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병환이 완쾌하시지 않으셨지만 취재에 응해 주신 허일 박사님
=문인 탐방(1)=
시조시인 허일 박사님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 좋은 향기가 되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문학의 다양한 장르 중에 특히 시조는 우리의 옛것에 대한 향취와 음악성을 담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진한 감동이라 할 수 있으며, 고독한 행보를 하는 시인들이 있어 문학은 더 귀한 아름다움이 되는 것 같다.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시에 대한 고뇌가 있어서 고독하다 못해 외로워 밤을 세우고 혼을 불사른다','혼을 담아 우주의 섭리를 담는다.'라고 하시는 시조 인들의 귀감이 되시며 끊임없는 열정으로 시조를 쓰고 계시는 허일 박사님을 만났다. 아직은 그럴 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겸손을 보여주시는 박사님께 한비문학의 시인과 시조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리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허락하셔서 댁에서 가까운 목동의 단출한 식당에서 만났다. 근간의 병환이 많이 좋이 지신 듯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시는 박사님을 모시고 아름다운 문학과 인생과 시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허일 박사님은 1934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셔서 해방되기까지 10년을 일본에서 사셨다. 그곳에서 생활하신 10년으로 일본에 관심이 많아 후일 대학에서도 "한일비교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외대에선 "일본문학"을 강의를 하셨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일본을 잊지 않고 있으신다는 말씀에 어릴 적의 환경이 성장 후에도 한 사람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허일 박사님의 교육관은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로 "한림문화재단"을 설립해서 검정고시와 대학입시 교육을 하면서 교육의 일선에서 활동을 하셨고 직원들에게는 내 집 갖기 운동을 벌여 철저하게 돌보아 주고 이끌어 주었으나 IMF로 사업이 실패하면서 믿었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자 심한 좌절감에 빠져 실의의 나날 속에서도 시조를 더욱 열심히 쓰시며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셨다며 문학을 하는 사람은 문학이 삶의 뿌리로 생각하며 어떠한 어려운 일도 극복하셨으면 하셨다. 그때의 아픔을 시조로 이렇게 쓰셨다.
때 아닌 IMF 광풍으로 40년 공든 탑이 무너지고, 늙은 눈에 비친 염량세테는 가슴을 도려내는 무간지옥 그것이었는데 급기야 위장이 터지고 몹쓸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있어 文學! 文學이야말로 내 영혼의 갈증을 달래주는 물이었다.
청개구리가 운다. 내 가슴에도 비가 오시려나? 달무리빛 우련한 從心의 길에 들어선 나의 詩業이 이 밤도 잠 못들고 가위 눌린 고달픈 人生同途의 눈물을 닦아주는 길이라면......

촬영 중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죄송 스러웠습니다
중앙대 법과대학에 다니면서 고등고시를 안보고 교원자격증을 따기 위해 국문과 공부를 하시면서 국문학의 폭이 넓고 깊은 것에 매료되어. 교원교시를 보는 것이 계기가 되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시조 시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아마 태어날 때부터 작가라는 씨앗과 뿌리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신다는 말씀에 한 편 그 씨앗이 열매가 되기까지 보통의 노력이 아닌 각고의 노쩜막?작품을 쓰셨음에도 겸손을 보여주시는 듯했다. 1963년 시조대회에 가서 가작을 받았으나 생업이 중요했고 등단은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 쓴 글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978년도에 '시조문학'에서 등단하고 1979년에 조선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당선되어 등단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1963년에 등단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며 문단의 관례상 등단시기로 선후배가 나누어지는 까닭과 좀 더 많은 시간을 시조를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등단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점도 간과하지 말기를 당부하셨다. 등단 이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시조집 1983년 살아가는 흐름 위에를 시작으로 1986: 이 시대를 살아가며 1989: 이 그리움 돌에다 새기리까 1996: 나는 천생 허수아비라 2004: 시가 컬컬하여를 발표하시고 어린아이들의 동심도 돌봐야 한다는 생극으로 동시조집 '96: 나는요 청개구리래요 '04: 메아리가 떠난 마을을 발표하셨다.
'87년 중앙일보 시조대상(신인상) '96년 노산 문학상 '99년 대한민국 동시조 문학상 '04 한국아동문학 창작상 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다.
끊임없는 시조문학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존경하거나 닮고자 하는 선배 시조인은 김소월시인· 조지훈시인·서정주시인 등을 말씀하셨다. 특히 서정주시인의 시는 노년이 될수록 시가 짧아져 온 우주를 통틀어 작은 눈에 닮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난'이라는 詩를 조용히 낭송해주시며 설명해 주시는데 작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왔다. 퇴고에 관한 말씀을 부탁드리자 고려시대 김부식에 대한 일화를 말씀해주셨다. 김부식이 <柳色千絲綠 버들 빛은 일천 실로 푸르고 桃花萬點紅 복숭아 꽃은 일만 점으로 붉구나> 하고 시를 써서 만족한 듯 자기기만에 빠지자 이에 정지상이 <柳色絲絲綠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桃花點點紅 복숭아 꽃은 점점히 붉구나> 하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것은 단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시며 수 없이 고치고 단어 하나 하나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하셨다. 시조에 있어서 그 기교는 글자 수만 맞추거나 본대로 보이는 데로 쓰는 것이 시조가 아니며 많은 이야기 중 줄이고 줄여서 버리고 버려서 압축한 인생과 우주를 담은 것이 좋다고 하셨다. 허일박사님의 시조 중에서
<단란>
송이버섯 둘레만한 내 작은 우주에는
토종 꿀벌같은 네 식구가 산답니다
도라지 꽃내음 어린 이야기도 있답니다
이 시조는 '송이버섯', '토종 꿀벌', '꽃내음' 이라는 토속적인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말씀하시며 만약에 송이버섯 대신 아파트라고 했다면 완전히 느낌이 다른 시조가 되었을 거라 하셨다. 그리고 꿀벌은 열심히 일을 하는 가족의 일상을 표현했고 도라지꽃은 시골에 가면 지천으로 있어 향기도 은은해서 오래가니 이 세 단어로 단란한 가족을 나타내고도 부족함이 없음을 말씀하셨다. 지금의 시들이 너무나도 할 말이 많아서 너무 길게 나열하는 것에 대한 우려하시며 압축하라는 말씀으로 가장 맞는 단어를 찾는 것을 덧붙이셨다. 그래서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차이에 대해서는 결코 다르지 않으나 특히 시조문학의 기교는 더 치밀해야 하고 더 압축해서 긴장미와 간결미가 있어야 됨을 강조한다며 3장 6구 안에 우주를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 시조문학을 하려는 작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해야 할 것은 특히 가급적 혼자 공부하지 않았기를 바라셨다. 이유는 혼자 공부하며 쓰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고 자만하게 되며 표현이 거칠다고 하시면서 선배들의 말도 흘려듣고 마음 상해하지 말라 하셨다. 숙련공은 땀을 흘리지 않고 일을 하고 견습공은 일도 못하면서 땀만 흘리는 것처럼 오랜 세월 갈고 다듬어진 매운 스승 같은 선배들의 말을 듣고 따르면 좋겠다 하셨다.

취재기자와 한 컷
한비문학과 한비문학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리자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고 많이 담으면 나중에 맑은 물이 깊이 고이면 하늘을 담고 하늘빛이 우러나게 된다 하셧다. 도를 품고 많이 공부하고 혼을 담는 시조, 시를 쓰기 바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한비문학인으로서 신춘문예나 여타의 다른 문학지와 결코 비교되지 않게 되며 그런 시조, 시를 쓸 때 한비문학도 빛남을 말씀하셧다. 특히 다른 문학지와 다르게 한비문학은 참으로 순수하며 너무 맑은 시인들이 모인 것 같아 흐뭇 하다 하시며 함께 힘을 합해 오래도록 감동이 되고 아름다운 시조와 시를 쓰시는 시인들이 되길 소망하셨다. 한비문학에서의 등단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승부 하라는 당부가 가슴에 닿으며 詩作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각성하게 하셨다. 김종 (시인/문학박사) 은 「이 그리움 돌에다 새기리까」론에서 시조를 체험 이전에 존재하는 혼의 표출로 보고 <그리운 시간, 그리운 자리의 풍물들에게 노래를 불러서 수목들을 마법에 걸리게 했던 오르페우스의 언어처럼 허일의 언어가 부여한 언어적 심미성은 마법의 안개보다도 더 오묘한 세계에 들게 하고 그들을 새롭게 깨워서 날개치게 하리라.> 하였다.
<허수아비 ㅡ땅 끝에 서다>
긴 旅程 아 마침내 땅 끝(土末)에 내가 섰다
하늘 끝 바다 끝이 잇닿은 이녘(此岸)에서
까치놀 붉은 융단을 밟고 그녘(彼岸)을 넘어다 보네
깨우침을 주는 시조, 인생과 우주를 담아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보여주고 시조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후배들의 시심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사람, 진실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그 분은 바로 허일박사님이셨다. 초면인데도 너무도 반가이 악수를 건네시고 오래 본 후배를 반기듯 나직하게 말씀해 주신 허일박사님의 따뜻한 면면을 다시 한번 발견하였다. 건강하시게 더 좋은 글로 후배들을 이끌어 주실 것을 바란다. 두 시간 넘게 나란히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 아쉬운 이별을 하지만 허일박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행복한 큰 기쁨을 누리게 되어 참으로 즐거운 문학의 자리였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취재: 본지 한영숙 편집기자(시인)
|
첫댓글 떨리는 마음 손길 ..... 이 공간에서 이렇게 선생님을 뵙는것은 제가 꿈을 꾸고 있는것이아닌지요 선생님 !! 아니 허일 박사님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ㅡㅡㅡ(영등포 한림학원생 제자 최정순 입니다 ) 취재 하신 분께 한량 없는 감사함을 느낌니다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