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6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1006화] 농협 개혁, 기득권 유착부터 끊어야
농협이 총체적 부실ㆍ비리 덩어리라는 사실이 올해 국감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1988년 이후 직선으로 선출된 1~3대 회장이 모두 비리로 구속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위 아래 가릴 것 없는 도덕적 해이는 임직원들의 횡령, 방만한 경영, 무책임한 조직 운영, 파행적 자산 관리 등 전방위에 걸쳐 비리 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도 올해 초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촉구한 농협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부패한 농협에 기생하는 기득권 세력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비리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은 농협의 존재이유를 의심케 한다. 우선 고객예금과 정보를 빼돌려 주식투자하고 공무원ㆍ교사 등 무자격자에게 대출하는 등 일상화한 횡령과 부당대출 등으로 2005년 이후 해직ㆍ정직 등의 징계를 받은 임직원이 900여명에 달했다. 대부분 낙하산 인사인 농협사료 농협목우촌 등 21개 자회사 임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7,000만원을 넘었다. 공기업 임원 처우를 차관급으로 정한 정부 지침마저 적용되지 않는 '별천지'에 다름 아니다.
내부 문화가 이러니 중앙회와 지역조합 자회사 고위간부들이 121계좌 820억원대의 골프장 회원권으로 흥청망청 골프를 즐긴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감에서 골프장 회원권 등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라고 지적한 것은 공염불이 됐고, 240만 조합원들의 피땀 어린 돈으로 초원의 잔치를 벌인 꼴이다. 2000년 이후 외화증권에 투자했다가 6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농협 개혁의 핵심은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 농민 지원을 강화하고 자산을 알뜰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올해 초 민관 합동기구인 농협개혁위원회가 농협중앙회를'농협경제연합회'로 바꾸고, 상호금융을 '상호금융연합회'형태로 독립하는 신ㆍ경분리안을 제안한 배경이다. 하지만 농협은 상호금융을 떼내 연합회를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반발하며 농민 표를 볼모로 정치권과 정부 로비에 매달리는 구태를 연출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유혹과 유착을 뿌리치지 못하면 더 이상 개혁은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1006화] 홀로 죽음 맞는 독거노인,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추석을 맞아 홀로 사는 팔순 노모를 찾아갔던 딸이 주검으로 변한 지 오래된 어머니 앞에서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연휴 마지막날 전해졌다. 외동딸이 직장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살다가 벌어진 참사라고 한다. 추석 연휴를 보낸 뒤 고향의 노부모를 뒤로하고 발길을 재촉한 세상의 자식들에겐 남 일 같지 않은 소식이다. 빠듯한 생활 때문에 귀성을 미뤄야 했던 이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홀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복지 제도는 아직 요원한 한국 사회의 수많은 모순이 집약된 사안이다. 크게 보면, 대책 없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물론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져 내린 농촌 문제 따위와 무관하지 않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양극화 추세 속에 급증하고 있는 빈곤층 문제, 사회복지 혜택 축소, 그나마 있는 복지 제도마저 구멍이 숭숭 뚫려 생기는 사각지대 따위가 노인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가는 주범들일 것이다.
지방정부, 지역별 종교단체, 사회단체들이 서로 협조하는 틀을 갖추면,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활동을 극대화하는 이런 지역별 민관 공동의 사회안전망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정치·이념적으로 편향된 관변 단체에 쏟아붓는 정부 지원금을 돌려쓰기만 해도 당장 가능한 일이다. 관건은 해결 의지이지 예산이 아니다.
[동아일보 사설-20091006화] '묻지마 예산' 8624억 원 누가 어디에 쓰나
노무현 정권 때 정상문 씨가 청와대 살림을 담당하는 총무비서관으로 있으면서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청와대 감사원 국회 등 어디도 정 씨의 비리를 그 전에 잡아내지 못했다. 정 씨가 박 씨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더라면 끝내 적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세금을 낸 국민에게 12억5000만 원은 피와 살 같은 돈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와 법사위는 지난달 국세청 법무부 감사원에 대해 특수활동비를 제한적으로나마 공개하도록 하는 시정요구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08 회계연도 결산안에는 ‘특수활동비 공개’ 대신 ‘부적절하지 않게 잘 쓰라’는 하나 마나 한 당부만 붙어 있었다. 여야 의원 대부분은 안건이 통과되고 며칠 후에야 내용이 바뀌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국회 주변에서는 특수활동비를 많이 쓰는 권력기관이 예결위에 로비를 벌여 국회의 감시를 저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임위가 받아낸 정부 부처의 공개 약속을 예결위가 백지화한 것은 예산 및 결산 심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정보 수집이나 사건 수사 등 보안 유지가 중요한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사용되는 경비를 말한다. 공무원이 국민 세금을 타낸 뒤 영수증도 없이 ‘어디에 얼마를 썼다’는 확인서만 제출하면 끝나는 ‘묻지마 예산’이다. 흔히 ‘판공비’라 불리는 업무추진비와는 다른 별도의 예산으로, 각 부처는 예산 편성부터 비공개로 한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에 ‘본청과 지방청의 월별 특수활동비 집행액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금액은 연간 10억 원 정도로 각 부처와 위원회 및 국회의 올해 특수활동비 총액 8624억 원의 극히 일부다. 최소한의 공개나마 약속한 법무부의 279억 원과 감사원의 43억 원을 합쳐도 전체 특수활동비의 3.8%에 불과하다. 국가정보원의 4860억 원 등 나머지 8300억 원가량은 누가 어디에 쓰는지 납세자들은 알 길이 없다.
비공개가 관행이었던 특수활동비 역시 투명성이 더 높아져야 한다. 공개 수준과 방법은 국회가 정하면 된다. 특수활동비 지출 기관들이 떳떳하다면 집행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야가 공동으로 감시제도를 운용하는 방안도 추진해볼 만하다.
[조선일보 사설-20091006화] 임진강에서 동해안으로 번져가는 경계태세의 해이
지난 1일 귀순한 북한 주민 11명은 전마선을 타고 함경남도 김책항을 떠난 뒤 북 해군 레이더망을 피해 남동쪽으로 230여㎞ 밖 공해(公海)까지 나갔다가 다시 남서쪽으로 틀어 우리 영해(領海)로 들어왔다. 이 배를 1일 오후 3시22분쯤 강릉 남동쪽 7.4㎞ 부근 바다에서 처음 포착한 것은 육군 레이더였다. 육군 레이더는 이 배가 해안에 설치된 레이더의 감시 반경 9㎞ 안에 들어선 뒤에야 발견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5일 국정감사에서 "세계 어느 나라 해군도 12해리를 넘어서는 거리에서 3t짜리 배를 잡을 수 있는 데는 없다. 레이더 기능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작은 물체라도 12해리 안에 들어가면 잡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12해리면 우리 영해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거리다.
이 배는 육군 레이더에 잡힌 뒤에도 2시간38분 동안 강릉 앞바다에서 주문진 앞바다까지 25㎞를 북상했다. 북한 주민을 실은 배는 우리 선박들과는 달리 선체 밖에 엔진을 단 배다. 육군은 오후 3시48분쯤 우리 배의 구조와 다른 이 배를 발견하고도 "선체 밖에 엔진을 단 우리 소형 어선이 몇척이나 등록돼 있느냐"고 묻기만 하고 선박 검문 요청은 하지 않았다. 육군은 오후 5시50분쯤 이 배가 해안 300m까지 접근하자 비로소 해경에 검문을 요청했고, 해경은 오후 6시2분에야 출동해 이 배가 북한 선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해군·해경은 물론 해안 경비를 맡은 육군까지 해상 경비 시스템과 공조체제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군은 "우리 어선 중에도 식별되지 않는 선박이 많아 의심스러운 배가 아니면 항구에 들어간 뒤 식별 요청을 한다"며 "이 배는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고 해명했다. 그 배가 귀순 선박이었기에 망정이지 우리 어선인 양 위장하고 간첩·무장공비를 태운 배였더라면 빤히 눈 뜨고 당할 뻔한 것이다.
지난달 6일 북의 무단 방류로 6명이 목숨을 잃은 임진강 사태 때도 당직 공무원과 수자원공사 직원은 계측장비 감시를 게을리 했고 군은 수위가 갑자기 올라가는데도 당국에 통보하거나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제대로 근무를 선 것은 딱 두 명, 필승교 초소 초병들뿐이었다.
이런 경계태세의 구멍이 비단 동해안과 임진강뿐이겠는가. 서해부터 휴전선을 거쳐 동해에 이르는 접적(接敵) 지역 도처의 경계태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두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민관군(民官軍)의 안보의식이 많이 풀어졌고 해안 경비를 위해 설치됐던 가시철망 등 방어설비의 대부분이 제거됐다. 예전엔 밤이면 초병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던 해안 모래밭에 피서객들이 유유히 산보하는 요즘이다. 이럴수록 정신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되는데도 현실은 달리 돌아가고 있다. 임진강과 속초 앞바다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면 휴전선에서 40㎞밖에 떨어지지 않은 수도 서울은 어떤 의미에서 무방비(無防備) 도시라는 느낌마저 준다.
[서울신문 사설-20091006화] 행정개편 단체장 설문결과 존중하길
지방자치단체 간 짝짓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통합 건의 지역이 당초 예상 폭을 크게 웃돌았지만, 상대 지자체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방구애’나 ‘동상이몽’도 적지 않아 최종적으로 몇 곳이 합방에 성공할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18개 지역 4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율 통합건의서가 행정안전부에 접수된 가운데 일단 대상지역이 일치하는 청주-청원, 전주-완주, 성남-하남-광주, 여주-이천, 구리-남양주 등 5개 지자체를 중심으로 통합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행정구역 통합은 지난 추석 연휴기간 고향길과 고향집에서 가장 풍성한 얘깃거리를 제공한 정책 이슈 중 하나였다. 서울신문은 통합에 대한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 전수 설문조사 결과를 어제 보도했다. 253개 자치단체장에게 질문한 결과 67%인 169명이 통합에 찬성했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가운데 80%인 20명이 동의한 점도 눈에 띈다. 서울 구청장들의 64%는 통합시 인구규모로 최소 80만명 이상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서울을 5~6개 자치구로 ‘대통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80%가 반대했다. 10개 정도로 ‘중통합’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지역 통합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장들에 대한 첫 전수조사란 점에서 고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의 주체 논란과 관련, 기초단체장의 66%가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현재처럼 정부 주도형으로 이뤄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은 20%에 불과했다. 우리가 그동안 주장한 것처럼 정부가 통합의 큰 틀과 밑그림을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 일정 추진과정에서 단체장들의 이 같은 의사는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091006화] 청년실업자 두번 울리는 뻥튀기 취업통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 성과가 4배나 뻥튀기 된 사실이 고용정보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8월 말 현재 정부가 고용을 창출했다고 집계한 일자리 사업은 234만2811건인 데 비해 실제 일자리를 얻은 구직자는 55만1095명으로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동일한 구직자가 여러 일자리 사업에 중복 취업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총 일자리 숫자만을 떠벌리느라 국민 혈세로 마련한 정부 예산은 얼마나 축냈겠는가. 이런 일자리 과대 포장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애태우는 구직자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만이 아니다. 대학들이 학생과 학부모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대학 알리미`에 공시하는 정보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청년 실업이 만연한 가운데 대입에서 대학과 학과 선택에 큰 영향을 주는 졸업생 취업률을 뻥튀기하는 사례가 많아 현직 대학 총장도 심각한 폐해를 걱정하고 나섰을 정도다.
대학들이 엉터리 자료를 버젓이 공시하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 검증 절차가 허술할 뿐만 아니라 허위임이 드러나도 해당 정보 수정만을 요구할 뿐 제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검증 절차를 개선하고 거짓 정보를 게시한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통계는 상황 판단과 정책 결정에 꼭 필요한 나침반과 같은 존재다. 부실한 통계로는 현상을 바로 보기 어려워 정부든 민간이든 의사결정을 그르칠 염려가 크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통계 정확성과 신뢰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로 간주되기도 한다. 국격을 높이자면서 국민의 눈을 가리는 통계가 판쳐서야 말이 안된다.
차제에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실업률 통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실업자가 330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고용이 얼어붙어 있는데 실업률은 완전고용 상태인 3.7% 수준에서 요지부동이니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신예리(논설위원)-20090106화] 명절증후군
대한민국 주부라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빚(?)이 하나 있다. 1983년 일본 여행을 갔던 주부단체 회원들이 빠짐없이 일제 ‘코끼리 전자밥솥’을 사온 게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시중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당시 대통령은 주부들을 탓하는 대신 “밥통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밥통들”이라며 아랫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6개월 내에 밥솥 못 만들면 밥 먹을 생각들 말라”는 엄명에 전문가들이 죄다 모여 양질의 국산 전자밥솥 개발에 나섰다는 것이다(손성진,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그 사건을 계기로 물 넘칠까 밥 탈까 노심초사할 필요 없이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전자밥솥이 대중화됐으니 주부들로선 고마울 따름이다. 세탁기 역시 가사를 획기적으로 줄여준 일등공신이다. 일일이 손으로 빨아 짜고 말리는 힘든 과정이 버튼 몇 번 누르는 걸로 해결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올봄 교황청이 세탁기를 ‘여성 해방에 가장 기여한 물건’으로 치하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들 가전제품의 탄생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이 깊다. 1, 2차 세계대전 중 남자들 빈자리를 대체했던 여자들이 이후 본격적인 산업 역군으로 나서자 가사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생긴 거다. 실제로 여자들이 집안일 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미국 여성의 경우 76년 주당 평균 26시간을 가사 노동에 썼지만 요즘은 17시간 안팎이라고 한다.
문제는 남녀 간 격차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미주·유럽 8개국을 조사해보니 여자와 남자가 얼추 7대3의 비율로 가사를 분담하는 걸로 나타났다(2007년 미국 조지메이슨대). 한국은 그 차이가 더 심하다. 한국·미국·독일을 비교한 또 다른 조사 결과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46분으로 여성(4시간9분)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미국·독일 남자들에 비해도 3분의 1에 불과하고 말이다(2005년 통계청).
명절증후군은 바로 이런 현실이 낳은 병이다. 특히 맞벌이 주부라면 남편은 TV 앞에서 뒹구는데 자기만 차례상 차리느라 허리가 휘는 명절이 우울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주문 차례상’이란 해법이 그래서 나왔을 터다. 하긴 굳이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클릭 한 번으로 명절 준비 끝내고 남는 시간은 모처럼 부부간 애정을 돈독히 하는 데 쓴다면 어떨까. 그래서 자손만 안겨드린다면 조상님도 타박 않고 맞춤 음식을 흠향하시지 않을까.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성수(논설위원)-2091006화]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
단발령(斷髮嶺)은 강원도 금강군과 창도군 경계에 있는 고개다. 북한 땅이다.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금강산이야말로 절경이다. 당장 머리깎고 중이 되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고들 한다. 단발령은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달래며 이 고개에 이르러 머리를 잘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발령에 얽힌 세조의 전설도 극적이다.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가 꿈에 형수를 본다. ‘더러운 인간’이라며 침을 뱉자 그날부터 온 몸에 종기가 돋았다고 한다. 세조는 금강산에서 기도하기 위해 단발령에 오른다. 산색은 청정하고 물소리는 부처님 음성을 듣는 듯했다. 그대로 중이 될 것을 생각했다. 신숙주가 말려 윗머리만 잘랐다는 이야기다.
‘조선의 묵성(墨聖)’으로 불리는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 ‘단발령 망 금강산도’이다. 금강산을 대면하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새처럼 내려다 본 듯 그린 이 작품은 불국토(佛國土)를 연상케 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선은 안견,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3대화가로 불린다. 중국 북종화와 남종화를 결합시킨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했다. 진경산수는 상상이 아닌 참 경치(眞景)를 그린 것이다. ‘진경화법’이라는 말에는 대상의 참 모습, 곧 본질을 묘사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 진경산수화는 모두 국보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1월22일까지 ‘겸재정선-붓으로 펼친 천지조화’전을 연다. 정선의 산수화 중 빼어난 ‘보덕굴도’ ‘문관암 일출도’ 등 140여점을 전시중이다. 주목해야 할 작품이 또하나 있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겸재 정선 화첩’이다.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돼 있다 80여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1924년 베버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정선의 그림에 반해 입수해 간 것으로, 한 한국신부의 노력에 의해 반환됐다. 미술품 경매업체인 크리스티, 소더비 등이 군침을 흘렸다고 한다.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린 ‘구룡폭’, 이성계가 살았던 함흥궁궐의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 등이 들어있다.
‘사용한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룬다’는 천재화가 정선. 국보급 그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문화의 계절 가을도 서서히 깊어간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로터리/황성호(우리투자증권 사장)-20091006화] 살기 좋은 곳
추석 연휴라 다소간 여유가 생겨서 모처럼 한 유명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보았다. 첫 눈에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조그만 마을들을 소개해놓은 창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역사적 유물,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된 곳들이었다.
지인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살기 좋은 곳은 어떤 곳이냐고. 좋은 기후와 주변에 운동 또는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꼽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떤 이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최우선이라고도 했다. 살기 좋은 곳의 정의는 어떻게 내리는 것인가. 그 답을 생각해보니 산다는 것이 무언지 참 궁금해진다.
산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편리한 자녀교육, 충분한 편의시설, 저렴한 물가, 가까운 직장 등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산다는 것에 철학의 옷을 입히고 또는 정치적인 모양을 내고 보면 어디서 사는 것이 좋은지 모를 일이 된다.
젊은 시절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실패할 수 없는 한 판 승부로만 인생을 생각했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삶의 한 바퀴 휙 돌아, 조금은 인생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지금에 또 다시 살기 좋은 곳과 산다는 것이 무언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골프 시합처럼 꾸준히 치고 올라와 마지막 반전이 가능할 것인가. 조용한 관조와 선행의 나머지 삶을 살 것인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마 우리 마음속에 있지 않나 싶다. 환경은 부차적인지도 모른다. 편안한 내 집 거실에서조차 마음은 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은 마음속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마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제공하는가 하는 문제의 답도 각자의 몫이다.
오늘까지 살아온 날들의 경험이 그 해법의 큰 줄기를 제공한다. 남은 날들의 생활을 큰 변화 없이 조용히 관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많다면 사람은 꿈보다도 질서와 안정을 원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남은 날의 반전이나 겪어온 많은 경험을 타인의 꿈과 희망에 보태주기를 원하면 변화를 희망하고 힘을 내고 싶어한다.
각자의 '오늘'이 남은 '내일'을 얼마나 더 키울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갈 곳은 우리 마음속에 있음이 확실하다. 단지 그 마음이 남들에게 살기 좋은 곳을 제공할 수 있는 여유로운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 오늘 한국경제신문은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아서 자료 탑재를 못 하네요. 이 점 널리 양해를 바랍니다.
20091006화.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