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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인성 그림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정인성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전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한 “까미유 클로델” 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둘 다 휼륭한 예술가였으나,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비극적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영화로 인해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의 로댕의 그림자에서 또 한 명의 예술가를 끄집어 내었지요. 물론 그녀의 예술성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녀의 영혼은 불꽃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많은 이들이 그 슬픈 인생에 자신의 마음의 한 조각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과 우리나라에서도 진품을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여 뉴스에까지 나왔던 <지옥의 문>(세계적으로 7번째 복사품까지는 진품으로 인정한다고 하네요.)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광적인 사랑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모델로, 조력자로, 연인으로 자신의 열정을 바쳤던 여류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과 함께요.
까미유가 19살, 로댕이 43살이었던 1883년 그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습니다. 당시의 로댕은 이미 유명한 조각가였고, 그 즈음 <지옥의 문>을 창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자 마자 까미유의 내면에 숨겨진 불 같은 열정을 한 눈에 알아챘던 로댕은 그녀에게 몇몇 지옥의 여인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도 하고, 몇몇 사람들의 손과 발 등을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또래보다 조숙하고 아름다웠던 까미유에게 매료된 로댕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까미유에게 있어 “내 꿈은 모두 악몽”이라고 말할 만큼 모진 사랑이었습니다. 그 둘은 10년 동안을 사랑했습니다. 까미유는 로댕의 마음을 사랑하고, 로댕의 예술을 사랑하고, 로댕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물 네 살에 만나 20여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로즈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결혼을 요구했던 클로델에게 로댕의 모습은 유유부단함 뿐이었습니다. 그는 로즈에 대한 마음을 부인하면서도 그녀와의 관계를 핑계로 클로델의 결혼 요구를 피했습니다. 그는 클로델을 사랑했지만 늘 자신의 곁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던 그녀를 버리지 못했던 거죠. 결국에는 그가 사망하기 며칠 전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름답고 예술적 영감 또한 풍부했던 천재적 예술의 동반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이 예술가에게 불안감과 부담을 안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에게 그녀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이기도 했구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중요했던, 나이든 남자는 결국 여자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뛰어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자 했을 때도 압력을 행사하며 방해를 했던 거죠.
로댕의 그늘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클로델은 한동안은 열심히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류 조각가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예술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늙은 조각가 또한 그녀를 점점 압박했습니다. 불행한 사랑의 종말과 마주쳐야 했던 클로델은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히고 말지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작품 활동 또한 실패하게 된 클로델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동생 마저 중국으로 떠나버리자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거의 폐인의 삶을 살게 되었지요. 그리고 결국 부모님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되게 됩니다. 그녀가 쓸쓸히 숨을 멈출 때까지, 30년 동안 말이지요.
[ 생각하는 사람 (1880) ]
로댕은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 작품에 들어갈 부분들을 하나의 조각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작품도 실제로 <지옥의 문> 윗 중앙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지옥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회상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인간의 고독, 그 형태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무릎꿇은 목신의 요정 (1884) ]
상반신만을 강조하는 듯 팔을 뒤로 젖히고 있는 이 조각 또한 클로델이 모델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로댕은 사랑하는 여인의 육체를 섬세히 관찰하여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 작품 또한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 키스 (1886) ]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막 깨달은 두 연인의 격정적인 모습이죠. 클로델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여, 그녀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지옥의 문> 오른 쪽 아래에 조각하려고 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떼어냈다고 하네요.
[ 달아나는 연인 (1887) ]
단테의 <신곡>에서 등장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젊고 잘생긴 시동생 파올로에게 반한 형수 프란체스카의 불륜이죠. 로댕은 달아나는 여인을 불잡으려고 애쓰는 이 남자를 방탕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클로델의 손길이 남아있습니다.
[ 기도하는 사람 (1889) ]
로댕과 함께 하는 시간 중에 제작된 그녀의 작품입니다. 눈을 감고 지금 막 입을 벌린 듯한 조각상은 자신의 슬픈 마음을 하염없이 쏟아놓을 것만 같네요. 기도하는 여인의 머리에 씌워진 미사보와 여인의 콧날을 보면 과감하고 열정적인 클로델의 손길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색 (1889) ]
불 같은 정열을 소유한 클로델의 강하고도 진지한 얼굴이 잘 조각되어 있습니다. 태풍의 눈이 고요한 것처럼 폭풍과도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명상에라도 잠긴 듯, 멈추어 있습니다. 오히려 깊은 사색을 통해 강렬한 사랑의 원천을 얻는다는 느낌 마저 드는군요.
[ 다나이드 (1889) ]
이 작품 또한 클로델이 모델인데요,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우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조각하는 로댕의 손길에 애정이 담뿍 담겨 있음이 느껴집니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으로서 남편을 죽인 대가로 평생을 지옥에서 물긷는 형벌을 받았다고 해요. 엎드려진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이 그녀 앞에 흐르는 물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 왈츠 (1893) ]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서 그녀의 천재적 예술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로댕의 곁을 떠난 뒤 오히려 보란듯이 작품 활동에 매달린 결과라서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아름답게 왈츠를 추고 있는 그녀와 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관능적인 두 연인의 육체의 선과 드레스의 과감한 주름이 돋보입니다.
[ 울부짖는 사람 (1900) ]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대상을 앞에 두고 울부짖으며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여인의 슬픔이 그녀의 뻗은 두 팔과 무릎에서 느껴집니다. 로댕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신의 고독과 아픔들을 소재로 하여 격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지옥의 문 (1917) ]
1880년에 제작하기 시작했으나, 끝내 미완성인 상태로 남게 된 작품이지요. 프랑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장식 미술관의 출입문을 장식하기 위해 조각한 것으로서 단테의 <신곡>을 즐겨 읽었던 로댕이 그 중에서 “지옥” 편을 주제로 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여러 조각상들을 모아 한데 얽으면서 만들어져 특별히 큰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전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한 “까미유 클로델” 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둘 다 휼륭한 예술가였으나,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비극적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영화로 인해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의 로댕의 그림자에서 또 한 명의 예술가를 끄집어 내었지요. 물론 그녀의 예술성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녀의 영혼은 불꽃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많은 이들이 그 슬픈 인생에 자신의 마음의 한 조각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과 우리나라에서도 진품을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여 뉴스에까지 나왔던 <지옥의 문>(세계적으로 7번째 복사품까지는 진품으로 인정한다고 하네요.)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광적인 사랑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모델로, 조력자로, 연인으로 자신의 열정을 바쳤던 여류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과 함께요.
까미유가 19살, 로댕이 43살이었던 1883년 그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습니다. 당시의 로댕은 이미 유명한 조각가였고, 그 즈음 <지옥의 문>을 창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자 마자 까미유의 내면에 숨겨진 불 같은 열정을 한 눈에 알아챘던 로댕은 그녀에게 몇몇 지옥의 여인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도 하고, 몇몇 사람들의 손과 발 등을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또래보다 조숙하고 아름다웠던 까미유에게 매료된 로댕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까미유에게 있어 “내 꿈은 모두 악몽”이라고 말할 만큼 모진 사랑이었습니다. 그 둘은 10년 동안을 사랑했습니다. 까미유는 로댕의 마음을 사랑하고, 로댕의 예술을 사랑하고, 로댕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물 네 살에 만나 20여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로즈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결혼을 요구했던 클로델에게 로댕의 모습은 유유부단함 뿐이었습니다. 그는 로즈에 대한 마음을 부인하면서도 그녀와의 관계를 핑계로 클로델의 결혼 요구를 피했습니다. 그는 클로델을 사랑했지만 늘 자신의 곁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던 그녀를 버리지 못했던 거죠. 결국에는 그가 사망하기 며칠 전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름답고 예술적 영감 또한 풍부했던 천재적 예술의 동반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이 예술가에게 불안감과 부담을 안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에게 그녀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이기도 했구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중요했던, 나이든 남자는 결국 여자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뛰어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자 했을 때도 압력을 행사하며 방해를 했던 거죠.
로댕의 그늘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클로델은 한동안은 열심히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류 조각가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예술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늙은 조각가 또한 그녀를 점점 압박했습니다. 불행한 사랑의 종말과 마주쳐야 했던 클로델은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히고 말지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작품 활동 또한 실패하게 된 클로델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동생 마저 중국으로 떠나버리자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거의 폐인의 삶을 살게 되었지요. 그리고 결국 부모님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되게 됩니다. 그녀가 쓸쓸히 숨을 멈출 때까지, 30년 동안 말이지요.
[ 생각하는 사람 (1880) ]
로댕은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 작품에 들어갈 부분들을 하나의 조각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작품도 실제로 <지옥의 문> 윗 중앙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지옥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회상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인간의 고독, 그 형태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무릎꿇은 목신의 요정 (1884) ]
상반신만을 강조하는 듯 팔을 뒤로 젖히고 있는 이 조각 또한 클로델이 모델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로댕은 사랑하는 여인의 육체를 섬세히 관찰하여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 작품 또한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 키스 (1886) ]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막 깨달은 두 연인의 격정적인 모습이죠. 클로델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여, 그녀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지옥의 문> 오른 쪽 아래에 조각하려고 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떼어냈다고 하네요.
[ 달아나는 연인 (1887) ]
단테의 <신곡>에서 등장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젊고 잘생긴 시동생 파올로에게 반한 형수 프란체스카의 불륜이죠. 로댕은 달아나는 여인을 불잡으려고 애쓰는 이 남자를 방탕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클로델의 손길이 남아있습니다.
[ 기도하는 사람 (1889) ]
로댕과 함께 하는 시간 중에 제작된 그녀의 작품입니다. 눈을 감고 지금 막 입을 벌린 듯한 조각상은 자신의 슬픈 마음을 하염없이 쏟아놓을 것만 같네요. 기도하는 여인의 머리에 씌워진 미사보와 여인의 콧날을 보면 과감하고 열정적인 클로델의 손길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색 (1889) ]
불 같은 정열을 소유한 클로델의 강하고도 진지한 얼굴이 잘 조각되어 있습니다. 태풍의 눈이 고요한 것처럼 폭풍과도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명상에라도 잠긴 듯, 멈추어 있습니다. 오히려 깊은 사색을 통해 강렬한 사랑의 원천을 얻는다는 느낌 마저 드는군요.
[ 다나이드 (1889) ]
이 작품 또한 클로델이 모델인데요,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우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조각하는 로댕의 손길에 애정이 담뿍 담겨 있음이 느껴집니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으로서 남편을 죽인 대가로 평생을 지옥에서 물긷는 형벌을 받았다고 해요. 엎드려진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이 그녀 앞에 흐르는 물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 왈츠 (1893) ]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서 그녀의 천재적 예술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로댕의 곁을 떠난 뒤 오히려 보란듯이 작품 활동에 매달린 결과라서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아름답게 왈츠를 추고 있는 그녀와 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관능적인 두 연인의 육체의 선과 드레스의 과감한 주름이 돋보입니다.
[ 울부짖는 사람 (1900) ]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대상을 앞에 두고 울부짖으며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여인의 슬픔이 그녀의 뻗은 두 팔과 무릎에서 느껴집니다. 로댕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신의 고독과 아픔들을 소재로 하여 격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지옥의 문 (1917) ]
1880년에 제작하기 시작했으나, 끝내 미완성인 상태로 남게 된 작품이지요. 프랑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장식 미술관의 출입문을 장식하기 위해 조각한 것으로서 단테의 <신곡>을 즐겨 읽었던 로댕이 그 중에서 “지옥” 편을 주제로 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여러 조각상들을 모아 한데 얽으면서 만들어져 특별히 큰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출처: 다음카페 "생각과 표현"( http://cafe.daum.net/ideaart )
어둠 속에서 무정형의 원초적 덩어리를 주무르며 세상의 모든 아침을 맞았던 여인.미모와 재능을 겸비했음에도 위대한 조각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녀에게는 비극적 여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지워지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극적인 비극을 즐겨 말한다. 19세기 최고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이름은 항상 로댕의 그림자 뒤에 자리한다. 근대 조각의 신기원을 기록했던 로댕의 유명한 여성편력에서 유독 까미유 끌로델이 거론되는 이유는 그녀가 단순히 그의 작업모델이자 정부가 아닌 한 사람의 조각가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까미유에게 있어 로댕은 여성의 신체조건으로는 힘든 조각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재능과 열성을 이해하는 동지이자 선생이었고, 로댕 역시 까미유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던 구원의 여인으로 자신의 비법을 전할 수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로댕의 비극적 연인으로만 세인에게 회자되던 그녀. 그녀는 치열한 예술혼과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가진 한 사람의 뛰어난 조각가였다. 이미 5섯살 때 마당의 진흙으로 해골을 만들어 오븐에 구워먹겠다는 그녀의 천부적인 흙과 돌에 대한 애착은 그녀가 본능적으로 조각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남다른 그녀의 행동을 그녀의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유독 막내 여동생만을 사랑하며 그러한 편애는 일생동안 계속된다.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핏줄을 넘어선 어떤 경외심을 품게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성만이 지닌 생명의 폭발적인 창조력이 집안에 몰고 올 위험을 감지했던 것일까. 까미유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폄하하며 급기야 그녀의 남은 30년을 정신병원에 가두워 숨죽이게 했다. 실제 까미유라는 이름자체가 죽은 남동생의 이름을 딴 것으로 자체에 어원상 양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숨겨진 여성의 강력한 창조의 힘이 이름 속에서부터 거세되어 그녀의 삶을 지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1893년경 로댕의 불성실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까미유가 로댕과 결별하게 된다. 사랑의 배신과 더불어 자신의 예술 세계까지 망가져가는 까미유 끌로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울증과 피해 의식, 편집광적 증상을 보이며 거리를 방황하며 밤마다 로댕의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지만, 그러나 결국 그녀는 어둡고 침침한 지하 별장에서 고통 속에 빚어낸 여러 작품들을 뒤로하고 정신 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실려가게 된다. 인간의 영혼을 빚어냈다는 평을 받는 로댕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영혼의 힘을 직감했는 지도 모른다. 불같은 까미유의 사랑에 시종 애매모호한 태도로 비겁한 행동을 취한 로댕 역시도 그 사랑의 희생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댕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관념적인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을 떼도 까미유는 자신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배시키며 조각했던 그 작품은 비록 세상의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행복을 추구했던 그녀. 까미유는 적어도 로댕보다는 나았다.
글/ 홍경한(미술평론가)
까미유 크로텔의 가장 유명한 작품<왈츠>
그녀의 개인적인 모든 예술의 특성이 표출되는 작품이다.
1988년 부르노이누땅 감독의 "까미유클로델" 영화 포스터
까미유 끌로델 ▶어린소녀 샤틀렌느
청동조각_까미유 끌로델_깊은 생각
청동조각_까미유 끌로델_파도
줄거리
까미유(Camille Claudel: 이사벨 아자니 분)는 20살 때
44세의 로댕(Auguste Rodin: 제랄드 드빠르듀 분)을 처음 만난다.
젊지만 고집이 센 그녀는 곧 로댕과 사랑에 빠졌고,
까미유의 미모와 재능에 매혹된 로댕은 그녀를 '지옥의 문' 제작 조수팀의 일원으로 고용한다.
로댕을 향한 사랑과 조각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까미유는 자신의 주위 환경에 대담하게 도전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작가와 모델이라는 복잡한 관계.
예술적인 경쟁과 시기심은 이들의 삶을 방해하고 충돌을 빚게 한다.
더욱이 로댕에게 첫 사랑을 느낀 까미유와는 달리 로댕의 여성 편력은 복잡하다.
로댕의 아내가 되어 예술적 동반자이길 원했던 까미유는
불성실한 애인 로댕의 곁을 떠나 혼자 살면서 조각에 몰두한다.
얼마 동안 그녀는 홀로 서기에 성공하여 예술적으로 만개하는 듯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잃고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힌다.
로댕이 위대한 조각가로 명예와 부를 누리는 동안 까미유는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30년 동안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
너무나 재능이 있었기에 보통 여자로 머무를 수 없었고,
너무나 자기 일에 열중했기 때문에 좋은 연인이 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일생이었다.
까미유 클로델은 비극적 예술가의 초상이다.
영화해설
조각가 오스뀌드 로댕의 연인이며 19세기 최고의 여류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의 비극적인 인생 행로를 그린 실화극으로,
로댕과의 스캔들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생의 마지막 30년을
정신 병동에서 살다간 비극적 삶의 주인공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 영화다.
로댕의 비극적 연인으로만 기억되던 카미유 클로델의 치열한 삶을 뛰어나게 조명해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세자르영화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광기 어린 카미유 클로델을 호연한 이자벨 아자니는
세자르,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예술에 대한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과 자신을 표현하려는
단 하나의 목표에 대한 갈망을 가진 젊은 조각가에 포커스를 맞추는 대신
그녀를 여성 해발론이 대두되는 초기의 영웅으로,
남성 지배 구조의 희생자,
예술계의 서열 구조의 희생자로 선언하려는 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고집스런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 중의 하나였다.
끌로델은 자주 로댕의 모델이 되었고, 로댕의 공동제작자로 일했다.
그러나 로댕의 작품이 팡테옹에 모셔져 있는 반면
주목받지 못한 그녀의 많은 조각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19세기 후반 파리, 독립적인 여성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억압은
조각가가 되고자 했던 끌로델이 넘지 못한 장벽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드라마틱한 접근을 통해 끌로델의 삶을 거대한 멜로드라마로 표현한 것은
다소 비판의 여지가 있는 변형이기는 했으나
인상적인 영상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는 과히 압권이다.
이 영화에는 그녀의 눈에서 분출되는 맹렬한 빛이 있다.
연인이자 스승이었던 로댕과의 불화에 접했을 때,
그녀는 내부에서 솟아나는 분노를 그대로 표출해낸다.
그리고 그 분노는 상대방을 뒷걸음질치게 할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 불태워버리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여왕 마고>에서와는 또 다른 그녀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부분은
1893년경 로댕의 불성실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까미유가 로댕과 결별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랑의 배신과 더불어 자신의 예술 세계까지 망가져가는 까미유 끌로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울증과 피해 의식, 편집광적 증상을 보이며
거리를 방황하며 밤마다 로댕의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지만,
그러나 결국 그녀는 어둡고 침침한 지하 별장에서 고통 속에 빚어낸
여러 작품들을 뒤로하고 정신 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실려가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볼점은
문화부 장관을 찾아갔을때
까미유가 한바탕하고 나오는데
바로 그 뒤에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 있던점..
비운의 천재화가 고흐와 비슷한 길을 갈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인듯 하다.
인간의 영혼을 빚어냈다는 평을 받는 로댕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영혼의 힘을 직감했는 지도 모른다.
불같은 까미유의 사랑에 시종 애매모호한 태도로
비겁한 행동을 취한 로댕 역시도 그 사랑의 희생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댕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관념적인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을 때에도
까미유는 자신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배시키며 조각했던 그 작품은
비록 세상의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실상 행복을 따지자면 까미유 쪽이 아닐까?
몇 배의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감독인 브뤼노 뉘탱은 자기의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예술가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극이란 기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일종의 심리적 상태로 파악하는 듯,
카메라는 집요하게 까미유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까미유 역을 맡은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자벨 아자니는 이 영화를 통해 미모와 재능을 가진 여성의 오만함,
흙과 조각에 대한 본능과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정열의 여인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모된 모습까지를 완벽하게 연기해 세자르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문학이나 회화와는 달리 현장에 소리가 따르는 예술인 조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영화 씬마다 소란한 분위기의 음향을 두드러지게 했다.
이것은 그녀의 삶이 진행되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과 내면상태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하나의 조각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
강한 이미지의 여성 예술가의 홀로서기.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한 사투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로댕의 비운의 여인으로 알려졌던 까미유 끌로델을 진정한 창조적 영혼을 지닌 위대한 조각가로 재평가하는 중요한 사적 자료가 될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벨기에 출신의 카메라맨 브루노 누이땅의 첫 번째 연출작이다.
1974년 <블리에의 목표지점(Blier's Going Places)>를 통해 처음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해
다양한 작품에서 촬영 감독을 맡았던 누이땅은
끌로델의 조각 작품과 풍요로운 시대적 배경을 연출하는데
카메라맨 출신으로서의 경험을 잘 활용하고 있다.
Tears 1 (그녀의 눈물)
첫댓글 로댕도 그렇고...참 특이해야 예술이되는...ㅡ.ㅡ??
어쩌자고 30년동안 정신병원에서...참 안됬네요
요즘 태어났으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들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