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이 책은 우리 광진 도서관 친구들이 한 달에 한 권씩 정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10월의 책’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책이 선정되었을 때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체로 구입을 하게 되어 사기는 했지만 한 쪽으로 제쳐 두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럭저럭 토론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래도 다시 한 번 훑어는 봐야겠다 싶어 책을 폈다가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습니다.
‘이 책을 내가 언제 읽은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 건성건성 소개만 듣고서 읽었다고 생각했겠지요. 혹 어쩌면 줄거리만 요약해 놓은 얄팍한 것을 읽었을 수도 있겠고.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이면서 아주 중요하고 유명한 작품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로서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는데 1991년 북어브더먼스 클럽과 미국 국회 도서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경 다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놓는데 이바지한 책으로 꼽혔다는 것입니다. 또 'one book one chicago'의 주제 책으로 선정되어 시카고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고 시카고를 변화시켰으며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세계적인 독서 운동으로 확산시킨 대표적인 책이기도 하지요.
이 소설은 1961년에 발간되었지만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앨라배마 주 메이콤이 배경입니다. 주인공인 스카웃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3년 정도의 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거의 모든 성장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주인공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 갑니다.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와 오빠 젬, 미시시피에서 온 친구 딜, 이웃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와 모디스 앳킨스 아줌마, 고모,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가 스카웃의 성장을 돕는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다 읽고 나서 밑줄 그어 둔 글들을 옮겨 적다가 보니 ‘ 아빠가 말씀하셨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글이 반이 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듀보스 할머니와의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억울한 입장에 놓이게 된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기꺼이 맡습니다. 당연히 동네 사람들은 온갖 비방과 욕설, 협박과 공공연한 테러까지 가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를 향해서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까지도.
특히 이웃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는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온갖 악담을 퍼부어 댑니다. ‘그렇게 자라면 스카웃은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될 것이고 오빠 젬은 소년원에 가게 될 것이며 아버지는 쓰레기 같은 깜둥이들보다 나을 게 없다면서.’
그런 말을 듣고 집에 온 스카웃이 아빠께 묻습니다.
“아빠는 정말로 깜둥이 애인이 아니지요?”
그러나 아빠는 말합니다.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때로 나는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군가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아.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셔.”
그러면서 언제나 누구에게나 정중하게 신사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빠 젬은 이성을 잃고 듀보스 할머니 집 정원에 들어가 할머니가 애써 기른 동백꽃 머리를 모두 잘라내고 꽃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일로 젬은 한 달 동안 학교가 끝난 뒤 오후, 그리고 토요일마다 찾아가서 두 시간 동안 큰 소리로 책을 읽어 주는 벌을 받게 됩니다. 벌을 받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두 아이에게 온갖 모욕을 주지만 오빠와 스카웃은 조금씩 익숙해지며 무사히 벌을 받고 풀려납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훌륭한 귀부인으로 추억합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더 잘 알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래, 훌륭하신 귀부인이셨어. 할머닌 세상일에 대해 할머니 자신의 생각이 있으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이.........얘야, 네가 그 때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할머니께 책을 읽어드리도록 했을 거야. 난 네가 할머니께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겨우 98파운드의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할머닌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닌 내가 지금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어.”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좀 더 성장하고 의젓해 졌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도 나서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진정 용기 있는 삶은 어떤 삶인지를 알게 될 것이며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상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아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책 속 아버지의 일관된 신념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묵직하게 합니다. 저는 그에 더하여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리는 일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리고 읽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다시 꺼내게 되기도 했습니다.
첫댓글 혜경씨 그 부분 참 좋지요? 저도 그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