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시대의 비관론
임마누엘 칸트처럼 온당하고도 진지한 사상가도, 전쟁은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히로시마 원폭 이후, 모든 전쟁은 잘해야 필요악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덕망있는 신학자조차도, 폭군이 없으면 순교의 기회도 없는 것이므로, 폭군은 신의 뜻에 따라 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지한 자세로 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불경죄에 처해지고 말 것이다. ... 근대의 진보된 기술사회에서 일어난 이 처절한 사건들 이후에, 도대체 누가 아직까지도 신은 필연적인 진보라든지, 신이 그 섭리를 역설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믿을 것인가?
20세기는 우리 모두를 역사에 대한 깊은 비관론자로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금세기의 가장 우수한 지성의 소유자들조차도 세계가, 우리 서양인들이 진지하고 인도적이라고 여기는 정치제도, 즉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들조차, 세상사의 큰 획에 의미있는 질서체계를 부여하는 행위로서의 역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우리들 자신의 체험을 돌이켜 보아도 그것은 명백하다. ... 20세기의 비관주의는 이전의 낙관주의와 현저한 대조를 나타낸다. 유럽의 19세기는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동란에 의해 막을 올렸지만, 전체적으로 평화의 세기였으며 물질적인 풍요가 유례없이 증대된 세기였다. ... 도도한 문명화의 흐름에 비추어 보아, 나폴레옹 전쟁과 같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조차도 결과적으로 사회의 진보에 기여한다고 사상가들은 해석했다. 그것은 이러한 전쟁이 공화체제의 보급을 촉진했기 때문이었다. ... 1910년부터 1911년에 걸쳐 출판된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제11판에서는 "고문"이라는 표제 아래에, "유럽에 관한 한 이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관심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싣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저널리스트 노만 엔젤은 그의 저서 『위대한 환영』을 편찬하고, 자유무역이 이미 영토확장주의를 쇠퇴시켜, 앞으로 전쟁은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금세기의 극단적인 비관주의는 이러한 이제까지의 기대가 무참하게 부서져 버린 것에서도 일부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 4년에 걸친,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참호전 속에서 고양이 이마짝만한 황폐한 영토를 둘러싸고 수만명이 단 하루 동안에 죽어갔다. 폴 파셀의 말을 빌면, "1세기 동안 대중의 의식을 지배해 왔던 당시 유행하던 사회개량론이라는 신화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부끄러움"이 "진보라는 관념"을 덮어버린 것이다. 충성, 근면, 인내, 애국심 같은 미덕도 조직적이고 무의미한 대량학살을 위해서만 발휘되도록 요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을 창조한 부르주와 사회 자체의 신용이 실추되었다. 에릭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주인공인 젊은 병사 폴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들 18세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학교의 교사들은) 성숙한 세계에 대한 중개자이며, 노동과 의무, 문화와 진보라는 세계로의, 즉 미래로의 안내자였어야 했다. ... 그러나 우리들이 본 최초의 죽음으로 인해 이 확신은 산산조각나버렸다." ...유럽의 공업 발전이 도덕적인 구원이나 의미 따위는 전혀 없이 무의미한 전쟁으로 진화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에서 커다란 패턴이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H. A. L. 피셔는 1934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었다. "나보다 현명하고 박식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줄거리나 리듬, 사전에 정해진 패턴을 식별해냈다. 이와 같은 하모니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하나 또하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위급한 사태들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여러 가지 악이 거듭 출현하는 것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 근대과학이 자동소총이나 폭격기와 같이 공전의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가능하게 했다면, 근대정치는 유례없이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를 낳아 그 호칭으로는 '전체주의'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다. ... 유럽의 유대인, 또는 러시아의 부농(클라크)과 같은 하나의 인간 부류 전체를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것은, 그 이전의 "전통적"인 폭정에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야심적인 기도였다. ... 이러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시도니 전쟁도 또한 새로운 종류의 것으로서, 민간인의 대량 학살과 경제자원의 대량 파괴를 일삼아, "총력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에서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드레스덴이나 히로시마 폭격 등, 이전같으면 민족말살이라 불리울 만한 군사전략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세기의 진보이론은 인간의 악을 사회발전의 후진성과 연결지어 생각했다. ... 경제발전이나 교육, 문화가 나치즘과 같은 현상을 막아주는 보장이 되어줄 수 없다면 역사의 진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20세기의체험은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 진보 논리에 커다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이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오로지 그것에 대응되는 인간 모럴의 진보 여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전세계를 연결하는 정보 테크놀로지나 순간 교신의 통신기술이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하여 왔다는 주장을 자주 접할 수 있다. ... 하지만 통신 테크놀로지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반동사상은 이란 국왕의 경제 근대화 정책에 의해 널리 보급된 카세트 녹음기를 통해서 1978년의 혁명에 앞서 이란으로 유입되었다. 만약 텔레비전이나 순간 교신의 세계 통신망이 1930년대에 존재했었다면, 그것은 레니 리펜슈탈이나 요세프 괴벨스 등 나치 선전 담당자들의 손에 의해, 민주주의의 이념이 아닌 파시즘 이념의 선전 보급을 위해 정말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
...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국가 시스템이 보여준 스스로의 목을 매는 듯한 자기파괴적 기질은 서구 합리주의의 우월성에 금이 가게 하였으며, 19세기의 유럽인에게는 본능적으로 이해되면 문명과 야만의 차이도,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를 경험한 이후에는 거의 판별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 우리 시대에 있어 비관주의가 가장 선명하게 표출된 예는 자유민주주의에 상대되는 전체주의 체제인 강력한 공산주의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키신저는 미 국무장관을 지내던 1970년대에 국민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도전은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 우리들의 외교정책도 다른 나라들이 수세기 동안 전개해 온 것과 마찬가지 형태로 변해야 한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으며, 숨돌릴 여유도 없다. ... '이러한 상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키신저의 의견은 조금도 유니크한 것이 아니다. 정치나 외교관계 전문가들은 사실상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산주의가 영구불변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에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붕괴했을 때, 이들은 거의 완전히 허를 찔린 격이 되었다. 이렇게 예측이 빗나가게 된 것은 단순한 사물에 대한 "공평한" 판단기준을 흐리게 만들어 버리는 교조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 이같은 맹점은 금세기의 여러 사건들에 의해 발생되어진 역사에 대한 극단적 비관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1983년에만 해도, 장 프랑수와 라벨은 "민주주의는 결국 하나의 역사상의 사건, 우리들의 눈 앞에서 막을 내리는 짤막한 사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 우파의 대부분은 구소련과 같은 "실패한 사회"에서도 레닌식의 전체주의를 만들어 내어 통치의 근간을 마련하고, 그것에 의해 소수의 "관료적 지배자"는 다수의 국민에 대하여 근대적인 조직이나 테크놀로지의 힘을 이용하여 거의 영구적으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 이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역학 관계를 믿게 된 근저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커크패트릭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정부이든 민주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식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제3세계 안에 민주화의 중심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은 착각이고 환상에 불과하며,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이 세계는 우익 독재주의와 좌익 전체주의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라벨은 민주주의 국가가 장기간에 걸쳐 신중한 외교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라고 주장하는 토크빌로부터 시작된 비판을 훨씬 극단적으로 재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다르면 민주주의는 그 민주적 성격, 즉 의견의 다양성이나 민주적 토론에 부수되는 자기불신이나 자기비판에 의해 손상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현상태에서는 비교적 하찮은 불평불만의 씨앗이 민주주의 국가를 부식시키고 어지럽히고 마비시키고 있으며, 그 진행 속도와 심각성의 정도는 심각한 기아나 끊임없는 빈곤이 공산주의 정권에 미친 악영향을 상회한다. 물론 공산주의 정권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정할 어떠한 권리나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에 비하면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회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동시에 가장 파괴되기 쉬운 사회인 것이다. ...
...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경험한 구미의 진보주의자 대부분은,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자신의 미래상이라고 생각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가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좌익 중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다른 사람에게도 정통성을 가지며, 지리적 문화적 차이가 커짐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그 정통성은 더 확고해진다는 신념이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 제3세계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권은, 비록 자유선거나 공개토론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토지 개혁이나 의료의 무상 제공, 문맹율의 감소 등에 의해 스스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좌파의 공통된 견해였다. ...
... 하지만 금세기 전반의 체험에 의해 심어진 비관론에 아무리 강력한 논거가 있다 하더라도, 20세기 후반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이러한 비관론과는 정반대되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세계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악을 출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적인 독재정치는 그것이 우익이든 좌익이든 간에, 붕괴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출현했는가 하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모든 유형의 권위주의는 실로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2. 강국의 치명적 약점Ⅰ
현재의 독재주의의 위기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위기는 십수년전 유럽 남부 지역에서 있었던 우익 독재세력의 계속된 붕괴가 그 출발점을 이루고 있다. ... 이와 같은 강국이 결국 붕괴되어 버린 결정적인 약점은, 깊숙히 파고들어 분석해보면 그 정통성의 소멸 - 즉 국가이성 차원에서의 위기였다. 정통성이란 절대적 의미에서의 공정이나 정의와는 다르다. 정통성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인식 속에 존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정권은 모두 무엇인가의 정통성을 그 토대로 하고 있기 마련이다. 흔히 독재자는 힘으로만 지배한다고 이야기하며 그 예로 히틀러를 내세우곤 하지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 보안기구 그 자체는 위협에 의해 관리될 수 있지만, 독재자는 그러한 기구의 요소에 자기 권위의 정통성을 믿는 충실한 하수인을 배치해 둘 필요가 있다. ...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설명했듯이, 도적 일당 사이에서조차 전리품을 나누는 데는 기준이 되는 공평한 원칙이 있다. 마찬가지로 가장 편협하고 잔인한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정통성이라는 것은 절대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 비록 정권의 정통성이 전주민에게 인정되지 못했더라도, 체제 그 자체와 연결된 엘리트들 사이에 그 정통성이 흔들리지 않는 한 그 정권은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
... 파시스트에 의한 초국가주의자에 따르면 그 정통성이란 원래 민족이나 국가에서 생겨나고, 그 중에서도 게르만처럼 "지배자 민족"이 타민족을 지배하는 권리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했다. 권력이나 의지가 이성이나 평등 이상으로 추앙을 받고, 권력과 의지를 갖는 것이 바로 지배자의 자격이라고 생각했다. 게르만 민족의 우위성을 역설하는 나치즘은 타민족과의 투쟁을 통해서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전쟁은 이상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쟁 상태에 있는 쪽이 정상인 것이었다. ... 횃불 행진과 무혈의 승리를 이어가는 기간 중에는 게르만 민족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 군국주의적인 본질이 패배라는 당연한 귀결을 맞이했을 때, 파시즘은 별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파시즘은 그 내부 모순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 파시즘이 자유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는 이데올로기 상의 라이벌이 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만일 히틀러가 승리자로 나타날 수 있었다 해도, 보편적인 제국의 평화가 계속된다면, 독일은 그 민족의 우수성을 전쟁이나 정복에 의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고, 파시즘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히틀러의 패배 이후 우익에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 남은 것은 몇 개의 끈질긴 우익 군사독재정권이었으나, 이들도 결국 일관된 체계나 질서가 부족한 독재임에 드러났다. 이러한 정권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것 이외에는 내세울 만한 비전도 없었고, 게다가 스스로의 정통성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 있지도 못한 것이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히틀러와 같이 영구 독재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일관된 국가이론을 만들어 낸 곳은 하나도 없다.오히려 어느 정권이든 원칙적으로는 민주주의나 국민 주권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만 공산주의나 테러리즘의 위협 또는 이전의 민주정권 시대의 경제정책 실패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국의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할 뿐이었다. 즉,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로 복귀하기 위한 잠정적 과정으로밖에,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
... 페루에서는 경제 위기가 급격히 심화된 1980년,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정으로 체제가 이관되었다.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뮤데스가 이끄는 군사정권으로서는 계속해서 터지는 스트라이크나 해결이 어려운 사회문제에 도저히 대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은 군정하에서 1968년부터 73년까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세계적인 석유파동과 경제불황이 도래하자 군부 지도자는 저들도 특별한 경제운영의 수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군사정권의 대통령 장 피게이레드가 선거로 선출된 문민 대통령에게 권좌를 이양했을 때, 군부의 대부분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제까지의 실정에 대해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
... 이와 같이 남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남아프리카에서의 민주주의에로의 이행에 대한 예에서는 각각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반면에 놀랄만한 일관성이 존재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을 제외하고는, 구정권이 폭동이나 혁명에 의해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난 예는 하나도 없다. 정권교체가 발생한 것은 구정권 내부에서 일부세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한다고 하는 결단을 '자발적'으로 내리고 있음에 기인한다. 권력으로부터의 이러한 자주적인 철수는, 항상 당면한 무엇인가의 위기를 계기로 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유일한 정통성을 갖는 정치체제라는 신념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권력을 스스로 나서서 내버릴 사람은 없다"라는 격언도 여기에서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 우익 독재정권이 민주주의 이념의 힘에 의해서 권좌로부터 일소된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강력한 우익 국가라 하더라도 경제나 사회 전체로 보면 사실상 매우 제한된 권력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 그렇다면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좌익 전체주의 권력은 어떠할까? 공산주의 정권은 이미 "강국"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까지도 바꾸어 버리고, 끝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발견한 것은 아닐까?
3. 강국의 치명적 약점 Ⅱ, 또는 달에서 파인애플 먹기
그렇다면 1960년대 들어서 쓰여진 쿠이바셰프 시의 9학년용 교과서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자. "1981년, 그 때는 공산주의의 시대입니다. 공산주의란 물질적 풍요와 문화의 혜택을 말합니다. ...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은 전기로 움직이고, 유해한 기업들은 시외로 옮겨집니다. 우리들은 달에서 살며, 꽃나무와 과일나무 사이를 걷게 됩니다. ... " 하지만 우리가 달에서 파인애플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까? 그보다는 이 땅에서 토마토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전체주의 국가의 경우, 그 근저에는 인간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명확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전체주의는 시민사회의 완전한 파괴를 시도했으며, 시민생활은 완전한 관리를 목표로 했다. ... 주민 하나하나는 원자 상태로 놓여, 전능한 정부 이외의 모든 "중간조직"으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로 남겨졌다. ... 스탈린 경찰에게 자신의 부모를 고발한 젊은이 파빌 모로조프는 그 이후 오랜기간 동안 정부로부터 전형적인 소비에트의 아동으로서 떠받들어졌다. ...
... 1962년의 켄케시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전체주의의 야심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내에서 폭군과 같은 주임 간호사의 감시 아래 유치하고도 우둔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입원환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맥머피는 그러한 동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병원의 규칙을 깨뜨리고, 결국에는 집단 탈출을 기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입원환자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의지에 반해서 감금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두가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감금생활을 자청하여 주임 간호사의 안전한 보호막 안에 안주하려 드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
... 구소련의 가장 기본적인 약점, 서방의 관측통들이 간과했던 실로 심각한 약점은 경제 문제였다. 소비에트 체제에 있어서 경제의 실패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곤란한 것은 소비에트 정권의 정통성 자체가 국민에게물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주겠다고 큰소리친 데 근거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기억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1970년대 전반까지는 확실히, 경제성장이 소련의 강점 중에 하나로 생각되었다. 1928년부터 1955년까지 소련의 GNP는 연 4.4%에서 6.3%의 신장을 보였고, 그후 20년 동안에는 미국의 GNP의 1.5배의 속도로 증가했다. 후루시초프가 "소련은 미국을 추월하고 마침내는 미국의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라고 위협한 것도 허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기부터 성장율은 둔화되고, CIA의 계산에 의하면 1975년부터 85년까지의 성장율은 년 2.0~2.3%에 머물렀다. 그것도 은폐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 수치에는 상당한 과장이 있다는 증거가 계속 나타났으며, 소련내 개혁파 경제학자의 대부분은 이 시기의 경제 성장율이 0.6~1%였다고 주장했고, 그 중에는 아예 제로 성장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
... 구소련의 진정한 약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를,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위기, 즉 체제 전체의 정통성에 관계된 위기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경제의 실패는 구소련 체제에서 발생한 여러 실패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에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사회의 기본 구조의 약점을 드러나게 했다. 전체주의의 가장 근본적인실패는 사상을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소련의 시민은,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줄곧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
...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 가운데 하나는 1988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그녀는 자식들에게 숙제를 하도록 시키는 데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는 민주주의란 "모두가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동구 여러 나라에서도 전체주의는 파탄했다. 중국의 국내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는 중국에서 "스탈린주의"가 가장 번영한 시기에조차 소련만큼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가 경제의 1/4은 국가 계획의 범주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1978년에 등소평은 경제개혁에 착수했지만, 중국인의 대부분이 1950년대 당시의 시장경제나 기업가 정신에 대한 생생한 깅거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이 이후 10년에 걸친 경제 자유화의 물결에 훌륭히 편승할 수 있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 1978년부터 천안문 탄압사건이 일어난 1989년까지의 시기 동안 중국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공기가 퍼져 있었고, 자연발생적인 비지니스조직, 기업가, 비공식적인 조합 등의 형태를 취한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시민사회가 급속하게 재생되었다. ...
... 물론 중국을 비롯한 쿠바, 북한, 베트남에서는 공산주의 정부가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1989년 7월부터 12월에 걸친 동구의 6개 공산주의 정권이 일시에 무너진 이래,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는 크게 수정되었다. 한때는 자유민주주의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임을 자부하여 온 공산주의가 이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독한 후진성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된 것이다. 공산주의의 권력은 아직도 세계 각지에 살아남아 있지만, 그것은 이미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이념은 아니다. ...
... 우리들은 이제까지의 공산주의 국가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로 급소하고도 유연하게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놀라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식으로 사태가 발전된다면 더 놀라워 해야 할 일이다. ... 우리들은 오늘날의 과도기적인 상황을 영속적인 상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만이 이러한 세계의 각지에서 널리 정통성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일관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4. 세계에 번진 민주혁명
우리들은 하나의 중요한 시기, 정신이 다시 한 번 도약하면서 이제까지의 형태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흥분된 시대의 입구에 서 있다.우리의 세계를 하나로 묶어온 예전의 표현이나 개념, 관계 등은 그 모두가 꿈속의 그림과 같이 녹아버리고, 무너져내리고 있다. 정신의 새로운 형상이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정신에 무기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과거에 집착하려고 해도 철학만은 그 출현을 환영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인류가 천년왕국의 끝에 가까워짐에 따라, 독재주의도 사회주의적 중앙정부의 계획경제도 모두가 비슷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보편적인 유효성을 지닌 이데올로기로서 경기장에 남아 있는 경쟁자는 이제 하나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즉 개인의 자유와 인민 주권의 이념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혁명의 기폭제로서 등장한 이래 200년, 이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역사의 거친 파도를 견뎌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몇 번이고 소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온 것이다. ...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밀접하게 관계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의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한 개인적 권리나 자유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 법원칙을 말한다. ... 여기에서는 민주주의에 관한 브라이스 경의 고전적인 명저에서 정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 첫째는 공민권, 즉 "각자의 인격이나 재산에 대해서 사회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종교권, 즉 "종교상의 견해의 표현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정치권, 즉 "공공의 복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통제가 불가피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 한편 민주주의란, 모든 시민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정치적 권력을 공유할 권리, 즉 모든 시민의 투표권과 참정권을 말한다. ...
... 어떤 국가가 민주주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극히 형식적인 정의를 이용하려 한다. 국민이, 성인의 평등한 보통 참정권에 기초하여, 복수 정당제의 정기적인 무기명 투표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이다. 당연히 형식 상의 민주주의만으로 언제나 평등한 정치 참여나 제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일단 이와 같은 형식적인 정의에서 벗어나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얼마든지 오용될 위험성이 생겨난다. ... 하지만 독재를 막는 진실한 제도적인 안전핀을 주는 것은 형식상의 민주주의임에 틀림없으며, 최후에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낳을 가능성도 훨씬 높다. ...
... 민주화의 도상에서 후퇴나 실망이 보이더라도, 또한 시장경제의 원칙을 도입한 모든 곳이 번영을 손에 쥘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타나고 있는 보다 커다란 패턴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완성시키는 방법을 놓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명백하게 '감소되고' 있다. 인류사의과정에서는 이제까지 군주정치나 귀족정치, 신정정치 그리고 금세기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독재 등 각종의 정권이 등장했었지만, 20세기말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뿐이었다. ... 인민 주권이라는 이념 이상으로 정통성을 가진 보편적인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앞으로는 비민주주의자들조차도, 정권의 보편적이고도 유일한 기준에서 자신들이 일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슬람에 의한 문화정복시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 종교는 파문당한 신자들을 되돌아 오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베를린이나 동경, 모스크바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
...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현재,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시대에 합리적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유 재산이나 자본주의가 폐지되고, 정치 그 자체도 거의 불필요한 빛나는 사회주의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상태보다 훨씬 멋진 세계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미래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자유민주주의에 대신할 효과적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나의 논문 「역사의 종말」이 시사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분노에 찬 비판이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 그밖의 많은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자 중 누구 한 사람도 그러한 선택이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논문을 둘러싼 논쟁 중에서도 내가 아는 한 누구 한사람도 자신이 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다른 사회조직 형태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
... 물론 민주주의 체제가 인류사 가운데 상당히 드문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1776년 이전의 세계에는 민주주의 국가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 하지만 존속기간만을 생각하면, 공장생산이나 자동차나 수백만이 사는 대도시 등도 마찬가지로 드문 존재라고 할 수있으며, 이에 반해서 노예제도나 세습군주제도, 왕조 유지를 위한 혼인제도는 훨씬 긴 시대를 살아왔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생 빈도나 존속 기간이라기보다는 성향이다. 선진국에서 가까우 장래에 도시나 자동차가 소멸될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노예제의 부활을 예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보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
... 예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는 "권위주의적이고, 세습을 중시하며, 카톨릭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신분의 상하를 구분하고, 집단을 소중히 여기는 뿌리깊은 봉건전통"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등의 논의가 있어왔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혹은 라틴 아메리카 제국을 서유럽이나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으로 결박짓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의 죄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을 가진 사람들 '스스로'가, 이 보편적인 제권리의 기준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통일된 유럽과의 유대관계를 한층 더 강화시켰다. ...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우연이나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편견의 산물이 아닌, 진실로 인간성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 타당성은 사람들이 국제인으로서의 시야를 넓혀 감에 따라서 더욱 명확해져가고 있다.
모든 시대와 모든 국민의 경험을 고려한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 이 의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대단히 오랫동안 있어온 의문이며, 최근의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역사를 써내고자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애써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유의 발전이라는 것을 역사의 중심 테마로 잡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여러 가지 사건의 맹목적인 연쇄가 아닌, 전체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이루며, 올바른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이념도 그 속에서 발전을 이룩하고, 바깥세계로 작용을 하여 온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들이 현시점에서, 우리의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며, 현재의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미래도 별로 가망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 그 자체가 이제 종점에 도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처럼 온당하고도 진지한 사상가도, 전쟁은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히로시마 원폭 이후, 모든 전쟁은 잘해야 필요악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덕망있는 신학자조차도, 폭군이 없으면 순교의 기회도 없는 것이므로, 폭군은 신의 뜻에 따라 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지한 자세로 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불경죄에 처해지고 말 것이다. ... 근대의 진보된 기술사회에서 일어난 이 처절한 사건들 이후에, 도대체 누가 아직까지도 신은 필연적인 진보라든지, 신이 그 섭리를 역설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믿을 것인가?
『역사에서의 신의 존재』, 에밀 파켄하임
20세기는 우리 모두를 역사에 대한 깊은 비관론자로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금세기의 가장 우수한 지성의 소유자들조차도 세계가, 우리 서양인들이 진지하고 인도적이라고 여기는 정치제도, 즉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들조차, 세상사의 큰 획에 의미있는 질서체계를 부여하는 행위로서의 역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우리들 자신의 체험을 돌이켜 보아도 그것은 명백하다. ... 20세기의 비관주의는 이전의 낙관주의와 현저한 대조를 나타낸다. 유럽의 19세기는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동란에 의해 막을 올렸지만, 전체적으로 평화의 세기였으며 물질적인 풍요가 유례없이 증대된 세기였다. ... 도도한 문명화의 흐름에 비추어 보아, 나폴레옹 전쟁과 같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조차도 결과적으로 사회의 진보에 기여한다고 사상가들은 해석했다. 그것은 이러한 전쟁이 공화체제의 보급을 촉진했기 때문이었다. ... 1910년부터 1911년에 걸쳐 출판된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제11판에서는 "고문"이라는 표제 아래에, "유럽에 관한 한 이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관심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싣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저널리스트 노만 엔젤은 그의 저서 『위대한 환영』을 편찬하고, 자유무역이 이미 영토확장주의를 쇠퇴시켜, 앞으로 전쟁은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금세기의 극단적인 비관주의는 이러한 이제까지의 기대가 무참하게 부서져 버린 것에서도 일부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 4년에 걸친,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참호전 속에서 고양이 이마짝만한 황폐한 영토를 둘러싸고 수만명이 단 하루 동안에 죽어갔다. 폴 파셀의 말을 빌면, "1세기 동안 대중의 의식을 지배해 왔던 당시 유행하던 사회개량론이라는 신화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부끄러움"이 "진보라는 관념"을 덮어버린 것이다. 충성, 근면, 인내, 애국심 같은 미덕도 조직적이고 무의미한 대량학살을 위해서만 발휘되도록 요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을 창조한 부르주와 사회 자체의 신용이 실추되었다. 에릭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주인공인 젊은 병사 폴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들 18세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학교의 교사들은) 성숙한 세계에 대한 중개자이며, 노동과 의무, 문화와 진보라는 세계로의, 즉 미래로의 안내자였어야 했다. ... 그러나 우리들이 본 최초의 죽음으로 인해 이 확신은 산산조각나버렸다." ...유럽의 공업 발전이 도덕적인 구원이나 의미 따위는 전혀 없이 무의미한 전쟁으로 진화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에서 커다란 패턴이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H. A. L. 피셔는 1934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었다. "나보다 현명하고 박식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줄거리나 리듬, 사전에 정해진 패턴을 식별해냈다. 이와 같은 하모니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하나 또하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위급한 사태들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여러 가지 악이 거듭 출현하는 것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 근대과학이 자동소총이나 폭격기와 같이 공전의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가능하게 했다면, 근대정치는 유례없이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가를 낳아 그 호칭으로는 '전체주의'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다. ... 유럽의 유대인, 또는 러시아의 부농(클라크)과 같은 하나의 인간 부류 전체를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것은, 그 이전의 "전통적"인 폭정에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야심적인 기도였다. ... 이러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시도니 전쟁도 또한 새로운 종류의 것으로서, 민간인의 대량 학살과 경제자원의 대량 파괴를 일삼아, "총력전"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에서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드레스덴이나 히로시마 폭격 등, 이전같으면 민족말살이라 불리울 만한 군사전략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세기의 진보이론은 인간의 악을 사회발전의 후진성과 연결지어 생각했다. ... 경제발전이나 교육, 문화가 나치즘과 같은 현상을 막아주는 보장이 되어줄 수 없다면 역사의 진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20세기의체험은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 진보 논리에 커다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이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오로지 그것에 대응되는 인간 모럴의 진보 여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전세계를 연결하는 정보 테크놀로지나 순간 교신의 통신기술이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하여 왔다는 주장을 자주 접할 수 있다. ... 하지만 통신 테크놀로지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반동사상은 이란 국왕의 경제 근대화 정책에 의해 널리 보급된 카세트 녹음기를 통해서 1978년의 혁명에 앞서 이란으로 유입되었다. 만약 텔레비전이나 순간 교신의 세계 통신망이 1930년대에 존재했었다면, 그것은 레니 리펜슈탈이나 요세프 괴벨스 등 나치 선전 담당자들의 손에 의해, 민주주의의 이념이 아닌 파시즘 이념의 선전 보급을 위해 정말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
...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국가 시스템이 보여준 스스로의 목을 매는 듯한 자기파괴적 기질은 서구 합리주의의 우월성에 금이 가게 하였으며, 19세기의 유럽인에게는 본능적으로 이해되면 문명과 야만의 차이도,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를 경험한 이후에는 거의 판별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 우리 시대에 있어 비관주의가 가장 선명하게 표출된 예는 자유민주주의에 상대되는 전체주의 체제인 강력한 공산주의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키신저는 미 국무장관을 지내던 1970년대에 국민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도전은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 우리들의 외교정책도 다른 나라들이 수세기 동안 전개해 온 것과 마찬가지 형태로 변해야 한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으며, 숨돌릴 여유도 없다. ... '이러한 상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키신저의 의견은 조금도 유니크한 것이 아니다. 정치나 외교관계 전문가들은 사실상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산주의가 영구불변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에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붕괴했을 때, 이들은 거의 완전히 허를 찔린 격이 되었다. 이렇게 예측이 빗나가게 된 것은 단순한 사물에 대한 "공평한" 판단기준을 흐리게 만들어 버리는 교조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 이같은 맹점은 금세기의 여러 사건들에 의해 발생되어진 역사에 대한 극단적 비관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1983년에만 해도, 장 프랑수와 라벨은 "민주주의는 결국 하나의 역사상의 사건, 우리들의 눈 앞에서 막을 내리는 짤막한 사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 우파의 대부분은 구소련과 같은 "실패한 사회"에서도 레닌식의 전체주의를 만들어 내어 통치의 근간을 마련하고, 그것에 의해 소수의 "관료적 지배자"는 다수의 국민에 대하여 근대적인 조직이나 테크놀로지의 힘을 이용하여 거의 영구적으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 이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역학 관계를 믿게 된 근저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커크패트릭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정부이든 민주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식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제3세계 안에 민주화의 중심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은 착각이고 환상에 불과하며,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이 세계는 우익 독재주의와 좌익 전체주의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라벨은 민주주의 국가가 장기간에 걸쳐 신중한 외교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라고 주장하는 토크빌로부터 시작된 비판을 훨씬 극단적으로 재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다르면 민주주의는 그 민주적 성격, 즉 의견의 다양성이나 민주적 토론에 부수되는 자기불신이나 자기비판에 의해 손상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현상태에서는 비교적 하찮은 불평불만의 씨앗이 민주주의 국가를 부식시키고 어지럽히고 마비시키고 있으며, 그 진행 속도와 심각성의 정도는 심각한 기아나 끊임없는 빈곤이 공산주의 정권에 미친 악영향을 상회한다. 물론 공산주의 정권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정할 어떠한 권리나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에 비하면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회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동시에 가장 파괴되기 쉬운 사회인 것이다. ...
...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경험한 구미의 진보주의자 대부분은,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자신의 미래상이라고 생각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가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좌익 중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다른 사람에게도 정통성을 가지며, 지리적 문화적 차이가 커짐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그 정통성은 더 확고해진다는 신념이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 제3세계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권은, 비록 자유선거나 공개토론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토지 개혁이나 의료의 무상 제공, 문맹율의 감소 등에 의해 스스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좌파의 공통된 견해였다. ...
... 하지만 금세기 전반의 체험에 의해 심어진 비관론에 아무리 강력한 논거가 있다 하더라도, 20세기 후반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이러한 비관론과는 정반대되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세계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악을 출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적인 독재정치는 그것이 우익이든 좌익이든 간에, 붕괴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출현했는가 하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모든 유형의 권위주의는 실로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2. 강국의 치명적 약점Ⅰ
현재의 독재주의의 위기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위기는 십수년전 유럽 남부 지역에서 있었던 우익 독재세력의 계속된 붕괴가 그 출발점을 이루고 있다. ... 이와 같은 강국이 결국 붕괴되어 버린 결정적인 약점은, 깊숙히 파고들어 분석해보면 그 정통성의 소멸 - 즉 국가이성 차원에서의 위기였다. 정통성이란 절대적 의미에서의 공정이나 정의와는 다르다. 정통성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인식 속에 존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정권은 모두 무엇인가의 정통성을 그 토대로 하고 있기 마련이다. 흔히 독재자는 힘으로만 지배한다고 이야기하며 그 예로 히틀러를 내세우곤 하지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 보안기구 그 자체는 위협에 의해 관리될 수 있지만, 독재자는 그러한 기구의 요소에 자기 권위의 정통성을 믿는 충실한 하수인을 배치해 둘 필요가 있다. ...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설명했듯이, 도적 일당 사이에서조차 전리품을 나누는 데는 기준이 되는 공평한 원칙이 있다. 마찬가지로 가장 편협하고 잔인한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정통성이라는 것은 절대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 비록 정권의 정통성이 전주민에게 인정되지 못했더라도, 체제 그 자체와 연결된 엘리트들 사이에 그 정통성이 흔들리지 않는 한 그 정권은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
... 파시스트에 의한 초국가주의자에 따르면 그 정통성이란 원래 민족이나 국가에서 생겨나고, 그 중에서도 게르만처럼 "지배자 민족"이 타민족을 지배하는 권리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했다. 권력이나 의지가 이성이나 평등 이상으로 추앙을 받고, 권력과 의지를 갖는 것이 바로 지배자의 자격이라고 생각했다. 게르만 민족의 우위성을 역설하는 나치즘은 타민족과의 투쟁을 통해서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전쟁은 이상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쟁 상태에 있는 쪽이 정상인 것이었다. ... 횃불 행진과 무혈의 승리를 이어가는 기간 중에는 게르만 민족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 군국주의적인 본질이 패배라는 당연한 귀결을 맞이했을 때, 파시즘은 별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파시즘은 그 내부 모순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 파시즘이 자유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는 이데올로기 상의 라이벌이 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만일 히틀러가 승리자로 나타날 수 있었다 해도, 보편적인 제국의 평화가 계속된다면, 독일은 그 민족의 우수성을 전쟁이나 정복에 의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고, 파시즘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히틀러의 패배 이후 우익에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 남은 것은 몇 개의 끈질긴 우익 군사독재정권이었으나, 이들도 결국 일관된 체계나 질서가 부족한 독재임에 드러났다. 이러한 정권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것 이외에는 내세울 만한 비전도 없었고, 게다가 스스로의 정통성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 있지도 못한 것이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히틀러와 같이 영구 독재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일관된 국가이론을 만들어 낸 곳은 하나도 없다.오히려 어느 정권이든 원칙적으로는 민주주의나 국민 주권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만 공산주의나 테러리즘의 위협 또는 이전의 민주정권 시대의 경제정책 실패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국의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할 뿐이었다. 즉,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로 복귀하기 위한 잠정적 과정으로밖에,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
... 페루에서는 경제 위기가 급격히 심화된 1980년,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정으로 체제가 이관되었다.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뮤데스가 이끄는 군사정권으로서는 계속해서 터지는 스트라이크나 해결이 어려운 사회문제에 도저히 대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은 군정하에서 1968년부터 73년까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세계적인 석유파동과 경제불황이 도래하자 군부 지도자는 저들도 특별한 경제운영의 수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군사정권의 대통령 장 피게이레드가 선거로 선출된 문민 대통령에게 권좌를 이양했을 때, 군부의 대부분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제까지의 실정에 대해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
... 이와 같이 남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남아프리카에서의 민주주의에로의 이행에 대한 예에서는 각각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반면에 놀랄만한 일관성이 존재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을 제외하고는, 구정권이 폭동이나 혁명에 의해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난 예는 하나도 없다. 정권교체가 발생한 것은 구정권 내부에서 일부세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한다고 하는 결단을 '자발적'으로 내리고 있음에 기인한다. 권력으로부터의 이러한 자주적인 철수는, 항상 당면한 무엇인가의 위기를 계기로 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유일한 정통성을 갖는 정치체제라는 신념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권력을 스스로 나서서 내버릴 사람은 없다"라는 격언도 여기에서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 우익 독재정권이 민주주의 이념의 힘에 의해서 권좌로부터 일소된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강력한 우익 국가라 하더라도 경제나 사회 전체로 보면 사실상 매우 제한된 권력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 그렇다면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좌익 전체주의 권력은 어떠할까? 공산주의 정권은 이미 "강국"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까지도 바꾸어 버리고, 끝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발견한 것은 아닐까?
3. 강국의 치명적 약점 Ⅱ, 또는 달에서 파인애플 먹기
그렇다면 1960년대 들어서 쓰여진 쿠이바셰프 시의 9학년용 교과서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자. "1981년, 그 때는 공산주의의 시대입니다. 공산주의란 물질적 풍요와 문화의 혜택을 말합니다. ...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은 전기로 움직이고, 유해한 기업들은 시외로 옮겨집니다. 우리들은 달에서 살며, 꽃나무와 과일나무 사이를 걷게 됩니다. ... " 하지만 우리가 달에서 파인애플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까? 그보다는 이 땅에서 토마토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꿀벌과 공산주의자의 이상』, 안드레이 뉴이킨
... 전체주의 국가의 경우, 그 근저에는 인간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명확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전체주의는 시민사회의 완전한 파괴를 시도했으며, 시민생활은 완전한 관리를 목표로 했다. ... 주민 하나하나는 원자 상태로 놓여, 전능한 정부 이외의 모든 "중간조직"으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로 남겨졌다. ... 스탈린 경찰에게 자신의 부모를 고발한 젊은이 파빌 모로조프는 그 이후 오랜기간 동안 정부로부터 전형적인 소비에트의 아동으로서 떠받들어졌다. ...
... 1962년의 켄케시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전체주의의 야심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내에서 폭군과 같은 주임 간호사의 감시 아래 유치하고도 우둔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입원환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맥머피는 그러한 동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병원의 규칙을 깨뜨리고, 결국에는 집단 탈출을 기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입원환자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의지에 반해서 감금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두가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감금생활을 자청하여 주임 간호사의 안전한 보호막 안에 안주하려 드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
... 구소련의 가장 기본적인 약점, 서방의 관측통들이 간과했던 실로 심각한 약점은 경제 문제였다. 소비에트 체제에 있어서 경제의 실패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곤란한 것은 소비에트 정권의 정통성 자체가 국민에게물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주겠다고 큰소리친 데 근거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기억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1970년대 전반까지는 확실히, 경제성장이 소련의 강점 중에 하나로 생각되었다. 1928년부터 1955년까지 소련의 GNP는 연 4.4%에서 6.3%의 신장을 보였고, 그후 20년 동안에는 미국의 GNP의 1.5배의 속도로 증가했다. 후루시초프가 "소련은 미국을 추월하고 마침내는 미국의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라고 위협한 것도 허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기부터 성장율은 둔화되고, CIA의 계산에 의하면 1975년부터 85년까지의 성장율은 년 2.0~2.3%에 머물렀다. 그것도 은폐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 수치에는 상당한 과장이 있다는 증거가 계속 나타났으며, 소련내 개혁파 경제학자의 대부분은 이 시기의 경제 성장율이 0.6~1%였다고 주장했고, 그 중에는 아예 제로 성장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
... 구소련의 진정한 약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를,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위기, 즉 체제 전체의 정통성에 관계된 위기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경제의 실패는 구소련 체제에서 발생한 여러 실패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에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사회의 기본 구조의 약점을 드러나게 했다. 전체주의의 가장 근본적인실패는 사상을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소련의 시민은,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줄곧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
...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 가운데 하나는 1988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그녀는 자식들에게 숙제를 하도록 시키는 데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는 민주주의란 "모두가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동구 여러 나라에서도 전체주의는 파탄했다. 중국의 국내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는 중국에서 "스탈린주의"가 가장 번영한 시기에조차 소련만큼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가 경제의 1/4은 국가 계획의 범주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1978년에 등소평은 경제개혁에 착수했지만, 중국인의 대부분이 1950년대 당시의 시장경제나 기업가 정신에 대한 생생한 깅거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이 이후 10년에 걸친 경제 자유화의 물결에 훌륭히 편승할 수 있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 1978년부터 천안문 탄압사건이 일어난 1989년까지의 시기 동안 중국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공기가 퍼져 있었고, 자연발생적인 비지니스조직, 기업가, 비공식적인 조합 등의 형태를 취한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시민사회가 급속하게 재생되었다. ...
... 물론 중국을 비롯한 쿠바, 북한, 베트남에서는 공산주의 정부가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1989년 7월부터 12월에 걸친 동구의 6개 공산주의 정권이 일시에 무너진 이래,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는 크게 수정되었다. 한때는 자유민주주의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임을 자부하여 온 공산주의가 이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독한 후진성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된 것이다. 공산주의의 권력은 아직도 세계 각지에 살아남아 있지만, 그것은 이미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이념은 아니다. ...
... 우리들은 이제까지의 공산주의 국가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로 급소하고도 유연하게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놀라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식으로 사태가 발전된다면 더 놀라워 해야 할 일이다. ... 우리들은 오늘날의 과도기적인 상황을 영속적인 상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만이 이러한 세계의 각지에서 널리 정통성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일관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4. 세계에 번진 민주혁명
우리들은 하나의 중요한 시기, 정신이 다시 한 번 도약하면서 이제까지의 형태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흥분된 시대의 입구에 서 있다.우리의 세계를 하나로 묶어온 예전의 표현이나 개념, 관계 등은 그 모두가 꿈속의 그림과 같이 녹아버리고, 무너져내리고 있다. 정신의 새로운 형상이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정신에 무기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과거에 집착하려고 해도 철학만은 그 출현을 환영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06년 9월 18일 강의에서, 헤겔
... 인류가 천년왕국의 끝에 가까워짐에 따라, 독재주의도 사회주의적 중앙정부의 계획경제도 모두가 비슷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보편적인 유효성을 지닌 이데올로기로서 경기장에 남아 있는 경쟁자는 이제 하나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즉 개인의 자유와 인민 주권의 이념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혁명의 기폭제로서 등장한 이래 200년, 이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역사의 거친 파도를 견뎌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몇 번이고 소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온 것이다. ...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밀접하게 관계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의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한 개인적 권리나 자유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 법원칙을 말한다. ... 여기에서는 민주주의에 관한 브라이스 경의 고전적인 명저에서 정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 첫째는 공민권, 즉 "각자의 인격이나 재산에 대해서 사회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종교권, 즉 "종교상의 견해의 표현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정치권, 즉 "공공의 복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통제가 불가피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 ... 한편 민주주의란, 모든 시민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정치적 권력을 공유할 권리, 즉 모든 시민의 투표권과 참정권을 말한다. ...
... 어떤 국가가 민주주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극히 형식적인 정의를 이용하려 한다. 국민이, 성인의 평등한 보통 참정권에 기초하여, 복수 정당제의 정기적인 무기명 투표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이다. 당연히 형식 상의 민주주의만으로 언제나 평등한 정치 참여나 제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일단 이와 같은 형식적인 정의에서 벗어나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얼마든지 오용될 위험성이 생겨난다. ... 하지만 독재를 막는 진실한 제도적인 안전핀을 주는 것은 형식상의 민주주의임에 틀림없으며, 최후에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낳을 가능성도 훨씬 높다. ...
... 민주화의 도상에서 후퇴나 실망이 보이더라도, 또한 시장경제의 원칙을 도입한 모든 곳이 번영을 손에 쥘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세계사에 나타나고 있는 보다 커다란 패턴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완성시키는 방법을 놓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명백하게 '감소되고' 있다. 인류사의과정에서는 이제까지 군주정치나 귀족정치, 신정정치 그리고 금세기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독재 등 각종의 정권이 등장했었지만, 20세기말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뿐이었다. ... 인민 주권이라는 이념 이상으로 정통성을 가진 보편적인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앞으로는 비민주주의자들조차도, 정권의 보편적이고도 유일한 기준에서 자신들이 일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슬람에 의한 문화정복시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 종교는 파문당한 신자들을 되돌아 오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베를린이나 동경, 모스크바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
...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현재,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시대에 합리적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유 재산이나 자본주의가 폐지되고, 정치 그 자체도 거의 불필요한 빛나는 사회주의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상태보다 훨씬 멋진 세계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미래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자유민주주의에 대신할 효과적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나의 논문 「역사의 종말」이 시사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분노에 찬 비판이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 그밖의 많은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자 중 누구 한 사람도 그러한 선택이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논문을 둘러싼 논쟁 중에서도 내가 아는 한 누구 한사람도 자신이 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다른 사회조직 형태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
... 물론 민주주의 체제가 인류사 가운데 상당히 드문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1776년 이전의 세계에는 민주주의 국가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 하지만 존속기간만을 생각하면, 공장생산이나 자동차나 수백만이 사는 대도시 등도 마찬가지로 드문 존재라고 할 수있으며, 이에 반해서 노예제도나 세습군주제도, 왕조 유지를 위한 혼인제도는 훨씬 긴 시대를 살아왔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생 빈도나 존속 기간이라기보다는 성향이다. 선진국에서 가까우 장래에 도시나 자동차가 소멸될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노예제의 부활을 예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보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
... 예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는 "권위주의적이고, 세습을 중시하며, 카톨릭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신분의 상하를 구분하고, 집단을 소중히 여기는 뿌리깊은 봉건전통"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등의 논의가 있어왔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혹은 라틴 아메리카 제국을 서유럽이나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으로 결박짓는 것은 "자민족 중심주의"의 죄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을 가진 사람들 '스스로'가, 이 보편적인 제권리의 기준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통일된 유럽과의 유대관계를 한층 더 강화시켰다. ...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우연이나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편견의 산물이 아닌, 진실로 인간성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 타당성은 사람들이 국제인으로서의 시야를 넓혀 감에 따라서 더욱 명확해져가고 있다.
모든 시대와 모든 국민의 경험을 고려한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 이 의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대단히 오랫동안 있어온 의문이며, 최근의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역사를 써내고자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애써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유의 발전이라는 것을 역사의 중심 테마로 잡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여러 가지 사건의 맹목적인 연쇄가 아닌, 전체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이루며, 올바른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이념도 그 속에서 발전을 이룩하고, 바깥세계로 작용을 하여 온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들이 현시점에서, 우리의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며, 현재의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미래도 별로 가망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 그 자체가 이제 종점에 도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