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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의 항공산업 진출은 후자에 속한다. 항공은 물론 운송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다. 더구나 국내 항공시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철옹성을 쌓고 있다. 이들은 자금력과 노하우에서 애경을 압도한다. 그러나 애경은 제주항공을 설립하며 도전장을 던졌다. 제주도와의 합작회사지만 애경이 75%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항공업은 막대한 초기투자비가 들어가는 산업이다. 유가나 경기의 영향도 적잖이 받는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비즈니스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애경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애경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시장을 확보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틈새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 6월 초 제주항공은 첫 비행에 들어갔다. 당장에는 김포~제주, 김포~김해 노선만 오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국의 공항을 커버하는 것은 물론 국제선 시장에도 뛰어들 태세다.
1950년대 애경은 비누회사였다. 생활용품업체에서 화학과 유통·레저로 뻗어나가더니 이제는 항공산업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항공은 애경이 지금까지 영위해 왔던 사업과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애경의 변신을 지켜보는 재계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서서히 활주로를 질주하다 푸른 하늘로 박차고 오른 애경의 비상은 성공할 것인가.
이 물음의 해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애경은 왜 항공업에 뛰어들었을까. 애경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기업의 신규사업 진출은 일종의 모험이다. 리스크가 없는 사업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항공업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 투자비의 규모도 크다. 아주 위험한 모험에 나선 셈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에 이어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채형석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항공업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의 성공에 고무된 눈치다. 제주항공측은 미국의 대표적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사우스웨스트는 창업 후 30년 이상 줄곧 흑자행진을 지속해왔다. 지난해엔 미국 10대 항공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지난해에 비해 15% 이상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국내선 위주의 항공사가 하나쯤 나올 때가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애경백화점과 AK면세점은 그의 작품이다. 항공업은 그 뒤를 잇는 야심작이나 다름없다. 어머니 세대가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회사를 일군 것을 토대로 아들 대에선 항공, 유통, 레저 등 신규사업을 통해 그룹 규모를 키워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5대에 걸쳐 이어진 제주도와의 인연도 한몫 했다. 제주도는 관직에 있던 채부회장의 고조부가 제주로 귀양살이 오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증조부 묘소도 제주에 있고, 조부는 제주현감까지 지냈다. 애경 창업주이자 선친인 채몽인 전 회장도 제주에서 태어났다.
무엇보다 애경의 항공업 진출은 ‘성공할 수 있다’는 채부회장의 자신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신사업은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계산이 정확해야 한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낭패 본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적어도 3년, 5년 후까지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애경의 계산법이 궁금하다. 주상길 제주항공 사장은 “출범 3년 후인 2009년부터 흑자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3년이면 짧은 시간이다. 더구나 기존 항공사들은 국내선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계산은 어떻게 나왔을까.
이미 애경은 많은 돈을 썼다. 자본금으로 150억원(제주도 50억원)을 출자했다. 5대의 비행기를 1,000억원을 주고 들여왔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항공기도 추가로 구입해야 하고, 승무원도 더 뽑아야 한다. 제주항공은 2006년 239억원, 2007년 474억원, 2008년 765억원 등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구나 제주항공의 요금은 기존 항공사의 70~80% 수준이다. 그럼 제주항공은 어떻게 이익을 낸다는 것일까.
애경은 효율성을 강조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시스템만 정착되면 흑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비행기의 효율성을 꼽았다. 제주항공은 74인승의 소형 터보프롭 기종으로 운항을 한다. 리스를 하지 않고 일시불로 구입했다. 이로써 리스료 부담을 없앴다.
프로펠러기는 일반 제트기보다 유류비가 적게 든다. “기존 항공사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게 제주항공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 관계자는 “항공기 중량이 적어 착륙료, 소음부담금, 조명료 등 공항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며 이 점도 비용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고 덧붙인다.
항공권에 붙은 거품도 뺏다. 인터넷을 통해 항공권의 구매, 환불, 취소, 교환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 항공권 발권비용도 상당수준 절감할 계획이다. 기존 항공사가 제공하는 음료, 잡지, 신문 등의 서비스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수요도 충분하다는 예측이다. 사실 국내 지방공항은 상당수가 개점휴업 상태다. 도로망이 좋아지고 고속철도(KTX)가 생기면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선 항공수요는 해마다 6~7% 성장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매년 1~2%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생각은 다르다. 제주, 여수, 울산, 포항 등 관광지나 기업도시 노선은 승객이 매년 평균 10%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항도 항공요금이 비싼 탓에 승객들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나치게 비싼 항공요금을 내리면 양양, 울진 등 항공수요가 적은 지방공항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김포에서 양양, 울진 등을 오가는 노선은 한 번 운항에서의 승객이 70~80여명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기존 항공사의 항공기와 요금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정원의 75%인 55명이 타도 흑자가 나는 작은 비행기를 운항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기존 항공사와의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벌써부터 견제구가 적지 않게 날아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5~6월 국내선 항공권의 인터넷 판매가를 최대 30%까지 내렸다. 이렇게 되면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제주항공으로서는 자칫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대형 항공기를 투입하면서 국내선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기존 항공사들은 국제선에 전념하고 소형 항공기로 운영되는 제주항공은 국내선 위주로 영업하면 서로 좋지 않으냐”며 한숨을 쉰다. 걱정이 묻어나는 말투다.
수익성 여부를 떠나 안전성은 제주항공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포인트다. 업계의 이런 지적에 제주항공은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봄바디어사에서 신규로 제작한 터보프롭 Q400 기종의 안전성을 그 근거로 든다. 터보프롭 Q400은 2000년 첫선을 보인 항공기로 일본의 일본항공(JAL), 전일본항공(ANA)과 영국의 플라이비(FlyBe), 뉴질랜드의 콴츠(Quants) 등의 항공사에서 모두 112대가 운항 중이다. 아직까지 운항 중 사고가 전무한 기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 사고는 기체의 결함에도 기인하지만 운항이나 점검 등이 소홀해도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측은 현재 채용된 조종사 중 40%가 기존 항공사에서 무사고 30년 이상 경력을 지니고 있는 베테랑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10년 이상의 경력 소유자도 전체의 70%가 넘는다고 한다.
이밖에 독립적인 안전보안실이 24시간 안전을 점검, 모니터링하고 있다. 제작사 권장 예비부품을 100% 확보한 것도 안전조치의 일환이다. 항공기 제작사의 기술진이 상주해 기술지원을 하는 등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주항공의 꿈은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 같지 않다. 주상길 제주항공 사장은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과 일본 항공시장이 ‘오픈스카이’(취항할 수 있는 항공이나 노선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정책)로 바뀔 경우 취항할 수 있는 도시가 무척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Q400기는 5시간 정도의 거리를 운항할 수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제주항공이 국제선 운항에도 뛰어들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항공사 관계자도 “제주항공의 최종 목표는 일본, 중국 등 단거리 국제노선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다윗’ 제주항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제도 적잖다. 증권사 항공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운항원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지금의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탑승률을 최대한 높여 원가부담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설명이다.
또 홍석진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안정적인 자금조달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교수는 “지금의 노선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면서 “더 많은 노선을 운항하기 위해서는 항공기 추가 도입 등 적잖은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중국, 일본 등 국제선에 취항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되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극복하는 것이 제주항공의 또 다른 과제라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6월 초 김포~제주 노선을 첫 운항한 데 이어 6월 중순 김포~김해, 8월 초 김포~양양, 10월 초 제주~김해 노선에 차례로 터보프롭 Q400을 띄운다.
돋보기 애경그룹은?
비누에서 화학, 항공으로 ‘변신 또 변신’
애경의 출발은 채몽인 창업주가 1951년 세운 무역회사 대륭산업이다. 채창업주는 1954년 애경유지를 설립하면서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나 창업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72년 남편 뒤를 이어 장영신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섰다. 장회장은 85년 세계적 다국적회사인 유니레버와 합작으로 애경산업을 세웠다. 92년 유니레버와 결별하면서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전략을 통해 생활용품 시장에서 LG생활건강에 이어 업계 2위로 성장했다. 그룹 매출은 2조원대다. 애경은 이후 애경유화, 애경화학, 애경정밀화학 등 화학산업에 뛰어들었다.
애경백화점과 AK면세점, 수원애경역사 등 유통업에서도 성가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화학분야가 주력이다.
지난해 생활용품부문은 그룹 매출의 22.7%에 불과한 반면, 화학은 51.2%를 차지하고 있다. 장회장은 슬하에 3남1녀를 뒀는데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채형석 부회장을 중심으로 채동석 애경 유통사업부문 사장,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 채은정 애경 마케팅 상무가 함께 그룹을 이끌어간다. 사위인 안용찬 애경 사장은 모기업을 이끄는 동시에 채부회장을 보좌해 그룹 전반의 경영자문역을 맡고 있다.