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세기 사상을 찾아서(26)
라캉의 "정신분석".
임진수(계명대교수 불문학)
"자아는 거울 속 이미지일 뿐―프로이트 이론 이어받아
라캉이 목표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보통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나'(전문적인 용어로는 '자아')는 실제로는 상상의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이것은 라캉의 유명한 개념인 '거울 단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라캉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처음 자신의 육체를 '조각난' 것으로 여기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생물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한다는 것. 거울 속의 이미지는 자아의 개념 형성에 필수적이고, 그 결과 자아의 개념 속에는 반드시 상상계가 스며들게 마련이다.
둘째, 욕망은 근본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며 정신분석은 그 욕망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라캉은 헤겔로부터 이어받은 이런 욕망의 이론을 통해, 성욕 일변도인 프로이트의 이론(범성욕주의)에서 벗어난다. 라캉의 욕망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한 번 먹으려 해도 타자를 불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는 언어를 매개로 한 사랑의 요구가 된다. 그것은 곧 생물학적인 욕구가 언어에 의해 요구로 굴절되면서 그 둘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차이는 언어의 속성상 욕구가 충족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언어를 타고 표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라캉의 정신분석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주체와 그의 진실이다. 라캉의 진정한 주체는, 말하는 주체를 통해 드러나는 욕망의 주체이다. '진정한 주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주체의 분열은 말의 차원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가령 "나는 밥을 먹고 있다"는 말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나'와 말을 하고 있는 '나'는 다르다. 말에 의해, 말하는 주체와 그 말의 대상-주체로 분열되는 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진정한 주체는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문제는 대상-주체에 대해 말하면서, 동시에 말을 하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하는 주체가 문장의 표면에 몸을 드러내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크레타 사람의 역설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의 진실은 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한 주체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주체를 문제 삼을 때 진실이 드러나는 말, 그리하여 말하는 주체가 말의 표면에 반쯤 드러날 수밖에 없는 말을, 라캉은 '반쯤-말하기(mi-dire)'라고 한다. 따라서 라캉 식으로 말하면, 정신분석적으로 잘-말하기(bien-dire)는 항상 반쯤-말하기이다.
라캉의 주체와 욕망에 대한 이론은 알튀세르-들뢰즈-크리스테바 등 라캉 뒤에 오는 많은 철학자들과 메츠를 비롯한 영화이론가, 예일학파를 중심으로 한 문학비평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러한 사상은 서구 철학에서는 독창적일지 몰라도 동양 철학, 특히 불교 철학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무아는 상주 불변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적인 생각이다. 즉 일체의 존재가 무상한 것이니, '나'라는 존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분별심에 의해 생성된 욕망이 언어를 타고 끊임없이 연기된다는 불교의 사상은 라캉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라캉이라는 배는, 프로이트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불교 사상에 닻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조선일보, 1999년 10월 21일 목)
▶ 라캉은 누구인가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꼽히는 자크 라캉(1901∼1981)은 1901년 파리에서 부유한 포도주 제조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청소년기에는 초현실주의에 심취했다. 그러나 의과대학에서 정신병치료학을 전공하고 의사로 출발한 라캉은 1932년 박사학위 논문 한 부를 프로이트에게 보내 존경을 보이기도 했다. 라캉이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36년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이른바 '거울단계' 이론을 발표하면서부터. 라캉은 1966년 발간된 대표작 『'에크리』 초판본에 '거울단계' 이론을 발표한 날짜, 시각을 명기했다. 이 이론이 자신의 대표적 업적이 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1899년 발간된 『꿈의 해석』의 발간연도를 굳이 1900년으로 해 정신분석학이 다음 세기를 풍미하는 학문이 되리라는 것임을 암시한 것과 닮은꼴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초기의 '무의식'에서 후기로 가면서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며 '자아'로 초점이 옮겨갔다면, 라캉은 프로이트 초기의 무의식에 주목했다. 라캉은 1940∼50년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뿐 아니라 소쉬르의 기호학,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등 근대 이후 서양 인문학계의 업적을 골고루 수용해 새로운 정신분석학의 체계를 세운다. 알튀세르의 주선으로 1963년부터 고등연구원에서 열린 라캉의 강연에 롤랑 바르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필립 솔레르스, 푸코, 레비스트로스 등 쟁쟁한 인물들이 줄줄이 참여한 것이나 문학, 언어학, 기호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라캉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그의 정신분석학이 다양한 학문을 아우른 데 따른 것이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학과 연결시켜 재조명하는 일이 유행이 하면서 라캉의 무의식 탐구는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매우 주목받았다. 진홍빛 벨벳 망토를 걸친 차림으로 라캉이 나타나는 세미나에는 항상 1000여 명의 청중이 북적댔다. 미국의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왜곡-변질시켰다고 하여 1964년 국제프로이트학회를 탈퇴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 이후 그는 미국의 MIT, 예일대 등에서 초청받아 강의하는 등 미국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1941년 소설가 조르주 바타이유와 별거 중이던 실비아 바타이유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얻은 후 라캉은 그녀와 1953년 뒤늦게 결혼을 하기도 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