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권유로 어느곳에 투자했다 집도 날리고 전 재산을 다 날렸다
그때 사무실을 다녔지만 나는 껍데기 뿐이고 큰 희망도 없이 암울한 세상만 탓하고 내 처지에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도 않아 그 시절이 빨리 잊혀지기만을 기다리다가 나도 뮌가를 변화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을 택했다
비번날이면 전국의 산을 찾아 혼자만의 산행을 하다보니
산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실패에 대한 보상도 받을것 같아
대한민국 천개산이든 만개산이든 모든 산을 만나고 싶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지도책을 보면서 지방 어느 산이라도 하나 하나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그때 당시는 등산 인구가 많지 않아 지방의 이름없는 산들은 길을 찾기가 여간 쉽지는 않았지만 산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 보니
IMF 여파로 나라 경제가 어려위지고 인터넷이 활성화 되어 등산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나도 인터넷 산악회를 알게 되어 산을다니다 보니 돈도 절약 되고 등산로 찾는 수고로움도 덜고 몇년간을 세상과 고립되어 살았는데 세상 밖으로 나오니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어쩌다
나도 산악회를 만들어 산행을 하던중 마니산 산행에서
우리 산악회 여자 총무가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도 왔고 보통 지인들도 함께 오는 경우가 많고 흔한일이라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적인 산행을 하고 내려 왔다
우리 산악회는 산행마다 사람들이 항상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치고 모두가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미래가 불확실하고 딱히 다른 방도도 없고 우울증까지 올 정도 마음의 상처가 커서 그냥 그렇게 삼년을 산만 바라보고 살었다
한 삼년을 하다 보니
산악회를 다른분에게 양도를 하고 나는 나만의 조용한 산행 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요란스럽고 복잡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림도 좋아하지 않아 산악회를 넘기기로 하고 총무하고 마지막 회계 문제 때문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내가 회장이라서 오해 받을까바 여자분들을 가까이 하지도 않았지만 삼년동안 우리 총무하고 커피 한잔 마신 본적도 없고 괜히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총무하고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서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총무는 그때 2년전에 마니산에서 같이 왔던 여동생하고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악회를 다른분에게 넘기고 무료한 시절이라서 어쩌다
그 여동생하고 커피도 마시고 했지만 그 여동생 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난 이미 결혼을 접은 상태라 세상과 인연을 끊고 전국의 산을 찾아 우리의 산을 한번 끝까지 완등하고 싶은 욕심뿐이었다
그때 몇번 만나다 보니
서로간에 결혼까지 섕각하게 되었지만 난 돈도 없고 늙은
아버지도 모셔야지 멀쩡한 남의 인생을 망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결혼은 나에게 사치고 헛된 망상이라는 생각 끝에 결혼을 포기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마음의 갈등은 남아있었다
또 다시 비번날이면 산으로 가서 번민을 지우고 늘 정갈하게 산하고 대화하고 산에게 인생을 묻고 물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즉 갈곳은 산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 갈곳도 없었고 인생에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혼자서 문경 황장산 동해 청옥 두타 가평 화악산 합천 가야산 지리산 북한산 인수봉까지 온갖 산들을 다니면서 마음 비우기를 했다
좀 모든게 허무했다 세상이 부질없다는생각이 들기도했다
아무리 비우고 비워도 산행에서 내려 오다 보면 어느새 쓸쓸한 바람이 나를 훌고 지나갔다
산새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자기가 가야 할 곳을 향해 날고
사슴은
눈보라가 몰아쳐도
자기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산을 오른다
그때 산행중 청옥 두타가 마음에 꽂혔다
그때까지는 아직 때묻지 않은 무릉계곡의 샘솟는 맑고 맑은 물은 푸른 나무잎 하늘 빛하고 닮았고 바로 자연과 동화되는 무릉천지였다 청옥 두타의 밤새 청정한 이슬을 머금은 소나무가 신선처럼 느껴지고 사람 하나 없는 산속에서 청옥 두타가 내것처럼 안으로 파고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다 청옥 두타의 신비로운 기운이 나를 사로 잡았다
줄곳
혼자만의 산행 하다가 여자 총무가 커피를 한잔 하고 싶다고 나오라고 해서 갔다가 그 여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 동생 데리고 시원한 바다가 구경도 한번 시켜 주라
농담도 하고 모처럼 사람을 만나니 참 좋았다
그후 그러다가 다시 결혼 이야기가 되어 진지해지고 나도 마음 가짐이 달라질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 여동생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 내게 어머니는 안 계셨지만 홀로 남은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 여동생을 만날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랑 서울 인근 아니면 멀리 남이섬도 같이 가곤 했다
만날때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나오니 그 여동생은 당연하게
일상으로 받아 드렸고 나도 결혼하면 어차피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니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미리 만들어 주어야 결혼 하더라도 문제가 안 생길것 같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노인정 외부 나들이 행사로 아버지랑
함께 할수 없어 그 여동생이랑 단들이 만나니 여동생 하는말이 좀 이상하네요 맨날 셋사람이 만나다 듈이만 만나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말에 나도 동감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늦은 나이 보다 훨씬 더 먹은 46살에 그 여동생과 결혼도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통영으로 신혼여행도 다녀 왔다
신혼여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게 어디 있냐고 사람들이 만류도 했지만 신부도 맨날 같이 만났는데 같이 가는게 무슨 문제냐고 적극 찬성하여 약간 뇌졸증 있는 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모시고 다녀온게 지금도 너무 감사했다
세상을 놓으려고 속세를 벗어나 모든 인연을 지우고 결혼도 포기하고 오즉 산만 바라보고 산에서 살았는데 산에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다니 세상이 참 이이러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