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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관음기도로 구안와사를 치료하다.
글쎄요...이런경우도 있네요.
얼마전 2월 초순쯤 친정언니가 절에 다녀왔대요.
그러고 3일후 꿈을 꾸었는데 다니는절 작은스님 모습인데
꿈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고하시더래요.
그러면서 관세음보살께서 친정언니에게
" 에구구~~불편한데가 있었구나 " 하시며
오른쪽 입술위에다가 침을 한대 콕 놔주시더라고해요.
꿈에서도 그 침이 너무 아팠다고..^^
친정언니가 지금 57세인데 서른살에 입이돌아가는 와사증에
걸렸었거든요.그런데 나았다고는 하지만 원래얼굴처럼
이쁘게 제데로 돌아오지않았드랬는데 그 침을 맞고
쳐졌던 한쪽 입술과 찌끄러졌던 한쪽눈이...그 오른쪽
얼굴에 물흐르는 느낌이 몇번나고하면서 얼굴이 많이
돌아 왔다고했어요.
너무 궁금해서 지난 토요일에 가서보니
너무 이뻐지고 얼굴이 너무편안해보이고 제가 다좋았어요.
눈과입이 제자리를 찾은느낌...정말 이뻤어요^___^
가피로 이뻐진다는거 실감해요.
저희 언니는 하루도 빠지지않고 새벽3시30분부터
관음정근 3000념을 하고있습니다.
성형외과에 견적 뽑으려 다닐필요없어요ㅋㅋ
관세음보살 다섯글자가 견적입니다~^^
출처: 다음 나무아미타불 카페 예삐불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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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로 난치의 병을 고치다
72-1
나의 행자시절
불은에 보답하기위해 했던 출가 -범행스님 (속리산 법주사조실, 수원 팔달선원조실)
나이 스물일곱 덜컥 폐병에 걸리고 말았다. 폐가 별로 좋지 않았던 데다가 화학공장을 경영했던 까닭에 폐병이라는 무서운 병마에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었다. 지금이야 약이 좋아 폐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드물지만 천구백사십년대 말의 폐병이라는 것은 불치의 무서운 병이었다.
무슨 인연인지 아버님과 큰형님, 넷째 형님이 모두 폐병으로 인해 돌아갔는데, 집안이 넉넉했던 터라 큰 형님은 일본의 대학병원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목숨을 읽고 말았으니 내게 찾아온 폐병은 곧 죽음을 의미 하고 있었다. 별다른 치료방법도 없었으므로 공기 좋은 곳으로 가 요양이나마 할 요량으로 대둔산에 있는 태고사를 찾은 것이 출가에의 인연이 될 줄이야.
태고사는 일고여덟분의 스님들이 주석하여 참선수행을 하고 있던 조용하고 풍광이 좋은 절이었다. 촛대바위가 절경인 그곳에서 평소에 가까이하던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조실스님께서 내 방엘 들러 물으셨다.
'그래 무슨책을 그리 읽고 있소'
그렇게 조실스님과 토론이 시작되었다. 여러 사업으로 꽤 재산가였던 내 아버님은 '일본말 배워 그들 하인 노릇 하려 하느냐'며 자식들을 학교엘 보내지 않았다. 해서 나는 일찌감치 경영에 눈을 떴고, 그 틈틈이 세계문학전집이나 철학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웬만한 인생살이엔 말문 안 막힌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날 조실스님의 방문 후 내 밑천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스님과의 토론이 이어졌던 한 주일후엔 내 스스로 손을 들고 말았다. 그땐 몰랐으나 훗날 알고보니 그분이 일관했던 말씀은 '공도리空道理'였는데, 무슨 수 세상사를 관통하는 불법의 논리를 대응할 수 있겠는가.
병에 걸려 절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절집 사람들을 내심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제말 절집 생활이란 말이 아닐 만큼 가난했고 대처승이 많았다. 스님네들이 절에서 엿을 고아 가지고 오거나 튀각 같은 것을 해가지고 신도집에 오면 쌀 한말씩 얻어가곤 했고, 조그만 사찰에선 볏단을 얻어다 먹고 살았던 시절이었으니 불법이 무엇인지 모르던 내 눈에 그들이 그저 천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독립군 출신이며 만공 스님의 상좌였던 조실 포산 스님의 '공도리'가 나를 압도했던 것이다. 어렴풋이나마 '불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나는 문학서적도 남의 팔자얘기나 듣는 것 같아 시들해 졌고 토론에서 번번이 패하기만 했던 철학책에도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럴 즈음 조실스님께서 비로소 내게 그곳에 온 이유를 묻더니 조그만 책 한 권을 내놓았느데,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牟陀羅尼經'이었다.
'이 경 속에 있는 관세음보살모다라니주'를 일심정념으로 꿈속에서도 송주할 수 있도록 정진하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고 그대의 병이 나을수 있다.'
이미 불법의 깊은 진리에 관심이 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스님을 깊이 믿고 있었으니 그 분의 말씀에 뭐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그날부터 앉으나 서나 누워서나 일념으로 주력을 하기 시작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아리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 가로니가야 다냐타 아바다 아바다 바리바제 인혜혜 다냐타 살바다라니 만다라야 인혜혜 바리마수다 못다야 옴 살바작수가야 다라니 인지리야 다냐타 바로기제 새바라야 살바도따 오하야미 사바하'
불법에 있어 주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었으나 조실스님을 믿고 전심전력으로 주력에 몰두했으니, 나중에는 태고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주력이 실려 있는 듯 주력과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한 달은 채 안 되었을 것이다. 삼주쯤 지났을 때였을까.
나를 돌보아주었던 의사가 내 몸을 진찰해 보더니, '아, 이 선생 병이 다 나았군요'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반가워 일어서니 법당 안이었다. 비몽사몽 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날아갈 듯 몸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순간 불전에 나도 모르게 무수히 예배를 드렸다. 그 불치의 폐병이 그렇게 씻은 듯이 사라졌으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한 가피, 헤아릴 수 없는 대은혜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처님 법을 믿고 수행 삼매에 들었을 때 오는 그 무한한 가피를 온몸으로 경험했고, 그 가피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가는 경험한 이만이 알 것이다. 나는 그때 경험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고 그 후로도 어떤 인연으로 선을 하게 될 때까지 줄곧 서른 해를 주력으로 수행을 삼았다.
아무리 성취하기 어려운 일도 내게 맡겨지면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주력수행은 나와 뗄 수 없는 인연이 깊은 수행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피를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몰아의 경지로 수행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바라는 일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부처님법이 무엇인지 공부해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정진하다보면 자연히 부처님법이 내 것이 되어 실생활에 실천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가만 보면 부처님법을 알려고 노력하고 수행에 몰두하기 보다는 그저 뭔가 이루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기만 한다. 기도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부처님 법을 깊이 체득하고 원을 세워 수행정진하다 보면 업장이 녹아 어려운 일을 미리 막기도 하는 것이다. 경전을 보고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수행이 제대로 되는 것이어서 나는 신도들에게 경전을 익혀 불법이 무엇인지 알고 수행에 들어가라고 이르고 있다. 경전을 공부하며 스스로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 수행이 빛이 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참회하며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병이 씻은 듯이 나은 후 곧 포산스님을 은사로 오계를 받고 절집사람이 되었으니 사실 나에게 행자시절이란 것이 생략된 셈이다. 글쎄 굳이 행자시절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포산스님의 공도리를 들으며 불법에 끌렸던 일,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찬 없는 밥 먹어가며 주력삼매에 빠졌던 그 시간들과 그후 태고사를 떠나 계룡산 용화사로 들어가 다시 주력으로 수행하며 지낸 몇 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사제인 탄성스님이 문득 입적했다하여 법주사엘 다녀왔다. '인욕보살'이었던 그도 세월이 가니 그렇게 갔다. 어느덧 불가에 들어와 쉰해를 넘겼고 다시 여든을 넘겼다. 세상
은 날이 갈수록 존재 아닌 소유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난리법석인데,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입산한 이 출가수행의 길에서 얼마만큼의 힘을 세상에 회향했을까. 어쩐지 그 일을 생각해도 흡족하지 않다.
출처: 인터넷 월간海印(www.haein.or.kr)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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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 범행 스님(속리산 법주사조실·수원 팔달사 조실)
부처님은 ‘버려라’했는데 왜 달라고만 합니까?
최신 가요가 울려 퍼지고 올 겨울 유행을 예고하는 형형색색의 옷과 액세서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수원 팔달로 로데오거리. 젊은이들의 들뜬 열기로 가득한 로데오거리에서 한 발만 물러서면 도심수행도량 팔달사를 만날 수 있다.
길 하나 차이로 거리의 번잡스러움은 간데없고 산사의 고요만이 팔달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 팔달사를 40여 년간 지키고 있는 조실 범행 스님은 전날인 11월16일 법주사에서 결제법어를 내리고 온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법을 청하는 자리를 물리치지 않았다.
진성은 물들지 않아 본래 원만한 성품이고(眞性無染本自圓性)
다만 망령된 생각을 여읜 즉 부처와 같으니라(但離妄念則如如佛)
어제 법주사에서 결제에 드는 수행자 200여 명을 만나고 왔습니다.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늘 마음이 든든합니다. 수행자들이 결제 기간 동안 ‘본래 자기’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게송을 들려줬습니다.
결제에 들지 않는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본성(本性)은 본래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중생은 무명(無明)에 싸여 이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살기가 어려울까요?
처음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 이 지구는 너무나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땅에는 곤충과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고 초목 과수도 아름드리 우거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과일, 좀 더 많은 곡식, 좀 더 많은 고기를 원하기 시작하면서 농약을 쓰고 비료를 주고 땅을 파헤치면서 땅이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기반인 땅이 죽는데 어떻게 사람이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고달픈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애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상(妄想) 공상(空想)에 사로잡혀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五欲樂)에 집착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욕심을 끊지 못하면 괴롭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이뤄지지 않으니 성내는 마음, 즉 진심(瞋心)이 생기게 되고 이 진심을 참지 못하고 폭발해서 어리석은 마음 즉 치심(癡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이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제 스스로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대로 안 되면 부처님께 ‘무엇을 해주십시오’ ‘무엇을 이뤄주십시오’ 하고 자꾸 바랍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버리라’는 것인데, 왜 자꾸 부처님께 바라고 이루려 합니까?
하루 밥 세 그릇 이상 있으면 오히려 귀찮은 겁니다. 재산을 잔뜩 집에 쌓아놓으면 도둑맞을까 걱정만 되잖아요? 내가 노력해서 하루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속을 썩게 마련이고, 늘 ‘살기 힘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행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탐심(貪心)을 내지 말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쉬어야 합니다. 나보다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조금 더 가지려 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진정한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자들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합니다. 계를 지키고 없는 사람에게 늘 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바로 들여다보고 인욕하며, 수행에 힘써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무조건 부처님께 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에게는 보시하고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나눠주려고 해야 합니다. 또한 늘 수행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수행이라고 하면 참선이나 간화선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에는 다 외도(外道)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선 외에도 많은 수행법이 있지요. 저는 그동안 수차례 법문을 통해 제가 불문(佛門)에 들어와 수행했던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부잣집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약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술 담배도 멀리한 채 화학공장을 경영했습니다. 비누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하루는 실험을 하다 공장에서 염소가 터지는 바람에 폐가 나빠졌어요.
우리 집안은 아버님과 두 형님, 작은어머니까지 모두 폐병으로 돌아가셨기에 폐병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이렇게 살다 젊은 나이에 각혈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에 뛰어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구사일생 살아난 거예요. 그때 내 나이가 28살이었어요.
그 후 요양이라도 할 생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10권을 싸들고 금산 태고사를 찾아 갔어요. 당시 태고사에는 포산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는데, 스님과 3주 동안 문학과 철학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부처님법 앞에서 그동안 내가 배운 문학이나 철학이 가진 한계를 뚜렷이 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출가를 결심했지요.
출가 후 포산 스님은 저에게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佛頂心觀世音菩薩母陀羅尼)’를 외우라고 하셨습니다. 생사의 위대한 법을 일러주신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이 가고자 잠도 자지 않고 다라니를 외웠습니다.
그렇게 5주 정도 지났을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다라니를 외우고 있는데 주치의였던 일본인 의사가 나타나 ‘이제 다 나았구나. 아주 잘 됐다’고 말하더군요. 깜짝 놀라 깼는데, 정말 거짓말 같이 기운이 나고 아픈 것도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가피력으로 지금껏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후 서울 선학원에서 조실로 계시던 금오 스님을 은사로 모시게 됐는데, 스님은 늘 ‘참선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주력 수행에만 매진했던 터라 처음엔 참선이 잘 되질 않았어요. 그래도 스승의 말씀을 따르고자 틈틈이 참선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공주 마곡사의 토굴에서 정진하게 됐는데, 그때 참선이나 주력수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이러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늘 불자들에게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매진하면 부처님 가르침과 통한다고 말합니다.
염불이든 주력이든 참선이든 자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지극한 마음으로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실 겁니다.
우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도(道)에 이르는 길입니다. 불자라고 하면서 부처님 생애도 제대로 모르거나 경전 한 줄 읽지 않는다면 어찌 큰 가르침을 얻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참선한다고 벽만 보고 있으면 깨달음이 얻어집니까?
그리고 스님들이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경전이나 선어록을 봐도 모르던 부분이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깨쳐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는 ‘깨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깨친다’는 것은 인연법을 제대로 안다는 것과도 같은 말입니다.
흔히 불자들은 ‘인연이 없다’ ‘인연에 따라 이뤄진다’고 말을 하며 인과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인연법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인연, 즉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하지요. 인과란 철저한 것입니다. 미래가 궁금하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과거가 궁금하면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똑바로 보면 됩니다. 불교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신통력 있는 종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알고 보면 이렇게 간단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깨닫기 위해서는 한 생을 버려서라도, 한 생에 이룰 수 없다면 누생(累生)에 걸쳐서라도 반드시 도를 깨치고 말겠다는 굳은 서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저 부처님께 복 빌고 도움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참불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것만이 크나큰 부처님의 자비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범행 스님은
“난 풀들을 만나는 게 참 좋아요. 풀들이 날 보고 ‘스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난 이 풀 한 포기를 뽑거나 나뭇가지를 칠 때도 ‘얘들아, 미안하다. 이걸 잘라야겠구나’하고 얘기해줘요.”
전날 법주사까지의 장거리 이동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범행 스님은 기자를 데리고 직접 사찰 곳곳을 안내해주셨다. ‘호랑이 담배 피는 모습’이 담긴 사찰 벽화와 씨앗으로 심어 지금은 아름드리로 자란 은행나무, 전국 곳곳에서 모종을 얻어와 심고 가꾼 백목단ㆍ작약 등을 일일이 일러주던 스님은 “거짓없는 자연처럼 사람들도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고 바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여든 다섯이라는 세수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처럼 맑고 깨끗한 얼굴빛을 간직한 스님에게 건강 비결을 여쭙자 “특별히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오후불식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답하셨다.
1921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48년 금산 태고사에서 포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55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55년 봉은사 주지, 56년 선학원 중앙선원 장, 57년 서울 조계사 주지, 68년 불국사 주지, 71년 대한불교신문사 사장, 75~91년 재단법인 선학원 13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수원 팔달사와 보은 법주사 조실을 맡고 있다.
정리=여수령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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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고왕경 지송공덕 (무상스님의 경험담)
(1)
이 고왕경 기도를 보통 빙의병, 영가병이 있는 경우에 빙의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여 좋다고하는데, 여기에서 끝나지만은 않습니다.
고왕경 기도를 할 경우에 왜 빙의에 좋은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왕경 기도를 하게되면 영혼이 맑아지고, 지혜가
향상되어지기에 다른 영혼의 방해를 받지않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의 장애가 발생할 때나목숨이 위태로울 경우에도 반드시 액난을 소멸하게
됩니다.
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고왕경 기도를 하게되면 10여년의 세월동안 제가 기도를
직접 해보고 또 많은 불자님들에게 기도를 시켜본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큰 공덕은 상상하지 못할 인과가 따릅니다.
고왕경 기도를 생활에서 놓치지않고 계속하게되면, 종지에는 관세음보살의 행을
실천하게되는 즉,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됩니다.
기도로써 보살상을 받게된다는 말씀은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경험을 해보십시오.
부처님께서도 고왕경의 공덕을 허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저 또한 허언이 아닙니다.
고왕경을 지송하면 괴로움과 재앙, 위태함, 화재, 무기로 인해 다치는 일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왕경에서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고왕경을 항상 청하여 암송하면 재앙과
형벌, 큰 형벌도 소멸하게되고 능히 생사의 고통을 멸한다고 하셨습니다.
큰 액난에 당면하실수록 고왕경 기도를 하셔야합니다.
인간의 생사전반에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관세음보살님께서는 고왕경 지송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구원을 내려주십니다.
관세음보살 42수주 진언을 모두 다 외우시는 것보다 버금가는 기도입니다.
부디! 고통받는 많은 분들이 고왕경을 지송하여 액난을 소멸토록 인연을 맺게하여
주소서! 나무관세음보살!
고왕경 불국정토회 무상합장 출처: www.고왕경.com
(2)
고왕경으로 한 자리에서 1,100독을 하면 빙의는 사라집니다.
고왕경으로 빙의된 사람들을 많이 치료해 보았습니다.
누구라도 고왕경 1,100독을 지송하면 빙의는 사라지고
귀신들은 근접할 수 없게됩니다.
위의 방법은 염불하여 공덕쌓고 돈안들이고 빙의를 퇴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참고로 고왕경 1,100독을 쉬지않고 지송하면 19~24시간 소요됩니다.
무상합장
(3)
고왕경 11,000독을 하셨으니!
고생하셨군요?.
기도도중에 체력이 부진하여 의사처방하에
고기를 먹는 것은 즐기지 않는 한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중에는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오신체인데,
오신채를 드시는 분들은 절대로 관세음보살님께서 현몽하시지 않습니다.
고왕경기도를 하실 때,
시간과 장소를 지키면서 지극하게 기도를 하실 경우에는
이러한 일을 경험하십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 현현하시고,
그렇지 않으신다면,
꿈에 현몽하십니다.
어떠한 경험이 있어셨습니까?.
또 보살님께서는 저의 경험과
고왕경기도를 제대로 하신분들의 결론으로 비추어본다면,
고왕경 11,000독 지송기도 속에서
과거의 아픔과, 고통의 번뇌가 잊혀지거나
기억속에 남은 일들은 추억으로 바뀌어 있더란 얘기들을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서 본다면,
아직도 제대로 고왕경 기도를 하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날 아니 빠른 시일에
하루에 1,000독씩 3일간을 3,000독을 하시는데,
출입도 제한 하시고요?,
오신채나 탁한 고기도 먹지 마시고, 체식 위주로 드시는데,
가급적이면, 몸을 편안하게 유순하게 만들 수 있는 죽을 드시면서
기도를 마무리 하셨으면 합니다.
본래 고왕경 영험편에 보면,
흥선대원군께서 고왕경 100,000독을 하셔서 목숨을 건지셨다고 하셨는데,
많이 할수록 무조건 좋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걸린 일이니 많이 하는게 당연하겠지요?.
새로운 영혼과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함이라면 응당히 해야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4)
제가 고왕경 기도를 해보고 시켜본 결과로는 이러합니다.
기도를 하실 때는 조건없이 무작정 하셔야 좋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만1천독을 하시면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 분명 생긴답니다.
그러나 1천1백독으로 무엇인가를 얻고자하시면 3일동안 하시는 것보다는 기도를 시작하시면서 쉬지 않고, 밥먹지도 않고, 20시간~22시간 내에 1100독을 달성하시는 것이 기도를 방해하는 마장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달성할 수 있고 또 공력이 셀틈 없이 쌓이게 되는 방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겠습니다. ()().
(5)
고왕경은 귀신을 쫓는 경전이라고만 흔히들 알고 있는데, 정확한 진의는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기 때문에 귀신이 근접치 못하는 것이며, 또 고왕경은 관음행을 실천하도록 하는 관세음보살을 만드는 경전입니다
출처: 고왕경 불국정토회 www.고왕경.com무상스님 글 옮김
74.
아는 분께서 소송을 당해 괴로운 와중에 스님의 권유로 고왕경을 매일 독송하였는데
거짓말처럼 소송을 이기고 세가 나가지 않아 비어있던 상가도 모두 좋은 조건으로
세가 들어왔다고합니다.
출처: www.고왕경.com 고왕경 불국정토회 photon0님 글
75.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산승이 해인사에 살 때 어머니가 일이년정도 갑상선을
앓고 계셨습니다. 언젠가보니 병이 심각하여 몸이 굉장히 말라있었습니다.
동산병원에서 약을 타다 복용하고 있었는데 차도가 별로 없었습니다.
산승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인데 무슨 기도를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고왕경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은 관세음보살의 명호와 시방세계에 계시면서 중생을 구하시는 모든
부처님들과 일체보살의 명호가 있습니다. 경끝에는 천번내지 만번을 쉬지않고
독송하면 불에 상하지않게 되고 칼에 상하지 않으며 고통가운데 환희를 얻게
되고 죽을 자가 살게되고 거짓말이 아니고 허망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은
망어를 하시지않느니라 하셨습니다.
천번이나 만번을 독송하면 죽을 사람이 산다는 말씀과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않는다는
말씀을 믿고 하루 시간내어 시간을 쉬지않고 천번 독송 기도했습니다.
이 삼일 지나서 꿈을 꾸었는데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였고 모친이 사발에 붉은 약을 마시는 현몽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진짜 급할 때 사람을 살리고자 할 때 죽을 병이 생겼을 때 고왕경을 독송하기를 권합니다.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습니다. 원컨대 일체 중생의 병고업장이 소멸되어지이다.
나무시방 일체제불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
출처 미상, 글쓴이 미상
76.
저는 사십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저역시 절을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나마 항상 부처님 섬김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부입니다.
참 성질도 못됐고 급한 성격에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고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천수경을 독경하고 반야심경도 독경하고
지장보살 등등 이런 저런 기도는 다해보아도 가슴깊이 뭔가 느껴지지
않고 자꾸만 기도에 뭔가가 심란하고 마음에 안정이 되질않아 도저히
독경이 안되고 기도를 할라치면 집중이 안되고 더욱 산만해지기 일쑤이고
그러나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고 별의 별 책을 접하다가
우연히 ㅇㅇㅇ 스님의 ㅇㅇ라는 책자를 읽게되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원인이 있고 자기에게 맞는 기도가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조금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을 만나러 무작정 나섰습니다. 사실 제가 마음이 심란하고
항상 불안하고잠도 설치고 몸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머리와 마음은 밖에서
나돌아 다니곤 했습니다. 그랬기에 스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이래저래 기도도 안되고 마음도 좌불안석이고 별 독경을 다해도 기도가
되질 않아서 왔습니다고 했더니 그 스님께서 기도가 너한테 맞질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하시면서 책 한권을 주시더군요. 관세음보살보문품
과 고왕경(관세음보살구생경)을 매일 시간나는대로 독경하라며 주신 그
책은 나에게 보물이었습니다.
잊지않고 시간정해놓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열흘정도 지났을까요?
고왕경이 다 줄줄 외워지더군요. 그리고서, 한 달정도 됐을까요?
아마도 한 달 좀 못돼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기도중에
부처님 불상이 환하게 저에게 비춰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뚜렷하게요.
저는 너무너무 놀라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기쁨에 벅차오르고 설움에 벅차
오르고 감동에 저는 한동안 모두 내려놓고 맘껏 실컷 울었습니다.
기쁨에 찬 눈물이며 그 동안 모든 것이 다 부질없었다며 혼자서 정말
맘놓고 실컷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이젠 먼 과거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지금은 아주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구요. 자고 일어나도 짧은 시간
잠을 자도 너무 편안하고 개운하다는 걸 느끼면서 살고 있답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는지요? 지금도 가끔 잠안온다 싶으면
고왕경 독경하다보면 어느새 잠들어 아침에 일어난답니다.
삼년 전에 삼천배 도전 들어갔다가 이천배까지하고 천배는 하지못해서 너무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기도하고부터는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어요.
저도 그렇게 부처님의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간답니다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출처: 나무아미타불카페 글쓴이 박수연님 글
77.
고왕경 꼬리를 붙잡고 사는 이유
원각성 이정숙(시인)님 글 옮김
1983년 가을, 용기를 내서 용화사 참선방에 방부를 드렸다. 시간 닿는 대로 1주일에 3일 만이라도 꾸준하리라는 다짐과 달리 몇 번 못가고 말았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거리도 문제였지만 남편의 사업을 돕는 입장에서 시간 지키며 참선하러 간다는 일이 여의치 않아서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온 가족이 집에서 참선을 해보자했다. 남편의 제안과 아이들의 동참이 고마워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 참선 방석을 준비하고, 참선 장소를 만들어서 아침 일찍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 어렵긴 해도 가족 사랑이 농익는 멋진 수행이었다.
나는 이런 참선의 수행을 길지 않고 하루에 단 10분씩이라도 권하고 싶다. 해보면 안다. 가족간에 담을 쌓지 않고 ,마음을 열고 사는 방법으로는 그 이상 없다. 그리 오래 계속 되진 않았지만 불자가족임을 매일 다짐하면서 가족모두가 나란히 앉아서 참선하는 멋스러운 시간을 가져본 이 경험을 나는 보석처럼 생각하며 아끼고 산다.
사업이라는 것이 예나 제나 시간에 쫓기고, 의대생 아들이 병원에서 숙식하게 되고, 딸아이가 고3이 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뜸해지다가, 일요일 아침으로 계속되다가, 끝내는 남편만 한 몇 년 계속했다. 그것마저도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큰아들이 지금도 가끔씩 복잡한 걱정거리나 스트레스를 강하게 느낄 때 좌선을 하면 좀 개운해진다 할 때는 가슴깊이 참선의 싹이 크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미래에 반드시 아들도 아빠처럼 좌선시간을 생활화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스님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는데 어쩌지요?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너무 힘들어요.“
언제나 송담스님은 인자하시다. 어린아이처럼 힘들어하는 내가 안되 보이시었던지 녹음테이프 하나를 주셨다.
“그럼 이걸 따라서 독송해 봐요. 고왕경이라는 건데, 보살님에겐 이것이 도움이 될 거요. 이 경을 독송하고 소원을 이룬 것은 물론 죽음에서 살아날 만큼 영험이 있다고 전해오는 경이랍니다. 근기에 따라야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테이프를 들으며 나는 행복했다. 스님의 맑은 저음으로 고왕경이 반복 녹음된 것인데, 특히 끝부분의 “고왕 관세음경...”하며 끝남을 알리는 시조가락의 음성은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스르르 녹아내리게 했다.
나는 고왕경에 동화되어 열심히 염하며 살았다. 자동차 속이 내 법당이었다. 고왕경의 영험이 체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업상의 크고 작은 것의 성취는 물론 예지능력까지 따라 붙어서 어떤 결정의 가부간에 확신이 생겼다.
고왕경 말미에 ‘이 경을 수지 독송하면 고액에서 구제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벗어날 수 있고, 쉬지 않고 천편을 외우면 뜨거운 불길에도 상하지 않고 전쟁에서 칼날도 비켜가며 애로도 기쁨으로 변하며 죽을 사람도 살아나니 거짓으로 여기지 말라, 부처님은 거짓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끝을 맺는다. 위의 해설이 정확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문 실력으로 그렇게 풀이해 가며 꾸준히 독송했다.
그 무렵 나는 비로소 수지 독송이라는 의미를 알게 됐다. 그냥 지니고 읽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온몸이 경이 되고, 목소리도 경자체가 되고, 경속에 내가 녹아들어서 각 세포마다 경이 나오는 것을 느낄 만큼 독송하라는 뜻이다.
처음엔 경을 외는 것조차 힘들지만 계속하다 보면 염주알 꿰듯 좌르륵 좌르륵 염송된다. 마치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처음 만나서 쩔쩔매고 읽어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송되던 때의 환희심의 연속이라 할까. 숨을 쉬고 있는지 경을 외고 있는지 어떤지를 모를 만큼 될 때, 비로소 수지 독송이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몇 만 독을 했다는 숫자 놀음보다는 얼마나 지성을 했느냐가 공덕이다.
흰밥을 오래 먹으면 잡곡밥이 먹고 싶다고, 아주 작은일 하나가 고왕경 독송을 게을리 하게 만들었다.
88’올림픽이 끝나던 그 해에 제주도 천왕사에 시숙님과 바로 손위 동서와 기도를 하게 됐다. 절이라면 무조건 철야 기도를 낙으로 삼던 때라, 습관처럼 밤새워 고왕경을 고성으로 독송하느라고 새벽예불 시간도 잊었다. 목탁소리에 놀라서 음성을 줄였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는데 기도스님이 오셔서 내게 말을 걸었다.
“보살님, 밤새워 고왕경 기도를 하시던데.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지요?”
“아뇨, 큰스님께서 그냥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7년째인가 봐요.”
“어느 절에 다니는데요?”
“인천에 있는 용화산데요.”
“그럼 송담 큰스님 계신데 아닙니까?“
“네, 맞아요.”
반가웠다. 제주도에서, 그것도 철야를 끝낸 기분 좋은 새벽에 용화사라는 말만 듣고도 큰스님을 아는 스님의 목소리는 마치 큰스님을 친견한 듯 반가웠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보살, 그러는 거 아닙니다. 어디서 송담 큰스님 소문을 들은 모양인데... 나도 용화사에서 몇 철났지만.. 큰스님께서 보살들에게 참선을 시킨다는 말은 들었어도, 고왕경을 시킨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어요. 그렇게 큰스님을 팔고 다니면 부처님께 벌 받아요.”
“미쳤어요, 제가 왜 큰스님을 팔고 다녀요?”
스님에게 따지듯 반문했지만 스님은 아주 한심하고 기가 막힌 보살도 있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동행했던 동서조차도 곁에서 함께 새운 철야 기도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는 것이다.
조금만 지혜로웠더라면 오히려 내 사정을 모르는 그 스님을 이해하고 고왕경 독송이 큰스님을 빌미삼는 비웃음거리 밖에 안되는 기도라는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히지만 그날 이후 나는 고왕경 독송에 갈등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참선한다고 가부좌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나 입에 붙은 고왕경은 참선 자세로 앉았어도 헛소리처럼 중얼 거려 졌다.
고왕경과 참선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도 기도에 재미를 잃어갈 즈음, 어느 보살의 소개로 풍수를 잘 보시는 수월 큰스님을 친견하게 됐다. 스님은 말씀을 하시다가 문득 내게 물으셨다.
“보살은 어떤 기도를 주로 하는가?”
“고왕경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데요.”
아마 내가 송담 큰스님께서 숙제로 주셔서 고왕경을 한다고 했더라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지 모른다. 천왕사에서 야단맞은 후라서 그냥 생각없는 대답을 했지 싶다.
“그런 경을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그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지요. 그러지 말고 대다라니로 바꿔보세요. 큰 것을 얻으려면 큰 경을 해야지요.”
나는 그날로 고왕경을 내치고 말았다. 큰 것을 얻는다는 말에 욕심이 발동을 건 것이다.
우리 애들은 엄마는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잘 듣는다고 흉을 본다. 누가 기도처가 영험하다면 달려 나가고, 건강식품이 좋다면 큰아들이 의사고 딸이 한의사인데, 말려도 듣지 않고, 사들이거나 만들어서 강제로 먹인다며 기가 막혀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 부분은 한심하지만 양보가 안 된다. 송담스님이 근기에 맞도록 주신 고왕경에서, 큰 것을 얻으려면 신묘장구 대다라니로 바꾸라는 한마디에 여러 해 동안 수지 독송하던 경을 가차없이 밀어낸 것도 그런 내성격의 장난이었다.
지금도 송담스님께 죄송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다. 그냥 계속했어야했다. 스님은 우리가족의 미래를 예견하시고 시킨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고왕경을 계속하는 동안은 남편의 사업이 힘들기는 했어도 별 탈 없이 잘 꾸려갔다. 그런데 서서히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도 나는 그것을 몰랐다. 부도가 난 다음 한참 지나서야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1992년 12월 22일. 대학입시 100일 기도가 끝나던 날 남편의 사업은 절대로 부도날 만큼의 상황은 아닌데 부도를 만났다.
그 해 정월부터 나는 기고만장이었다. 막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다. 어느 불자가 안 그럴까마는 나도 세 아이 모두 대학입시 전후 1년은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한다. 5대 보궁은 물론 사리암, 4대 관음성지순례 방생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기도는 다했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염불을 하거나 경전을 보면서 거의 함께 했다. 아이들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했다. 강남에 사무실이 있었으므로 출근길에 봉은사 판전에서 108배와 신묘장구 대다라니 독송 기도를 생활화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입시 100일 기도 입재 날이라고 프랑카드가 드리워 진 것을 보고, “그래, 나는 부처님의 가피로 세 아이 다 좋은 대학에 넣었으니 다른 집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자.”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평생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 부처님 앞에서 대견해 했다. 꼬박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일을 채웠는데, 그것도 남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하필이면 100일기도 회향하는 그날 부도가 난 것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주제넘게 남을 위해 기도한다며 부처님 앞에서 잘난 척 해서 벌 받은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지, 그날 이후 부처님은 커녕 봉은사로路라고 쓴 도로 표지판조차 외면하고 다녔다.
얼마 후 정신을 가다듬고야 고왕경을 놓아버린 잘못이 가슴을 후볐다. 내 근기를 챙겨주신 스님의 뜻을 알아차렸다. 1000배, 3000배 참회의 수행을 시작했지만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어 다시 고왕경을 잡았다. 아니 매달렸다. 큰 스님은 이런 고통이 있을 것임을 예견하시고 내게 주신 것도 모르고, 큰스님을 뵙고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로 갈등을 겪는 순간을 점검 받고 마음을 다잡았으면, 아마 그런 큰 파도는 넘어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쪽에서는 지금도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신통한 영험의 끔찍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100일 기도 끝의 발원은 항상 ‘이 도량에서 기도하는 엄마들의 모든 자녀들을 모두 원하는 대학에 합격 시켜 주시고, 아울러 저의 업장을 소멸시켜 주십시오.’ 였다.
부도가 업장의 소멸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기도의 성취였음을 왜 몰랐을까. 나의 미련함은 항상 지나서야 알아차린다. 그래서 부끄럽고 괴롭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가끔씩 친견하게 되면 늘 그러신다. ‘부처님을 의심치 않고 다시 제자리에 와서 열심히 믿는 보살이 대견하다’라고, 그 한 말씀이 내가 가는 길에 지표가 되고 신심이 다짐되고 있음을 큰 스님은 아실지 모르실지 모르지만, 나는 이승에서 송담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는 복이 있음을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고왕경 꼬리를 놓지 않고 산다.
출처: 금강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네이버카페 윤거사님글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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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저는 고왕경을 독송하니까 예지몽을 꾸게 되던데요. 대비주를 독송하니 반대로 과거 전생의 꿈을 많이 꾸게 되고, 능엄주를 독송하니 무슨 꿈을 꿨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더라구요, 아무튼, 사람마다 좀 다르겠지만 고왕경 독송 할때에 며칠 안에 고왕경이 참으로 영험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고왕경을 독송하다가 어느날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누군가가 하라는 것 처럼 느껴지면서 독송하게 되더라고요 고왕경에 여러불보살 이름이 들어있지만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오직 관세음보살님의 대한 경이라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에게 관세음보살님만 모실것 같으면 고왕경 말고 차라리 관~보문품을 읽으라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 안 재성님 글
79.
산승이 오래 전에 남해 보리암에 기도갔다가 만난 처사님인데 당신은
6.25 전쟁때 고왕경을 독송하고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산으로 피난가는 중에 허공가운데서 이야기하기를 그쪽으로
가지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해서 돌아가서 피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쪽 길위에는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왕경 기도덕에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매일 시간내어서
평생 고왕경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화에보면 전쟁중에 기도하여
살아난 일화가 부지기수로 많이 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80.
지금 고왕경에 대한 제 경험을 이야기해드리자면 저는 2007년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고왕관세음경을 3,000번 이상 독송했었습니다. 경중에 어디에도
이 경을 천번 독송하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써있는 경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효험은 엄청났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허물이 있다면 효험이 나타난 이후에도
계속 독송했었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피부속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대원군은 이 고왕경 10만번을 수지독송하고 이후 10년을 집권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해탈하십시오.
저는 현재 다시 고왕관세음경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hwg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