도 대상을 탔지만, 부모님은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또 지원해줄 여력도 없었다.
그러던 중 성악을 전공했던 고 3 담임선생님이 승일 씨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여 성악레슨을 도와주었다. 부모님은 가수 승일이 보다는 성악가 승일이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없는 돈도 짜내어가며 승일 씨의 진학을 도왔다. 종일 세차장에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새벽마다 막내 자식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의 간구를 들으셨는지, 승일 씨는 입시학원에서 1년 공부해도 들어갈까 말까한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당당하게 입학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승일 씨는 학교를 휴학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고, 군에 입대하여 등록금을 병원비에 충당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세 차례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군에서 제대했을 때 어머니의 병세가 좀 호전됐어요. 어머니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 해 실기, 필기 모든 영역에서 1등을 했는데, 그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였지요.”
승일 씨는 미련 없이 학업을 포기했다. 자신을 뒷바라지 하느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모태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교회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교회에서 성가대 봉사를 하며 노래하는 것도 죄송스러웠다.
그렇게 승일 씨는 스스로 자신의 꿈과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한 채 각박한 세상살이를 택했다. 유흥업소 삐끼, 택배기사, 노점상, 치킨집 사업 등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세상은 승일 씨를 외면하기라도 하는 듯, 모든 사업이 실패하고 병원비로 들었던 빚과 더불어 승일 씨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야식 배달원 자리가 났다. 선한 마음씨를 지닌 야식집 사장은 승일 씨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7년을 함께 하며 승일 씨는 지난날의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배달을 할 때에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노래를 흥얼거렸다. 승일 씨의 사연과 그의 성실함을 아는 사장은 그가 다시 꿈을 꾸는 것을 돕고 싶었다. 마침 TV에서 ‘기적의 목청킹 프로젝트’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그리고는 “못하겠다”는 승일 씨를 억지로 설득하여 간단한 노래와 사연이 담긴 동영상을 찍어 방송국으로 보냈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결말은…
방송 당시 김인혜 교수는 감동의 눈물을 쏟아내며 “실력만 놓고 보면 폴 포츠보다 낫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김 교수는 승일 씨를 오는 2월에 공연할 오페라 ‘라보엠’(인씨엠예술단 주최)의 언더스터디(출연 배우가 사정이 생겨서 출연하지 못할 경우 대신 무대에 서는 배우)로 추천했다. 또 틈나는 대로 힘이 되는 성경구절과 응원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승일 씨의 멘토가 되기를 자임했다.
“승일 씨는 마치 성경 속 요셉을 떠오르게 해요. 하나님께서 승일 씨에게 놀라운 달란트를 주시고는 그 달란트를 그 분의 뜻에 맞게 사용할 때까지 연단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운 시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목이 잘 관리되어 있어요. 성악가는 30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이루는데, 지금 승일 씨의 하드웨어는 전성기를 맞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요.”
오디션을 본 인씨엠예술단도 혼이 담긴 소리,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지녔다며 그를 주인공 ‘로돌프’ 역에 내정해놓은 상태다.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오히려 승일 씨는 조심스럽다. 오페라 출연 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이 역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오히려 선배들에게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문제도 여전히 그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다.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면 야식배달을 그만둬야 하는데 그래서는 빚을 갚기는커녕, 당장의 생활비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승일 씨는 이 뮤지컬을 계기로, 행여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번 뮤지컬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도약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자신의 가치를 알았으니 이제는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방송 이후 어떤 분이 제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겼어요. 2년 동안 방황했는데 방송에서 제 노래를 듣고 방황을 멈추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였어요. 또 어떤 아주머니는 제 나이쯤 되는 아들이 있다며, 어머니의 심정에서 제가 다시 노래를 하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이라는 글을 남기셨지요.”
승일 씨의 이야기는 동화 ‘미운오리새끼’를 생각나게 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식한 승일 씨가 백조로 비상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승일 씨가 비상할 때 그 광경을 보는 수많은 미운오리새끼들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테니 말이다. (2011.1.5.아름다운동행/사진= 김승범 기자 글= 편성희 기자)
기부는 '크레센도' '포르테시모'
자신의 재능과 지위를 기부하는 성악가 김인혜 교수
그는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를 택한다. 그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난받고, 설령 교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성격을 어떻게 바꾸냐”며 대범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변에서 “수준 떨어진다”며 만류했던 스타킹에 출연했고, 구청에서 하는 10주짜리 문화센터 강사를 자원하고, 낙도 및 도서지역을 찾아다니며 자선음악회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본업인 성악가, 오페라 가수보다 여자 강호동, 음치잡는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김인혜 교수(서울대 성악가)이다.
최근 김인혜 교수 팬카페에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 교수님답지 않게 너무 푸근하세요, 엄마보다 아줌마한테 고민을 털어놓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저에게도 희망을 주세요 등의 글이 부쩍 늘었다.
동양인최초로 줄리어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에서는 “최고의 소프라노”라며 <뉴욕타임즈>지가 호평을 하는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은 우리와는 다른 레벨의 사람일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신의 이력 때문에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를 택한다. 그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난받고, 설령 교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성격을 어떻게 바꾸냐”며 대범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변에서 “수준 떨어진다”며 만류했던 스타킹에 출연했고, 구청에서 하는 10주짜리 문화센터 강사를 자원하고, 낙도 및 도서지역을 찾아다니며 자선음악회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줄리아드에 전도하러 왔니?
김 교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좋단다. 그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고민거리였다. 별 것 아닌 고민에서부터 가슴시리고 절절한 사연까지, 김 교수는 그들과 함께 울어 주었다. 또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그것들을 마음에 품고 흐느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김 교수를 의지하고, 자연스럽게 전도까지 이루어졌다.
이에 성악가들의 ‘드림하이’인 줄리아드에서는 김 교수 덕분에 CCC 동아리가 활기차게 운영될 정도였다. 당시 김 교수와 함께 줄리아드에서 공부했던 신영옥(소프라노) 씨는 “넌 줄리아드에 공부하러 왔니, 전도하러 왔니”라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김 교수는 줄리아드에서 보낸 10년이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기였다고 했다. 또 이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성악가 김인혜’가 있을 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하여 핏덩어리 아이를 시댁에 맡겨 놓고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생활을 했어요. 아이가 눈에 밟혀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10개월을 오매불망하다가 다시 만난 딸아이는 저를 보자마자 울어대는데, ‘내 인생이 이게 뭔가, 자식조차 제대로 품지 못하고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회한이 밀려오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임신을 했어요. 학업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저만 바라보는 후배들을 버릴 수 없었어요. 제 슬픔을 알고 남몰래 기도해주는 후배들을 보면서, ‘내가 선배로서, 신앙의 자매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면 안되겠다’라는 결심을 했지요.”
김 교수는 더욱 후배들을 섬겼다. 밤낮 가리지 않고 “언니, 간사님”하며 김 교수를 찾던 후배들은 줄리아드에서 적응하여 어느새 유명 성악가의 위치에 올랐고, 김 교수 역시 동양인 최초로 줄리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자신을 멀리하던 딸은 지금은 엄마를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엄마처럼 되고 싶다”며 줄리아드에 입학했는데, 엄마의 삶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곳에서 공부보다 자원봉사에 열심이다.
사실 김 교수는 고인이 된 부친의 영향을 받은 면도 없지 않다. 고향을 북에 둔 부친은 생전에 북한 선교를 위해 빚을 들여가며 중국을 30번 이상 왕래하고, 소천한 뒤에도 연구에 써달라며 모든 장기를 서울대에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어린 시절이라 김 교수가 부친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줄리아드 이후로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하게 된 게다. 부친의 인생관은 3대째 계승되는 복을 얻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동역의 진리인 것을 그때 이해했지요. 제 상황만 바라봤다면 지금의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덕분에 저는 진리와 가치를 따를 때만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됐지요. 앞으로도 저는 크레센도(점점 크게), 포르테시모(아주 세게)로 진리와 가치를 따를 거예요.”
제 2, 제 3의 김승일을 찾기 위해
김 교수의 다이어리를 보니 다 헤져서 군데군데 기운 자국도 보였다. 안은 더 가관이다. 매일 한 두 차례 이상의 스케줄이 기록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생명, 자선, 구민을 위한 등 음악회 앞에 붙어있는 명칭이었다.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그녀의 말을 더욱 실감나게 들렸다.
특히 김 교수는 오는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할 오페라 ‘라보엠’(인씨엠예술단 주최)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그녀가 추천한 야식배달부 김승일 씨(아름다운동행 99호 기사 참조)가 상대역으로 출연하기에 한결 설레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또 SBS스타킹의 ‘음치탈출 목청킹프로젝트’에 선정된 9명의 사람들의 클리닉을 진행하고 있고, 김승일 씨나 꽃게잡이 폴포츠 남현봉 씨처럼 재능을 가졌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를 추진하려고 서울대와 협의하고 있다. 과거 주위의 싸늘한 시선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던 도서지역 자선음악회도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하고 싶다고 한다.
“제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때론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 능력이 되는 한 그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요.”(2011.1.19.아름다운동행/편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