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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道人들
⊙ 성경섭 기자 :
요즘 길을 가다보면 얼굴에 공덕이 있느니, 나쁜 기운이 도는니 하면서 말을 건내오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칩니다. 도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말에 솔깃해 따라갔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상입니다. 곧 세상이 바뀌니 조상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면서 제사를 지낼 것을 강요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말에 현혹돼 금전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과 거리를 전전하는 젊은이들도 적지않습니다. 조상신을 들먹이며 유혹하는 정체불명의 도인들, 그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영상취재 심승보 / 영상편집 이수용 / AD 이영민
인파가 몰리는 퇴근시간 무렵 인천시내 번화가입니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한두번씩은 꼭 마주치는 장면이 벌어집니다.
- 도하는 사람 만나봤어요? 수도하는 사람인데... 아가씨 느낌이 참 좋아요.
- 점치는 분이세요?
- 마음을 닦는 사람이에요.
사주나 관상을 봐주나 보다 생각하고 따라가면 엉뚱한 얘기가 튀어나옵니다.
- 자기 조상신을 받고, 잡신들 천신들 천신 만신이라고 들어보셨죠?
조상중에 한을 품고 죽은 분이 있어서 원혼을 달래주지 않으면 집안에 화가 미친다는 겁니다.
- 귀신도 가고 싶어하는 고향이 있어요. 되돌아가야 하는데 가지못했다고... 먼데 계시는게 아니고 지옥에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구천에서 (떠도는데)... 본인이 여기 가면 여기 가고 저기 가면 저기로 가고, 내가 이 길로 가려하면 틀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원혼을 푸는 길이라며 제시하는 방법이 황당무개합니다.
- 선방에 가서 상차림하고 절 한번 드리고 녹명하시면, 하늘의 기운을 받아서 (손바닥에)도장이 찍혀요.
오늘이 바로 제사지내기에 좋은 길일이라며 유혹합니다.
- 본인이 정말 마음먹었으면 오늘 하세요. 사람이 길일이라는게 있어요. 인생은 기회가 있고, 길일은 때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제사비용이라는게 상식의 선을 뛰어넘습니다.
- 한이 많잖아요, 한 많은 귀신이 많게 되면 올라갈수록 (비용이)늘어요.
-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 보통 사람들은 100(만원)만 하시면 되고, 200(만원)하시는 분도 있고... 정말 능력이 되시는 분은 몇백 만원씩 하시는 분도 있고...
- 도에 대해서...
번화한 도심의 거리에서 도를 얘기하자며 은밀하게 접근해오는 젊은이들, 사주관상은 물론이고 조상의 업보까지 꿰뚫어 본다는 자칭 도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부근에 있는 허름한 3층 건물입니다. 거리의 도인들이 모이는 도방이라는 곳입니다. 날이 저물자 정체불명의 젊은이들이 분주하게 드나듭니다. 강의라도 있는 듯 창문밖으로 칠판 지우개를 터는 모습도 보입니다. 건물에서 나오는 한 여학생의 뒤를 따라가봤습니다. 지하철역 주변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얘기를 걸던 여학생이 취재진에게 접근해 옵니다.
- 전생에 좋은 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겉모습이 아니라, 인상에서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마음이 많이 여리시죠?
종말론을 슬쩍 내비치며 도를 공부하는 곳에 같이 가볼 것을 권합니다.
- 종말이 올 것 같아요? 요즘 영화 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혜성이 떨어지고... 21세기는 새로운 시대가 창조된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는데 지금이 막바지란 얘기거든요.
가정집처럼 꾸며진 건물 3층 현관에 들어서자 수많은 신발들이 보입니다. 현관입구의 종이 가방들과 거실에 걸린 옷가지들이 집단 합숙소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취재진을 골방으로 안내한 뒤에야 자신이 도인임을 밝힙니다.
-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도인이에요.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나서 여기까지 오시게 됐는데 뭔가 기운 자체들이 맑으세요. 본인 자체는 기운이 좋지만, 안 좋은 기운에 가려져 있단 얘기예요. 수도를 하고 이치를 공부하다보면 그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좋지않은 쪽으로만 집안 일을 물어보며 꼬투리를 잡아냅니다.
- 집안에 혹시 단명하신 분 안 계세요?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 그럼 집안에 아버지가 단명하셨고, 객사하신 분도 있고, 객사는 병원에서... 척(원한)이 많이 들어왔네요. 원과 한이 맺힌 조상님은 후손들에게 좋은 기운보다는 화나 재앙을 주시는 법이에요.
도의 경지가 높다는 나이들어 보이는 여자가 들어와 거듭니다.
- 집안에 조상님들이 뭔가 많이 맺혀계세요. 그 원한 맺힌 에너지가 떠돌아다닌단 말이에요, 원혼들이. 이러한 모든 맺힌 원한을 풀 수 있는 차원이 시운치성이라는 거거든요. 정성을 한 번 드려보십시오.
조상신을 빌미로 노골적인 돈 얘기가 시작됩니다.
- 사람이 돈을 좋아하잖아요? 결론은 (조상)신도 돈을 좋아하거든요. 돈이란 것도 내가 가지고 있더라도 내돈이 있고, 내 조상을 위해서 쓸 돈이 있거든요. 내 돈이 아닌 돈이 있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죠?
치성을 드리는 비용은 대충 정해져 있습니다.
- 보통 학생들도 50만원 정도는 해요. 직장인도 100만원 200만원은 하고, 물질이 아까워서 안 내놔요. 그러면 그 돈은 반드시 안 좋은 일로 나가요. 내가 다치든 집안에 누가 다치든지 해서 반드시 나가게 돼 있어요. 그게 왜 그러냐하면 조상이 친다는 거예요.
지금은 돈이 없다고 하자 정성금을 미리 약조하라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 그러면 정성금을 오늘 미리 모셔놓고, 찾을 수 있잖아요. 통장에서. 적금, 대출하고 하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어요? 평생에 단 한번 하는 거잖아요.
기어코 몇만원을 선금조로 걸게 한 뒤 약속과 비밀을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 조상님과의 약속이라는 걸 잊지마세요, 근데 내가 이걸 어기잖아요? 그러면 조상님이 절대 용서 안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100일 동안 나 이외에 어느 사람에게도 절대 이 정성에 대해서 얘기를 해서는 안돼요.
얼굴만 보고도 집안 내력과 조상들의 업보를 훤히 들여다 본다는 자칭 도인들, 취재팀은 이들의 실체를 알아내기위해 조상의 원혼을 풀어준다는 제사의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제사가 벌어진다는 서울 구로 전철역 부근의 또다른 도방, 가정집처럼 꾸며진 거실 한쪽의 주방에서는 제사음식 장만이 한창입니다. 한 남자가 제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 옛날에 임금이나 그런 분들이 지내는 천제와 비슷해요.
-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그러더라구요.
- 어차피 내 돈 내가 들어가는 거니까. 사람은 투자를 할 줄 알
면, 투자해서 그 만큼의 가치를 얻으면 되는거지. 세상에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아는 건
데, 어마어마한 건데...
제사를 준비하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미리 준비해 놓은 한복을 꺼내놓습니다.
- 예를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 속바지, 속치마 입으시고...
상차림이 일반 젯상과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 바나나도 올라가요?
- 지금은 우주의 가을이고 음양합덕이 되는 때거든요. 조상님들이 다 원 푸시고 좋은 곳으로 가시기 때문에, 못 먹었던 음식들을 전부 다 올리는 거죠.
제사에 앞서 개인 신상을 적는 입적부가 작성됩니다.
- 생년월일도 있고 하는 것인데, 그걸 태워 올리는 순서가 있어요.
말하자면 내일 돌아갈 운이다 하더라도 오늘 녹명지를 소상하면 운이 바뀌거든요.
제사에 쓸 지방같은 것을 만들기위한 기록이라지만 신입자를 맞는 절차처럼 보입니다. 천지신명에게 절을 올리고 소원을 비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 '도통군자가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비시는 거예요. 꼭 비셔야 돼요.
예행연습이 끝나자 방문을 걸어잠그고 제사가 시작됩니다.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민간제사와 달리 출입자를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50분간 가량 계속된 제사의식은 전통 제사의식과 비슷합니다. 다만 절하는 방식이나 주문을 외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 취재진을 또 다른 방으로 안내한 사람은 귀신얘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을 보여줍니다. 초심자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비디오입니다. 벽에 걸린 그림과 책상위의 화보에서는 신비스런 분위기를 내는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제사가 끝나자 음복절차가 이어집니다. 제사음식을 챙기던 사람이 묘한 말을 꺼냅니다.
- 닭고기는 수돗물 맹물에 그냥 삶은 거예요. 그런데 냄새가 안 나요. 엄청난 신령기가 내려지기 때문에...
젯상에 올렸던 물도 신령기를 받아 성분이 변했다며 마셔보기를 권합니다.
- 예전에 카이스트 (과학기술원)쪽에서 저희 제사를 드렸다가 아주 놀란 거죠. 이게 어떻게 된건가 보니까 분자구조가 엄청나게 달라져 있더라는 거예요.
도를 깨달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괘변을 늘어놓습니다.
- 지금은 엄청나게 급변하는 시대예요. IMF가 터졌네 어쨌네 하
고, 김일성도 죽고 금강산도 어쩌고 그러잖아요? 도를 닦다 보니 미리 다 알고 있었어요, IMF도 미리 다 알고 있었거든요.
사이비 종교라는 의구심을 피하기위해 자신들이 전국적인 조직임을 과시합니다.
- 종교와 수도는 차원이 다르죠. 종교는 믿는 거지만, 수도는 내가 닦아 나가는 거예요.
- 전국적으로 회원이 몇 명이나 되나요?
- 회원은 2백만명, 가족까지 쳐주는데 가족까지 하면 8-9백만명 정도... 의외로 도인들이 많아요.
치성들인 사실을 가족들에게 조차 발설하지 말라며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 좋은 꿈을 꾸고 나서 어떻게 해요? 떠벌려서 얘기하는게 아니라, 조금은 참아뒀다가 시일이 지난 다음에 얘기해도 된다고 하잖아요. 치성도 마찬가지거든요. 치성 드린 다음에 유·불·선 도통신령들이 쫓아다니면서 먹줄을 퉁기면서 뭘 적는다고 그러시거든요.
지난 8월말, 도를 공부한다는 친구에 이끌려 내키지 않는 제사를 지냈다는 여대생 박 모양,
⊙ 박ㅇㅇ(대학생) :
2만원밖에 없다고 했더니, 카드 같은 거 없냐고 카드를 막 보더니 이거 뽑아서 하라고...
제사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조상에게 선택받았으니 천지개벽에 대비해 계속 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 박ㅇㅇ(대학생) :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시대라는 거죠, 지금은. 후천개벽... 시기는 지금 가까워 왔다.
- 그런걸 무시할 때는 어떤 현상이 온다고 그래요?
집안이 망한다는 식으로 얘기하죠, 변화에 적응 못하고...한달 남짓, 수련이란 명목의 교육이 끝난 박양은 엉뚱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 박ㅇㅇ(대학생) :
가만히 눈을 감고 조상님들의 업을 풀기 위해서는 얼마정도 정성을 드리면 되겠는가 생각을 해보래요. 생각 안 난다고 했더니 300(만원)정도... 어떻게 그걸 받아내느냐고 학생으로서 그랬더니 노트북 잃어버렸다고 하라고...
유혹에 빠져 학업을 중단하거나 가출하는 젊은이들도 적지않습니다. 서울 왕십리 부근의 도방에 드나들던 지방출신 여대생 김 모양은 얼마전 갑자기 종적을 감췄습니다.
⊙ 김ㅇㅇ(학교선배) :
그 친구는 1학년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나는 게 사주 관상에 대해서 관심이 참 많은 친구였거든요. 한 한학기 정도 지나니까 애가 잘 안 보이더라구요.
걔네 집에서 급하게 과로 연락이 왔었거든요, 애가 연락이 안되고 수소문이 안된다고...
이상한 모임에 빠져든 뒤 부터는 돈 관계도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김ㅇㅇ(학교선배) :
친구들한테 돈 몇 만원 빌리는 정도가 아니고, 액수가 십만원 백만원 이 정도 단위를 빌려달라고...
김양이 친구나 선배들을 포섭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한 흔적도 있습니다.
⊙ 김ㅇㅇ(학교선배) :
만나서 가보니까 모여서 집단합숙을 하고 있는 곳이더라구요. 저를 같이 생활하는데 소개를 해주고 입단을 하라고...
20대 중반의 회사원 정 모양은 어느날 갑자기 가족들에게 온다 간다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 정ㅇㅇ아버지 :
남자가 접근을 하더니 치성을 드리면 네 병도 없어지고 집안도 잘 일어나고 그럴거라고 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더니 어느날 전화가 와서 나간 날짜가 걔가 (딸이)없어진 날짜예요.
가족들은 정양이 실종신고 7개월만에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되돌아온 후에야 거리의 도인들의 꾐에 빠졌던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 정ㅇㅇ아버지 :
은행에 혹시 예금이나 적금 해 놓은게 있냐, 한 140만원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걸 해약하고 찾아와라, 가출한 그 이튿날 인출해 버린거예요.
⊙ 뉴스데스크 (89년 7월21일) :
집단가출한 사람들은 20대에서 40대까지의 가정주부들로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전혀 소식이 없습니다.
지난 89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주 주부집단 가출사건, 신흥종교에 빠진 가정주부 70여명이 사이비 교주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현혹한 것도 바로 후천개벽에 대비해 도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근거없는 신비주의를 퍼트리고 다니는 거리의 도인들과 닮은 모습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산속이 아닌 거리로 나와 젊은 추종자들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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