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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예술치료(Art Therapy) 읽기”.
-한국조형예술연구소 드림-
안녕하십니까, 한국조형예술연구소의 multiple artiste 이 명환입니다.
즐거운 연휴 잘 보내셨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더불어 연휴의 끝자락에 이구동성 “미술치료”에 관심을 작으시고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 간극 알림-
무겁고 낡은 배로 지구의 70%의 물로 채워진 5대양의 신선한 바다를 읽기위해 순조로운 항해 할 수 있을까? 즐거운 심리를 유발시키는 최적의 항해의 상상의 제안은 여러분들께서 올바른 “예술요법”을 접하는 최초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래-
올바른 "예술치료"읽기
아픈 자아를 위한 진정한 자세.....
“당신은 미술치료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란 질문에.....몇 마디 말이 떠오른다.
35년 전 너 자전 차 있어? (초등학교시절),
15년 전 너 자동차 있어? (대학시절),
당신 어느 대학 나왔어? (졸업 후 창작생활시절 ).
당신 미술치료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 현재 조형예술창작공학 지도교수 )
미술치료를 하기위해 임상 심리학,또는 미술치료학에서 개발해낸 도구, 그림들로 미술치료를 받는 다거나
해준다는 것은 커다란 잘못 된 발상과 오산이다. 즉 그러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를 들쳐 내어
치료라는 명분 하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나타내어진 자아의 실체를 즉 진실을 알기위한
탐구과정(관찰)이다. 그리고 그 관찰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치료라는 것은 진정 치료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형예술활동은 자아를 열여 가장 잘 드러내거나 읽게해주는 내면과 외면의 실체가 가장쉽게 접촉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서, 마치 호흡기관을 통하여 허파까지 공기가 직통으로 다다르는 것처럼.....
전자는 솔직한 자아를 생성하고 후자는 맑은 공기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형예술요법은 조형예술작업을 통하여 표현되어진 표현자의 심리, 정신... 등이 반영되어 나타내어진 것을 근거로 하여
자아의 상태를 읽어 볼 수 있는데, 정상적인 자아를 아프게 하는 요소 , 즉 상처 입은 "마음"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 원인에 의해 아픔마음을 표현하고 분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으로 희망과 긍정적인 실행 뒤에 오는 변화 등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다친 마음 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마음을 다치게 했던, 거부요인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하고 인정하여 마음속에서 떠났던 것들을
마음에 담아서 새롭게 대면하는 자세와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마음으로 돌아온 그 요인의 방향을 처음부터 새로운 방향의 정상적인 자아를 갖게 해 주는 역할을 "미술치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치료는 “미술치료”가 아닌 것이다. 다친 마음의 깊숙한 자아를 투명하게 표출하는 가장 적절한 양식이기 때문에 “미술치료”인 것이다.
미술이란 무의식의 집합체라 하였다. 결국 의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거나, 감상적 이거나, 감정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이거나 ......자아의 모든 상태를 쾌 뚫어 읽어 볼 수 있는 맑은 우물 속과 같다.
그것은 표현자의 내면을 말과 글이 아닌 조형표현(미술)으로 나타내어진 자아가 info하기위해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말하며 그 자아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상 방향이 진행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 예술치료 "라 할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미술치료(child art therapy:예술요법)는 아픈 마음의 치유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예술”이란 영역을 빌어 접근하였을 뿐이다. 행위미술, 음향, 신체활동, rayon예술, Performance...표현영역으로도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영역은 치유를 위한 궁극적인 활동목적인 정상적인 자아에 다다르게 하는 것에 있다.
만약... 가벼운 예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요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만취된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을 통하여 다친 자아를 발견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그 것이 음주치료사인가?
요즘, 사회에 이구동성 “미술치료” 란 말이 있다.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선 이구동성 "미술치료!",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일상 중의 한 영역으로서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음주치료이건 미술치료(예술요법 및 치료)이건 자아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유행이건 비 유행이건
아픈 마음을 치유해야 할 자아가 있다면 실천성이 뒤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 실행자의 인격과 학문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진행자의 자질 문제와 “미술치료사”의 “사”로서 병원의 의사로 착각하는 일로 야기되는 “경재권의 담보”로 보는 시각에 의한 사회적 지위와 선망의 대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에 든 사람은 산을 무의식에 담고 있어 “산, 산, 산...”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없이 사진으로 간직 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진리의 탐구를 위해 자아를 표출하는 태도는 진리만큼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아픈 자아들을 “정신병 환자”로 인식하는 행위는 이미 그 자아는 매력과 진정한 진리에서 점점 이탈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돈을 많이 쌓아 놓고 백만장자가 아닌 은행업무자처럼....
“미술치료”학문에 입문하거나 이미 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자아가 아픈 이들도 동동한 인격체로서 신뢰성을 가지고 대하는 우리들의 피 줄이라는 것이기에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즉 많은 작업을 통한 체험과 선험적 고찰이 필요하다...
세계의 양대 이데올로기인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시대의 학문탐구의 진리는 동동하다.
금세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대 진영에 있어 자본주의 진영에 학문의 유행이라는 추세는 지나친 상업주의가 낳은 현상이다. 가령...유럽의 미술치료사란 말이 유행하던가? 미국의 예술요법은 유행하는가? 그렇다!. 후자에 있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다.
문화식민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학문을 금전적 상업의 매개로 활용한다는 것과... "미국의 예술요법"에 관한 심리학문의 진리가 우리나라의 "미술치료사"로 명명되어 수많은 "미술치료사"가 필요할 만큼 자본 주의세계는 자아를 다치게 하는 요소가 많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면 유럽의 사회주의에는 미술치료사 보다는 심리학자(사)가 많은 이유는 무엇을 뜻하는 가?
심리적인 자아를 치료받기위해 주거지마다 무료 담당 심리사가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자를 견주어 본다면 심리에 의한 자아발견은 여러 매개체를 이용한 "치료"이전의 근본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미술치료(미국에선 예술치료 또는 예술요법/ child art therapy)"는 접근하는 방법일 뿐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러한 진리를 탐구하는 사회의 현상은 1-2백년의 역사에 의해서 이뤄진 학문탐구의 역사가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에도 미술치료사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생업과 직결되는 직업으로서의 학문탐구는 어쩌면 지구의 거대한 상업국가의 심장으로부터 직송된 현상이 아닐까 한다.
결국 자본주의(상업주의)는 기계적 문명 발전으로 야기되는 탈 인간화, 즉 냉소적인 비인간화를 탄생시키는 것은 작금의 현실과 치료를 받아야하는 다친 마음이 많다는 것과, 유럽의 진리탐구적인 학문의 발전과 비교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미국의 예술요법 또는 예술치료가 우리나라의 "미술치료"로 명명하는 것은 유행인가?
과연 “미술치료사”가 유행인가?
과연 자아를 다치게 하는 “사회의 구조”가 유행인가?
과연 미술치료사가 “심리이전”의 학문으로 유행인가 ?
과연 미술치료사의 “ 암기식 실체 ”학문의 유행인가?
....... 많은 것을 묻고 싶다.
끝으로 자아와 자아의 영역으로 “ 미술치료사”가 아니라는 것임과
자아가 뚜렷한 자아가 아픈 자아를 위하여 방향을 이끌어주는 인격과 인격임을
알려주고 싶다. 아프지 않은 자아는 모든 이 즉, “우리”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치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랑과 관심을 가진다면....
아픈 환경을 파악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몫이다. 그 곳으로부터 출발과 결과의
요인제공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치료 이전의 자아를 위한 행동사항
1) 혼자 무의미한 행동의 상황을 만들지 말 것: 혼자 장시간 무의미한 반복적 행동-무의미한 각인:
생활, 시간, 가치판단, 무력감, 생산과 보상적 심리 위축 등등...
2)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의 일상생활: 아름다운 자아로 발전.
3) 타인의 말로 기준삼아 평가하기보다 항상 관찰하는 자세로 문제점을 발견하여 즉시 원래의 자아로
되돌아오게 함.
4) 스트레스를 주지 말 것.
5) 자신과 타인의 인격이 똑 같음을 반복적 교육.
6) 추상적 추측으로 결정을 내려 행동을 가하지 말 것:
7) 인성교육.
8) 권선징악: 잘 못과 그릇됨을 교육하여 도덕적 문제를 인식 자아의 가치관을 일깨워 준다.
9)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일깨워 줌: 사회활동, 일 , 사랑 (Adler).
10) 대화와 관심.
11) 칭찬과 교훈.
12) 올바른 생활습관.
"예술요법"의 이론?
서구의 프로이트 정신분석, 칼 융의 분석요법,
게슈탈트 심리 및 치료, 수잔 랭거 미학의 개념들, 심리학자들의 창조성 이론의 개념적 학문을 토대로 하여 관련된 "예술치료"인 것이다. 더더욱 이것은 "자아를 다친 아동들의 치유목적인 학문과 실제들"로서 모태로 한 우리나라의 "미술치료"는 분명한 “예술치료”가 돌연변이 된 학문상품이라는 향기를 품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한국의 "미술치료" 를 위해 남기는 messages.
진정한 치료제란, 따뜻함,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아픈 자아를 존중하는 마음의 처방약.
1) "예술"?
2) 표현된 예술의 자아 읽기?
3) 타 분야의 전문가의 이론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
4) 원전을 읽고 자아를 발견?.
5) 실제경험이 없이 이론에 입각하여 개요만을 이해?.
6) 다른 논쟁을 따기기 이전 이론과 실제를 이해?
7) "예술치료"를 정상적인 자아 에게도 실행?.
한국의 "미술치료"의 위상에 접근하기 위한 근거자료제시;
Judith A. Rubin는 University of Pittsburgh의 정신과 교수이며 피츠버그 정신분석학교의 초청 교수
.피츠버그의 개인치료소를 가진 예술치료사이자 정신분석가.
저서 "Child Art Therapy/아동예술요법(치료)"
" The Art of Art Therapy,1984"예술과 예술요법(치료)"등이 있다.
Judith A. Rubin 교수의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적 이론 "드러내기와 통찰의 강조"에 대한 논의를 이루는 실체는 총 24 page로,
10page :프로이드 와 칼 융의 심리학적 논의 비교분석과
2page: 4점의 그림,
12 page:미술 임상실험 과정기록.
참고서적 71 권;
1)Media Art:14권. 미디어예술(조형예술).
2)Art Therapy: 4권. 예술요법.
3)Psychotherapy:48권. 정신요법.
Judith A. Rubin는 그의 논의서 24 page를 기술하기 위한 참고서적 71건 중, 조형예술14권, 예술요법(미술치료?):4권, 정신요법 48권의 비례를 보이는 수치의 논문을 참조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것으로서 결국 예술요법은 "미술치료"논의만을 통하여 획득되는 특정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특정한 과정을 거처 한국식"으로 명명되어진 것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 학문의 진리탐구와 도모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공헌하는 실천적 과정들이다. 그 과정에 진리의 핵을 띄어 넘는 것은 부재를 의미한다.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일은 결국 카오스를 의미한다. 이 말은 예술요법을 위하여서는 인간의 교육학적 개념으로서 인류학 및 교육학적 인간발달의 총체적 영역인 인류와 문화, 인류와 지성, 인류속의 사회(국가)관계, 인류와 혁명, 인류속의 개개인의 감정, 심리, 예술 등... 본질의 가치탐구를 접할 의무감을 가져야한다. 그것은 미술치료가 인간의 총체영역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를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술치료"의 논의와 실재의 문제는 아래 사항들을 반영해 볼 필요가 있다;
1) 인류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어 다니는가?.
2) 조류가 태어나는 순간 날아다니는가?.
3) 강한 바람에 부러지는 것은 갈대인가?. (성급한 강한 논리는 강한 거부의 대상)
4) 작은 물줄기의 시작이 없이 계곡과 강이 만들어 지는가?(호수도 ?).
5) 예술요법(미술치료) 논의의 원초적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
6) 영화film이 삭제된 반 토막 영화로 전체의 사실을 말 할 수 있는가?.
7) 지하에 매장된 원유를 끌어 올려 정재 없이 자동차 카브레토에서 분사하여 열에너지 의해 실린더를
움직여 주는가?.
8) 시간을 비례하는 모든 일에 초. 저고속이건 시. 공간을 타임머신처럼 접촉하지 않는 현실을 보았고 체험했는가?.
9) 미술치료는 "알과 닭"의 original 논의와 다름을 어떤 논의를 내세워 전개 할 수 있는가?.
10)예술요법(치료)을 "미술치료"로 명명하는 타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세계의 사학자들의 원전에 명명된" 예술치료"에 대하여 반론 할 논리를 갖고 있는가?.
11) 과연 "미술치료사"이전 인간과 인간으로 아픈 자아를 어떤 인격체로 보는가?
12) "예술요법(치료)"을 위한 심리학자들의 논의 와 실재는 현실인식 및 판단능력에 있어 경미하게 또는 완전히 상실하여 장애를 갖는 다친 자아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요법"의 실재는 어디 곳이 되어야 하는가?.
13) 자아의 존재를 자각하는 활동들 중 충동의 본질이 되는 학업충동 , 즉 습득의 본능을 접촉에서 얻어져 올바른 자아형성에 영향을 주는 교육의 단절과 부재에서 오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감각( 온점, 통점,촉점, 압점).IQ EQ=7Q지향교육] 자아에게 필요한 것이 "미술치료"라고 생각되는가? 생각된다면 논의와 실재를 갖고 있는가?.
예술치료의 대상은?
* 전 연령 다친 자아의 대상인.
*예술치료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전번적인 이론 미술사 ,미학, 심리학, 조형예술이론 과 실제, 교육학, 예술요법 사례 등의 포괄적인 진리 진리탐구의 지속적인 자세와 축적에 의한 전개의 방향에 중심이 서야 한다.
* 정상적인 자아를 지닌 아동들과 구분되는 영역이다.
* 예술놀이를 통한 물리. 심리. 치료를 요구되는 정신보호자 : ex) Art Brut의 거장 Johann Hauser (1926-1996)
EX) Johann Hauser 1926-1996.
Né en 1926 à Pressburg en Autriche. Bien qu’il ait été à l’école quelques années, il n’a jamais appris ni à lire, ni à écrire, ni à compter. Il est interné depuis l’âge de 17 ans à l’hôpital psychiatrique de Gugging, près de Vienne.
En 1958, il exécute son premier dessin, et n’a pas cessé de dessiner depuis lors, des phases d’intense productivité alternant avec des périodes stériles. Il s’inspire en général d’illustrations de magazines. Le Dr Leo Navratil, son médecin, lui a consacré un livre. Johann Hauser est décédé en 1996.
예) 요한 하우저는 1926년 오스트리아 프레스버그에서 출생하여 , 실질적으로 그는 몇 년간의 학교교육 받은 것이 고작이다.
그는 전혀 일기나, 쓰거나 , 숫자의 셈을 못한다. 그의 나이 17세 때부터 비엔나에 위치한 Gugging 정신병원에 수용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해인 1958년, 그는 처음으로 desssins을 시도 하게 되는데, 그 계기로 그는 흉작 또는 훌륭한 dessins작업의 양상을 보여주며 꾸준한 작업시간으로
많은 작업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그는 일러스트서적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가 1996년 세상을 떠남과 함께 주치의사 Leo Navratil에 의해 Johann Hauser의 작품집이 출간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 3점의 요한 하우저의 작품감상"
Johann Hauser
Johann Hauser
Johann Hauser
"예술요법(미술치료)"에 지대한 관심과 학문추구를 한다면 위 그림을 예술치료사의 시각으로 작가의 심리, 자아상태를 읽어 보는 것도 탐구를 위한 훈련이 될 것이다.
프랑스에서 내가 요한 하우저를 art t.v를 통하여 45분간 접한 것은 1997 가을과 Paris의 Pompidou center부근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의 그의 전시작품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는 Art Brut 거장들 중 한 작가로 그의 작업은 교육적 가치들에 의해 반영되고 생성되는 정재 된 미술이 아니며 다친 자아로부터 무의식에 나오는 다듬지 않은 자연적인 느낌의 미술의 양식을 갖고 있지만 그의 양식이 Art brut라고 정의를 보여주는 양식의 전부가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치료자가 그린그림으로 보지도 않고 그리고 “미술치료사”의 시각에 기준하여 (심리학적 접근, 미술치료사의 미술해석)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그 가치를 논하기엔 자아를 의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다친 자아의 회생을 위해 일생동안의 투명을 위한 삶의 대서시시를 서 너 장의 미술치료사의 시각적 해석이 가능할까? 그리고 필요할까? 그것은 마치 철로를 달리는 기차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알려주는 역무원에 불과하다.
기차와 연계된 모든 것(역사들, 철로상태, 기차의 상태, 시시각각 펼쳐지는 풍경, 날씨, 기차의 승객 모두의 얼굴을 대하는 검표원...) 을 알려면 기관사가 되어 봄이 바람직하듯. 예술치료는 자아와 함께 긴 치유의 철도를 함께 가는 과정임을 강조하고 싶다.
낯선 다친 자아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예술작품은 마치 art brut의 다듬지 않는 미술과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겠는데, Art Brut는 마치 들소로부터 "야생"이란 느낌을 받는 것처럼, 조형의 조건에 맞게 제작되는 모든 미술과 대립되는 미술영역으로 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즉흥적인 미술이 보여주는 특징으로 다듬지 않고 ,낯설고, 거칠고, 자연적인 느낌의 미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Art Brut의 창시자 Jean Dubuffet는 덜 세련되고, 미숙한 dessins 으로 아동미술과 친근감을 보여줌은 다듬거나 미술이 중시하거나 추구하는 형식을 배제하여
즉흥적 자아를 반영한 세련되지 않음이 미술표현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여러 작업들을 통하여 표명하였다. 특히 기존의 모든 생명력이 없는 문화의 활력을 위한 문화혁명을 선언 , "Asphyxiante Culture 숨 막히는 문화"의 논의를 발표하여 예술개혁을 촉구하였다. 그의 입체조형작업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해 입체에 평면적 회화의 특성 " 조각에 있는 평면성"의 작업으로 많은 공공미술을 남겼다.
Conclusion / 결론
자아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상태나 다친 자아에 의해 표상으로 보여 지는 결과의 의미는 많은 진리의 반영을 내포하고 있겠지만 그 이전, 자아를 회복하게 해주는 근본이 되는 “의지”를 일깨워 본질을 지각해주는 반복적인 긴 과정의 “조형예술”활동이 중요하며 . 그 과정에서 다친 자아를 치유할 수 있는 media를 발견하고 조언해주는 것이 “조형예술요법”, 가령 2003년 크리스마스를 전 후에 “암과 투병하며”몰골이 흉할 만큼 초췌한 원로여류화가의 마지막 생을 위하여 불혹이 넘은 제자들이 스승의 개인전 마련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원로여류화가의 의지는 초인적인 힘으로 승화 되여 대자연 앞에 비미한 인간이 생명력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엄함을 넘어 신비감을 확인 시켜주는 non-fiction에 수많은 세인들을 울렸던 tv의 보도는 자아가 회복할 수 있는 제자들의 사랑이 담긴 전시project 가 하나의“ 예술요법” 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엔 이러한 자아를 찾게 해주는 기적 같은 일이 많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나리의 “미술치료”영역의 기초통로가 아닌가 한다.
-2004. 올바른 "예술치료"읽기
multiple artiste myung-hwan,LEE -
---조형예술가 이명환교수는 시인 김성구 목사와 함께 고등학교 때 미술공부를 하였다. 그는 프랑스에 건너가서 조형예술가가 되어 돌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