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사자봉리지
봄빛 가득 이어지는 남도의 푸르른 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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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봄날. 노란 개나리 망울망울
피어오르고 덜컹거리며 광주로 내려가는 철도 옆 봄길 에는 벚꽃이 화사하다. 가녀린 봄바람이 푸른 풀잎 위에 나풀거리고, 늘 그렇지만 남도를
찾아가는 봄날은 황동규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광주에서 영암 가는 버스를 갈아탄다. 나주를 지나 영산강 푸른 강물을 건너 왕곡면으로 접어들자 붉디붉은 황토밭에선
배나무들이 저마다 시샘하듯 봄을 준비하고, 저 배나무들도 달이 차면 올올이 타오르는 하얀 서러움 같은 꽃망울을 터트리며 저 언덕 위에 무리지어
피어 나리라.
신북을 지나 덕진면으로 들어서자 드디어 푸르른 보리밭 위로 두둥실 월출산(808.7m)이 떠 오르고, 소년시절
인수봉을 오르며 항시 그리워했던 화강암, 그 향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월출산! 월출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절대적 지평선 위에 한점 수직으로 솟아오른, 처절히 몸에 배인 고독을 홀로 떨쳐 일어선 아름다움일 것이다.
때문에 월출산은 남도의 어느 곳에서 눈을 감아도 선연히 찔레꽃 같은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월출산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날은 천황봉에 보름달이 살포시 걸리는 날일 것이다. |
월출산에 달이 떠오르는 날은 영암에서 도갑사로 이어지는 황홀한 벚꽃 길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어보라. 나지막이
드리워진 꽃길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비에 옷이 젖고, 영혼까지 젖어들어 아주아주 먼 훗날에도 이승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렇게 월출산으로 달이 지는 밤에도 벚꽃은 피어나고 4월 7일 오전
9시. 함께 사자봉리지를 등반할 박만열(34세·광주클라이밍연합회), 배훈희씨(31세·광주모듬산악회)와 기자 일행 은 어제 머물렀던 민박집을 떠나
바람골로 향한다. 두 번째 매표소를 지나 한참을 오르자 이정표가 나오고 우리는 우측으로 난 길을 따른다. 첫 번째 철다리를 건너는데
바람골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제법 봄빛처럼 싱그럽다.
잔잔히 밀려드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입산통제'를 알리는 표지판에 다다른다. 골짜기 좌측 편으로는 산죽밭이 봄이
깊어 가는지 푸르름을 더하고 우리는 금방이라도 눈에 푸른 물이 들것 같은 산죽밭을 벗어난다. 첫 번째 철계단 좌측으로 10여미터의 와폭이 청량한
물소리로 우리 귀를 자극한다.
봄빛 아래 우뚝 선 사자봉리지
두 번째 철계단을 오르자 산길에는 일생을 마감한 붉은 동백꽃이 수십여개 처연히 떨어져 있어 왠지 동백꽃을 바라보기
서럽고. 존재하는 것들은 어쩌면 저 꽃들처럼 언젠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시간의 과정처럼 무상한 것은 아닐는지….
해발 340미터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왼쪽 구름다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를 올라 가자 앞서가던 박만열씨가
가던길을 멈추고 이 지점이 사자봉리지 초입이라 이른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바람폭포 가기 40∼30미터 전의 등산로 바로 좌측. 이곳에는
버들회나무와 병꽃나무임을 알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꼬리표가 있다.
사자봉리지는 1980년 전남대학교 의대산악회에서 개척한 리지로 바람골에서 사자봉 정상으 로 이어지는 주변 경관이
뛰어난 암릉이다. 이 리지의 등반 길이는 약 300미터이고 총 아홉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크랙과 침니, 슬랩 등반을 다 함께 즐길 수 있어
중급 실력의 등반자 라면 부담 없이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이 리지는 광주 및 목포의 산악인들이 매봉과 함 께 즐겨 찾는 곳이다. 길가에서
등반 준비를 하고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두 개의 꼬리표 사이로 난 길을 오른다. '그루터기산악회' 붉은 표지기를 지나 가파른 사면을
오르자 짧은 바위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한 스텝을 딛고 올라 조금 더 가자 3단 사선 크랙이 보인다.
99한국 가셔브룸Ⅰ,
가셔브룸Ⅱ, K2원정대(총원정대장 위계룡) 대원으로 선발된 배훈희씨가 부드럽게 첫마디 등반을 시작한다. 그는 약간 왼쪽으로 비낀 크랙을 가볍게
넘은 뒤, 바위 틈에 설치된 확보용 슬링에 확보물을 설치한다. 그 다음 쉬운 사면을 걸어가 나무에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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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열씨가 자일을 사리고 있다>................<배훈희씨의 변형훼이스 구간
등반>
등반을 마친 우리는 15미터를 걸어 3미터쯤의 쌍크랙(5.1급)을 자일 없이 그냥 넘은 후, 30여 미터를 나아가자
10미터쯤의 훼이스가 가로 막는다. 본래 둘째 마디는 훼이스 우측의 5미터 반침니 크랙을 올라야 제길이지만 박만열씨는 조금 깔깔한 등반을 즐기고
싶다며 좌측 훼이스를 오른다. 박씨가 훼이스 하단을 부드럽게 올라 상단에 이르러 몸을 우측 홀드로 이동하는데 그 몸짓 에서 쉽지 않은 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훼이스를 넘자 약 15미터를 걸어가 나무에 확보한 후 서준영 사진기자의 확보를 준비한다. 셋째마디는 자일을 쓰기도 뭐하고
안쓰기도 뭐한 조금 어정쩡한 구간. 등반에 나선다.
박만열씨가 앞에 있는 작은 바위의 왼쪽 암각 홀드를 잡고 넘어가고, 배훈희씨는 우측 훼이스의 언더 홀드를 이용해
넘어간다. 이후 짧은 슬랩과 클랙이 이어졌지만 모두 손쉽게 올라선다. 어제 많은 비가 온 뒤라 오늘 하늘은 그대로 누워 잠을 청하고 싶을만큼
파랗다. 그 하늘 밑으로 장군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손에 잡힐 듯 일어서고…. 우리는 한동안 등반을 중지한 채 그저 봄날의 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고도감이 사무치게 묻어나는 여덟째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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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마디 트래버스구간을 등반하는
배훈희씨>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오른쪽의 작은 1봉을 끼고 돌아 하강하는 지점에 도착한다. 클라 이밍 다운으로 조금 내려간
배씨가 암각에 자일을 걸고 약 15미터를 하강한다. 모두 하강을 마치고 박만열씨가 암각에 걸린 자일을 툭 튕겨주자 자일은 아주 손쉽게 회수된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한사람이 그냥 들어가도 될 만한 침니가 나오고 넷째마디 시작을 알리 는 나이프하켄이 녹이 잔뜩
낀채 박혀있다. 박만열씨가 선등으로 앞서간다. 박씨는 넓은 침니 안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몸이 약간 끼일 정도의 지점에서 밖으로 나오더니 다시
침니 속으로 살짝 들어갔다가 나와 볼트에 확보한다. 이제 간간히 사람들 목소리가 구름다리 쪽에서 난다. 아무 그들은 출렁대는 다리를 지나 매
봉을 올라 생강나무 꽃 빛나는 목소리로 "야∼호∼"를 외치리라.
그리고 봄빛이 흥겨운 남도 의 산에서 튼실하게 자라나는 난 이파리처럼 천황봉을 오르리라. 아주 쉬운 슬랩과 크랙으로
이루어진 다섯째 마디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는 구 간. 비교적 넓은 크랙으로 이루어진 여섯째 마디는 약 60도의 경사를 지닌 코스로
크랙을 타고 오르다 오른쪽 침니로 진입해야 한다. 박만열씨가 침니를 지나 그 위에 있는 짧은 크 랙을 등반해 링볼트에 확보한다. 65도의
크랙으로 이루어진 일곱째 마디는 크랙안으로 손을 넣으면 양호한 홀드가 잡혀 생각 보다 쉽게 오를 수 있다.
박씨가 상단 크랙 사이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나무를 넘어 고빗사 위에 프렌드 하나를 박고 손 재밍으로 크랙을 올라선
뒤 조금 걸어가 나무에 확보물을 설치 한다. 자일을 사려 계단식 바위를 올라 조금 넓은 곳을 지난다. 여덟째마디 시작하는 지점에서 행 동식으로
점심을 먹을 즈음, 빨간 조끼와 모자를 쓴 단체 등산객들이 매봉까지 올라와 옹기 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다. 우리가 식사한 곳은
매봉보다 조금 높은 위치. 동쪽으로 사자저수지의 푸른 물이 떠오르고 해마다 이맘때면 남도의 들녘을 녹색으로 채색하는 보리밭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의 물결 따라 파문져 번지는 남도의 오후 2시.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가졌던 취재진은 다시 등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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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훈희씨가 사자봉리지 전 구간 중 가장 바위 고도감이 센 70도의 훼이스로 진입한다. 그는 볼트 6개가 박힌 볼트의
슬링을 잡고 오르다가 마지막 볼트에서 우측으로 횡단한다. 그 다음 볼트에 퀵드로를 건 후, 조금 어려워 보이는 표준 침니를 등반해 오름짓을
마무리 한다.
여덟째마디 등반을 마친 취재진은 자일을 사려 30미터쯤을 걸어올라 아홉째마디 앞에 선다. 배씨는 우측의 낡은 하켄과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5미터 정도의 직상 크랙을 올라 사자봉리지 등반을 종료한다. 오후 3시 10분. 자일을 사린 일행은 2봉인 사자봉 꼭대기를
향해 오른다. 하지만 등산로는 정상 부근 못 미친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천황봉을 바라보고 어느 정도 내려가자 볼트 한 개가 보이고 자일
한동을 걸고 약 20미터 하강한다. 첫 번째 하강을 마치고 조금 걸어내려 가자 다음 하강지점이 나온다. 볼트와 하켄이 박혀있어 자일 두동을 걸고
조금 경사가 가파른 슬랩 사면을 40여미터 내려온다.
모든 등반을 마친 시간은 3시 30분. 장비들을 배낭에 챙겨 넣고 바로 위쪽 사면을 오르자 매봉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길을 따라 내려가자 매봉으로 가는 힘든 오르막이 나오고 매봉 정상부터는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 그런 곳에는 으레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박만열씨 이야기로는 철계단이 생기기 전에 매봉을 리지 등반했다는 옛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월출살의 명물 구름다리를 지나는데 발아래 고도감 때문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것만 같 다. 다리를 건너 매봉에
이르자 광주와 목포 산악인들이 즐겨 등반한다는, 바라보기만 해도 고도감이 팍팍 살아나는 매봉 암장이 나오고, 좀더 내려가자 시루봉 암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죽밭이 나올 즈음 고도는 한참 낮아져 천황사가 지척에 서있고 두 번째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20분. 벚꽃송이들이
우리 일행을 맞고 있다. 풋풋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월출산을 아쉬운 듯 되돌아보는 순간 남도의 바위산은 우리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와락
달려들고, 채 못다 핀 벚꽃들이 미친 듯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자봉리지 길잡이
월출산 사자봉리지
들머리는 두 번째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이정표에서 우측길로 간 다. 첫 번째 철다리를 건너 바람골로 접어들어 골짜기를 올라가면
'입산통제'를 알리는 표지 판이 나온다. 10여미터 와폭 우측에 있는 첫 번째 철계단을 올라 두 번째 철계단을 지나면 해발 340미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 구름다리 방향으로 얼마를 올라가면 바람 폭포 가기 40∼50미터전, 등산로 바로 좌측에 사자봉리지 초입이
나온다. 이곳에는 버들회나무와 병꽃나무를 알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꼬리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바로 위쪽에 붉은 표지기가 있어 리지 초입
찾기는 쉬운 편이다.
[월출산 사자봉리지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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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사지봉리지 초입>
등반 길잡이 |
사자봉리지는 슬랩과 크랙, 침니가 알맞게 섞여 있는 리지로 천황봉과 장군봉
형제봉 매봉 등을 음미하며 등반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남도의 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리지다. 또한 총 300미터, 아홉마디로 이루어진
이 리지는 초급 수준이어서 중급 실력을 지닌 클라이머라면 별 부담 없이 등반할 수 있는 곳이다. 2인 1조 등반시 등반 시간만 약 3시간
소요되며, 전체 적으로 약 5∼6시간 소요된다. 이 리지 등반중 주의를 요하는 곳은 둘째 마디와 일곱째마디인데, 취재진이 등반했던 둘째
마디 훼이스는 난이도가 5.10급에 해당하는 데다 상단에 확보용 볼트가 없어 추락시 중상을 당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자신이 없다면 본래
루트인 우측 반침니식 크랙을 오르는 것 이 좋다. 일곱째마디는 비교적 고도감이 있는 크랙으로 나무를 넘어선 다음 반드시 프렌드를 설치하
고 넘어야 안전한 등반을 할 수 있다. 여덟째마디는 경사가 센 훼이스이지만 낡은 링볼트에 슬링이 걸려 있어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다.
등반장비는 2인 1조 등반시 자일 2동과 10개 정도의 퀵드로, 프렌드 1조. 확보용 긴슬링이 두어개 필요하다. 자일 2동이 필요한 것은 두
번째 하강시 40여미터의 하강을 해야 하기 때 문이다. |
교통 |
서울 강남터미널 호남선(☎02-592-0799)에서 05:30부터
21:45까지 5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광주 행 버스를 이용한다. 우등은 17,700원이며, 일반은 11,900원. 소요시간은 약 4시간.
광주 종합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06:43부터 19:40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장흥 행 직행버스를 타고 영암에서 하차.
소요시간은 약 1시간 20분이며, 요금은 3,700원. 영암 시외버스공용정류장(☎0693-473-3355)에서 06:40 09:10 10:10
15:20 16:30에 출발하는 천황 사행 버스타고 종점에서 하차. 요금은 530원, 소요시간은 약 15분. 버스가 끊겼을 경우 터미 널
옆에 있는 택시를 이용한다. 요금은 4,000. |
숙박 및 먹거리 |
등반을 하려면 월출산 국립공원 매표소 근처에서 민박하는 것이 좋다. 산장식당민박(☎ 0693-473-4900)은
4∼5인용 방을 15,000원 받는다. 이 집에서 잘하는 음식은 토종닭으로 30,000원 하며, 집에서 직접 담근 동동주는 5,000원
한다. 이외에도 산악인의 집(☎ 0693-73-3778) 바우민박(☎0693-73-3778)에서도 민박을 한다. 등반을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영암읍에서 도갑사 가는 2킬로미터 지점의 회문리에 있는 대양회관(☎0693-73-6565)을 들러도 좋다. 이 집은 한식 전문으로
잡채와 낚지볶음 등 푸짐한 반찬이 나오는데 맛이 좋다. 단, 3인 이상 되어야 손님을 받는다. 1인분은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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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식당의 한정식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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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5만분의 1 영암 |
제공:오케이마운틴
사람과 산 글 김기섭 기자 , 사진 서준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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