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은 아빠의 고향이자 할머니와의 추억이 가슴 아프게 스며있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1,2년에 한 번씩은 친정 식구들 따라 산소를 돌보러 오곤 하는데 놀러온 것은 초등학생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백수시절, 할머님과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 번 찾아와본 적은 있다. 그때 내 가슴이 얼마나 짠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무튼 이번 휴가여행은 철저히 놀고 쉬고자 물놀이 위주로 스케줄을 짰다.
2박3일을 3일처럼 쓰자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은경이와 승학이 차를 끌고 와 7시에 출발한 길. 2시간이면 족하리라 했는데 길을 잘못 알았는지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역시 여행길에 지도는 필수다.
그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유미네 집으로 가 일단 짐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지천구곡으로 갔다. 칠갑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소박한 절경과 함께 어우러져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 탓인지 수온은 차지 않고 놀기 딱 좋았다. 그늘에 자리를 펴니 어찌나 시원한지 남편은 놀려고 사온 보트에 누워 신선처럼 오수에 잠겼다. 한여름엔 관광객들이 많을 거라 했는데 북적거리지 않고 딱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곡교 근처에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무료로 운영되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관광객들이 많아지면 모두 수용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벅적대는 식당도 없었고, 하나 있는 슈퍼마킷 물건값 바가지 없이 정가를 받았으며 인심좋게 종이컵도 서비스해주었다.
진이와 헤엄을 치고 놀다가 다슬기를 잡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바로 청양 이 지역, 안골이란 두메산골에 할머님의 어머님이 사셨고 나는 산을 등진 그 따뜻한 햇볕 집에 놀러오곤 했었다. 그 곳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다슬기를 잡으러 다니곤 했는데 그 때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그 시절로 돌아간 양 즐거웠다. 오후가 늦어지자 점점 유속이 빨라졌다. 다슬기 잡는 재미에 빠져 악착같이 바위에 붙어 있었지만 몇 번을 물살에 휩쓸려 굴러다녀야 했다. 그것 또한 재미있었다.
유미 집으로 돌아와 집 옥상에 상을 펴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둘째 날은 무창포 해수욕장을 찾았다. 원래 계획은 보령의 대천 해수욕장이었으나 서해에서 가장 유명한 그 곳에 가서 사람에 치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번 휴가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라 하여 무창포로 갔다. 아담한 곳이었다. 이곳도 사람들이 적당하였다. 어찌나 태양이 뜨겁던지 바닷물이 뜨뜨미지근했다. 백사장 위에 뽕뽕 뚫려 있는 작은 구멍 속에 숨어 있을 게나 조개를 파내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어제 잡은 다슬기를 잘못 끓여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것이 미안하여 쓸데없는 살상에 힘쓰지 않기로 했다. 차를 오래 타고 다녀 생긴 멀미 때문에 한참을 그늘 밑에 누워 있었는데 기분 좋게 따뜻했다. 그늘막을 치고 파라솔을 쳐도 그늘 안은 시원하지 않았다. 정말 더운 날씨였다.
바닷길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달 보름 이후에나 열린다 하여 그 흔치 않은 신비한 현상을 보지는 못했다.
저녁은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천막 가게에서 조개구이를 먹었다. 해산물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진이가 맛있다며 조개구이를 먹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역시 산지 것이라 맛이 더 있었는가. 씹을 때마다 조금 전 바다를 헤엄쳐 다니다가 입 속에 스몄던 짠 내가 나는 듯 했다. 빨간 석양이 조용하게 바다 뒤로 숨어들고 밤이 찾아오자 파도 소리, 폭죽 소리만이 바다 가득했다.
셋째 날은 칠갑산 자연 휴양림으로 갔다. 숙소, 야영장, 작은 개울, 솔향 가득한 숲 속 한가운데 길을 조금 걷다보면 그 끝에 아담한 작은 물놀이장이 나왔다. 탁 트인 바다와 큰 계곡 속에서 이틀을 놀다와서인지 그 작은 규모를 보는 은경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래도 진이는 계속해서 물속에서 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모양이었다. 산 속이라 그런지 그 물을 담은 물놀이장 물은 차고 시원해서 좋았다. 많은 아이들이 그 속에서 헤엄치고 아빠들이 그 곁에서 그네들과 어울려 놀아주는 모습은 정말이지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숲향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대한민국 산하 어디라고 다를 게 있을까. 하지만 청양에는 청양 냄새라는 것이 있다. 그 냄새만 맡으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그리워만 진다. 남편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 근처 내 할머니 계시던 그 안골로 들어가자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내 그리움은 내 속에만 있는 것이니 누가 그 속을 알아줄까. 물도 얕고 산과 태양뿐인 그 곳에 속 모르는 일행들을 데려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꼭 다음에는 아이와 함께 안골에 들어가보고 싶다. 나의 고향 안골에.
청양은 화려하지 않은 곳이다. 소박하고 내 할머니처럼 단아한 곳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직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다. 가을에는 붉은 노란 단풍에 어울려 주황색 감이 집집마다 산길마다 가득하다. 여름이면 빨갛게 익어 늘어진 구기자가 반찬상에 오른 청양 고추보다 곱다. 나는 그런 청양을 사랑한다. 이 곳 태양을 유독 사랑하고 공기에 흐르는 향내에 온몸을 전율한다. 가끔 생각한다. 언젠가 이 곳에 와서 살고 싶다. 세상을 등지고 살게 된다면 그 곳은 바로 이곳이 될 것이다.
휴가일이 맞지 않아 함께 놀지 못하면서도 흔쾌히 숙소를 제공해준 유미와 마음 써주신 유미 어머님께 감사드리고 내 마음의 고향에 오는 것에 당연히 따라준 여산씨와 진이, 은경이와 승학 모두에게 감사한다. 오랜만에 즐겁고 편안한 휴가여행이었다.
* 서로 카메라를 가져오겠다고 하다가 결과적으로 서로 미루는 결과가 되어 카메라 없이 휴가를 보냈다. 그래, 이번에도 청양을 마음에 담아올 수 있었다.
(2006. 8. 5)
첫댓글 휴가를 다녀오셨군요..무창포, 칠갑산..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휴가후기가 어쩌면 그림같습니까,,맛깔스런 얘기에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는것 같습니다,,전 며칠전 부곡 하와이에 사람구경다녀 왔습니다..
부곡하와이 다녀오셨군요. 그 곳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곳은 놀이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다 하던데 재미있게 놀다오셨겠죠? 언제 시간 되시면 청양도 들러 보세요. 아름답고 소박한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